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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습, 훈련생, 은퇴한 기수, 숙련병이나 1년 내외의 기수들. 그런 것 상관없이 모인 사막기병 5천 기가 지평선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주홍빛으로 가득 불든 태양을 뒤로하고, 그들의 그림자가 앞으로 길쭉하게 뻗어 나갔다.
‘원군!’
도네투스가 그곳에 눈을 담으며 캉카라쿰의 머리를 돌렸다. 그만큼 5천의 기병 군세가 보여주는 분위기는 대단했으며, 기괴하기 짝이 없는 뿔나팔 소리는 오크들의 관심을 가지게 하기 충분했다.
“공격 중지! 성벽으로 향해라!”
지상에 있는 오크들에게는 멀었지만, 날아다니는 도네투스에게는 가까운 거리로 체감되게 만들었다. 그 덕에 서둘러 오크들을 외성벽으로 보내도록 했다.
오크들이 성벽 위에 모습을 드러내며, 역광으로 자신들의 모습을 숨기고 있는 서쪽의 기병들을 눈을 찌푸리며 보려고 노력했다.
꽈라라라라!
쌍봉낙타가 끔찍한 소리를 냈다. 마치 하울링처럼 골골거렸다.
끄에에!
되새김질하면서 괴물 같은 소리 또한 뱉었다. 낙타의 적응되지 않는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기수의 양옆에 있는 무지막지한 짐들이 걸려있었는데도 힘들어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자신의 체중보다 큰 짐을 실을 수 있는 것이 낙타의 힘이었다.
그런 대단한 힘과 지구력이 있었기에 그 누구보다 빠르게 〈쌍둥이 성채〉에 도달할 수 있었다. 서쪽의 군대 중에서 1등으로 도착한 것은 낙타가 지닌 힘이 없었다면 하루, 내지는 이틀은 더 늦었을 것이고, 병력의 숫자도 적었을 것이다.
많은 보급품을 실을 수 있었기에 오롯이 전투인력만이 이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사막기병의 무리 속에 가주인 〈반 킹슬레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차남이지만 직계인 〈헤리호르 킹슬레이(Herrihor Kingslay)〉가 투구를 벗으며 자신의 모습을 내비쳤다. 황금으로 도색이 되어있는 전신갑주는 어디에서든지 볼 수 있었다.
오로지 킹슬레이의 최전선에서 활약하도록 성장하여온 직계 가문의 기사이자 지휘관으로 키워진 그는 가주를 대신해서 위험한 곳에서도 임무를 충실히 행할 수 있도록 키워진 인재였다.
귀이이이잉!
기괴한 소리를 내도록 설계된 뿔나팔은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오크들의 관심을 끌기 위함이고, 무너진 마법 첨탑 때문에 때를 놓칠까 봐 두려워서였다.
“기사 마차에서 메시지 마법을 발동해라!”
헤리호르 경이 소리를 지르자 기수가 냉큼 대답했다. 헤리호르의 명을 받들었다는 표시로 랜스의 끝에 삼각깃이 묶여서 펄럭거렸다.
“예!”
뿔나팔이 계속 울려 퍼지고, 드래곤 오크 라이더가 사막 기병을 정찰하듯이 한 바퀴 선회했다. 무리해서 덤벼올 생각은 없는 듯하였다. 마법이 있었기에 조심하는 모습이었는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파앗!
그 사이에 푸른 마력이 기사 마차에서 쏘아져서 〈쌍둥이 성채〉의 무너진 첨탑으로 한 번 갔다가 소식이 없자 내성으로 재차 쏘아졌다.
이내 메시지 마법이 연결되었고, 음성이 들려왔다.
“반갑소. 헤리호르 킹슬레이요. 너무 늦게 온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소.”
“아크온 몽펠리에요. 실로 때맞추어서 와주었소. 조금만 늦었어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번졌을 것이오.”
짧은 인사가 오갔다. 아크온 몽펠리에는 본론을 말했다.
“서쪽의 본대가 온 것이오?”
기대감이 잔뜩 풍겨오는 말이었다. 하지만 헤리호르 경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우리는 그저 선발대에 불과하오. 5일 뒤에나 도착할 수 있소.”
“왜 그렇게 차이가 나오?”
보통 3일의 간격을 두는 것이 선발대와 본대였다. 하지만 서쪽의 군대는 5일이나 차이를 두고 있었다.
“낙타 덕분에 그렇게 할 수 있었소.”
아크온이 탄식했다. 본대가 아니라면 오크 3만을 밀어내는 것은 요원한 일이었다.
“숙련된 기수의 숫자는 몇이나 되오?”
“2천 명이오. 나머지 3천은 은퇴, 훈련 혹은 기수가 된 지 3년 미만의 병사들이오.”
“허어.”
아크온이 한숨을 내뱉었다. 정규병 오천이라고 부를 수 없는 구성이었다. 다만 기대하는 것은 은퇴병과 숙련병이 3천이라는 점이었고, 이를 통해서 일반병과 훈련병이 따라오기는 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기사의 숫자는 몇이오?”
“없소. 다만, 기사 마차만 30대요.”
