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530화 (529/1,239)

530 <-- -->

2시간. 120분. 7200초.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드낙은 철저하게 지친 오크들을 한 합만에 죽였고 마법으로 한 번에 몰살시키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죽인 숫자만 2천 마리를 넘겼다. 홀로 2천 마리를 죽인 것이다. 믿기지 않은 전공이었다.

지치지 않은 오크는 500마리도 죽지 않았는데, 드낙이 상대를 해주지 않아서였다. 그를 외성지역이라는 독특한 환경에서 따라잡을 수 있는 오크나 운이 좋은 오크나 드낙을 만나고 도끼라도 휘두를 수 있었다.

‘역시 〈초월의 힘〉.’

제국식 마법체계인 〈육법 태엽식〉이 지닌 장점은 마력을 많이 보유할수록 큰 이득을 취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일반적인 전신마법이 1번에 1개씩 혹은 2개씩 마법을 발현시킬 수 있다면, 제국식 전신갑주는 5개. 10개 이상이 가능했다.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마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건 소위 폭딜이 가능하다는 소리였다. 그것이 대량살상을 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였다.

쿠웅.

푸른빛이 번쩍이며 지붕이 하늘로 솟구쳐올랐다. 그곳에 주먹을 박아넣으며 매달린 드낙의 모습이 내성벽에 있는 인간들의 눈에 들어왔다.

선명한 붉은 머리카락이 보였다.

콰드득, 후두두둑!

지붕은 다른 집에 꽂혔고, 드낙은 데구르르 구르면서 속도를 유지한 채 다른 집의 창문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뒤쫓던 오크들이 옆으로 바로 움직였다가 뒤에 따라온 오크와 뒤엉키기도 했다.

화르르!

곳곳에 장애물을 태워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흙의 골램이 사방을 헤집어 폐허로 변한 곳도 있었다.

“이런 씨! 무슨 진흙이 이렇게 질척거려?”

발목을 움켜잡는 마법 진흙이 있는가 하면.

“집이 왜 이렇게 되어버렸지?”

공간의 일그러짐으로 기괴한 형상으로 변한 채 굳어진 창고도 있었다. 그 신기한 모습에 발걸음을 멈춘 주술사도 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선 드낙은 오크와 그대로 맞부딪쳤다. 주먹을 휘두른 오크의 오판 때문에 정직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

우드득!

오크의 팔이 기괴하게 꺾였다. 지쳐있는 오크 전사는 체중을 기울여 덤볐지만 팔이 꺾이며 무릎을 꿇었다.

철퍽!

질척한 소리를 내며 피로 범벅이 된 벽에 오크의 머리통이 부딪치며 바닥에 떨어졌다.

이런 드낙의 행보는 실로 흉악했다.

괴이한 분위기를 외성지역에 만들어냈다.

“헉헉! 그으, 하!”

오크 전사가 멈추어섰다. 사방에서 오크의 피냄새가 느껴졌고, 오물 냄새가 그득했다. 하지만 달려도 달려도 그가 〈흑구름 예언의 인간〉을 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보이지 않는 위협이 착실하게 지친 오크를 죽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지친 오크를 지키는 쪽으로 가야 해.”

그가 몸을 돌렸다. 어둠 속에서 섬광이 뻗어 나가며 그 뒷목을 꿰뚫었다. 창문에서 모습을 드러낸 드낙이 바퀴벌레처럼 네발로 내달려 검을 회수하고는 벽을 타고 지붕 위로 올라갔다.

그 모습을 방금 골목에서 튀어나온 오크 전사가 보고 고함을 내질렀다. 투척 도끼가 그를 노렸지만 이미 지붕을 넘어간 지 오래였다.

오크 전사들은 빠르게 변해갔다. 달리기보다는 경비병처럼 멈추고, 사냥감을 쫓기보다는 병사처럼 우두커니 섰다.

‘새끼들.’

드낙은 그 모습에 빙긋 웃었다. 그리고 그대로 외곽으로 조금 빠지며 가지치기에 들어갔다. 상대가 뭉치면 겉을 치면 그만이고, 상대가 달리면 사방팔방 휘저으며 방향을 잃게 할 뿐이다.

무엇을 선택하든 그들은 결코 그들이 원하는 것을 손에 쥘 수 없을 터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전투보다, 적이 하기 싫은 전투를 하는 것이 최고의 전투인 법이다.’

드낙이 음울진 골목길을 내달렸다. 전신갑주를 입고 있음에도 소리 하나 나지 않았고, 정오에 만난 귀신과도 같은 기묘함을 주었다.

2천 500마리의 오크를 죽였음에도 드낙은 피해 한 번 입지 않았고, 지친 모습도 보여주지 않았다. 격렬하게 움직여도 필요할 때만 격렬하게 움직여서 호흡도 편안했다. 자신의 소모를 극한으로 줄이고, 상대는 그저 쫓아오는 것만으로도 지칠 수 있었다.

그게 드낙이 하는 싸움이었다.

“······”

〈아크온 몽펠리에〉는 내성벽에 올라서서 질끈 눈을 감았다.

