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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축한 피바람이 드낙에게 불었다. 어떤 바람은 온기를 가득 머금기도 했지만, 소름이 끼칠 뿐이었다.
찰박!
낙타의 두툼한 발바닥이 피 웅덩이를 거칠게 밟고 지나갔다. 오크의 시체는 적었다. 그만큼 오크를 죽이기보다는 그저 시간을 끌기 위해서 분투한 북서쪽의 사막 기병들의 전략이 지닌 목적성이 보였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완벽한 전략 수행률이다.’
정규병의 무서움은 그곳에 있었다. 죽이는 것보다 안 죽이고 다른 목적을 수행한다는 것이 더 힘든 법이었다. 이를 완벽하게 수행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정규병의 양성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했다.
최소 5년. 최대 15년 이상의 근속을 지닌 병사들의 힘. 기사로 쌓아 올려진 정신무장. 다른 종족을 상대로 그 어떤 종족보다도 처절해질 수 있고, 강해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평야를 지나가는 드낙은 그것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추적하고, 흔적을 통해서 상황을 파악하는 재능이 있었기에 누구보다도 더 체감할 수 있었고 이것은 나중에 큰 재산이 될 터였다.
드낙은 평야를 가로지르며 다시 한 번 정규병이 지닌 강함을 이해했다. 동시에 그는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본대를 노리면 얻을 것이 많지.’
드낙의 눈이 숲으로 폭격하듯이 내려앉고 있는 블랙 스케일 와이번을 볼 수 있었다. 동시에 1만 3천에 달하는 오크 전사들과 주술사가 있었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성채보다는 많을 터였다.
‘거기에 전장은 숲.’
오크에게 이득이지만, 드낙에게도 이득인 곳이었다. 또한 항상 소수에게 유리한 곳이 숲이기도 했다. 드낙의 시야로는 숲에서 물러나고 있는 지원군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중립신의 대계를 위해서도 숲으로 가야 하는 게 좋지.’
잘 보이지 않는 숲에서 도네투스를 굴복시킬 수 있거나 대화를 나눌 수도 있었다. 그리고 몇 번이나 죽이지 않고 놀아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힘이 절반밖에 회복되지 못한 상태에서도 드낙의 자신감은 실로 대단했다.
그것은 결코 만용이 아니었는데, 〈전초극의 오른팔〉이 주는 압도적인 백병전 능력 때문이었다.
부딪힌다면 100번 싸워 100번 이길 수 있는 힘으로 여겨질 정도의 강력한 권능이었다. 왜 엘 마르토 카사다민이라 불리는 신이 대신(大神)의 반열에 올랐는지 알 수 있는 편린이기도 했다.
‘감히 대적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지.’
드낙은 중립신이 자신의 가장 강력한 카드를 미리 보여준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겁을 먹게 하기 위함이었고, 귀찮은 실랑이보다는 빠른 교통정리를 원한다고 볼 수 있었다.
‘무엇이 중립신을 그렇게 급하게 만들었을까···’
거대한, 막대한 운명의 고리가 태풍처럼 휘몰아치는 시대가 왔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운을 타고 승천할 준비를 하는 것이 중립신이었다.
‘필멸자(必滅者)에게는 그저 끔찍한 역사일 뿐이지만, 신에게 있어서는···’
깊은 고민에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드낙의 장점이기도 했지만, 이곳은 전장이었다. 도라질을 치며 정신을 바로 차렸다.
‘일반적이라면 숲으로 갔겠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조금 다르지.’
이전의 그였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본대를 노렸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드낙은 아니었다. 이것이 첫 번째 비틀림이었다.
쐐애액!
외성벽에 올라있는 오크 전사가 활을 당겨 화살을 쏘았다. 오크 나무로 만들어진 오크 활의 장력은 무시무시했다. 성벽 위에서 쏜다면 능히 800보, 1천 걸음도 날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하지는 않았는데, 높은 성벽에서 쏴본 경험이 없어서였다. 그 덕에 화살은 허무하리만치 드낙을 지나서 엉뚱한 곳으로 향했다. 허나 그런데도 바람을 가르는 섬뜩한 소리가 드낙의 귀를 때렸다.
“흡!”
드낙이 랜스를 그대로 투척했다. 낙타가 휘청거렸다.
‘으읏!’
낙타만 놀란 게 아니라 드낙도 놀랐다. 무식하게 랜스를 본신의 힘을 다하여 투척했으니, 감당할 수 없는 게 당연했지만 드낙도 말 위에서 랜스를 크게 던지는 건 처음이었다.
콰앙!
굉음과 함께 성벽이 크게 흔들렸다.
“미친 인간 놈!”
“저놈이 〈흑구름 예언〉의 인간이 분명해!”
외쳐대는 오크들의 목소리에는 열정이 가득했다.
투다다닥!
오크 전사들은 능숙하게 자세를 바로하고, 활도 쏘았지만 본능으로 쐈기에 드낙에게 맞추지는 못했다. 얕은 경험 때문이었다. 물론 그중에는 귀신같은 오크도 있는 법이었다.
따앙-!
