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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잃은 사막 낙타가 평야에서 벗어난 채로 자신의 삶을 위해 움직였다. 주인이 있을 때도 상남자로 유명해서 이름도 〈애니〉라고 귀엽게 지어질 정도로 터프한 낙타였다.
휘이익!
높고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덩치가 제법 있는 애니의 심기를 건드렸다. 귀가 활짝 열렸고, 옆으로 딱 퍼졌다. 고개가 홱 돌아갔다.
까딱, 까딱.
드낙이 손으로 까닥거렸다. 애니는 마치 홀린 듯이 드낙이 있는 언덕을 올라갔다.
‘낙타가 덩치가 이렇게 컸나?’
드낙은 감탄, 또 감탄했다.
“좀 뒤로 가서 앉아봐.”
낙타는 그가 말하는 대로 움직였다. 드낙은 일단 장거리 이동 수단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의 우월한 눈이 흙먼지가 가라앉은 평야로 향했다. 해가 뜨면서 명확하게 그 모습이 보였다.
오크들은 인간을 도축하고 있었고, 사막 기병이 놓아둔 보급을 챙기기 바빴다.
보급에 대한 두려움이 보였다. 처음으로 대규모로 전쟁을 일으킨 자들의 부족한 지식은 곧 감성의 괴물로 뻗어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드낙은 그것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이번 전투에서 내가 죽을 수 있는가?’
그렇다. 그는 죽을 수 있었다. 드낙을 도와줄 인간은 적었고, 성벽을 열고 그를 살리기 위해서 달려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게 인간의 본성이었다. 남을 위해서 다수가 희생되지는 않는다.
다수를 위해서 남을 희생할 뿐이다. 혹은 희생되고 나서 다수가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서 고칠 뿐이다.
드낙은 결코 기대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고민은 길어졌다. 단순한 것도 세 번은 짚고 가는 것이 그의 스타일이었다.
‘내가 드래곤 오크 라이더를 죽일 수 있는가.’
아니다. 그는 죽일 수 없다. 중립신의 대계를 위해서.
가장 큰 보상이 있는 전쟁터가 아니었다. 큰 보상을 기대할 수 없었고, 만약 그렇게 한다면 중립신과 대립하게 될지도 몰랐고, 다른 챔피언이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었다. 일단은 그를 따르는 것이 좋았다.
지금까지 중립신의 챔피언이 되어서 해를 본 적은 없었고, 오히려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그것만은 팩트였다.
꿀꺽.
중립신에 대한 중요한 고민은 침으로 삼켜 마음속 깊이 집어넣었다. 지금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고민해봤자 소용없는 일이기도 했다.
‘내가 최대한 많은 오크를 죽일 수 있는 때인가?’
그럴지도. 적어도 오크들이 후퇴한다면 시간 대비로 오늘과 같은 날은 좀처럼 오기 힘들 것이다.
‘이 전쟁으로 얻은 오크의 업으로 중립신은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이미 강력한 권능인 〈전초극(戰超克)의 오른팔〉을 얻었지만, 그건 그거. 이건 이거였다.
‘몽펠리에가 멸망하면?’
다양한 가설을 상정했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북부가 이 이상으로 박살이 나고, 더는 전쟁 수행을 할 수 없을 지경까지 된다면.’
드낙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지금까지 들은 것을 최대한 떠올렸다.
킹슬레이를 비롯한 북서쪽의 영지들은 몽펠리에와 파이룬의 재력을 믿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이 없다면 킹슬레이도 몰락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청야 전술을 그렇게 재빨리 펼친 이유도 비빌 곳이 있어서 가능했다.
‘남부왕국과 전쟁이 또 터지겠지.’
늦으면 내년 여름, 빠르면 봄부터 동부를 침공해 자신의 기반을 잘라낼 것이다.
‘또 전쟁인가···’
진절머리가 났다.
발전이 중요한데, 모든 것을 폐허로 만드는 전쟁은 드낙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머리를 거칠게 긁었다. 진흙이 말라서 머리카락의 감촉은 둔하기 짝이 없었다.
‘모든 게 애매해. 그래서 결정하기가 어렵다.’
내키지 않았지만, 그동안 무리해서 얻은 힘은 확실히 절륜했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렇게 하기에는 자신의 스타일은 아니었다.
‘검은 꿈에 얼마나 미쳐있었던 건지. 한 번 크게 데여서 다행이야.’
목이 부러지지 않았다면, 오크를 향해서 거침없이 질주했을 것이다.
고민하는 드낙.
평야를 정리하고 있는 오크들.
앞으로의 결전을 준비하며 지원군을 기다리는 몽펠리에.
정오가 되어서 숲에서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라 왔다. 봉화였고, 드낙도 확인할 수 있었다.
벌떡!
드낙이 일어났다. 끝없이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미리 준비한 수레를 장애물처럼 사용했다. 숲에서 만든 통나무로 바퀴를 달고, 원목으로 속이 꽉 찬 통수레였다.