‘이런 상황을 맞이할 줄이야.’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단 한 명의 인간이 보여주는 분투는 간헐적이지만, 누구나 알 수 있는 상태였다. 소식은 병사들끼리 말을 타고 퍼져나갔다.

가슴을 떨리게 하는 전설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데 우두커니 서 있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었다. 그들은 천생 무인(武人)이다.

‘한 명의 영웅이 다시 한 번 이곳에서 날개를 펼치며 날아오르고 있다.’

그는 전투가 끝나고 생사와 관계없이 영웅으로 남을 것이다. 그만큼 인간의 기세는, 마음은 끝없이 응집하고 있었다.

‘사막기병과는 다르지.’

사막 기병이 평야에서 야간전투를 시행하며 희생된 것과는 달랐다. 그들은 외성벽 너머의 평야에 있었고, 그들은 5천기나 되었다. 하지만 그는 단 혼자였다.

수천이 이룩한 것과 단 한 명이 이룩한 것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인간은 더 그랬다.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다. 하지만, 제대로 해야 한다.’

머리를 팽팽 돌리던 아크온이 이내 내려야 할 결단을 내렸다. 오늘은 머리가 아닌 심장이 시키는 대로 하는 날이다.

‘인간의 날이다!’

인간이 내성벽을 버리게 할 정도로 외성지역의 오크들은 기세가 어지러워져 있었고, 분위기가 요상했다.

‘눈앞의 과실을 탐하지 않을 수 없지.’

이 상황을 찔러보지 않는 군사학자는 없었다. 하지만 아크온을 비롯한 기사들은 무조건 가슴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았다. 이 상황 속에서도 전술전략적으로 움직였다. 적어도 방패는 쥐고 과일에 손을 가져가야 했다.

“에녹 히터 경!”

“예! 영주님!”

〈히터 방패병〉이라는 명성 높은 방패병을 지닌 방계의 가주가 대답했다.

“병사 삼백 명을 골라 불파겐 자작을 도우시오. 시작하는 길목에 불을 지핀다면, 그 또한 분명 알아차릴 것이오.”

“그리하겠습니다.”

에녹 히터 경이 빠르게 내성벽을 내려갔다. 하지만 아크온이 아차 하는 소리를 내며 따라갔다.

“히터 경!”

“예? 영주님.”

성벽의 계단에서 멈추며 그를 올려다보자 아크온이 다가가서 작게 말하였다.

“돕는다는 것은 전략적으로 도우라는 말이오. 내 말을 아시겠소?”

그의 눈이 조금 커졌다가 이내 다시 되돌아갔다.

“명심하겠습니다. 외성지역의 오크들은 결코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할 것입니다.”

보는 눈이 많을 때는 불파겐 자작에 대해서 더욱 쳐주었지만, 실제는 달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게 현실이라는 놈이었다.

“믿겠소.”

아크온은 내려가는 히터 경이 들을 수 있을 만큼 크게 소리를 내서 말하였다.

“남은 경들은 들으시오! 우리의 나머지 병력은 밖으로 나가 우회하여 뒷성문을 이용하여 곧바로 평야에서 싸우고 있는 연합군을 도울 것이오!”

“예!”

적의 본대를 무찔러야 희망이 보였다. 외성지역의 오크들을 에녹 히터 경과 병사들로 틀어막고, 불파겐 자작을 지원하지 않는게 중요했다.

“성문을 열어라! 반격의 때가 왔다!”

와아아아!!!

끄거거거거거겅!

내성문이 둔하게 열렸다. 느리기 짝이 없었다. 안팎으로 성문의 바닥에 깔아놓고, 고정한 쇠막대기를 빼내는 작업을 해야 해서 제법 느렸고, 그 상처로 인해서 성문은 땅에 긁히며 끔찍한 소리를 냈다.

“가자! 가자! 가자!”

드낙의 분전은 2시간 30분 이상 지속하였고, 그것을 바라보는 기사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아크온 몽펠리에조차도 막을 수 없는 일이었는데, 이것이 세 번째 비틀림이었다.

영웅(英雄)이 지니는 힘. 그 영향력은 굳게 닫힌 내성벽마저 열게 만들었다.

몽펠리에의 군대 숫자는 6천에 불과했다. 민병대 1천은 외성지역에 죽어 나자빠졌고, 그곳에서 정규병도 500명가량 사망했다. 중경상자는 2천에 달했다. 나머지 사상자는 외성지역 전투에서 발생했고, 1만 중 총 4천이 죽거나 전투불능 혹은 경상을 입은 상태였다.

‘아그그. 어깨야.’

운 좋게 어깨에 피멍이 드는 것으로 끝난 병사가 어깨를 이리저리 풀었다. 무기는 혁대에 걸어두고 계속 어깨를 움직여대었다. 열이라도 차올라야 통증이 덜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중에 염증이 생기는 건 불 보듯 뻔했다.

무식하게 몸을 굴렀다. 하지만 이런 경상자의 숫자는 매우 적었다.

오크에게 상처를 입는다면 그 병사는 운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최소 중상이기 때문이었다. 우연이 겹치고 겹쳐야 경상자가 될 수 있었다.

“우회한다!”

