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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성벽 2차전투〉는 일어나지 않았다.
초저녁이었음에도 어두컴컴했을뿐더러, 성채 공략에서 가장 중요한 전력인 캉카라쿰이 탈진해서였다.
‘그렇게 잘 버틸 줄이야.’
북부의 전투 요새보다 훨씬 견고하고, 보수도 잘 된 것이 쌍둥이 성채였다. 그 덕에 캉카라쿰은 더 오래 날아야 했다. 전투하면 체감시간이 잘 오지 않기에 시계가 없는 시대에는 특히나 관리하기가 힘들었다.
첨탑은 38분 만에 완전히 무너졌다. 그렇기에 외성벽을 점거하는 병사들의 모습은 웃기기만 했다. 그것도 오크들이 싸우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자 점점 줄어들었다.
이에 대해서 아크온은 아쉬워했다.
‘조금이라도 더 체력을 빼두고 싶었는데.’
이대로라면 〈외성지역 전투〉에서 큰 손해를 볼지도 몰랐다. 잘해야 반반 싸움이었다. 체중이 200kg이 넘는 스모선수도 멸치 같은 남자 다섯을 못 이기는 법이었다. 종합격투기 선수도 형편없이 머릿수에 밀리는 게 현실이다.
오크 또한 예외도 아니었다. 그러나 아크온은 외성지역 전투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민병대의 숫자가 5천만 되었어도···’
현재 민병대원은 천 명뿐이었다. 숙련병을 대신해서 죽을 사람이 적다는 것은 그 자리를 병사가 메꾸어야 한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털어낼 곳이 마땅찮다.’
민병대를 소비할 곳은 외성지역을 벗어나면 없다시피 했다. 오른쪽의 첨탑은 무너졌고, 왼쪽의 내성벽으로 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곳은 당연히 외성벽보다 한참이나 작았다.
민병대원의 생명을 〈털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크온의 생각은 흉험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속을 알 수 없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는 법이다.
조용한 밤이 지나갔다.
성벽으로 죽은 병사들의 시체가 떨어지는 소리가 조금조금 들려올 뿐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아크온은 안도했다.
외성벽의 〈충격 화염〉의 마법 덕분에 인간들은 원래 8시간을 벌 수 있었지만, 마법 첨탑을 무너뜨리는 데 너무 집중한 도네투스 때문에 캉카라쿰이 탈진하여 하루를 벌 수 있었다.
‘이득이야.’
겉으로 보이는 전황은 오크들이 승세를 가져오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인간은 오크 3만5천의 군세를 상대로 하루를 벌게 되었다. 그들의 힘이 아니라, 오크들에게서 너무나도 크게 여겨지는 캉카라쿰의 영향력이 만들어낸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도네투스조차도 캉카라쿰 없이는 공성전에서 크게 불리하다고 여겼다.
“이렇게 많이 죽다니···”
단지 3, 500명의 오크가 외성벽 전투로 죽은 것 때문이었고, 오크의 가을 때마다 성채는 공략하지 않아서 인간들의 성은 오크들에게 과대평가 받는 면도 어느 정도 있었다. 확실한 준비 없이는 큰 피해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고고, 죽는다. 죽어.”
“시끄러워. 정 그러면 치료 주술 도기를 쓰던가.”
“그건 좀···”
그 외에도 오크 전사 부상자도 오천 명에 달했지만, 치료받지 못했는데, 주술사들의 주력이 간당간당해서였다. 그렇다고 치료 도기도 쓰지 않았는데, 아까워서였다.
‘나중에 어찌될지 모르니··· 알아서 회복되겠지.’
높은 성벽에서 몇 번이고 떨어졌음에도 벌떡 일어났지만, 그건 단순히 인간을 아득하게 뛰어넘는 호르몬의 작용 때문이었다.
등 전체가 퉁퉁 불거나 피멍이 잔뜩 있고, 갈비뼈가 부러진 채 움직이다가 피를 한껏 뿜어내고 그대로 질식사한 오크 전사도 있었다.
터프하다는 것은 결코 내구력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들도 유기체였고, 자신의 체중으로 15m가 넘는 성벽에서 떨어지면 상처 하나 없을 수 없었다. 오히려 계속 움직였기에 사망자가 더 많이 생기고, 부상자들의 대다수가 끙끙 앓고 있었다.
인간들의 소극적인 면모도 이를 부추긴 것은 당연했다.
기사는커녕, 외성벽의 마법에 기댄 모습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모두 아크온과 귀족들이 세세하게 전술을 짠 덕이었다.
“쿠워어어어!!!”
캉카라쿰이 물을 많이 마시고 한숨을 푹 잔 다음에 동이 트기 전에 포효하며 일어났다. 아직 살려둔 콥고블린을 바로 먹었다.
콰직!
“끼에에에에!!!! 께에에에에엑!!!!”
콥 고블린의 옆구리가 통째로 씹혔다. 상체가 이빨에 끊겨서 뚝 떨어졌는데, 장기가 후두둑 대지에 묻어나왔다. 그 상태로 소리를 지르던 콥 고블린이 피를 왈칵 토해내다가 그대로 머리가 이빨에 푹하고 꽂혀서는 들려져서 상체가 한 바퀴 뱅글 돌며 목으로 쏘옥 들어갔다.
