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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성지역에서의 전투로 민병대원은 단 한 명도 돌아오지 못했다.
전쟁에서 가장 많이 죽는 것은 신병이고, 그것은 수많은 전쟁으로 익히 알려진 사실이기도 했다. 또한, 베테랑 병사들은 그 자원을 잘 활용하여 오크에게 최대한 피해를 주려고 노력했다.
그들의 죽음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을 위해서 노력했다.
그 행위로 인하여 천 명의 인간이 죽었다. 그들은 밭을 갈고, 싹을 틔우고 가을에 항상 인생의 주인공이었던 농부이기도 했고, 먼 곳까지 나무를 해오는 나무꾼이기도 하였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꿈과 목표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은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덧없이 사라졌다.
〈족장 도네투스〉는 엄격하고 근엄한 표정으로 외쳤다.
“인간들이 도망친 벽을 포위하고, 외성지역을 철저하게 뒤져라! 샅샅이 살펴서 허튼 수작질을 하지 못하게 해라!”
“우!”
오크들이 거칠게 대답했다. 일시에 대답해서 공기가 웅웅 울릴 정도였다. 그 패기에도 성벽에 꼿꼿이 서 있는 인간 정규병의 표정은 덤덤했다.
철컥. 덜그럭. 캉.
손을 주억거리며 강철이 부딪치는 소리가 제법 났다. 소리가 나는 곳은 마모되어있을 정도로 오래 쓴 무구로 보였다.
‘점심 즈음에 오겠다.’
외성벽 전투에서 싸우지 않고, 대기한 〈성채 근위병〉은 큰 할버드를 어깨에 걸친 채 흉갑을 입고, 팔뚝까지만 보호하는 강철 글러브를 착용하고 있었다.
덩치도 2m는 되어서 오크와는 머리 한 개 반 정도만 차이가 나기도 했다. 이들의 숫자는 고작 300명뿐이었지만, 내성벽 전투에서 가장 활약을 많이 할 것이다.
내성벽의 곳곳에 난 상처처럼, 이들이 이 성벽에서 한 훈련은 내리 5년에서 15년이 넘었다. 똑같은 전투 환경에서 15년을 훈련했다. 오크를 압도할 수 있을 정도로 성벽은 자신들의 집이었다.
펄럭! 쿵.
캉카라쿰은 다시 한 번 휴식에 들어갔다. 날아다니는 생물체임에도 내려앉을 때 육중하기 그지없는 소리가 났고,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뼈에 구멍이 뻥뻥 뚫려있거나 무게가 적게 나가는 것이 아니라서였다.
독특한 형식의 입체적인 안쪽 깃털이 아니었다면, 닭처럼 날개만 있지 육상동물이 되었을 것이 와이번이라는 용족이었다.
내성벽 내에서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병사들과 순찰자들의 의견이 갈린 듯했다.
“무슨 일이냐!”
몽펠리에 소속의 기사가 금방 개입했다.
“장애물 때문에 그렇습니다. 가져가서 자기들이 쓴다고 하지 않습니까.”
병사가 불쾌한 기색을 그대로 드러냈다. 기사 앞에서도 씩씩거렸는데, 결코 간부가 될 소질은 없는 병사로 여겨졌다. 기사가 턱짓했다.
“무엇에 쓰려면 왜 기사에게 보고하지 않았소.”
이에 순찰자가 말했다. 일이 꼬였기에 그들은 조금 조심스러운 태도였다.
“우리는 그 어떤 곳에도 소속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기사에게 보고를 어찌합니까?”
