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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딱! 탁!
통나무를 깎는 소리는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드낙은 투구를 벗은 채로 허벅지에 딱 맞는 통나무를 끼고 단검으로 음각 마법진을 새기고 있었다. 자연물, 특히나 나무의 경우에는 양각 마법진을 만들기란 많은 정성이 필요했기 때문에 음각 마법진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검은 문〉의 능력으로 얻은 마법사의 지식이 만들어내는 광경을 그저 육체로 따르기만 하면 되는 일이기에 드낙은 절로 딴생각이 났다.
〈검은 회의〉에서 크게 반대하던 세파리라스의 목소리가 생생했다.
[미친놈아! 네 몸이 아무리 초인이라고 해도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자신의 몸을 보신하는 일이라면 천륜조차도 저버릴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드낙이었다. 상황에 따라서는 젖도 안 뗀 아기의 피를 손에 묻히는 과감한 생존력을 보여주는 것이 그였다.
그런 성향도 중립신으로 인한 변질을 막지는 못했다.
사냥꾼, 암살자의 재능이 뛰어나고 선천적으로도 그러한 성향이 짙은 드낙은 검은 문에 중독되지 않으면 그 성장 속도가 매우 느릴 수밖에 없었다. 확실할 때에만 전투를 경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중립신은 드낙의 성질을 변질시키는 데 노력했고, 검은 문에도 지독하고 끔찍한 쾌감을 부여했다.
고로 그 결과물은 모순된 성격을 지닌 성격파탄자의 탄생이었다. 매번 판단이 달라지고, 목숨을 내던졌다가 목숨을 지키기 위해 웅크렸다가를 반복했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였다.
탐욕에 물든 눈동자가 검은빛으로 번들거렸다. 이미 제정신이라고 할 수 없는 지경까지 와버렸는데, 중립신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아무리 인간의 신인 인신(人神)이라고해도 검은 문 시스템은 그도 처음 추진하는 프로젝트였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기에 검은 문과 성격의 변질로 생기는 인간의 탐욕은 중립신이 제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의 욕망은 진정으로 끝이 없음을 체감하지 못한 중립신의 실책이었고, 그동안 검은 꿈을 잘 통제해온 드낙의 한계를 바로 잡아내지 못했기도 했다.
중립신조차도 드낙을 제어하지 못한 이유는 오크가 가지는 힘 때문이었다. 오크를 죽이면서 얻은 육체적인 능력들은 드낙을 가히 무소불위의 권력자로 만들어버릴 만큼이나 큰 힘을 내어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육체 능력이었기에 가장 체감이 많이 될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럽게 탐욕이 불쑥 커져 버렸고, 제어에 실패하게 되었다. 부활하지 않은 불완전한 신과 오크의 육체적 능력이 맞물려서 만들어진 촌극이었다.
‘오크! 오크의 업! 그리고 성장! 레벨업! 캬아아! 취한다!’
드낙이 입술을 혀로 핥았다. 사이코패스가 먹잇감을 묶어놓고 그 과실을 탐하려는 모습과 지나칠 정도로 흡사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화르르..타닥!
모닥불을 지피고 낮에 널어놓았던 약초를 불가에 놓으며 증류수가 끓기를 기다렸다.
“흐흐흐.”
갑자기 히죽거리던 드낙이 이내 헛기침을 하며 바짝 마른 약초를 손으로 비비기 시작했다.
샤샤샥! 샤샤샥!
가루를 내고, 증류수를 섞은 다음에 마력을 집어넣어 인첸트를 했다. 중급 연금술로 만들어진 물약이 들어있는 가죽 주머니가 하나씩 차기 시작했다. 움푹 파여 있는 통나무 마법진에 식은 물약을 부었다.
〈마력 보존의 물약〉은 통나무에 최대한 많은 마력이 보존되는 것과 동시에 더 많은 마력을 보유하도록 만들어줄 것이다.
통나무의 내구력을 고려해서 마법진은 단 하나뿐이었다. 나무라서 너무 많은 마법진을 사용한다면, 빠르게 내구력이 소모될 것이고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었다.
〈비행 질주〉라는 마법이 새겨져 있었는데, 보통은 귀족 혹은 왕족이 생사를 오가고 있을 때, 물류를 최대한 정확하게 배달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마법이었다. 사람을 상대로는 사용되지 않는 마법이었다.
이 세계의 마법사는 전쟁터에 나가면 〈종군 마법사(從軍 魔法師)〉라고 불릴 정도로 흔하지 않은 일인 것을 고려했을 때,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대부분이 비전투, 전투라도 기사 마차에 새기는 것이 마법의 대부분이었다.
드낙이 통나무에 괜히 마법진을 새긴 게 아니었다. 인첸트 마법에 많은 공을 들인 만큼 효율이 높은 것은 대부분 인첸트 마법이었다.
“됐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드낙은 그대로 통나무를 품에 껴안았다. 제법 그럴듯한 자세가 나왔고, 인간 로켓처럼 보이기도 했다.