수송의 목적이 전혀 없고, 오직 장애물로 사용하기 위해서 만든 것 같았다. 특히나 오크를 의식해서인지 속을 파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했다. 부차적인 목적보다는 한 가지 목적만 확실하게 달성하겠다는 모습이었다.
‘알박기 전술이다.’
강병이라서 무식한 짓을 할 수 있어야지만 할 수 있는 전술이었다. 근데 그것을 버젓이 낮에 하는 것을 보니, 생각보다 몽펠리에의 상태가 안 좋다는 걸 느낀 듯하다. 혹은 사막기병의 처절함에 감동했거나.
피식.
드낙은 그것을 비웃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그의 고민은 해결되었다.
‘내 뒤를 받쳐줄 병사가 생겼으니, 오크를 조지면 될 일이다.’
“가자!”
“윽! 냄새.”
제법 덩치가 있는 쌍봉낙타에 올라탄 드낙이 코를 말아쥐었다. 깊은 생각에 빠져서 그제야 냄새를 맡고 인지할 수 있었다.
적응되지 않는 낙타 냄새를 맡으며 빠르게 평야로 향했다. 땅에 꽂힌 랜스를 악력만으로 잡아채서 뽑아들어 올렸다.
랜스를 사용할지 몰랐지만, 투척은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
“차례대로 오네.”
도네투스는 또 하나의 인간 군대가 등장하자 코웃음을 쳤다. 각개격파처럼 보여서였다. 하지만 당장 덤비지는 않았고, 외성벽을 점령한 채로 그 성벽에 캉카라쿰이 내려앉았다. 곧 오크 전사가 달려왔다.
“어떻다고 하더냐.”
“지친 오크가 많다. 못해도 1만 명의 전사는 큰 힘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밤새 사막기병이 지랄병을 떨었다. 밤에 땀을 빼는 것처럼 힘든 일도 없었고, 오크는 그렇게 되어버렸다. 해질녘부터 시작된 싸움이었기에 미리 싸우지 않을 수도 없었다.
시간 선택이 절묘했다. 또, 고작 5천으로 1만의 오크를 일시적이지만 전투불능에 빠지게 하였다. 남은 오크도 제법 지쳐있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전술적 패배나 다름없었다.
지금 전투 가능한 오크의 숫자는 1만6천이었고, 그들 또한 만전의 상태는 아니었다.
이야아아아!!!
도네투스가 움찔했다. 순간 인간의 함성소리를 들은 것 같은 환청을 들어서였다. 비단 그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사막 기병 5천이 보여준 모습은 오크들조차도 기가 질리게 하였다.
‘죽고 싶은 인간이라니.’
도네투스는 가슴 부근이 지릿지릿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죽기 위해서 도망가고, 도발하고 이내 죽으면서도 발버둥 치며 자기를 죽여보라고 뻗대는 모습을 들어서였다. 그곳에 자신이 없었다는 게 아쉬웠다.
시야가 제한된 곳에서 캉카라쿰같은 대형 탈것을 운용하는 것은 미친 짓이어서였다. 내성벽의 인원이 끼어들지 않게 주변을 선회한 것이 전부였다.
“준비해라. 이번에도 놈들의 지원군을 때려 부순다.”
“숲이라서 인간들의 숫자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는데, 가겠다고?”
도네투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우리보다는 적을 것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저 조잡한 장애물들을 부술 필요도 없다. 숲으로 들어간다면 우리의 승리다.”
우회 타격할 생각을 가졌다. 전과 다르게 큰 사냥감을 잡는 방식이 도입됐다. 오크도 이제는 제법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더 올지도 모른다.’
그런 불안감이 있었다. 도네투스의 눈에 보잘것없이 작은 내성벽 너머에 있는 내성에 몽펠리에의 무수히 많은 깃발이 펄럭거렸다. 고작 저런 것을 지키기 위해 5천의 기병이 제대로 싸우지 않고 죽었다.
하루를 번 것일 뿐인데도 이 정도라면, 서둘러 지원군을 격파해서 아예 못 덤비도록 만들어야 했다.
총 3만 5천의 오크 군세는 이제 2만 6천밖에 남지 않았다. 부상자 오크 5천은 치료가 이루어졌지만, 바로 전투에 투입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이 상황에서 1만은 크게 지쳤고, 남은 숫자는 1만 6천 뿐이었다.
그 중 3천을 외성지역에 남겨두고, 1만 3천의 오크 병력이 밖으로 나섰다.
“그아아아아!!!!”
오크 하나가 크게 외치며 이번에 새겨진 타투를 자랑했다. 죽기 전까지 근면했고, 병사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으며 검소한 삶을 살았던 〈사막 기수 벤베일〉을 죽이고 얻은 타투였다.
긴 나선의 양초와도 같은 형상의 타투는 길쭉했고, 팽글팽글 도는 나선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멋도 한껏 났다. 특히나 그 미(美)를 자극하는 것은 발끝에서부터 시작된 나선의 타투가 엉덩이에서 화려하게 불꽃을 피우고 있어서였다. 그것까지 보여주던 오크 전사의 볼을 발로 걷어찼다.
“엉덩이 좀 치워!”
“크하하하!”