논란의 여지는 있었지만,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이 성에 있는 것을 쓴다면 주인에게 물어보고 쓰는 것이 정상이오. 다음에는 소속의 여부에 너무 신경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소. 목재로 된 장애물을 수레 세 대 분량만큼 건네줘라. 화살이 없으면 오크들은 더욱 기세가 오를 것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순찰자들의 곡사는 수성전에서 탁월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단순히 나무를 깎은 것이라도 오크 전사들을 소극적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오크 전사들의 체력은 무한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터프해서 무한한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 차이를 알아야 완벽한 오크 대용 전술을 만들 수 있었다. 또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병사를 만드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버티면 승리할 수 있다는 희망은 정규병이라면 응당 모두 가지고 있는 마음가짐이었다. 야수를 상대로, 몬스터를 상대로, 기사와 대련하기도 하면서 얻은 깡다구는 보통이 아니었다.
〈외성지역〉의 온갖 창고와 민간인 대피를 위한 거주지는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고, 그곳을 하나하나 다 뒤져보는 일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후욱! 후욱!
횃불을 크게 움직이자 불똥이 튀기며 사방으로 흐트러지며 잠시 더 많은 시야를 제공했다. 어두컴컴하고, 작은 창문이 있어도 바닥까지 오지 못하게 설계된 식량 창고는 텅텅 비어있어서 무슨 용도로 썼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곡알이 남겨져 있거나 찌꺼기도 바닥에 있을 법한데, 빗자루로 꼼꼼하게 청소한 흔적만이 있을 뿐이었다.
병사들이 청소를 한 만큼 오크 전사는 식량 창고를 꼼꼼하게 살폈다.
쿵쿵.
점프하기도 했는데, 비밀통로가 있는 것처럼 보이자 안색이 싹 변했다.
“흐악!”
기합을 내지르자 오크 전사의 음성이 메아리쳐졌다.
콰직!
나무로 된 바닥이 그대로 파였고, 도끼는 쑥 들어갔다. 손목을 돌려서 팔뚝을 손쉽게 접으며 도끼를 회수하며 나무 바닥을 두 동강 냈다.
횃불을 부서진 구멍에 쑥 넣자 공간이 만들어졌다.
탁!
단번에 내려갔는데, 지하공간으로 보였다.
농밀한 인간의 체취가 맡아졌다. 절로 도끼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그가 찾은 것은 지린내가 나는 오물통 하나와 바닥에 널브러진 누더기 옷뿐이었다.
“이 XX같은 인간놈들!”
나약한 인간 따위에게 당했다는 기분이 들자 절로 욕이 나왔다. 항상 만만하게 생각해왔고, 업신여겨온 놈이 자신보다 먼저 출세한 기분보다 더한 기분이 났다.
저벅. 저벅!
분노에 발에서 절로 힘이 들어갔다. 올라가는 길을 찾았다. 나무로 된 천장이라서 손으로 잡는다면 자신의 체중을 못 이길 것이 뻔해서였다.
지하 공간을 조금 헤매다가 올라가는 계단을 찾을 수 있었다. 그곳으로 다시 올라가자 식량 창고의 입구 바로 옆으로 나올 수 있었다.
이런 일이 곳곳에서 발생했다.
〈그럴듯한〉 상황을 만드는 것은 오크들을 현혹했다. 감각이 너무 뛰어나서였고, 이 때문에 많은 시간이 버려졌다. 하지만 오크 전사의 숫자가 워낙 많아서 정오를 넘기고 나서 내성벽 인근에 있는 건물 곳곳에 오크들의 모습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당장에라도 돌격해올 것처럼 보였다.
내성벽은 외성벽보다 성벽의 높이가 낮은 것도 불안함을 부추겼다. 고작 10m밖에 되지 못했다. 오크들의 힘이라면 온갖 것들을 던져서 넘길 수 있었다.
쿠구구구.
성벽의 바닥이 흙을 거칠게 긁는 소리가 났다.
살짝 열린 내성문에서 새하얀 복장에 금으로 수놓은 옷을 입은 문인이 다섯이나 빠져나왔고, 그 뒤로 병사들이 금으로 된 궤를 든 채로 밖으로 나왔다. 3마리의 고블린 노예들 또한 제대로 옷을 입히고, 털을 깔끔하게 민 모습으로 나왔다.
궤를 들지 않은 병사 3명은 백기를 들고 있었다.
