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532화 (531/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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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익은 수박처럼 쪼개졌고.

우익은 균열이 났다.

전방이 와해되는 순간 속에서 그나마 후방은 다시 질서를 바로잡았고, 판단해야 했다.

지휘부에서 늙은이들의 소리가 빵빵 터져나갔다.

“지금 당장 기사 후퇴령을 내려야 하오!”

오크와 인간의 싸움에서 와해는 곧 인간의 패배와 같았다. 그리고 그 패배를 깔끔하게 인정하고 추려내야 할 곳을 추려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기는 것도 지게 될 것이며, 비기게 될 것도 패배하게 될 터였다.

그런 날카로운 판단을 외쳤음에도 정(情)이라는 것이 언제나 문제였다.

현재 전방, 바로 정면을 맡은 기사 중에는 파이룬 가문의 영웅, 〈지휘관(指揮官) 게실리안 파이룬(Gesilian Faerun)〉이 있었다.

지휘부에 있는 지휘관들은 대부분 불구가 된 기사들로 일선에서 물러나 군략을 더욱 공부한 자들이었고, 파이룬의 이들이 많았다.

길게이의 세력은 신흥세력이나 마찬가지라 늙은이가 적었고, 불파겐이야 말할 것도 없어서 지휘부의 특성은 파이룬 그 자체나 다름없었다.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한다면 전방, 좌우익 포함 2만 명이 죽을 것이오! 허무하게! 아무것도 못 한 채 이 평야에 피를 흘리며 개죽음당하는 것이오! 영웅답게 맞서 싸워야 하오!”

침을 튀기며 이를 저지하는 파이룬의 기사들이 많았고, 득세할 수밖에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밑에 구멍이 난 솥에 물을 퍼붓는 것이나 다름없소!”

〈길게이 플래티넘〉이 반대했다. 하지만 곧바로 수많은 지휘관들의 질타를 받아야 했다.

“그렇다면 무너진 좌익을 바로잡으시지 왜 저희들의 생각을 꺾고 우익으로 향하셨습니까? 왕자전하. 아니, 반역자라고 하는 게 듣기 좋으시겠습니까?”

“여기가 전쟁터가 맞소? 정치적으로 날 매장하기보다 오크의 도끼가 내 가슴을 먼저 꿰뚫겠소.”

길게이는 그런 하찮은 도발에는 넘어가지 않았다. 도리어 능숙하게 쳐내었다.

‘이런 곳에서 내 세력을 잃을 수는 없는 법이다. 불파겐은 다음이 있어. 하지만 나는 없다.’

그는 가장 나약한 왕자였고 그렇기에 가장 강한 왕자가 되었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중앙과 단절되면 안 되니, 계속 병력을 전방으로 향해라! 포위의 위험은 아직 없다! 그때까지 버티면서 천천히 후퇴하여 손실을 적게 보겠다!”

순식간에 휘갈긴 양피지가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전령에게 향했다. 갑옷도 입고 있지 않았고, 그저 붉고 푸른 다채롭고 아주 자극적인 색상의 복장을 입고 있었다. 동시에 삼각깃도 쥐고 있었다.

멀리서도 전령이 다가오고 있음을 기사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속닥속닥.

노기사들이 숙덕거렸다. 그 모습에 길게이는 아주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와해가 의미하는 것은 단순히 병사와 기사의 죽음이 아니었다. 하나의 생명체로 여겨지는 군대의 패배를 의미했다. 그래서는 안 되었다. 죽어도 승리를 거머쥐고 죽어야 했다. 그게 바로 군대가 가지는 존재 의의였다.

전방 와해가 일어났다면 그 환부가 곪기 전에 잘라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길게이는 다리를 떨었다. 하지만 자기 생각은 버리지 못했다. 말 그대로 그에게 다음은 없었다. 불파겐 자작이 병력을 잃은 자신을 계속 데리고 있을지 의문이었고, 힘이 없는 왕자가 가지는 것은 오직 상징성뿐이었다.

‘허수아비는 되고 싶지 않아.’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도, 그 사람들을 살릴 방법은 쓰지 못했다. 권력을 주먹에서 놓기에는 그 달콤한 냄새에 이미 중독되어버렸다.

전령은 금방 게실리안 지휘관에게 도달했다. 파이룬 정규병이 몰려있는 중심은 고속도로처럼 달리기 수월했다.

“지휘부의 전령입니다!”

양피지를 게실리안이 오크의 피로 범벅이 된 채 받아들여서 훑었다. 그리고 단번에 그것을 찢어버렸다.

“아, 아니?! 무슨 짓입니까?”

“이곳은 사지가 된 지 오래다. 그런데 무슨 병사를 계속 투입한단 말이냐. 좌우익이 무너지면 자연스럽게 고립되는 곳이다. 뒤로 물러 포위하는 오크들의 날개 한쪽을 부러뜨리는 쪽으로 전술을 수정하라고 말하라.”

게실리안 지휘관이 손사래를 치자 전령이 입을 오물거리다가 이내 크게 한 번 대답하며 달려나갔다.

