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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드낙은 까무러치듯이 펄쩍 뛰었다. 블랙 스케일 와이번을 탄 드래곤 오크 라이더가 후퇴를 하다말고 되돌아서 쌍둥이 성채로 향했다는 것을 2일 뒤에 접했기 때문이다.
핏빛쥐들은 열심히 정보를 획득했지만, 그들은 마법도, 주술도 모르는 자들이었고 결국 이렇게 늦을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2일 만에 드낙에게 도착한 것이 용했다.
‘어, 어찌 해야 하지.’
중립신의 전략이 뒤틀렸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
‘녹색 도끼의 큰 그림인가?’
드낙이 당황하며 별이 잘 보이는 곳에서 내려왔다. 서둘러 이실레아를 찾기 위해 언덕을 내려갔다. 가는 도중에 몇 가지 방향성을 머릿속에 담을 수 있었다.
하나는 서둘러 되돌아가는 것이다. 3만5천에 달하는 오크들을 향해서 무작정 향하는 것이다.
‘반대할 것 같은데.’
드낙은 2천이 넘는 오크를 상대했고 승전고를 울렸지만, 3만5천은 또 다르기 때문이다.
‘주술사도 많겠지.’
인간들이 마법사를 귀중히 하는 것과는 다르게 오크들은 주술사를 적극적으로 전쟁에 동원했기에 더욱 반대할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고 놔둘 수도 없다. 인간의 피해가 너무 커지고, 오크들과 균형이 안 맞게 된다.’
무엇보다 중립신은 드래곤 오크 라이더를 한 번 굴복시키라고 말했다. 그래야 남부 왕국에 야망을 다시는 내비치지 못한다. 꼭 싸워야 했는데, 인간이 받쳐주지 못하면 드낙조차도 패배할지 몰랐다.
아무리 신이 받쳐줘도 그 신은 아직 부활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되돌아간 거야? 이해를 못 하겠네.’
짜증이 팍 났다. 숨결이 조금 거칠어졌는데, 처음 세상에 드러났던 드낙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성격이 변모되어있었다. 겁도 없이 이 일 저 일에 들이미는 드낙 때문에 감정을 증폭시킨 대가였다.
‘일이 꼬여버렸어.’
겁을 많이 먹으라고 조정했지만, 세심하게 제어할 수 없었는데, 드낙이 알아차릴 수 있어서였다. 마치 조현병을 앓는 것처럼 이성보다는 감성이 더 강한 상태였다.
힘이 있으니 막 나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겁을 집어먹기보다는 분노를 일으켰다. 그것을 붙잡을 정신줄이나 이성은 없었다.
다른 방법은 이대로 전략을 밀고 가는 것이다. 돌아가는 오크를 상대로 최후의 결전을 벌이는 방법이었다. 다른 영지의 영지군을 끌어내고, 민병대를 규합하고 불파겐 영지에서 보급을 끌어다 군대를 유지하는 방법이었다.
‘불확실해.’
몽펠리에가 오래 버텨줘야지 윤곽이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버틸지 말지는 드낙은 알 수 없었다. 이제 겨우 〈그라돈 군사학서〉를 2독하고 있는 그였다. 역사는 흘러가고, 그가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다.
마지막 방법은 욕심쟁이처럼 모두 해보는 것이다. 드낙은 결코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것도 추진하고, 저것도 추진하는 방법이었다. 드낙이 혼자서 쌍둥이 성채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버텨준다면 수성전에서 큰 재미를 볼 수 있고, 오크를 많이 죽일 수 있었다.
동시에 이실레아는 다른 이들을 규합하고, 돌아가는 오크를 드낙과 함께 처리하는 것이다.
‘일이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좋은 결과는 누구나 염원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 헛된 희망만 보고 달린다면 쪽박치고, 코가 꿰어지고 모두 잃게 된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소리는 사기꾼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였고, 자세히 설명하기 싫은 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도피소였다.
드낙은 적어도 일이 좋게좋게 흐른다는 걸 믿지 않는 자였다. 1억을 벌기 위한 준비물로 3억이 필요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나 다름없는 궤변이었다.
“말씀하십시오.”
이실레아는 드낙의 거친 방문에도 불만 하나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신갑주를 입고 있지는 않은 상태였다. 입고 자는 미친놈은 드낙 혼자뿐이다. 그의 보신주의가 얼마나 광적인지 알 수 있었다.
동시에 검은 꿈에 미쳐서 광전사처럼 행동하기도 했기에 그 모순은 극명하게 주변인들에게 보였다.
“새로운 정보가 들어왔다. 오크 본대가 후퇴하다가 되돌아가서 쌍둥이 성채를 노리고 있다고 한다.”
그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오크의 기만술입니까?”
오크가 그것을 계획했는지, 아니면 우연이 겹쳐서 만들어냈는지에 관해서 물었는데, 아주 중요한 질문이었다.
“거기까지는 알 수 없다.”