6천의 군세와 수백의 기사는 대로를 관통하지 않았다. 빠르게 내성벽을 돌아서 후문으로 향하였다. 외성지역은 넓었고, 드낙이 날뛰는 곳과 반대되는 방향이었기에 오크들의 공격을 받지 못했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오크들이다. 일생일대의 전사와 싸우는 것을 놔두고 내성벽의 인간들에게 도끼를 겨눈다? 웃긴 일이다.

‘총력전이다.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기사 마차〉 또한 수백 대가 중간에 모습을 드러내 내성문 밖으로 운송됐다. 한 마디로 내성에 있는 모든 전력이 투입되었는데, 그 속에는 전투 사제들도 있었다.

사막기병의 분투로 못해도 5천 이상의 오크가 묶였고, 불파겐 자작의 등장으로 외성지역의 오크들은 단단히 묶였다. 거기에 때맞춰서 온 파이룬과 불파겐의 연합군까지.

모든 것이 지금을 외치고 있었다.

아크온의 마음이 쌍둥이 성채의 뒤편에 있는 평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인간의 버티기가 한창이었다. 숲과 평야의 교차점에 전선이 형성되어있었다. 인간이 원해서는 아니었고, 오크에게 물린 것이다.

“죽여라! 죽여! 계속 돌격하라!”

후퇴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오크들의 빠른 움직임에 대항하기 위해서 파이룬과 불파겐의 군대가 마구 뒤섞여서 지휘를 받는 상황이 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어버렸다.

“막아라! 뒤가 혼란스럽다! 여기서 물러난다면 끝-장이다!”

가장 후방에서부터 기강이 새롭게 잡히고 있었지만, 전방까지 가기에는 턱없이 힘들어 보였다. 그래도 후방에서 교통정리가 된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기사 전력마저도 앞에 치우쳐져 있었는데, 두 개의 군대가 뒤섞여서 생긴 똥을 치워야 하기 때문이었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와해가 일어날 수 있었다.

모든 지휘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와해였다. 그리고 그 책임은 누구도 질 수 없었다. 죄다 뒈져버릴 테니까.

“불파겐 쪽은 그냥 뒤로 가던가 옆으로 가! 여기에 있을 놈들이 아냐!!!”

파이룬의 베테랑 병사가 소리를 질렀다. 3개월 미만의 훈련을 받은 병사들을 동원한 것이 불파겐이었다. 당연히, 이런 상황에서 쪽박을 칠 수밖에 없었고, 자리를 잡아봤자 소용이 없었다.

죽고 나면 그 빈 곳에 오크가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콰직! 콰지직!

나무를 부수며 캉카라쿰이 평야에 삐져나왔다. 날갯짓을 하며 몇 걸음 달리자마자 그대로 날아올랐다. 캉카라쿰의 입 주위로 나무조각이 그득했고, 이빨 사이에는 강철이 끼워져 있었다.

혓바닥이 그것을 밀어내 아래로 떨어뜨렸다.

〈족장 도네투스〉가 무리해서 숲에 있는 인간 군대에 내려앉은 이유는 바로 〈기사 마차〉의 존재 때문이었다. 오크가 주술 도기로 주술을 저장하고 사용한다면, 인간들은 마차를 통해서 마법을 사용함을 알게 되었다.

‘무조건 부숴야 한다.’

인간, 기사를 죽이기보다 마법 마차를 부숴야 오크의 피해가 적음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공중에서 전황을 두루 살필 수 있었기에 도네투스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그 덕에 파이룬의 기사 마차는 30여 대밖에 남지 못했다. 이것으로 크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170대 이상이 캉카라쿰에게 박살이 났다. 숲이라서 허망할 정도로 짧은 시간에 많은 기사 마차가 허무하게 당했다.

“쿠워어어어!!!!”

캉카라쿰이 하늘에서 산액 브레스를 뿌렸다. 30대밖에 남지 않은 기사 마차가 속절없이 녹았고, 쓸 수 없게 되어버렸다. 도네투스는 저공비행을 하며 인간들이 전방으로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와아아아!!!

위험한 순간을 맞이한 파불 연합군의 귀에 인간의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꾹 닫혀있던 후문의 외성문이 열리며 인간들이 쏟아져나왔다. 그중에서도 50명이 넘는 기사들이 전투마를 타고 내달렸다.

하나같이 전신갑주를 입고 있었고, 그들이 빠르게 파불 연합군에게 가는 이유는 자신들의 계획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성에서 나오다니! 어리석은 놈들!’

도네투스가 눈을 빛냈다. 이러면 할 만했기 때문이다.

“높이 날아올라라, 캉카라쿰!”

“크아아아아!”

캉카라쿰이 힘있게 날개를 쫙 펼쳤다. 육중한 체중을 지녔음에도 몸이 바람에 의해서 뒤로 밀려나가며 쑤욱 올라갔다. 도네투스의 눈에 운송되고 있는 기사 마차 300대가 보였다.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하나같이 누더기로 위장하고 있었지만, 가까이서 기사 마차를 부숴본 도네투스의 눈은 속일 수 없었다.

========== 작품 후기 ==========

5996자

평점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