“기사들은 들어라! 우리는 8천의 정규병과 함께 이곳에서 계속 싸울 것이다! 지휘부의 명령은···무시한다! 오크들에게 8천이 허무하게 죽는 것보다는 뒤에 있을 사람들을 위하여 함께 이곳에서 싸우자!”

“파이룬 가문을 위하여!!”

“메디오인에게 영광의 날이 오늘 이곳에 있다!!!”

게실리안은 직계 중에 막내였지만 플래티넘 왕가가 직접 정치질을 할 정도로 재능이 뛰어나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의 명령은 이 전쟁터에서만큼은 지휘부보다도 더 뛰어날 수밖에 없었다.

지휘체계가 왜 있느냐 싶고, 골 때리는 일이지만, 카리스마란 그러한 것이었다. 그리고 게실리안은 자신 때문에 8천의 병사가 기사 없이 오크와 싸우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목숨줄을 구걸하는 일이었고, 명예롭지 못했다. 더러운 돈을 빨아먹는 것은 눈감아줄 수 있었다. 영지를 운영하는데 있어 검은 돈이 차지하는 비율은 무시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은 아니다.’

상대는 오크였다. 물러설 때도 있고, 작전상 후퇴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우리는 패배할 수 없다!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아니다!”

파이룬 정규병들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전방의 좌우익은 박살나고 있었다. 용병, 몰락귀족의 사병, 경험 적고, 훈련도도 높지 못한 병사들의 죽음 뒤에는 포위당해 죽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

‘그것이 변수가 될 것이다.’

〈전방 좌익〉

“끄아아악!”

팔을 잃은 병사가 빙글 몸을 돌렸다. 균형이 엉망이 되어서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오크 전사는 그것도 기다려주지 않고, 투구를 우악스럽게 잡아당겨 넘어뜨리며 무릎으로 머리를 후려쳤다.

“걱.”

투구가 찌그러지며 병사가 작은 소리 하나 내며 그대로 축 늘어졌다.

“꺼져! 꺼지라고!”

언제 챙겼는지 모를 기름을 검에 붓고 불을 태워 위협하던 용병이 뒷걸음질을 치다가 돌에 걸려서 뒤로 넘어졌다. 검에 있던 불똥이 튀고 삽시간에 가죽 갑옷이 타올랐다.

“흐악! 흐아아아아아아악!!!!”

검을 바로 손에서 놓치고 버둥거리다가 오크 전사의 도끼에 머리가 박히더니 그대로 앞으로 엎어졌다. 고기가 타는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흐윽! 흐으윽!”

창을 쥔 귀족 사병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달렸다. 콧물이 입으로 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달렸지만 도망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후방은 결코 그들을 받아주지 않았다.

전방에 고립된 파이룬 정규군만 8천이었다. 그들 대신 죽어야 할 놈들이 좌익과 우익의 도망치는 놈들이었다. 그들은 결코 뒤로 도망칠 수 없었다.

“들여보내줘! 들여보내줘어어어!!!!”

방패를 텅텅 치며 손가락을 안으로 집어넣었다가 그대로 칼에 베였다.

“아아아악!”

잘린 손가락을 손으로 움켜잡으며 사병이 고함을 꽤액 내질렀다. 그나마 방패 가까이 있는 놈들은 운이 좋았다. 인파에 밀린 채 오크를 맞이한 인간은 머리가 잡히고, 팔이 꺾이고, 개미가 밟혀 죽듯이 죽어야 했다.

“왼쪽으로 내달려라!!! 살고 싶다면 왼쪽으로 달려라!”

푸른눈에 강렬한 주황색 머리카락이 투구 밖으로 튀어나와 바람에 휘날렸다. 보통 창병이 사용하는 것보다 짧지만, 단창은 결코 아닌 장창을 쥔 기사였다. 행군할 때는 흉갑을 입고 다녔지만, 큰 전투를 앞두고는 좀 불편하더라도 〈킹슬레이 전신갑주〉를 입고 있는 〈겐 쟝〉이었다.

좌익의 병력은 허둥지둥 왼쪽으로 내달렸다.

“기사니이이임! 기사님! 저희를 버리지 마십시오!!”

방패병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오크들에게 두들겨 맞고 있음에도 용케도 8명이서 원형진을 이루고 있었다.

겐 쟝이 그대로 뛰어들어갔지만, 용병의 머리통이 그를 덮쳤다.

휘릭.

창끝은 머리통을 지나갔고, 창대로 머리통을 흘려 친 그가 멈추어섰다.

“흐, 하하!”

희열, 흥분으로 가득한 오크 전사의 목소리가 그의 귀에 들어왔다. 무식하게 큰 도끼 두 자루를 양손에 쥔 오크 대전사였다. 혁대에는 자신을 상대로 제법 버텼던 인간들의 심장이 쇠갈고리에 서너 개가 꽂혀 덜렁거리고 있었다.

〈대전사 누흐크 수크흐(Nuhk Sukh, 두 개의 도끼)〉는 좌익의 붕괴를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가 아니더라도 그 어떤 대전사라도 와해시킬 수 있을 정도로 좌익과 우익의 수준은 형편없었다.