드낙이 아쉬워하며 대답하자 이실레아가 손을 주억거렸다. 단련에 단련을 한 손은 거칠고 흉해 보였다. 특수하게 제작된 장검을 통해서 비전 수련을 했기에 약지의 관절만 이상하리만치 들어가 있었는데, 이실레아는 그 부분을 만지작거렸다.
“영주님께서는 어떻게 하고 싶으십니까?”
전이었다면 드낙은 자신의 주관보다는 이실레아의 뜻을 먼저 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그들을 돕고 싶다.”
“음······”
이실레아가 깊게 고민했다. 드낙의 판단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는 아니었다.
동부는, 불파겐 영지는 아직도 북부가 필요했다. 그렇기에 돕는 것은 필수적이다. 문제는 어떻게 돕느냐는 것이었다.
“실로 아쉽습니다. 오크의 가을이 딱 내년에 터졌다면, 기병을 통해서 전황이 많이 달라졌을 겁니다.”
불파겐 영지의 군사력이 꽃피기도 전에 일이 터진 것이 실로 안타까웠다. 그 많은 자원은 해를 더할수록 빠르게 소모되겠지만, 처음에는 그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었다. 끝없이 외척들을 끌어들인 이유도 이를 해소하기 위함이었다.
그녀가 장고하자 드낙이 인내심을 가지지 못하고 말했다.
“몽펠리에가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나?”
“파이룬은 이미 빠졌을 겁니다. 쌍둥이 성채로 다시 돌아와도 오크들보다 늦을 수밖에 없고, 그들이 회전을 벌이기에는 병력이 적습니다.”
드낙이 물음표를 띄웠다. 그 표정에 이실레아가 추가로 말을 덧대었다.
“오크가 물러갔으니, 겨울을 대비해야 할 것 아닙니까. 피난민도 많고, 오크들이 헤집은 대지도 많습니다. 그러니 당장 군사를 해산시켜야겠지요. 본인의 가문이나 장원으로 되돌아갔을 겁니다.”
거리가 멀수록 병사의 유지비는 끝도 없이 증가했다. 고로 병사들을 본래 있던 곳으로 되돌려보내야 했다. 그건 파이룬의 지원군뿐만 아니라 민병대도 그렇고, 용병은 더더욱 빨리 계약 종결이 되었을 것이다.
“아크온 몽펠리에는 많으면 5천의 병사를 유지했을 겁니다. 그것도 대단히 신중했을 때의 말입니다. 오크가 기만술을 쓸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면 3천 미만의 군사가 쌍둥이 성채에 남았을 겁니다.”
“3천···이라니.”
드낙이 황당해 했다.
“도박처럼 보이시겠지만, 그게 합리적인 판단이었을 겁니다. 정찰을 게을리하지 않았을 것이니 못해도 5천에서 1만의 병사가 수성전에 투입될 수는 있을 겁니다.”
“그래도 3만이 넘는 오크를 상대하기에는 부족하지 않겠는가.”
“많이 부족합니다. 그러니, 제가 이렇게 고민을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드낙은 속절없이 이실레아가 생각을 정리하기를 기다렸다. 빈 술병이 하나씩 늘어났다. 그 사이에 이실레아는 손을 꼽기도 했고, 지도를 펼쳐서 몇몇 곳을 유심히 살피거나 깃발을 놓기도 하였다.
지휘봉으로 길을 쭈욱 따라가기도 했다.
“···드낙 님께서는 게제라스 총관을 믿으십니까?”
“어떤 의미로 말하는 것인가.”
“그는 지나칠 정도로 불파겐 영지에 애정을 품고 있습니다. 내정관에 대한 일들을 하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자입니다. 그렇기에 북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에 많이 투자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물론 내색은 전혀 안 하지만, 그의 성향을 보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겁니다.”
드낙은 고민할 것도 없었다.
자신이 있어야 불파겐 영지도 있는 것이고, 그가 있어야 게제라스도 제국의 내정관 시스템처럼 영지를 다스릴 수 있었다.
“그를 믿는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쌍둥이 성채로 향해야 합니다.”
“상황이 어떻게 될 것 같나?”
“몽펠리에는 꺾일 것입니다. 인간의 큰 나뭇가지 하나가 부러지고, 오크는 승전고를 울리며 물러갈 것입니다. 하지만, 몽펠리에의 희생으로 만든 피해가 사라지기 전에 그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며 승리를 움켜쥘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뿐인가? 몽펠리에는 못 살리는가.”
“때가 좋으면 살릴 것이고, 때가 맞지 않으면 못 살릴 것입니다.”
드낙이 탄식했다. 하지만 이실레아는 더욱 힘주어서 말했다.
“몽펠리에는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의 명예로운 모습과 태도 때문에 인간은 승리할 수 있습니다. 탄식하지 마십시오. 언젠가 우리도 사람들을 위해서 스스로 죽을 것을 알면서도 인류의 적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죽음보다 가치 있는 것을 이야기하는 이실레아의 말에 드낙은 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그 숭고한 마음을 짓밟을 수는 없었다. 아름다운 꽃을 짓밟기에는 드낙은 사악하지 않았다. 새하얀 도화지에 침을 뱉는 사람은 아니었다.