오크들은 그들을 공격하지 않았는데, 고블린을 대동하고 있어서였다. 대화하자는 것으로 여겼다.
“인간들이 항복하겠다고 합니다!”
노예 고블린이 고블린 어로 외쳤다. 이에 오크들은 그들을 잠시 멈추게 하고, 대전사나 주술사에게 정보를 퍼뜨렸다. 곧 도네투스의 귀에도 들어갔고 외성지역의 안쪽에 있는 대로의 큰 사거리로 안내됐다.
캉카라쿰이 떡 하니 내려앉을 수 있는 장소가 사거리였고, 분수는 이미 박살이 나서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질질 흘리는 침이 주룩 하고 걸쭉하게 내려와서 바닥에 떨어졌다. 문인들이 벌벌 떨며 호흡을 주체하지 못했다.
“캉카라쿰을 보고 벌벌 떠는 것 봐라. 겁쟁이 놈들!”
그 모습을 본 오크 전사들이 킬킬거렸다. 병사들이 금궤를 내려놓았다. 오크 전사는 거칠게 그 안을 먼저 확인했다. 번쩍번쩍 빛이 나는 금화가 가득했다.
“금이다!”
“다시 덮어라. 그리고 내 앞으로 가져와.”
도네투스는 얼른 금궤를 자신의 앞에 놓고, 오른발로 밟았다. 병사들의 표정이 험악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그 모습에 침까지 뱉었다. 병사들을 도발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 이상 나가지 않았다.
부들부들.
숨 쉬는 것도 잊고, 백기를 쥔 손이 크게 부들거렸다. 고소한 맛을 느낀 오크 전사들의 입꼬리가 귀에까지 걸렸다.
약한 것을 짓밟고, 장난치고, 괴롭히는 맛은 정말이지 마약과도 같았다.
“이제 내꺼 아닌가?”
고블린을 보고 말하자 고블린이 얼른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아차 싶어 하더니 인간들에게 그 말을 전했다. 문인 다섯 중에서 가장 늙은 문인의 얼굴이 붉어졌다. 수치심을 느껴서였다.
“하고 싶은 말이나 해라. 항복한다고?”
노예 고블린을 통해서 대화를 시작했다.
“몇 가지 조건이 있다고 전해라.”
“조건? 항복에 무슨 조건! 미치광이 인간놈들이, 아무렇게나 말을 하네!”
도네투스가 화를 내자 블랙 스케일 와이번이 입을 쩌억 벌렸다. 지켜보던 주술사가 서둘러 와서 도네투스를 진정시켰다. 오크 언어로 뭐라고 지껄였는데, 고블린은 그게 욕이라면서 번역하기를 싫어했다.
살아서 돌아가고 싶어서였다.
노예의 삶은 생각보다 좋은 것이었다. 자산이었기에 함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것이라면 애지중지하고 오래 써먹고 싶어하는 게 인간의 심리였다. 또 이 고블린 노예는 오직 고블린 언어를 지닌 것이 가치라서 먹고 자고 노는 게 전부였다.
자연히 인간에게 충성심이 있었지만, 당연하게도 충성심은 낮았다. 있긴 있는데 사는 게 더 중요한 정도였다.
이 항복협상을 노예 주제에 이루고 싶어하는 욕망을 지닌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 문인들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을 주었다. 그 음흉함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조건이 뭐냐.”
도네투스가 말했다. 하지만 그 전에 몇몇 대전사가 사거리에 도착하자마자 크게 외쳤다.
“항복이라니! 도네투스! 이건 아니지!”
“죽은 부족원의 원한은 누가 풀어주나!!!!”
거칠게 오크 전사들을 밀쳤다. 덩치 차이가 크게 안 났음에도 타투의 차이가 있어서 형편없이 오크 전사들이 출렁거리면서 엎어지고, 밀려나겠다. 앞으로 고꾸라질 뻔한 오크 전사도 있었다.