‘왠지 불안한데.’
일말의 보신주의가 꿈틀거렸지만, 오크를 죽여서 얻는 이득에 눈이 먼 드낙은 엉덩이만 꿈실거리면서 머리를 보호하듯이 통나무의 끝자락에 섰다.
“〈비행 질주〉.”
드낙이 말하자마자 통나무가 하늘로 솟구쳐올랐다. 속도는 그렇게 빠르지 않았지만, 체감 속도가 대단해서 드낙이 순간 아찔함을 느꼈다.
‘가자아!’
2일에 걸친 비행 끝에 드낙은 몽펠리에의 북쪽에 존재하는 전투요새 〈쌍둥이 성채〉에 도달할 수 있었다.
시간적, 공간적 격차를 무로 만들고 인간과 오크가 벌이는 전쟁의 가장 큰 변수가 탄생할 수 있는 전투에 개입하게 된 것이다.
‘하이 리턴, 하이 리스트!’
헛소리를 지껄이며 드낙은 그대로 외성 지역을 겨누며 나아갔다. 넓은 평야에 있는 전투요새라 눈에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가까워지기가 쉽지 않았다.
풍경은 느릿느릿하게 가까워졌다.
그 사이에 드낙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캬! 고놈들 참! 많이도 몰려있네.’
가장 먼저 자신이 꼭, 반드시 쓸어담아야 할 오크들이 즐비했다. 멀리서도 인간들과 차이가 났다.
‘싹 다 내 것이다. 이 말이야!’
괜히 허벅지에 힘이 들어갔다. 2일간의 무리하게 활성화되어있던 통나무의 균열이 단번에 심해졌다. 굳은 물약의 파편이 후두둑 떨어져 나갔다.
꿀꺽.
드낙은 바짝 얼어 붙은채로 침을 삼켰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꽈지직.
그 소리에 드낙의 심장이 덜컥했다. 간이 바짝 쪼들렸다. 높이만 해도 수백? 천 미터는 되어 보였다. 옆에 멀리 보이는 산보다 자신이 높게 있는 것 같았기에 더할지도 몰랐다.
‘X됐다.’
퍼서석!
통나무에서 큰 소리가 나더니 그대로 반으로 쪼개져 버렸다. 드낙은 그대로 평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파라라락!
귀를 때리는 바람 소리가 거칠게 들려왔다. 속력이 너무나도 빨랐다. 마법을 쓰기에는 이미 마력이 동난 상태였다.
‘으그극!’
드낙은 최대한 몸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중력과 불편한 자세 그리고 두 발이 공중에 떠 있어서 기절한 사람처럼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쾅!
평야에 그대로 들이박혔다.
흙먼지가 괴이할 정도로 많이 퍼져나갔다.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드낙은 결코 일어서지 못했다. 목이 꺾여져서 핏줄이 터져나가 목 언저리에 피멍이 번져갔다.
즉사한 것이다.
그만큼 어리석은 일이었고, 탐욕이 부른 대가였다. 인정받지 못하는 천재의 힘도 받지 못해서 처참하게 박살이 났다. 투구는 찌그러졌고, 함몰되었으나, 다행스럽게 고정쇠가 뜯겨나가 저만치 날아가 있었다.
기절한 것이 아니라 즉사한 것이었기에 세파리아스가 빙의하는 일도 없었다. 그저 트롤의 피가 목을 수복할 때까지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1초가 지날수록 뇌도 회복해야 했기 때문에 끔찍한 수모를 겪기 시작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시간은 속절없이 지나갔고, 드낙은 조금씩 꿈틀거리면서 목이 회복됨에 따라 머리가 조금씩 움직여졌다.
빈혈을 일으킬 정도로 끔찍한 소모를 겪고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
중립신은 처음으로 감정이라는 것을 드러냈다.
그의 손길에 검은 연기가 일으켜졌고, 이내 세파리아스가 토해지듯 뽑혀나왔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그의 왼쪽 어깨뼈가 무너지며 연기로 변했다.
드낙의 존재 없이 만들어진 검은 꿈이라는 장소가 지닌 허무함이 그대로 보였다.
“인간의 탐욕이 이 정도일 줄이야. 제어에 실패하다니.”
드낙을 선택한 이유는 그 천성이 대단히 조심스러운 성격이라서였다. 물론 운으로 빚어진 만남이기도 했고, 딱히 고르지도 않았다. 찾아왔고, 보니 남은 찌꺼기를 모두 걸고 보잘것없는 올인을 외친 것뿐이다.
동시에 드낙을 변질시킨 이유는 빠른 성장을 원해서였다. 눈이 돌아가서 미쳐 날뛰게 만들어야지 업의 수급과 드낙의 강함이 세계의 수준을 빠르게 뛰어넘어야 했다.
중립신은 두 마리 토끼를 그동안 아주 잘 잡아왔고, 이번에 처음 어긋나버렸다.