“······”
*
8천의 정규병.
기사 520명.
고위기사 38명.
순찰자 1200명.
총 9700여명.
숫자는 전투 요새의 크기에 비해서 턱없이 적었다.
드높은 성벽에 몽펠리에의 깃발만이 펄럭였다. 많은 가문이, 수많은 도움을 주던 이들에게 소식을 보냈지만, 오크의 군세가 도달하기 전에 도착한 이들은 전무했다. 오직 몽펠리에의 가문들만 모였을 뿐이었다.
“우~리가 누구인가!”
“우~리는 몽펠리에!”
그들은 노래를 부르며 사기를 고취했다. 서로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을 거쳤다. 죽더라도 그들은 계속해서 몽펠리에라는 이름에서 살아 숨 쉬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가문의 멸문을 막기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었다.
아크온이 자기 키보다 큰 전투 망치를 한 손으로 들어올렸다. 망치의 끝 부분에 불이 들러붙었다.
“타오르는 화염처럼~! 불타오르리라아아아!!!!”
으아아아아아!!!!
쿵! 쿵! 쿵!
방패병들이 박자를 맞추면서 왼발로 바닥을 치며 동시에 무기로 방패를 때렸다. 그 소리는 천둥소리보다도 거대하게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흐!”
그것을 보는 오크들은 비웃음을 날렸다. 척 봐도 자신들보다 작은 자들이었다. 볼 것도 없이 그대로 쌍둥이 성채 공방전이 시작되었다.
내성보다도 높이 솟아있는 마법 첨탑이 붉게 달아올랐다. 거대한 마력이 넘실거리며 대규모 마법을 준비했다. 주변의 세상이 모두 해질녘처럼 주홍빛으로 가득했다.
〈덮치는 화염파도〉
이글거리는 화염이 첨탑에서 뻗어나와서 부채꼴로 퍼지더니 그대로 포물선을 그리며 오크 수천을 뒤덮고 지나가더니 이내 불똥이 끝없이 쏟아져 내려가며 떨어지는 물처럼 내려꽂혔다.
“쏟아져라! 우리를 보호하라!”
주술사들이 너도나도 주술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물줄기가 뻗어 나가며 불과 부딪치며 맞물리며 함께 떨어져 내리더니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화염과 물의 싸움은 서로 대등했는데, 그만큼 오크 주술사가 많았다.
“장애물에 진흙을 덧대어라!”
푸버벅!
수분이 잔뜩 들어있는 진흙이 성벽 위에 덧대어진 나무 방벽에 엎어졌다. 고루 발라지지는 못했지만, 그것으로도 족했다.
“쿠아아아아!!!!”
외성벽을 지나치며 〈캉카라쿰(Kankarakum, Black scales Wyvern)〉이 용의 숨결을 토해내며 지나갔다. 순찰자들의 화살이 정확하게 큰 체구를 지닌 블랙 스케일 와이번의 몸체와 날개를 때렸지만 박히는 것 하나 없이 후두둑 떨어졌다.
“젠장할! 사격하지 마라! 눈을 맞추지 못할 것이면 화살을 아껴라!”
“알았다!”
그들의 외침 속에서 산액 브레스가 외성벽에 있는 병사들에게 후두둑 떨어졌다.
치이이익!
〈산액 브레스〉가 섬뜩한 소리를 냈다. 부글부글 끓으며 갑옷을 녹였고, 타들어 가며 매캐하고 독한 가스를 뿜어냈는데, 투구에 맞은 이는 서둘러 투구를 벗어 던졌지만, 산액이 주르륵 흘러 목을 타고 지나갔다.
목 보호대는 얇았고, 이내 화상의 고통과 신경이 타들어 가는 감각이 뻗쳐왔다.
“끄흐으으윽!”
소리를 크게 지르지 않았다. 대신 양손을 뻗으며 하체를 수그렸다. 다른 병사들이 서둘러 물을 퍼부었다. 시원한 냉수였고, 깊은 우물에서 뽑아 올린 것이라 고통이 경감되었고, 그제야 고통으로 쉬지 못했던 숨이 트였다.
“허억! 허억!”
쏴아! 솨아악!
대부분의 병사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고, 바로 부상자로 여겨지며 후방으로 향했다. 피부가 녹았고, 힘줄이 끊어졌으며, 눈썹이 타거나 목 근육이 훤히 보이기도 했다. 끔찍했지만 숨은 붙어있었다.
빨리 물을 부었기에 그 정도에 그칠 수 있었다.
“서둘러 후방으로 보내라!!”
많은 인원이 모여있었기에 사제들만큼은 많이 있었다.
캉카라쿰은 브레스를 쏘아 보낸 뒤에 그대로 우뚝 솟은 첨탑으로 향했다. 크고 날카로운 발톱이 그대로 첨탑에 부딪혔다.
쿠구구!
첨탑에서 큰 소리가 나며 벽돌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벽돌 속에 있는 강철이 도네투스의 눈에 들어왔다. 이글거리는 붉은색을 띤 양각 마력 회로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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