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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성벽에 스며들어있는 〈충격 화염〉의 마법은 훌륭하게 오크들을 성벽을 못 넘도록 만들었다. 충격을 주며 떨어뜨리고, 화염을 토해내 주술 도기를 상쇄시키는 것은 실로 〈1차전〉에 걸맞은 마법이었다.
“그아아! 이게 몇 번째야, 제기랄!”
소리를 지르는 오크가 쿵하고 떨어졌다. 마법 불꽃이 들러붙어서 피부를 태웠음에도 분노가 대단했고, 전투가 지속되면서 잔뜩 흥분해서 고통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화르르!
몽펠리에의 전투 요새는 겹겹으로 미로와도 같은 형세를 지니고 있었는데, 첫 성벽부터 적을 떨어뜨리고, 적이 지닌 초월의 힘을 상쇄시키게 만드는 것은 나중을 위한 포석과도 같았다.
특히나 전투 요새는 하늘에서 보면 고환처럼 원이 두 개 겹쳐져 있는 것이었고, 그만큼 반대편에서 반대편을 원호해주기도 쉬웠다.
“큭!”
화살이 사다리를 오르는 오크를 집요하게 노렸다. 특히나 순찰자들의 활 솜씨는 자신을 스스로 불멸자라고 여기는 엘프들의 궁술과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았다. 오히려 제한된 생명에서 오는 그 처절함은 엘프들조차도 따라올 수 없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절박한 인간이 가장 위험한 법이었다.
“콜록! 콜록! 퉤!”
코 밑의 인중. 입 주위와 목 밑으로 부채꼴로 퍼지는 검은 피가 한가득 붙어있는 오크가 기침하면서 눈을 떴다. 하늘 위로 화살이 보였다.
그는 전장에 있었다.
온몸에 힘이 없었지만, 금방 회복되어가기 시작했는데, 기관지를 맹독에 당했음에도 숨을 쉬고 있는 장면은 실로 비현실적이었다. 오크가 지닌 면역체계는 특히나 독에 강인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관련된 타투도 기본적으로 배우도록 오크 사회가 권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독〉이란 것은 모든 동물이 같이 덩치가 크도록 성장하며 생존경쟁을 벌일 때, 큰 혁신을 준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강해도 독에 당하면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독사들은 생태계에서 살아남았다.
오크들도 독에서는 자유로울 수가 없었지만, 그들은 다른 동물과는 다르게 주력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었고 그 어떤 맹독에도 살아남은 조상이 존재했다. 그 조상의 DNA인자는 세월이 흐르며 가득 퍼지게 되었다.
내출혈조차도 가만히 있으면 지혈이 되는 것이 오크의 신체였다. 천천히 일어나며 주먹을 쥐었다가 풀며 네발로 걷다가 이내 두 발로 걸어 성벽까지 도달한 오크 전사는 그대로 사다리를 다시 타기 시작했다.
해가 점점 저물어가는 것도 이 시점이었다. 장장 4시간 동안 이루어진 공성전에 오크들도 휴식을 취하는 오크와 뒤에 있다가 이제야 사다리를 만져보거나, 도끼로 성벽을 찍어보거나 땅을 파는 오크 전사가 생기기 시작했다.
공성전의 기본 중의 기본이 바로 포위와 공격을 분립하는 일이었다.
포위는 적의 기세를 꺼트리는 일이다. 그리고 사전적으로 성을 포위하는 말이었다.
촛불을 덮개로 씌워서 공기를 없애 자연스럽게 꺼트리는 것과 같았다. 큰 피해가 없이 성을 공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많은 장군들이 포위를 좋아했다. 병사는 살릴 수 있어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가만히 있으면 승리할 수 있어서였다. 만약 병사가 많이 죽더라도 성을 확실하게 공략할 수 있다면 공격을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뛰어난 지휘관은 단 1% 뿐이었다. 강한 국가는 그것을 2%로 만드는 것에서 나왔다. 공부에도 재능이 있는데, 하물며 지휘관에게 재능이 없을까. 심지어 게임에서조차 재능이 있다.
성을 포위할 수 있다고 해도 모든 성곽을 공략하는 일은 바보 같은 일이었다.
성벽은 고정된 싸움을 요구하는 곳이었고, 공격할 수 있는 곳은 제한되어있었다. 쌍둥이 성채의 경우는 평지에서 지어졌기에 찌를만한 구석이 그나마 8곳은 되었다.
그 외의 곳은 모조리 수성하는 쪽에 너무나도 편중된 이점을 제공하고 있었는데, 특히 오목한 곳이 있는 곳에 오크들은 얼씬도 하지 않았다. 양쪽에서 화살을 맞게 되면 그저 한 끼 식사밖에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혹은 아크온 몽펠리에의 간이 지휘소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곳에는 나무를 덧대어서 만든 마법 장치가 불룩 튀어나와서 성벽에 꽂혀 있었는데, 오크들이 정찰했을 때 시뻘건 용암물을 간헐적으로 토해내기도 했다.