그 말에 아크온의 목소리에 분노가 서려 있었다.
“기사가 그대 혼자뿐이라니. 왜 그런 구성을? 대체 무슨 생각을···”
순간 아크온의 목소리가 줄어들면서 끊어졌다. 그 모습에 헤리호르가 웃음기를 머금은 채 말했다.
“왜 그렇게 했겠소.”
헤리호르가 오히려 아크온에게 되묻자 잠깐 침묵이 돌았다. 왜 그런 것인지 어렴풋이 깨달아서였다.
“무거운 선견지명이 아닐 수 없소. 누가 그렇게 생각한 것이오.”
귀중한 기사 전력이 없는 병력 구성은 곧 죽으러 왔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이 평야에 뼈를 묻기 위해서 온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서쪽의 오크는 3만이 넘는 군세를 가지고 쳐들어왔소. 하물며 오크의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드래곤 오크 라이더가 이끄는 오크는 얼마나 많고, 얼마나 강하겠소.”
북서쪽에 위치한 〈에리트레아(Eritrea) 영지〉에서 시작된 청야 전술의 완벽함을 보여준 것이 킹슬레이의 판단력이었다. 그 위세를 경험했고, 그곳에서도 우위를 가져간 이들인 만큼 계속해서 한발 앞서나갈 수 있었다.
“그들을 막기 위해서 나는, 우리는 이곳에 왔고 여기에 있는 모든 이들이 각오하고 있소.”
이에, 아크온은 헤리호르가 다른 마음을 먹기를 원했다.
“승리할 수 없는 싸움이라, 헛된 죽음이 될 수 있소. 두렵지 않으시오.”
“언제부터 북부인에게 승리가 중요했소. 우리 메디오인은 죽음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을 위해서 당당하게 나서는 것이야말로 자랑 아니었소. 그런 것이 기사고 병사가 아니오?”
시민들의 세금을 받으며 그 혈세로 자신의 삶을 사는 병사들의 정신무장이 대단한 이유는 수많은, 정말 많은 기사가 몸소 그것을 실천해서였다. 그것은 〈붉은 요새 함락〉 이후로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전통과도 같은 것이었고, 민족의 혼과 같았다.
그 마음을 확인한 아크온은 음흉하기 짝이 없는 칼을 뽑아들었다. 상대가 그렇게 말했으니, 그 말을 번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대의 마음은 충분히 알겠소. 그러니 내 부탁 하나 해도 되겠소? 밖에서 시간을 끌어주었으면 좋겠소. 그렇게 한다면 못해도 절반의 오크로 나누어질 것이 아니오? 그로 생기는 변수는 큰 도움이 될 것이오.”
아크온은 헤리호르가 개죽음도 마다치 않겠다고 말하자 그것을 이용했다. 말 그대로 개처럼 죽으라고 돌려서 말했다.
멋진 돌격보다는 더러운 진흙탕을 원했다.
“······”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았기에 헤리호르 경은 순간 말을 잊지 못했다.
‘지독하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이 전쟁에 도움이 되기는 한다.’
기병으로 시간을 끈다면, 자연스럽게 그 피해는 누적될 것이고 이내 한 번 제대로 돌진조차 못한 채 이 평야에 죽어 나자빠질 것이다. 시간을 끌기 위해서 제대로 된 전공 하나 세우지 못하고 죽으라고 말하고 있었다.
“못하겠소?”
“···아니오. 어차피 그럴 생각으로 왔소.”
“건투를 빌겠소.”
“반드시 이번 전투에서 이겨야 할 것이오.”
“맡겨만 주시오.”
그것으로 메시지 마법은 끝이 났다.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몽펠리에의 기사전력을 지켜야 했다.
“들어라! 들어라! 킹슬레이를 비롯한 서쪽의 병사들이여!”
“아~이!”
거대한 함성이 운율을 가지며 위아래로 굽이치며 울려 퍼졌다.
“우리는 이곳에서 모두 뼈를 묻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지킬 수 있는 것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아~이!”
금방이라도 돌격할 것처럼 기세를 돋우자 오크들의 병력이 절반으로 갈렸다. 탈것을 탄 오크 라이더들이 끝도 없이 외성벽 밖으로 우루루 빠져나왔다. 그것은 거대 늑대이기도 했고, 큰 멧돼지이기도 했으며, 산과 숲에 사는 덩치 큰 동물들이었다.
덩치가 부룩부룩하고 다리가 두꺼운 멧돼지와 쌍봉낙타를 비교하면 낙타가 매우 앙상해 보이고, 날렵해 보였다.
“겐바로! 울세! 가까이 오라!”
“예!”
재능있는 기병장 2명이 다가왔다. 천 기가 넘는 기병을 효과적으로 통솔할 수 있고, 그 이상이 되면 뭉그러뜨려서 관리가 가능한 수준에 불과했지만, 그것만으로도 큰 재능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나씩 머리를 맡을 것이다.”
“예? 하지만 기사님, 그렇게 한다면 돌격하기 힘들지 않겠습니까?”