계속된 전투에도 그들은 오히려 더 즐거워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타투를 획득해서였다. 15년을 수련한 인간 기수가 쌓아온 인생이 타투로 형성되었다. 그것도 전투적인 능력으로, 군침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나약하지만, 타투는 주는 사냥감이라니? 이런 기회는 다시 없어 보였다.
“녹색 도끼가 우리를 보고 있다는 증거지!”
신을 향해서 경외하는 모습 따위는 없었다. 마치 바로 옆에 있는 아빠한테 말을 하는 것처럼 편하게 굴었다.
전투는 그들이 원하는 것이며, 녹색도끼가 즐기는 것이기도 했다. 신이나 오크나 똑같은 취미 생활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크들이 몰려나왔다. 그 시간만 해도 장장 40분이 넘게 걸렸다. 부락별로 누가 먼저 나가는 것으로도 싸우고 경쟁을 해서였다. 도네투스가 으르렁거려도 바꿀 수 없었다.
*
〈진압 기사(Subjugation Knight) 리오넬 파이룬(Lionel Faerun)〉이 전투마에 탄 채로 숲 밖에 세워진 군막 앞에 섰고, 말에서 내렸다.
병사가 고함을 지르며 그가 왔음을 알렸고, 안에서 대답이 나왔다.
“오크놈들이 숲으로 들어가려고 하고 있소.”
리오넬 파이룬은 그와 형제였음에도 게실리안에게 하오체를 써야 했다.
남부 왕국의 모략으로 〈왕국 야영지〉에 발령을 받은 〈지휘관(指揮官) 게실리안 파이룬(Gesilian Faerun)〉, 그는 작위와 지위를 플래티넘 왕가에게 받아서 가지고 있었다. 원치 않은 일이었는데, 출중한 군사적 재능을 지닌 파이룬 가문의 막내인 게실리안에게 작위를 줌으로써 이후 후계자 싸움을 유도하겠다는 의도가 숨어있었다.
플래티넘 왕가의 정치적 재능은 실로 뛰어났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음에도 그렇게 하는 것은, 누가 숨어있더라도 책 잡히지 않겠다는 각오가 있었다.
“예상 밖이오.”
게실리안 지휘관이 눈을 찌푸렸다. 4만의 군세를 지니고 있음에도 그는 오크들의 움직임에 민감한 표정을 지었다.
“무리해서 알박기했으니, 돌출된 곳으로 덤빌 줄 알았건만. 숲을 선택했다면 생각보다 오크들 또한 겁을 먹고 있다는 증거요.”
“회의를 나누기에는 시일이 급한 것 아니겠소? 서둘러 군형(軍陣形)을 바꾸어야하오.”
“맞는 말이오. 전령을 보내주시오. 나는 곧바로 겐 경에게 가보겠소.”
게실리안 지휘관은 서둘러 움막을 나왔다. 아무도 없는 군막에는 수많은 양피지가 있었는데, 모든 것이 오크를 대비한 전술 토의가 있었다. 수많은 이들이 참가한 듯 하나같이 필체가 달랐다.
〈릭 쟝(Rick Jean)〉의 후손, 〈겐 쟝(Gen Jean)〉은 다가올 싸움을 준비했다. 그의 주위로는 자유기사들이 그득했다. 모두 하나같이 입을 다물고 있었다.
자신들의 첫 전투였고, 역사에 길이 남을지도 모르는 전쟁이었다.
그곳에 발을 들이밀었으니,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이렇게 의용군을 꾸려 하나 되어 올 수 있었던 것은 그럴 가치가 있어서였지만 그것보다는 겐 쟝을 믿어서였다.
하늘의 창이라 불리며 상단세만으로 싸운다면 세파리아스의 목도 창에 걸 수 있다고 알려진 투구걸이의 기사. 그 후손의 뒤를 따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힘든 일도 아니었다.
“겐 경!”
“아! 게실리안 지휘관님! 어찌 직접 오셨습니까?”
실제로 그는 게실리안 지휘관의 소속으로 들어가는 기염을 토해냈고, 그와도 잘 어울릴 정도의 역량을 보여주었다. 보통이라면 자유기사이기에 보여주지도 못했겠지만 자유기사 600명, 3개월 미만으로 훈련된 병사 6천을 가졌기에 보여줄 수 있었다.
자신의 가치를.
이것은 게실리안이 길게이 플래티넘보다 먼저 겐에게 오게 만들었다. 그의 의견은 특히나 들어볼 만 해서였다.
“숲에서 싸운다면 오크 하나를 잡는데, 병사 여섯이 넘게 죽을 것입니다. 오크들은 성문을 통해서 숲으로 올 것이니 그 반대편으로 도망쳐서 숲에서 튀어나오는 오크들을 상대하며 천천히 뒤로 빠져 평야전투를 하는 게 좋습니다.”
“알박기한 것이 아쉽긴 하지만, 역시 그게 최선이겠군.”
게실리안 지휘관도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의견이 맞자 더욱 자신이 붙었다. 곧 길게이 플래티넘에게도 방문해서 이를 알렸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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