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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가득한 밤.
드낙은 오늘도 〈흰여우 새린〉이 점성술을 보기 위해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또한 이제는 제법 별을 볼 줄 알았지만,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다는 말처럼 벌써 점성술의 단점만 꼽으며 점성술에 손을 놓은 지 오래였다.
‘마치 영어 공부 같아서 더 싫어.’
외울 것이 많았고, 또 외운 것의 뜻이나 의미가 달라지기도 했다. 중력에 의해서 일관되게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킁.”
숲의 농밀한 향기에 드낙이 콧물을 훔쳤다.
으스스한 어둠이 내려앉은 곳에서 드낙이 우뚝 섰다. 나무의 밑동에서 주둥이가 툭 튀어나오더니 이내 위아래로 꿈질거렸다. 길쭉한 털이 그 움직임에 따라서 출렁거린다.
“뜨낙! 우리의 창조주를 뵙습니다.”
핏빛쥐의 말에 드낙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귀여워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 핏빛쥐들이었다. 특히, 드낙을 대단히 숭배한다는 점이 그를 기쁘게 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슥슥!
드낙이 핏빛쥐의 머리를 쓰다듬고, 턱을 긁어주었다. 핏빛쥐의 숨결이 크게 거칠어지자 움찔하며 손을 뺐다.
맹목적인 충성만큼 위험하고 어리석은 것이 없지만, 남에겐 불륜이라도 자신에게는 로맨스인 법이었다. 남들이 다른 사람을 맹신하는 모습은 기가 찰 노릇이어도 자신에게 바보 같은 충성을 다하는 자들은 기쁘기 마련이다.
“오크들의 주력이 후퇴를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3만5천이 넘고, 콥 고블린 노예 또한 그 두 배에 달합니다. 3천의 군세가 떨어져 나가서 몽펠리에의 〈쌍둥이 성채〉를 정찰하고 있는데 이 또한 물러가고 있습니다.”
‘왔다.’
드디어 오크들이 물러가기 시작했다. 겨울이 곧 다가와서이기도 했고, 부락 하나가 드낙의 손에 무너지면서 후퇴를 결정한 것이다. 여기에는 주술사들의 예언이 한 몫 했다고 여겨졌다.
‘멍청이들.’
물러서 봤자였다. 그들 중 절반은 백설산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보급이 부족해서 굶어 죽을 터였다. 또한 예언을 자신에게 사용했을 것이 뻔하므로 되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짚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지식으로 짚어내기에는 이들의 대침공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절대 모르지.’
드낙은 그들이 굶어 죽기 전에 회전을 통해서 싸울 생각을 가졌다. 많은 이들이 동원될 것이고 승리를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중립신의 의지가 인간의 승리를 원하지 않아서였다.
‘지독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드낙은 양심이 찔렸지만, 살면서 얼마나 많이 양심이 닳고 닳았는가? 결국, 승리하지 못한 자들은 버러지처럼 살아갈 뿐이었다.
아무리 패배자들이 욕을 해도 악독한 짓을 해서 승리를 경험한 자들은 자손 대대로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는 그것을 잘 알았다.
‘이게 최선이다.’
자신에게 큰 피해가 오는 것도 아니었다. 당연하다! 드낙은 중립신의 챔피언이며, 테라를 완성하고도 중립신의 공신에 들어갈 것이다. 적어도 중립신의 임무를 충실히 실행한다면 능히 그렇게 될 것이다.
‘······설령 중립신이 날 토사구팽(兎死狗烹) 한다고 하여도, 나는 이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
검은 꿈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떵떵거리며 살아갈 수 있느냐 말이다. 답은 아니오였다. 또한 중립신의 손아귀에서 안전하게 빠져나갈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난 세파리아스가 아니니까. 난 평범하니까. 지금 이 기회를 잡아서 날아오르는 수밖에 없다.’
그 날개는 중립신이 알아서 달아줄 것이다. 적어도 드낙이 그에게 충성을 다한다면.
핏빛쥐의 눈에 드낙의 눈에서 서슬 퍼런 시린 빛이 반짝였다. 달빛에 비쳐서 그런 것일 수도 있었기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이대로 계속 우회해서 멜마론 영지를 지나치며 많은 사람을 모으고, 오크 보급소를 박살 내겠다. 계속 놈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도록 해라.”
혼자서도 오크 보급소를 박살 낼 수 있었다. 이제 더는 오크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다. 오크를 계속 압박해서 놈들이 물러가는 곳에서 싸움을 걸고, 인간의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도네투스를 제압하여 전쟁을 끝낼 생각을 가졌다.
중립신이 원하는 구도이기도 했다.
“뜨낙!”
핏빛쥐가 냉큼 대답하며 쏘옥 땅속으로 들어갔다. 이미 드낙은 중립신의 전략을 곧이곧대로 믿고 있었는데, 그만큼 중립신의 존재감은 드낙에게 두려울 정도로 거대했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수많은 능력을 그저 쥐여주는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은 드물 것이다.
*
두두두두!
