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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523화 (522/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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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킬거리던 도네투스는 술을 찾았고, 술을 한 잔 마셨다.

“추적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무엇이냐?”

고블린이 이를 번역했다. 번역은 시간이 제법 들어가는 일이었다. 똑같은 말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특히 다른 고블린 노예 두 마리에게서도 반복해서 들었는데, 오해의 소지가 없게 하기 위함이었다.

“마법 첨탑이 무너져서 메시지 마법을 수신하지 못하니. 원군을 부르기 어렵다고 합니다. 또, 마법사가 이곳에 없으니, 자력으로도 불가능하답니다.”

족장 도네투스가 턱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술잔을 만졌는데, 간교한 인간들 때문에 뭘 하든지 불안함이 조금 있었다.

그것을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

문인 몇몇이 그 말을 전해 듣고 다시 이 말, 저 말을 해대었다.

“주는 식량에 말고기가···”

“기병이 적을 수밖에 없고···”

이런저런 변명거리가 고블린의 입으로 옮겨졌다. 최대한 간결하게 말하려고 애를 썼다. 그 모습은 실로 이 협상에 공을 들인다고 여겨지게 하였다. 하지만 그렇게 빨리 이야기를 진행하면서도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고블린을 끼고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술이 한 잔 돌며,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문인이 물었다.

“오크들이 원하는 조건을 말하라고 전해라.”

그렇게 전하자 도네투스는 그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다른 것을 물었다. 이 이야기는 자신의 입맛대로 진행할 수 있었고, 인간들에게 굴욕감을 주기 위함이었다. 특히나 문인 중 가장 늙은 인간의 반응이 재미났다.

“왜 항복을 하는 거지?”

그 물음에 또 한바탕 난리가 났다. 도네투스는 병사들이 문인과 투닥거리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는데, 고소했다. 저러니 저열한 종족을 못 벗어나나 싶었다.

‘힘이 있어야지 저런 꼴을 안 당하지. 쯧쯧.’

지위와 힘. 영향력과 힘은 매우 중요했다. 하지만 고만고만한 인간 잡것들은 그런 우열을 살피기 힘들 것이다. 자연히 웃음이 나왔다. 원래 X밥끼리의 다툼이 훨 재미난 법이었다.

“그만!”

도네투스는 그 싸움을 자신의 주도대로 멈추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멈추기도 했다. 강력한 영향력! 그것이 도네투스를 즐겁게 만들었다. 누구나 그런 것을 경멸하지만, 속으로는 누구나 그런 권력을 좋아한다. 자신의 입맛대로 세상이 움직인다는 것은 마약보다도 더한 유혹하고 있고, 그 어떤 것을 감수해서라도 지키고 싶은 것이었다.

설령, 제 자식에게도 주지 않는 것이 권력이라는 것이다. 작은 완장조차도 그렇다. 한번 겪어보면 그렇게 사람이 변해버렸다. 그게 보통의 인간이다.

“왜 항복하는 것인지나 빨리 말해라!”

문인 몇몇이 허둥지둥거렸다. 고블린이 그 말을 받고, 입을 조물딱 거리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겨울이 찾아와서랍니다.”

오크에게도 예외가 아닌 것이 겨울이었다. 여름에도 선선한 바람이 잘 부는 남부 왕국은 겨울이 아주 혹독했다. 남쪽에 있음에도 그랬는데, 기이한 기후였다.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몰랐다.

“요새를 봤다시피 오크가 물러가는 줄 알고, 이미 인간들은 병력을 반절이 넘게 되돌아갔다고 합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도네투스고 고개를 절로 끄덕였다. 3천의 정찰군을 운용해서였다. 그런 많은 인간이 있었기에 〈쌍둥이 성채〉를 점령하고 인간을 식량으로 삼으려고 이곳에 왔다.

이것은 곧 오크들 또한 인간을 보급으로 크게 못 쓴다는 것과 같았고, 화친에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본래라면 3만이 넘는 인간의 머리통을 쪼개고 간식처럼 골수를 빨며 돌아가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해진 것이다.

인간 요새에는 못해도 1만이 있을까 말까였다.

가장 설득력이 높은 말이었다.

“외성벽도 빠르게 무너졌다면서 인간들은 더는 싸움을 이어나갈 수 없는 듯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도네투스는 다시 술을 한 잔 마셨다.

취한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주술사!”

도네투스가 주술사를 부르고, 인간들을 물렸다. 금궤는 여전히 도네투스의 발아래에 있었다. 상대가 준 선물을 대하는 모습이 실로 야만스러웠고, 저급했다.

“힘만 센 구질구질한 놈들.”

“어찌 저렇게 야만스러울 수 있습니까? 그런데도 철을 다룬다니···”

교양이란 걸 모르는 모습에 문인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곧 오크들의 조건이 인간들에게 전해졌다.