곳곳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대전사 두 명이 만들어낸 소란은 전혀 꺼질 생각을 안 했다.
“일단은 들어 봐야지!”
주술사들의 의견은 하나뿐이었다. 일단 어떤 제안을 하는지 들어보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검은 연기의 대예언〉이 한몫했다.
“들어보긴 뭘 들어봐! 내 부락원은 500명이나 죽었다! 그들의 넋을 어떻게, 이렇게 함부로오오 생각하느냐!”
소리를 꽤액 질러도 답답한지 가슴을 쳐대었다. 그리고 그 대전사는 삿대질을 했다. 같은 부락에 속했던 주술사들 또한 인간들의 항복제의를 들어보는 입장에 서 있어서였다.
“너희들이 그로고도 우리 부락 오크냐!”
“다 사정이 있는 것 아닌가! 함부로 그런 소리를 하다니!”
내 부락 네 부락 우리 부락 온갖 부락 소리가 다 튀어나왔다. 소란은 꺼져 갈 줄을 몰랐다. 도네투스가 괴성을 지르고 나서야 주변이 조용해졌다.
“일단은 다 들어보고 이야기하자.”
“흥. 들어봤자지.”
“간악한 인간 놈들이야. 들어볼 것도 없다고!”
그러면서도 도네투스의 움켜쥔 오른 주먹이 무서워서 대전사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딱 한마디씩만 했다.
“조건은 뭐냐.”
“오크들이 후퇴한다면, 보급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고, 추적도 하지 않겠다.”
노예 고블린은 그것을 예쁘게 포장했다.
“인간들이 자신들의 비루함을 알고, 오크님들을 매우 두려워하고 있답니다. 그래서 가진 것을 다 내어줄 테니, 간곡하게 돌아갈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물론 추적 같은 구질구질한 개 짓거리도 안 한답니다. 질 것이 뻔한데 어찌 추격하겠습니까?”
“하하.”
도네투스가 웃었다.
“이 고블린 새끼가 똑바로 말을 안 하는구나. 진짜로 뭐라고 말하더냐.”
“예? 그, 그렇게 들리셨다면 죄송합니다. 후퇴한다면, 보급을 크게 지원을 하고 추적도 안 하겠다고···”
도네투스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 인간다웠다.
‘약한 놈들이 자존심은 오크 뺨치는 수준이야. 역겨운 종족.’
자기들이 뭐라도 되는 마냥 나대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엘프의 견제가 없었다면 그들이 가진 것은 원래 오크의 것이었다.
한 번 통일된 오크의 힘을 맛본 도네투스는 그런 생각을 충분히 가질 만 했다.
“인간 쪽의 대전사는 어찌할 것인지 물어봐라.”
그 말에 문인들이 이해하지 못했다. 도네투스가 몇 번이나 말해주고 나서야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그 말을 들은 노예 고블린이 부풀리지 않고 전했다.
“그는 인간의 대전사가 아닙니다. 대전사라는 것도 없고, 그저 다른 곳의 땅을 다스리는 작은 왕이라고 합니다.”
“가장 쎈 놈이 대표자가 되어야지. 이래서 인간은 안 돼. 정말 병신같은 짓거리야. 안 그런가!”
도네투스의 외침에 오크 전사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인간들을 욕했다. 이곳에서 그들은 철저한 소수였고, 절로 간이 쪼그라들었다. 젊은 문인은 그 기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답답함과 긴장감에 헛구역질하기도 했다.
“쯧쯧. 병자 새끼가 여기까지는 왜 왔을까. 저 인간은 뭐하는 인간이냐?”
혀를 차며 인간을 멸시하는 족장 도네투스의 말에 고블린이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기까지 했다.
“글 좀 안다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인간 놈입니다. 헤헤.”
========== 작품 후기 ==========
6069자
평추코! 다양한 의견추!
500화 넘은 뒤로 글 쓰기가 힘들어지네요. 왜 200편 전후로 완결작이 많은지 알 것 같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