“꾸익! 꾸익!”
대형 멧돼지가 거침없이 숲 사이에 놓인 길을 질주했다. 오크 라이더 30기는 무엇이 그리 바쁜지 앞으로 내달리기만 했다. 이들은 등자도 없었고, 고삐도 없었으며 대형 멧돼지의 코에는 코걸이도 걸려있지 않았다.
야생에서 멧돼지를 조련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도네투스의 진영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후퇴하면서 자연스럽게 거리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2일의 격차가 벌어질 정도로 큰 거리를 달려야 했다.
이 시간의 차이는 서로와 서로가 대치하는 기간을 날이 지날수록 길게 만들고 있었다.
광대뼈가 툭 튀어나와있는 오크 전사의 입에서 충격적인 이야기가 쏟아져나왔다.
“보급소의 보급이 전부 약탈당했다. 지하굴을 파서 모조리 싹 가져가고 있다. 곳곳에서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거다.”
“쫓아가 봤겠지?”
〈족장 도네투스〉는 생각보다 침착했다. 혹은 보급이 지닌 의미를 모르고 있는지도 몰랐다.
“돌아오지는 못했다. 지하굴은 너무 깊은 곳으로 있는 데다가 지반을 무너뜨려서 죽이고 꺼내는 것도 힘들었고···”
도네투스가 손사래를 쳤다. 과정은 어찌 되었든 상관없었고, 실패했다는 게 중요했다. 더는 들을 필요가 없었으며 실패한 경험은 나중에 들어도 괜찮은 것으로 판단했다.
“어떤 놈들이었지?”
“제법 살이 오른 대형쥐였다. 털이 붉고, 일각수처럼 뿔은 있었지만, 겁이 상당히 많은 것처럼 보였다.”
마지막은 추측이었다.
“주술사들은 예언으로 쥐새끼 소리를 들었고, 고블린보다 작은놈들이라고.”
도네투스의 손이 부들거렸다. 분노를 참기 바빴는데, 고작 그런 놈들에게 보급소 여러 곳이 털리고 있어서였다. 보급을 터는 것에 있어서 〈대장쥐〉는 지독한 모습을 보였다.
정보를 취급하면서 드낙에게 정보를 접하게 만드는 게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도 알았고, 이것을 보급소 털이에도 접목했다.
오크들은 보급 털이에 대해서 알게 되더라도, 오크의 입에서 아는게 아니라 자신들의 보급이 털려서 스스로 알게 되는게 더 빨랐다.
그렇게 대장쥐가 설계를 한 것이다.
대장쥐를 으뜸으로 삼고 활동하는 핏빛쥐들의 리전들은 너무나도 잘 해주고 있었다. 세력에 도둑놈 하나 없이 그 세력이 지닌 힘을 오롯이 쏟아부을 수 있었다.
내전으로 똘똘 뭉쳤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너무 잘 했다는 게 문제였다.
‘젠장.’
도네투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고민에 빠졌다.
그때, 또 한 무리의 오크 라이더들이 도착해서 보급소가 털렸다는 것을 말하였다. 그 순간 도네투스는 가지고 있는 모든 고민을 손에서 털어버렸다.
‘망했다.’
그 생각부터 먼저 들었다.
그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오크 보급소〉를 들어서 이야기할 수 있었다.
오크 주술사 10명.
오크 전사 300명. 그 외 탈 것까지 갖추고 있었기에 오크 전사는 훌륭한 성벽 지킴이이기도 했지만, 곧 기병이기도 했다.
이 전력이 가지는 의미는 단 하나뿐이다. 인간 게릴라를 원천적으로 봉쇄한다는 뜻이었다. 천 명의 인간으로는 결코 오크 보급소를 무너뜨릴 수 없고, 천 명의 인간을 모으기에는 보급이 원활하지 못했으며 굵직한 보급의 방향성조차도 없었다.
또한 그 정도로 인간을 경계했다는 뜻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보급에 신경을 썼기에 〈오크 보급소〉가 있을 수 있었다.
인간은 뛰어난 군사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오크들이 왜 보급소를 지었는지는 깨닫지 못했다. 너무 발달해서였고, 오크처럼 〈오크 보급소〉라는 개념도 없었다. 그들은 나약했고, 보급부대는 있었지만, 보급소는 성채나 토성같이 굳건한 곳에서만 보관했기 때문이다.
서로의 군사체계가 달랐고, 오크 보급소는 이번에 오크에게서 새로 나온 군사개념이었다. 숫자가 적어도 머릿수가 많은 적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는 강인한 전투 종족만이 가능한 전법이기도 했다.
흩어져도 싸울만했고, 이길만하다는 판단이 있어야지만 그런 게 가능했다. 인간은 오크식으로 생각을 하기 힘들었다.
‘인간 놈들은 지독하게 우리의 보급을 노렸지.’
횃불을 들고 미친 듯이 뛰어오던 민병대를 마주하기도 했다. 내일이 없거나 가족의 복수를 꿈꾸는 자들은 자신이 먹을 동물의 비계나 지방 따위를 녹여서 화살을 쏘기도 했을 정도였다.