‘대전사.’

겐 쟝의 창끝이 대전사의 명치를 겨누었다. 중단과 상단에 걸쳐있는 어중간한 자세였는데, 상대가 오크라 별수 없었다.

스슥.

가장 앞에 나와서 창을 잡던 오른손이 몸에 가깝게 당겨지고, 왼손이 쭉 뻗어서 창대를 잡았다. 몸을 반대로 틀었다.

대전사는 태평했다. 창을 쥔 자는 긴 리치를 지녔지만 그러기에 신중해야 한다. 단 한 번의 실패가 그 목숨을 버리게 만들 수 있어서였다.

더군다나 큰 힘을 지닌 오크를 상대로 첫수는 매우 중요한 법이었다.

“······”

‘안 오네?’

대전사가 소극적인 태도의 강철 전사를 보며 살짝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창을 쥐고 앞으로 내달리는 모습에 요놈이다!하고 인간 머리통을 던졌는데, 그것이 아까운 마음마저 들었다.

어중이떠중이일 가능성이 커져서였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아쉬워하는 기색을 보이자마자 겐 쟝이 그대로 달려들었다.

중단과 상단. 겐의 선택은 상단이었다.

“흐, 핫!”

누흐크 수크흐는 왼손 도끼로 상단을 방어하고, 오른손 도끼로 하단을 노렸다. 쌍수 무기를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전술이었다.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할 수 있었다.

‘그 목, 가져가겠다!’

〈라체른드 브리츠(lachelnd Blitz, 미소짓는 벼락)〉

몸쪽에 있는 오른손과 창대를 잡으며 앞에 나가 있는 왼손이 순식간에 스왑했다. 놀라운 점은 그렇게 하면서도 창은 상단으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다른 점은 자세를 바꾸면서 창대가 오른쪽으로 강하게 치우쳐졌다는 것이다.

상대는 왼쪽 손에 쥔 도끼를 올렸으니, 한 발 더 빨리 창이 도끼날을 치며 벼락처럼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으아아아!!!!”

상대는 대전사. 그것도 힘이 장사여서 투척 도끼를 버리고, 양손에 큰 도끼만 들고 다니는 놈이었다. 휘두르던 오른쪽의 도끼가 회수되었고, 창은 오른손을 베지 못하고 도끼의 손잡이의 윗부분을 쳤다.

“하야아아아!”

고함과 함께 창이 크게 휘어졌다. 쟝이 양손을 비틀어 팔을 접으며 창을 들어 올렸고, 단번에 창이 휘어져 버린 것이다. 그 힘은 창끝으로 펼쳐졌고, 다시 한 번 용오름치며 대전사의 목과 턱 사이를 크게 베어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오른손을 억지로 회수하며 팔을 지켰고, 쌍수 전사답게 오른손이 안으로 들어오니, 왼손에 쥔 도끼는 공세를 위해서 밖으로 뻗어나갔다.

머리를 막아줄 수단은 없었다.

서걱!

창날이 길었고, 리치가 길었기에 파괴력은 더욱 대단했다. 창날은 대전사의 귀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며 뽑혔다.

상처 부위는 미소 짓는 것처럼 반월을 그리고 있었다.

“울걱. 울컥!”

뭐라고 오크 대전사가 말을 했지만 들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신경도 쓰지 않았다. 겐의 눈에는 자신이 훈련시킨 방패병의 무리가 있었다.

‘역시 오크가 가장 죽이기 쉽다.’

단 한 수만에 오크 대전사를 죽인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상단세의 가문이라고 불리는 쟝 가문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크는 그에게 상단세를 취하게 만들면 안 되었다.

물론 이것 또한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체격이 큰 상대에게 상단세를 하는 인간은 상대하기 쉽기 때문이다. 오크의 눈에서 먼 하단이 가장 까다로운 공격인 것은 당연한 이론이었다.

그렇기에 대전사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

상단을 노리는 인간은 대체로 허접했기 때문이다. 치사하게 싸워야 하는 인간은 하단을 자주 노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겐 쟝의 상단 공격에 방심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 함께 이곳을 후퇴할 것이다!”

겐 쟝은 대전사를 일합만에 죽이고 그 머리를 들어 올리지 않았다. 대신 고함을 지르며 방패병들을 챙기며 전장을 빠져나갔다. 대전사의 시체 가까이에 있으면 오크 전사들의 표적이 될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벗어나서 재정비를 해야했다.

그 수밖에 없었다.

〈후방〉

“붕괴된 자들을 도와야 합니다.”

“왜 성전대가 있습니까. 지금의 위기에 나서기 위해서 있습니다.”

1천 명의 성기사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2천 명의 사제들은 후방에 있는 것에 불만을 품지 않았지만, 성기사들은 아니었다.

〈성기사 케이슨〉이 이끄는 성전대(聖戰隊)의 사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그들은 인류를 위해서 죽을 준비가 되어있으며, 그런 숭고한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인간을 위해서 헌신해온 자들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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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2연참입니다. 500편이 넘어가면서 일일연재밖에 못하는 것에 대해서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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