숫자가 적은 몽펠리에 쪽에서 미리 카드를 보여주며 얼씬도 하지 말라고 외쳤고, 오크들은 고개를 쿨하게 끄덕이며 그곳으로도 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최소 8곳에서 공성전이 시작되었다. 만약 3만5천의 숫자를 믿고 모든 성벽을 노렸다면 오크들은 외성벽을 넘었을 때, 절반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9곳의 공격로를 지정하는 면모를 보여주었다.
오크가 이렇게나 잘 공성전을 하는 이유는 제법 머리가 잘 돌아가는 이들이었고, 개인주의가 팽배해서 누구나 의견을 말해서였다.
브레이브 가문의 〈용맹의 전투요새〉에 대한 경험이 특히나 쌍둥이 성채 공방전에서 오크의 소모를 줄여주는 결과를 낳았다. 물론 시간을 벌려는 아크온의 의견과 손뼉을 치면서 소리가 잘 난 이유이기도 했다.
고환처럼 생겨도 우둘투둘하고, 안으로 들어가거나 높낮이가 다르면서 유혹하는 면모도 있었지만, 오크들은 생각보다 잘 해주었다. 괜히 전투 종족이 아니었는데, 그저 싸움만 잘하는 게 아니라 영악한 모습도 보여주었다.
주술사들이 오크 전사들을 잘 타일러서 적당히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시체가 점점 쌓여갔지만, 시간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었다.
독버섯 끓인 물에도 화상 하나 입지 않을 정도로 피부 내구력이 좋은 오크라서 전투불능에 잘 빠지지 않았고, 독에 당해서 기관지 내출혈이 일어나도 고꾸라지고 눈을 뜨면 다시 싸울 수 있었다.
“그아아아아!!!!!”
화살 수십 발에 꽂힌 채로 사다리에서 제법 기다리던 오크가 고함을 내지르는 모습은 가히 영화의 한 장면이나 다름없었다.
워낙 터프한 놈들이라서 4시간의 공방전에서 죽은 오크의 숫자는 고작 3, 200마리밖에 되지 못했다. 그것도 합쳐보면 엄청난 숫자이지, 공격로 1곳당 300~400마리가 죽은 것뿐이었다.
쿠구구구···!
노을빛 속에서 마법 첨탑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울어진 마법 첨탑을 본 아크온은 입술을 깨물었다.
‘상성이 안 좋다.’
산액 브레스는 건축물을 무너뜨리기 좋았다. 화염이나 다른 여타의 용 숨결보다 압도적인 성능을 자랑했다. 강철마저도 녹여버렸기 때문이고, 너무 재빨라서 대인 마법이 통하지 않았다.
그 덕에 발톱은 마법 첨탑을 보호하는 벽돌을 부수고, 강철을 녹였다. 하지만 마법 첨탑은 기울어져도 쉽게 무너지지는 않았다. 기울어지는 속도가 느릿느릿했다.
‘조금 더 버티고 싶지만, 곧 마력도 끊길 것이다.’
“외성벽으로 흐르는 마력을 끊어라. 내성벽에서 써야 할 마력이 남아있어야 할 것이다.”
“예!”
전령이 튀어나갔다.
“기사들은 병사들을 시켜서 외성벽에 기름칠을 하고, 불을 지른 뒤에 물러나도록 해라! 외성지역에서 오크들을 지치게 하고 내성벽으로 향할 것이다.”
“예!”
나머지 전령들이 달려나갔다.
기름이 외성벽에 뿌려지고, 병사들이 빠져나갔다. 불을 붙이다가 몇몇 병사들의 신발에도 불이 붙기도 했다. 서둘러 흙으로 기름을 긁어내어 불을 꺼뜨렸다. 모두 훈련에서 배우고 숙련한 동작이었다.
이글거리는 화염이 성벽 밖으로도 보였다. 주술로 꺼트릴 수 있지만, 마법 성채의 〈다수 마법〉을 상쇄하던 주술사들은 진이 다 빠져있었다.
“조금이라도 저 높은 구조물을 무너뜨리지 못했다면, 큰 피해가 있었을 것이다.”
주술사들은 너도나도 안심했다.
오크의 뜻하지 않은 기만술 덕분에 그들에게 계속해서 기회가 쥐어졌다. 단 한 번도 오크 전사들에게 〈덮치는 화염파도〉가 쏟아지지 않은 것은 전황을 크게 변화시켰다. 외성지역에서의 게릴라도 길어지지 못하게 되었는데, 오크들의 숫자가 원체 많아서였다. 많이 줄이지 못했기에 조금조금 싸우면서 내성벽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새액! 새애액!”
지친 소리를 내는 캉카라쿰이 땅에 내려앉았다. 날개가 바들바들 떨렸는데, 4시간이나 첨탑과 싸움질을 해서였다. 탈진해서는 숨쉬기 바빴다.
“주술사!”
도네투스가 거세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하나같이 주술사들이 손사래를 쳤다. 남은 주력이 없어서였다.
“아니, 왜 주력이 없어?”
“보급 부족할 것 같아서 과일을 만드느라 있는 주술도기를 다 썼잖아! 그새 까먹었어?”
“다 쓰기는, 그럼 아까 그 화염의 파도는 어떻게 막았어?”
“또, 또 말대꾸!”