촤악! 후두둑···
피가 사방에 튀었다.
“흐, 흐! 흐윽!”
딸꾹질을 거칠게 하는 콥 고블린이 두 번째로 통째로 넘어갔다. 목에서 버둥거리는 것이 보일 정도로 그대로 꿀꺽했다. 4마리를 먹어치운 캉카라쿰이 그제야 입에서 꺼억 소리를 한 번 하며 날갯짓을 기운차게 했다.
“하하하.”
도네투스가 그 모습을 보며 크게 웃었다. 등에 있는 용과 온갖 동물들이 뒤엉켜서 싸우고 있는 〈혼란무도(混亂無道)의 타투(Tattoo)〉가 꿈틀거렸다.
단번에 도네투스가 캉카라쿰을 타고 하늘 높이 올랐다. 단번에 쌍둥이 성채를 한 바퀴 돌며 햇빛이 하나, 둘씩 세상을 비추기 시작했다.
“후퇴하라! 외성지역으로! 장애물은 반드시 회수해야 한다! 들고가지 못하는 것들은 파괴하라!”
촤악! 화르르!
뒤로 움푹 들어간 성벽의 위에 자리 잡은 고정 투석기에 장작이 놓이며 맑은소리를 냈고, 이내 불이 지펴졌다. 새하얀 연기가 올라왔다. 수분기가 없는 것이 아주 잘 타올랐다.
“끙! 차! 끙! 차!”
끙이 힘을 가득 주고, 차에 방향을 가늠하며 속도를 조절하며 앞뒤를 맞추어 사람의 발이 끼이지 않도록 하며 공성 쇠뇌가 대로를 움직였다. 공성 쇠뇌가 줄줄이 이어지고, 전쟁물품을 실은 짐수레가 인력으로 끌어졌다.
먹을 만한 것은 모조리 식량으로 대체되어서 가축 하나 없었다.
그 뒤로 서서히 장애물이 대로에 가득하게 되었다.
도네투스는 캉카라쿰의 〈산액 브레스〉를 쓰지는 못했다. 어제 첨탑을 무너뜨리는 데 너무 써서 또 무리가 올 것 같아서였다.
“크흐흐.”
‘도망치는 꼴 봐라. 나약한 놈들.’
30개가 넘는 부락으로 나뉘어있어서 인간들의 평야를 노리지 못한 것이 우스워질 지경이었다. 진작에 이렇게 해야 했다.
뭉치면 누구보다 무서운 것이 오크임을 오크들은 이번 전쟁의 승리로 알게 될 것이라. 그렇게 생각하는 도네투스는 마음 한구석이 답답해서 주먹으로 가슴을 탕탕 쳤다.
젖꼭지가 출렁거렸다. 아주 힘 있어 보이고, 오크의 자랑스러운 근육과 지방이 가장 돋보이는 부위였다.
단순히 보기 좋게 근육만 있는 게 아니라, 지방도 많았기에 가슴이 주먹으로 칠 때마다 출렁거렸다. 전형적인 근육 돼지의 모습이었다.
답답한 이유는 예언 때문이었고, 실제로 부락 하나를 박살 낸 놈은 하루가 다르게 쫓아오고 있었다. 이미 막다른 길이었기에 도네투스는 승리하고 있음에도 불안한 마음이 기생충처럼 들러붙어 있었다.
‘놈은 겨우 오크 3천을 이긴 것뿐이다. 여기에는 3만이 있고, 놈을 받쳐줄 인간은 모조리 죽이면 된다.’
아무리 대단한 전사라도 받쳐주는 군대가 없으면 허무하게 죽을 뿐이었다. 히드라의 타투를 지니고 있음에도 도네투스가 높은산 부락을 가지려고 온갖 짓을 한 이유는 괜한 게 아니었다.
인간들이 후퇴하자 외성벽을 단번에 오크들이 지배했다. 인간들은 오른쪽은 완전히 버리다시피 했으므로 그곳으로 진입하여 성문을 열고, 성벽 위에 전사들을 배치하고, 외성지역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외성지역에 오크들이 중간쯤 들어가자마자 본격적으로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쨔이야!”
민병대원이 새처럼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방패를 들고 그대로 뛰어들었다. 오크 전혀 당황하지 않고, 골목에서 튀어나온 인간을 상대로 발을 걷어찼다.
하단을 노린 싸커킥은 그대로 방패의 아랫부분을 노렸다.
“윽!”
방패가 달리는 다리를 걷어차며 방해했고, 그대로 민병대원이 고꾸라졌는데, 오크는 그곳에 무릎을 놓으며 한 발 전진했다. 나아가는 속력 그리고 각력!
빠악!
골이 깨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타격음이 컸다. 앓는 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고통보다 충격이 목소리조차 못 낼 정도로 전신을 뒤흔들며 숨이 턱 막히게 하였기 때문이다.
쐐액!