화살의 촉과 검의 검날이 정확하게 부딪혔고, 정확하게 촉이 갈라지며 검날에 끼워졌다.
‘미쳤네.’
드낙이 검을 휘두르며 화살을 검에서 털어냈다. 그리고 단번에 외성지역으로 들어서서 대로를 내달렸다. 적당한 곳에서 내려서 골목길 안으로 들어갔다.
콰직!
오크가 치워놓은 장애물이 드낙의 무식한 몸에 의해서 박살이 나며 먼지가 살짝 일으켜졌다. 창문으로 쏙 들어간 그는 모닥불을 볼 수 있었다.
지쳐서 뜨거운 약재 달인 물을 홀짝거리며 벽에 기대고 있는 오크가 벌떡 일어섰다. 지쳐있다고 해도 몸을 추스른 상태였으므로 기민했다.
야생에서 태어나, 젖을 떼자마자 뜨끈거리는 사슴의 심장을 도축하는 거친 삶을 살아가는 오크가 고함을 내질렀다.
“아얄타아아!!!”
쿵!
오크가 거칠게 드낙에게 몸을 부딪쳐왔다. 드낙은 힘싸움에서 비켜섰는데, 체중을 동반한 오크의 돌진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지녀서였다.
아무리 완력이 대단해도 밀릴 수밖에 없었다.
똑같은 체구라도 체중이 다르면 헛방인 법과 같았다.
퍼걱!
대신 드낙의 왼주먹이 오크의 무릎을 박살냈다. 기울어진 오크가 벽에 어깨를 들이받았다. 벽이 단번에 와르르 무너지며 큰 소란이 일어났다.
푸우욱!
오크의 옆구리에 검을 찔러넣어 졌다. 괴이하게도 두꺼운 오크의 가죽이 어떤 저항도 없이 쑥 들어갔다. 마치, 수십 년간 오크를 해체한 도축쟁이의 솜씨와도 같았다. 그게 바로 〈전초극의 오른팔〉이 지니는 무서움이었다.
〈요령〉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솜씨. 하지만 요령이라고 말하기에는 지나치게 대단한 수법을 보여주는 것.
쏴아악!
쭈욱 장기를 헤집고 다시 뽑혔다. 깔끔한 솜씨였고, 오크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뿌우웅.
괄약근의 근육이 풀어지며 방귀 소리를 내며 오물 냄새가 퍼져나갔다. 드낙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이 태산이었다.
“인간이 들어왔다! 예언의 인간이다!!! 조심해라!”
오크들이 외성지역을 헤집었다. 지친 오크들은 홀로 집 안에 있지 않고, 뭉그적거리며 몇 마리씩 뭉치기 시작했다.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드낙은 오크가 원하는 방식으로 싸워주지 않았다.
억지로라도 그들이 원하는 싸움을 하고 싶지 않았는데, 영악하다기보다는 더러웠고, 치사했다. 게임을 참 뭣같이 한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이기는 방법은 무궁무진한데 꼭 더럽게 치사하게 이기는 식이었다.
“역겨운 새끼.”
오크가 드낙의 발자국을 확인했다. 창틀이 무거운 것에 짓눌려서 균열이 나 있었지만 오크는 싸한 느낌을 지우지 못했고, 돌아서 문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햇빛 속에 가려진 창문 내부에 무식하게 꽂혀있는 날카로운 나무 기둥을 볼 수 있었다. 밖은 햇빛이 쨍쨍하고, 창문 안쪽은 어두컴컴하니 볼 수 없었다.
뾰족한 나무 기둥은 단단히 박혀있어서 오크의 체중에 그 스피드로 제대로 창문을 넘었다면 뼈도 못 추렸을 것이다. 못해도 단번에 몸이 관통되었을 터였다. 보통 인간이 넘었다면 그냥 철과상이었겠지만 오크는 치명상이었다.
순찰자들이 괜히 〈순찰조장 벤〉을 괴짜취급 한 것이 아니었다. 오크에게 있어서 능동성과 활동성을 추구한 벤의 모습은 미친놈, 괴짜, 광기 그 자체라고 말할 정도였다. 왜냐하면 함정이 오크에게는 최고의 타격수단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두 번째 비틀림이었다. 드낙은 결코 힘과 힘으로 단기전을 노리지 않았다. 착실하게 오크들을 죽여나갔고, 소란을 피웠다.
물론, 때때로 격하게 움직이기도 했다. 오직 교란을 목적으로 해야만 했다.
똑같은 패턴은 나 죽으라는 소리밖에 되지 않는다.
오크는 프로그래밍된 A.I가 아니기 때문이다. 분명히 적응하여 드낙의 앞을 가로막을 것이다. 그리고 드낙은 절대로 방심하지 않는 신중한 사냥꾼이며, 잔혹한 암살자의 표상이나 다름없었다.
쾅!
벽이 와르르 무너지며 드낙의 신형이 튀어나갔다. 지붕에서 오크들이 너도나도 뛰어들었고, 허공에서 몸이 반 바퀴나 틀어질 정도의 완력으로 투척 도끼를 던졌지만 이미 드낙은 다른 집의 벽을 허물고 사라진 지 오래였다.