겐바로의 말에 헤리호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평야에서 최대한 시간을 벌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이곳에 오크들을 묶어둘 수 있고, 본대가 도착하여 오크들을 무찌르는 상황이 올 수 있다.”
“······”
울세 기병장은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삼로진(三路陣) 전술〉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3개의 머리를 잡은 기병들이 펼치는 지연전이 바로 삼로진 전술이었다. 평야에서 쓰기 좋고, 〈낙타 기병〉이나 할 수 있는 전술이었다.
“지연전이라고해도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습니까. 본대는 거기에 5일이나 멀리 있는데···”
헤리호르는 손사래를 쳤다. 물론 기병장 2명의 의견을 뭉개버리지는 않았다.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지원군이 등장할 수 있다. 특히 파이룬 가문은 오지 않을 수가 없다. 몽펠리에의 전투 요새 덕분에 그들 영지가 그나마 유지되고 있을 터니.”
그 말을 듣고 나서야 기병장들이 이해했다.
“짐을 풀어라! 최소한의 물과 식량만 가져가라! 삼로진 전술을 써서 지원군이 올 때까지 버틸 것이다!”
아~이!
단번에 묵직한 짐을 풀었다. 그곳에서 물주머니와 밧줄로 엮어놓은 말린 생선을 적당히 챙겼다. 투척용 단창과 활과 화살 30여발 등 전투 물자도 챙겼다. 물론 훈련병들은 그 정도까지는 못했다.
낙타를 타며 활을 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라 투창만 몇 자루 더 챙길 뿐이었다.
연금술로 만들어진 다양한 물약은 굵직한 사슴 통가죽 혁대에 끼워져 있었는데 그것을 기수의 앞에 놓아서 언제든지 뽑을 수 있게 했다.
“끄게게게!”
낙타가 서서히 앞으로 향했다. 3갈래로 나누어진 사막 기병의 무리는 천천히 쌍둥이 성채를 향해 앞으로 천천히 나아갔다.
그 모습에 오크 라이더들도 천천히 나아갔다. 그들은 혁대에 작은 투척 도끼를 두르고 있었고, 몸에는 털가죽을 걸치고 있었다. 탈것 짐승의 앞에 밧줄에 걸린 여러 가죽 주머니가 움직일 때마다 덜렁거렸다.
엉덩이 쪽에는 주술도기가 몇 개 걸려있기도 했다. 어떤 오크 전사는 주술 도기가 전혀 없었다. 배분받은 것을 다 써버려서였다.
“응?”
헤리호르 킹슬레이가 나아가다가 갑자기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눈을 좁혔다. 시야가 굉장히 넓었기에 알아차릴 수 있었고 그것을 손으로 가리키며 눈이 좋은 부관에게 말했다.
“부관! 저게 뭐냐!”
“검은 점으로 보입니다. 독수리인 것 같습니다.”
“독수리가 혜성처럼 떨어지는가!”
검은 점 같은 것이 혜성처럼 떨어지고 있었고, 이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혜성이라고 하기에는 불타오르고 있지 않았고, 그 어떤 빛도 내지 않았으며 속도도 느렸다. 물론 혜성이라고 했을 때, 지나치게 느린 것이니, 그 어떤 새보다도 빨라 보였다.
눈이 좋아서 헤리호르의 부관이 된 자가 멈추어서서 손을 동그랗게 말아서 눈에 대기도 했는데, 그가 이내 경악하며 소리를 내질렀다.
“사람? 기사 같습니다! 기사가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습니다!”
“기사라고? 확실한가?”
“예. 제 눈에 똑똑히 보입니다. 마법으로 하늘을 날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곧 여기에 도달할 것 같습니다.”
“그 외에는 뭐가 보이는가?”
부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죄송합니다. 그 외에는 딱히 특정할 것이 없습니다.”
그 말에 헤리호르 경이 앓는 소리를 냈다.
“기사 마차도 아니고 기사가 하늘을 날아서 오고 있다고? 마력이 어마어마하게 들 텐데···”
의문도 잠시 그는 눈앞의 전투에 집중하기로 했다. 단 한 명의 기사가 가지는 가치는 그 정도일 뿐이었다. 평시에 그랬다면 많은 관심을 가졌겠지만, 만(萬)이 뒤섞이는 전쟁에서 하나(一)가 지니는 가치는 먼지만도 못했다.
세 갈래로 뻗어 나가던 인간 기병은 평야를 완만하게 돌기 시작했고, 오크 기수들 또한 세 갈래로 나누어졌다. 도네투스는 홀로 전신 갑주를 입고 있는 헤리호르 경의 근처를 날아다녔다.
〈충격의 대형망치〉
쿵!
마법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망치가 캉카라쿰이 낮게 비행하려고 할 때마다 튀어나와서 견제했고, 그때마다 블랙 스케일 와이번은 단번에 날아올랐다.
“아낌없이 마법을 사용해라!”
마법 마차에 탄 기수가 헤리호르의 외침에 크게 대답했다. 그들의 임무는 드래곤 오크 라이더를 견제하는 일이었다.
========== 작품 후기 ==========
5900자
평점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어제 하루 휴재를 하게 되버려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