“빼앗은 영토에 인간들이 들어오지 않는 것.”

“겨울 전에 오늘의 협의를 인간들에게 알릴 것.”

“그것을 서로 다른 종족의 문자로 남겨서 서로 가질 것.”

“이곳에 오크들의 비석을 세우고 그것을 훼손하지 말 것.”

그들의 요구 조건은 간단명료하게 4가지였다.

빼앗은 땅은 비옥했고, 이번 전쟁에서 무조건 얻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오크는 아직 완벽하게 하나가 되었다고 할 수 없었다. 당장 쌍둥이 성채 공성전에서면 부락으로 나뉘어서 9곳으로 공격을 감행했다.

서로 다른 소속감을 느끼고 있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

상남자들답게 깃발 같은 것도 없고, 복장도 중구난방으로 난잡했기에 인간들은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도네투스는 알고 있었다.

〈비옥한 평야〉라는 전리품이 도네투스에게는 매우 중요했다.

이에 대해서 인간들은 당연히 반대했다. 문인은 아예 배째라는 식으로 침을 튀겨가면서 열변을 토했는데, 고블린이 집중해서 듣다가 중간에 가서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것이 너무 많아서 잘 못 들었습니다.”

문인이 답답해해서는 자신의 의견을 여러 개로 분할하여 말하기 시작했다.

“그 많은 영토를 모두 점령하는 것은 가능하나, 모두 제대로 쓰기에는 불가능할 것이며 항복이라는 형태로 이루어진 승리지만, 총력전은 아니라고 합니다.”

“뭔 개소리냐? 진 게 진 거지.”

문인은 백금 왕가는 물론 온갖 군대의 이름을 거론했다. 그중에는 거짓된 군대도 있었다.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져 있는 상황이었으며, 특히나 동부는 신흥세력으로 말해지며 군대만 5만을 동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그걸 구별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많은 군대가 있다면 진작에 보였겠지.”

도네투스는 시큰둥하게 넘어가 버렸다. 싫으면 계속 싸우자는 태도로 일관했다.

“동쪽에는 이미 오크들이 물러갔으니, 이쪽으로 계속 인간 군대가 몰리게 될 것이랍니다.”

“뭐? 동쪽의 오크들이 물러가?”

도네투스가 펄쩍 뛰었다. 자연스럽게 〈대전사(大戰士) 규르소모스(Guurshormos, 다리 힘줄)〉가 생각났다.

‘놈은 전부터 불만이었지. 하고 싶은 마음도 적었고.’

제국이 남부왕국과 아무리 민족적으로, 문화적으로 나누어져 있어도 그것을 나누려면 큰 장벽이 존재해야 했다. 그것이 바로 백설산맥이라는 장벽이었고, 광활한 산맥이었다. 그 산맥이 있었기에 제국과 남부왕국은 나누어질 수 있었다.

고로, 규르소모스는 지금에 만족하고 있었다. 오크의 개체수는 계속 증가했고, 이제는 부락당 3천~6천에 달하는 머릿수를 지니고 있었으며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오크 나무의 증가로 고정적인 식량의 수급도 발전했다.

주렁주렁 열리는 맛 나는 과일들은 그냥 먹어도 맛나고, 말려도 맛나고, 밟아서 술로 만들어도 맛났다.

“적당히 만족했다고 합니다. 또 서쪽은 모조리 황폐화가 되었으니, 얻는 것도 적을 겁니다. 반씩 가져가는 게 좋을 겁니다.”

“그렇다고해도 내가 얻은 땅을 다시 내어줄 생각은 없다.”

문인들은 비석에 대해서도 온갖 소리를 냈다. 관리는 오크들이 해야 한다면서 오크들이 가지는 영토에 세우라고 박박 우겼다.

“아니, 이 잡것들이! 쳐 돌았나!!! 자기들이 항복했으면서 무슨 배짱으로!”

도네투스가 당장 뱃가죽을 뜯어내는 모습처럼 화를 내자 문인들이 찔끔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어차피 오크 나무만 심고, 평야의 농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아니라며 평야는 공동 관리를 하자고 합니다.”

갑자기 평야에 대해서 이야기를 쑥 집어넣으며 황당하게 만들기도 했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해질녘이 되기 전에 딱 잘라서 말했다.

“이를 자신들의 대장에게 전해 말하고 다시 의견을 조율하자고 말을 하는데···”

고블린 노예조차도 도네투스의 눈치를 보면서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가 도끼를 꺼내 들어서였다. 바로 문인의 앞에 투척하여 땅에 박아넣자 문인이 기겁하며 뒤로 발라당 뒤집혔다.

새하얀 복장에 흙이 그대로 묻어나왔다.