도네투스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 모습에 늙은 주술사가 냉큼 지팡이를 들며 삿대질을 했다.
“오크 전사들에게 준 도기라도 뺏을까? 엉!”
“아니, 그런 말은 아니고.”
퍽퍽!
무릎을 치자 뼈를 맞은 도네투스가 뒷걸음질 쳤다.
‘죽일수도 없는 노릇이다.’
주술사들은 그만큼 대우를 받는 계급이었다. 족장이든 대전사가 되었든 결국에는 같은 오크일 뿐이었다. 죽어서 녹색 도끼에게 목이 잘리고 싶지 않다면, 짜증난다고 동족을 죽일 수는 없었다.
“자기가 혼자 인간들 다 이겼다고 생각하는 거야! 뭐야! 작년부터 주술 도기만 만들어서 아직도 등이 시리다, 등이 시려어어어!!!!”
도네투스가 귀를 틀어막았다. 징글징글한 노친네의 역정은 짜증 날 뿐이었다.
기름으로 타오르는 외성벽을 점거하기란 힘들었다. 결국 오크들은 외성벽의 화염이 꺼질 때까지 기다렸다. 아크온은 마법을 통해서 자세하게 오크 진영을 내려다보았다.
‘많이 지쳐 보이네? 주술로 회복도 안 시키네?’
아크온은 블랙 스케일 와이번이 지친 것을 보고 냉큼 전술을 변경했다.
해가 저물고, 어스름한 때에 기름이 꺼져갔는데, 다시 병사들을 외성벽으로 올려보냈다. 병사들은 다시 장애물을 가지고와서는 척척 성벽에 배치하고, 횃불을 놓았다. 밤이 찾아오며 어둠이 가득 내려왔다.
달빛은 있었지만, 인간의 눈에는 어둠 뿐이었다. 해체될 시간이 없어서 버려졌던 공성 무기를 통해서 불타는 장작을 쏘아보내서 곳곳을 밝혔다.
“저, 저저!”
오크 전사들이 화딱지가 나서 말을 잊지 못했다. 마치 새하얀 항복 깃발을 보고 공세를 멈추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전열을 재정비하고 성벽에 다시 농성질을 시작한 적군을 본 기분이나 다름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화가 나는 것이 줬다가 뺏는 것 아닌가.
“다시 공격해라! 화살로 꼬치를 만들어버려라!”
도네투스는 와이번이 힘을 못 쓰고 있어서 사격전을 실시했다. 성벽이 아무리 높아도 오크활의 장력이면 능히 피해를 줄 수 있었다. 때아닌 순찰자와 오크들의 원거리 싸움이 시작되었다.
터덩, 텅!
“어우씨!”
병사가 방심했다가 크게 소리를 내며 장애물에 튀어나온 화살촉이 눈앞으로 툭 튀어나오자 기겁을 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버팁니까!”
“오크 전사들이 화살을 다 쓸 때까지 버티란다.”
식량 창고의 문짝이나 물을 끓이던 솥까지 방벽으로 써졌다. 혹은 여분의 방어구도 엮어서 나무 위에 걸쳐졌다.
철그럭, 철그럭!
“악!”
못을 박은 곳에 체인메일을 걸다가 화살에 손이 꿰뚫린 병사가 비명을 질렀다.
“이씨! 안 뽑히는데? 너무 깊게 박혔어!”
“다시 눌러! 촉을 잘라야 해! 나무 때문에 촉이 걸렸어.”
“아그극, 제, 제발! 빨리 좀! 아니, 왜! 아흐으윽!”
“좀 참아라, 목이 뚫린 것도 아닌데!”
“네가 뚫려보던가!”
화살이 너무 깊게 관통해서 화살을 더 깊이 집어넣고, 촉이 보이고 나서야 촉을 잘라내고, 화살을 뽑을 수 있었다.
엉망진창으로 보였지만 살기 위해서 모든 수를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오크들은 동물 기름을 발라서 불을 붙여서 쏘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무에 붙어있던 진흙의 수분도 사라졌기 때문에 갑옷 등을 통해서 불을 막고, 전소된 나무는 다른 것으로 교체를 해야 했다.
그그극! 터엉.
순찰자들은 곡사를 즐겨 사용했다. 어둠이 내려앉았기에 오크들이 활을 쏘는 자신들의 모습을 볼 수 없어서였다. 직사를 쏜다면 자신들의 위치를 알겠지만, 이런 어두컴컴한 곳에서는 곡사로 오크들을 노리는 게 좋았다.
달빛이 내리쬐기에 오크들의 모습이 훤히 보였다.
반면, 순찰자들은 보이지 않았는데, 외성벽에 잔뜩 횃불이 박혀있어서였다. 오크들은 그 불빛을 먼저 봐야 했기에 동공이 작아졌고, 달빛을 받고 있어도 순찰자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쐐애액!
하늘에서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밤이 되면서 잘 안 보이는 화살이 그대로 오크를 지나칠 듯이 움직이다가 뒤에 있는 오크의 발에 꽂혔다.
피가 흙 곳곳으로 튀고, 피가 줄즐 흘러내려 왔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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