“빌어먹을!”
길을 새로 뚫어버리니 예측하기 힘들었다.
“〈추적하는 불의 창〉.”
긴 마법창이 다섯 개 튀어나와서 땅에 박혔다. 이글거리는 화염으로 만들어진 쇠창살이 순식간에 만들어지며 길을 틀어막았다. 간발의 차이로 대전사로 보이는 오크 전사가 그곳에 멈추서더니 단번에 집을 기어 올라가서 지붕 위로 내달리다가 지붕이 무너지며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콜록! 콜록! 빌어처먹을!”
기침도 딱 두 번 한 대전사는 무너지는 순간 속에서도 몸을 일으켜서 기어코 다시 내달렸다. 무시무시한 터프함이었다. 그리고 드낙은 자신을 집요하게 그리고 누구보다 빨리 쫓아오는 대전사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수많은 걸림돌을 격파하면서 그의 앞에 섰기 때문이다.
“도망칠 생각 마라. 흑구름의 인간아.”
“흑구름의 인간?”
“예언 말이다!”
짧게 대답하며 대전사가 그대로 드낙에게 덤볐다. 투척 도끼가 드낙의 하단을 노리고, 그것보다 큰 도끼는 드낙의 상하체를 분리하듯이 휘둘러졌다. 크기가 서로 다른 두 개의 도끼는 드낙을 동시에 노렸다.
‘노력으로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인데.’
마치 비전과도 같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크기도 다를뿐더러 중량도 다르다. 투척 도끼는 통으로 손잡이까지 강철로 되어있기 때문이고, 큰 도끼는 손잡이가 오크 나무로 되어있었다.
보통 도끼와는 다르게 나무의 내구력이 대단해서 웬만한 강철 도끼보다 더 큰 힘을 낼 수 있었다. 동시에 나무 손잡이가 가지는 장점도 지니고 있었다.
그런 도끼가 동시에 드낙의 하단과 중단을 노린 것이다.
‘급하지도 않아. 신중해.’
내려치기가 아니라 옆으로 휘둘렀다. 인간의 기민함. 기술을 조금이라도 적게 먹겠다는 소리였다. 자신이 지닌 힘을 먹는 게 아니라, 상대가 지닌 기술을 억누르겠다는 심보였다.
‘오크답지 않은 놈이야.’
따당! 카가가각!
그렇기에 더더욱 드낙의 상대는 되지 않았다. 투척 도끼가 옆으로 튀어 오르며 골목의 저편으로 날아가다가 절묘하게 튀어나온 오크의 발목을 절단시켰다.
큰 도끼의 도날에 불똥이 튀며 롱소드가 전진했다.
대전사는 옆으로 몸을 틀며 도끼를 당겼다. 드낙이 검끝을 내리며 자연스럽게 찔렀기 때문이다.
탕!
총소리와도 같은 소리가 났다. 드낙의 찌르기가 만들어내는 충격량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오크 대전사는 방해조차 못 했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버티네.’
가드라도 내려갈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생각보다 인간에 대한 경험이 많거나 기술에 노력한 오크 혹은 재능이 있는 오크로 보였다.
〈이강(肄講), 쥬사멘발룽(Zusammenballung, 결집)〉
불파겐 기초 비전이라 불리는 칠주의 모든 것을 사용한 343개의 변화수를 7개 묶은 2401개의 맹공이 퍼부어졌다. 대전사는 42합째에 손이 어지러워졌다.
서걱!
손목의 연골을 검이 지나가며 깔끔하게 베어냈다. 왼쪽 어깻죽지가 그 뒤에 베어졌고 단번에 내려가 허벅지를 베고 지나가며 검 면이 땅을 치며 솟구쳐오르며 반 바퀴 돌며 검날이 오크 대전사의 턱을 시작으로 얼굴을 베었다.
푸화아아악!
얼굴의 반쪽이 잘리며 피가 쏟아져나왔다. 동시에 드낙과 대전사가 싸우는 모습을 구경하며 기다리던 오크 전사들이 몰려들었다. 지친 오크들을 지키기 위해 남겨진 오크 전사들이었다.
“〈대지 골램〉.”
흙이 단번에 솟구쳐올랐다.
“어딜!”
주술사들이 주력을 뿜었다. 몇몇 이들은 피를 토하고, 핏발이 서리고, 핏줄이 불룩 튀어나왔지만 멈추지 않았다. 수많은 주술이 대지 골램이 일으켜지러는 것을 막기 시작했다.
“이럴수가!”
주술사들이 경악을 터트렸다. 단 한 명이 배출하는 마력의 양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주술로 부딪치고 나서야 확인 할 수 있었다.
쿠구구구!
반절 회복되었다고 해도 드낙의 마력 보유량은 이런 좁은 곳에 있는 주술사 8마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호다닥!
드낙이 지붕을 달려나갔다. 충분히 강하지만, 도망치는 게 적성에 맞는 드낙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 맛이지!’
호쾌함보다는 치사함을 좋아하는 게 드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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