“이, 이게 무슨 짓이오!”

“개만도 못한 인간 놈들아! 어차피 항복할 생각도 없었던 것 아니냐? 뭐? 평야 공동 관리? 비석은 알아서 하라고? 거기에 다시 되돌아가겠다고? 이게 말이냐!”

주술사조차도 인간들을 도와주지 않았고, 도네투스를 말리지 않았다.

전투력 차이가 확실하게 나는 오크와 인간의 종족 차이로 인해서 인간들의 말은 그저 말장난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또한, 문화적 차이도 있었다.

패배는 패배였다.

이겼다고 해서 모든 것을 못 가져가는 인간들의 전쟁과는 달랐다. 점령에서 너무 많은 자원을 투자해야 하는 인간과 인간과의 전쟁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 바로 〈종족전〉이었다.

패하면, 그 땅에서 모든 인간은 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실로 오크의 싸움과 잘 어울렸다.

문인들과 병사들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도네투스에게 사정사정을 하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무기를 손에서 놓아버리기도 했는데, 실로 꼴사납기 그지 없는 모습이었다.

“혀, 협상을 양보하겠다고 전해라. 어, 어서!”

늙은 문인은 말을 더듬기까지 하면서 노예 고블린의 어깨를 잡으면서 횡설수설하며 몸을 떨었다.

“버러지같은 새끼들···내가 속을 줄 알고 있느냐!”

그 외침에 잠깐 인간들이 멈칫했다. 이내 문인과 병사들의 잔뜩 겁먹은 표정이 점차 펴지면서 각오를 다진 강인한 모습으로 변하였다.

도네투스가 진정으로 속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는 자신들의 목표를 숨기지 않았다.

늙은 문인이 능숙한 오크 언어로 말했다.

“머리가 안 돌아가는 힘만 센 놈들인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구나. 맞다, 우리는 너희 같은 놈들에게 항복할 생각 따위 추호도 없다. 병사들이 충분히 쉴 수 있을 정도로 시간을 벌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한다.”

“오크의 말을 할 줄 알아?”

늙은 문인은 그에 대해서 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서로 눈이 마주쳤다. 도네투스는 늙은 인간의 눈에 새겨진 고요한 뭔가를 느꼈다. 야생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기이한 눈이었다.

생명이라는 것은 죽음 앞에서는 발악하는 법이었다. 하지만 저 눈에는 그게 없었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곧, 오크 전사들이 너도나도 달려들어서 곤죽을 만들었다. 하지만 끔찍한 소리 하나 나오지 않았다. 그저 고통을 감내하는, 작은 앓는 소리만 나올 뿐이었다.

노예 고블린까지 모조리 쳐 죽인 오크들은 서서히 튀어나오는 주홍빛의 해질녘을 맞이해야 했다.

3시간 혹은 4시간 남짓 되는 시간을 헛으로 사용한 것이다.

쪽잠을 자고 충분히 잘 수 있고, 4시간만 자도 체력이 강인한 기사와 병사들은 다시 활력을 찾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내성벽 곳곳에 올라가 있던 백기는 여전히 있다가, 오크들의 기세가 변하자 다시 내려가고, 몽펠리에의 깃발이 올라갔다.

“다시는 멈추지 않겠다. 모조리 죽이고, 먹을 것으로 삼은 뒤에 되돌아간다!”

“그아아아!!!”

짐승처럼 오크들이 포효했다. 하늘로 캉카라쿰이 날아올랐는데, 서쪽에서 하늘이 저물고 있는 곳에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높이 솟은 실과도 같은 것이 도네투스의 망막에 새겨졌다. 그것은, 인간들이 자주 사용하는 기병 무기였다. 둔하기 짝이 없고, 숲이나 산에서 바로 쓰기도 힘든 무기였다.

귀이이이잉!

괴이한 나팔소리가 평야에 울려 퍼졌다.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뿔나팔 소리였고, 이 지방에서는 결코 들을 수 없는 소리이기도 했다.

“와아아아아아!!!!!”

인간들이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들뜬 소리를 냈다.

붉은색 바탕에 화려한 금색의 문양과 겹쳐진 검은색의 방패.

그 방패 위로 검은 독수리가 날개를 펼친 형상으로 박혀있는 깃발이 끝도 없이 휘날렸다. 킹슬레이 가문의 깃발이었고, 다른 서쪽의 가문 깃발도 여럿 보여졌다.

난잡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화려하다는 표현이 더 옳았다.

그 숫자는 5천에 달했다. 물론 5천기의 사막기병은 모두 현역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한 줄기 빛처럼 여겨졌다.

끝없는 환호성 속에서 오크들이 주춤했다. 사냥꾼이며 전사인 그들에게 뒤가 잡힌다는 것만큼 신경쓰이는 일도 없어서였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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