날카로운 공기가 가르는 소리를 오크 전사는 명확하게 들을 수 있었다. 무지막지한 동체 시력이 창이 어디로 오는지 얼핏 봤고, 그 반대편으로 고개가 움직여갔다. 고개가 돌아가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창문이 열렸다.
벌컥!
반쯤 닫힌 창문이 열리며 햇빛에 반사되는 서슬 퍼런 검이 오크의 목을 노렸다. 오크의 목은 마치 자살하는 것처럼 검을 향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깡!
귀신같이 빠른 도끼가 투척되어서 검을 쳐내었다.
훅!
창에는 오른손으로 꽉 쥐고 있는 도끼를 휘둘렀는데, 창병이 몸을 숙이며 체중으로 창의 궤도를 바꾸며 아래로 향하도록 했다. 허공을 갈랐지만, 오크가 한 발을 빼면서 몸을 옆으로 돌렸다.
아무리 커도 배가 보이는 전면과 측면의 공간은 반절이 넘게 차이가 났다. 그 정도가 사라졌으니 창의 명중률도 자연히 떨어졌고, 허공을 갈랐다. 더불어 창을 내리려고 체중을 기울인 정규병 또한 앞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데굴데굴!
옆으로 바로 굴렀다. 땅에 도끼가 찍혔다. 내려찍기 좋게 잡았던 오크의 손목이 단번에 역으로 돌려지며 팔뚝을 접으면서 땅에 박힌 도끼를 능숙하게 빼내었다.
손의 위치에 따라서 당기는 힘이 달라지기 때문에 손목을 돌린 것이다. 그것에서 오는 노련함은 실로 이 오크 전사가 베테랑 중의 베테랑임을 잘 알았다. 몇 번이고 도끼가 박혀보고, 매우 급한 순간에서도 여유로움을 잊지 않고 정석을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아얄타!”
거세게 소리를 지르며 도끼를 휘둘러서 창문에서 튀어나온 방패병의 방패를 몸으로 치고, 도끼를 옆으로 휘두르며 팔뚝으로 덜컹거리는 창문을 후려쳤다. 나무로 된 경첩이 그대로 뜯기며 방패병의 머리를 나무판이 후려쳤다.
“컥!”
방패병이 뒤로 한 바퀴 굴렀다. 구른 곳의 바닥에는 피가 한 줄기 주륵 묻어났다. 방패병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뇌진탕에 비틀거리다가 일어서다가 벽에 부딪히고 주르륵 미끄러져서 축 늘어졌다.
꼴깍.
지켜보던 민병대원이 침을 삼키며 방패를 꼭 쥐며 경직된 채 있었다. 그것을 힐끗 본 오크 전사는 창병에게 범처럼 뛰어들었다.
“하이야아!!!”
기합을 강하게 지르며 창병이 창끝을 땅에 대고, 창을 추켜올렸다. 도약한 오크 전사는 그대로 허벅지를 강하게 올리며 왼손에 투척 도끼를 쥐어틀려고 했다. 하지만 손에서 어긋났다.
“투야따!”
원숭이도 나무에 떨어지는 법이 있는 법이라 오크 전사는 당황하지 않고, 왼손마저 오른손에 쥔 도끼를 쥐어 잡았다. 창병은 자신의 리치를 믿었다.
오크 전사의 가슴에 정확하게 긴 창날이 겨누어졌다. 길이만 해도 4m는 되는 장창 중의 장창이었고, 보통 사람은 결코 제어하기 힘든 길이었다. 특히나 시가전에서는 찌르기밖에 안 된다는 단점도 있었지만, 병사는 이 기회를 마지막이라 삼으며 강하게 오크 전사와 맞대결을 펼쳤다.
휘익!
오크 전사가 고정된 창날을 왼손으로 강하게 움켜잡았다.
“이익!”
땅에 단단히 고정한 창끝이 주르륵 미끄러지며 창이 쭉 내려갔다.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것이 오크의 체중이고, 힘이었다. 창날을 잡은 오크 전사가 그대로 당겼고, 창병은 창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아아아아!!!!”
핏물이 튀었다.
기사의 숫자는 적었고, 이곳에 기사는 없었다.
오크가 가만히 서 있는 민병대를 향해서 다가갔다. 그가 쥐고 있는 방패로 머리를 찍어 두개골을 쪼갰다.
“아얄타아아아!!!!”
거세게 포효했다.
인간 군대는 〈외성지역 전투〉에서 형편없이 밀렸다. 기사가 없는 곳에서 오크에게 승리한 경우는 매우 드물었고, 정규병이 6명에 민병대원이 다섯이나 있었던 곳에서조차도 오크 전사 하나를 감당하지 못한 일도 있었다.
물론 그 반대 경우도 분명 있었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외성벽은 활짝 열렸고, 오크가 점령한 외성지역의 대로에 있는 장애물은 단번에 치워졌다. 지나가는데 불편할뿐더러, 인간이 설치했기에 막연히 치워야된다고 생각해서였다.
외성벽에서 두 번이나 지랄을 떨었기에 인간들이 설치한 장애물은 오크 눈에 띄이자마자 파괴되거나 옆으로 비켜졌다. 혹은 골목에 박아두기도 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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