“오크의 능력을 단시간에 너무 많이 줘버렸다. 육체적 능력이 대부분이라 체감이 드낙의 이성을 앗아가버렸다.”
오크라는 대형 사냥감 때문이었다. 그게 가장 큰 변수였다. 물론, 그것이 가장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해도 인간인 세파리아스는 딴소리를 했다.
“오크 탓만 하는 거냐? 인간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버러지 같은 드낙이라도 불완전한 신이 어찌 제어할 수 있을까. 그것도 천성을 짓밟았으니.”
그는 신에게 존대조차도 하지 않았다.
중립신은 건방진 인간을 바라보았다. 무심했기에 더욱 잔혹해질 수 있는 눈이 살짝 떠져 있었다.
“······”
서로 눈이 마주쳤다. 세파리아스는 결코 물러섬이 없었다. 신과의 거래에서도 배짱장사를 한 미친 인간이 그였다.
“개체로서의 인간은 나약하다. 인간이 무리를 이루고 사회를 건설한 이유이기도 하지. 그들은 집단이 되어야지만 강해질 수 있다.”
오크와 인간의 전쟁을 보면 여실 없이 드러난다. 홀로 싸우고 협력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에는 독고다이에 각개전투인 것이 오크들이었다. 반면 인간은 전우를 위해 죽을 줄도 알았다.
소속감이 가지는 무시무시함. 의리나 우정의 행복한 감정들. 진이 빠지는 고통 속에서 만들어내는 승리감 등. 인간은 무언가를 위해 죽을 것처럼 날뛰어야지만 행복을 느끼는 종족이었다.
“···더군다나, 그대 같은 인간은 드물지. 모든 인간이 그대와 같았다면, 이 세계의 패권은 인간이 잡고 있었을 것이다.”
세파리아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 모습에 중립신은 그를 밀어냈다. 검은 연기가 인류 최강의 인간을 덮치며 가렸다.
‘살성(殺星)은 내 손아귀에 들어왔다. 추가로 별의 업도 얻었다.’
드낙은 그 힘을 제대로 얻지 못해서 가볍게 여겼지만 〈별의 힘〉이야 말로 중립신이 가장 원하는 힘들이었다. 이름있는 별들을 획득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로 손꼽혔다.
그것을 자신의 챔피언에게 알리지 않은 것은 당연히 별을 획득하면서 얻은 업을 그에게 한 푼도 베풀고 싶지 않아서였다.
‘결국에 챔피언도 인간이기 때문이지.’
아무리 강해져도 앗 하는 순간에 죽는 것이 인간이었다. 반신이니 뭐니 떠받들어져도 결국에는 육(肉)으로 이루어진 유기체였다.
‘이제 충분하다고 할 수 있지. 인간의 탐욕이 이렇게 끔찍할 정도는 아닌데. 〈박호훈〉의 삶은 굶주린 삶이었던 것 같군.’
중립신은 드낙에 대한 제어를 손에서 놓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풀어줘야 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겁쟁이지 피맛을 본 광전사가 아니니까.’
광전사는 가신으로 삼기 힘들었고, 곁에 두기 껄끄러운 존재나 다름없었다. 세파리아스가 크게 사용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목줄이 없다면 제대로 쓸 수 없는 것이 세파리아스 불파겐이라는 존재였다.
‘이제 적극성은 필요 없다. 그리고 대계를 위한 업은 충분히 쌓였다.’
중립신은 눈을 감았다. 조금 튀어나왔던 감정은 언제 그랬다는 듯이 사그라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드낙은 예전처럼 신중한 인간이 될 것이고, 테라가 완성되는 날까지 그의 챔피언이 될 것이다.
‘테라에는 챔피언이 필요 없지. 그리고 그 어떤 신도 없을 것이다. 모든 이들이 실패한 이 체계를 송두리째 부수는 세계를 만들어보이겠다.’
최대한 많은 필멸자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땅. 그 어떤 권력자도 사악하다면 엎어질 수 있는 세상.
신이라고, 챔피언이라고 거침없이 누군가를 죽일 수 없는 세상.
신의 반열에 들기 위해 인신공양에 미친 자들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
‘곧, 바른 세상. 〈테라〉를 만든다.’
착 가라앉았던 감정이 활화산처럼 타올랐다. 그만큼 드낙이 지금까지 중립신을 위해서 한 일은 굉장했다.
수많은 인간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불완전하지만 인신(人神)인 중립신이 그 업을 얻을 수 있게 해주었다.
수많은 존재를 직접 살해하며 그 업을 중립신에게 바쳤다. 산제물만큼이나 직접적으로 대량의 업을 얻는 방법은 드물었고, 드낙은 가장 신선한 산제물을 중립신에게 바치는 충실한 챔피언이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강대한 별 중에 하나인 살성(殺星)의 선택을 받고, 그 힘을 한 번 맛봄으로써 중립신이 그 별에 접촉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러니, 중립신조차도 미래에 대해서 희망찬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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