알게 모르게 큰 피해가 있었다. 그 속에서 오크가 진격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가을이었기에 가능했다. 인간은 못 먹는 것을 먹을 수 있었고, 인간은 실패할 사냥도 성공하는 것이 오크였다.
민병대의 분투는 오크에게 보급의 중요성을 알려주었다. 그렇기에 도네투스는 경직된 표정을 일관되게 보여줬다.
“어찌 해야 합니까?”
“머리를 돌려라. 아무래도 우리가 돌아가려면 먹을 것이 많아야 할 것 같다.”
구석으로 내몰리기 전에 달려들고.
불지옥에 끌려가기 전에 불지옥으로 뛰어들고.
야수의 송곳니가 팔뚝을 물기 전에 더욱 들이밀어서 그 이빨마저 뽑아버리는.
오크의 호전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도네투스가 이빨을 드러냈다. 더는 물러날 곳이 없다고 여겼다.
오크 3만8천의 군세가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들의 목표는 명확하게 〈쌍둥이 성채〉로 향하고 있었다. 보급을 위해서였다.
죽여서 인간을 식량으로 만들어서 돌아갈 생각을 가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을 핏빛쥐가 만들어냈다.
드낙도 중립신도 그 누구도 콥고블린과 체격이 비슷한 핏빛쥐들이 전쟁의 판도를 바꿀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핏빛쥐들은 전쟁의 판도를 바꾸었다.
만약, 신과의 담판 승부였다면 핏빛쥐들이 중립신의 전략을 깨뜨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쿠와아아아아!!!!!”
캉카라쿰이 거칠게 포효하며 고함을 지르자 오크들이 너도나도 소리를 내질렀다. 적이 앞에 있고, 뒤에 절벽이 있다면 오크라면 응당 적을 향해서 내달려야 했다. 그들은 모두 도네투스의 생각을 받아들였다.
“컥!”
곧바로 콥 고블린들이 회 떠졌다. 나뭇가지에 매달려 목이 베어지고, 밑으로 놓인 빈 도자기에 피가 담겼다. 그 빈 도자기의 바닥에는 향이 강하고, 균의 서식을 방해하는 말린 약초 가루가 들어가 있었다.
부욱!
가죽은 벗겨지고, 나뭇가지마다 걸리거나 자리가 없으면 가축들의 등에 널렸다. 짐수레 또한 훌륭하게 가죽을 말릴 수 있었다.
뼈와 살을 분리했다. 힘줄은 따로 모아서 염지를 했고, 살은 수분부터 없앴다. 피가 있었음에도 오크들의 솜씨는 능숙했다. 훌륭한 육포를 만들 수 있었다.
까드득! 까득!
뼈는 간식거리였다. 하지만 잘 보존되는 음식이기도 했다. 특히나 연골이 붙어있는 뼈는 매우 소중히 하였다. 전운이 가득 감돌았다.
*
평온함을 되찾은 쌍둥이 성채에 급보가 전해졌다. 3천의 오크 정찰군이 물러간 지 불과 5일 만이었다.
“다시···되돌아오고 있다고?”
아크온이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그만큼 충격적인 태세전환이었다. 또한 오크들이 그런 기만술을 썼다는 것도 놀라울 따름이었다.
쿵!
아크온이 발악하듯이 원탁을 손으로 후려쳤다.
“이미 병사들을 되돌려보낸 지 오래다! 여기에는 고작 5천의 군대밖에 없다···!”
피를 토하듯이 아크온이 소리쳤다. 하루라도 빨리 남부 왕국의 보급의 도움을 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단단히 플래티넘 왕가에 적의가 돋아있었기 때문이다.
오크가 설마 그런 수작질을 할 것이라고 여기지 못했고, 드낙의 전공과 맞물려 가을이 끝나가서 물러가는 것이라 생각해서였다.
“전투 요새를 포기해야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쌍둥이 성채 바로 밑에는 몽펠리에 가문의 본성입니다. 그곳은 심지어 전투 요새도 아닐뿐더러, 고대 성벽의 높이는 5미터에 불과합니다!”
미관과 역사를 보여주기에는 흠잡을 곳이 없었지만, 오크와의 싸움에서는 맹탕인 성이 몽펠리에 성이었다.
“봉화를 올려라. 하루 반나절 거리에 있는 자들은 다시 불러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1만도 안 모일 것입니다···”
“기사들은 충분히 모일 수 있다. 그리고 킹슬레이의 서쪽 군대도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희망은 있다.”
“······”
주위가 조용해졌다. 마치, 공동묘지에 있는 듯한 감각이 원탁에 퍼져나갔다. 아크온은 원탁에서 무겁게 일어났다.
“인간의 수명은 한정적이지만, 몽펠리에라는 이름은 영원토록 이어질 것이다. 이를 명심하고, 함께 역사에 이름을 남겨 불멸의 생을 얻자!”
귀족들이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눈을 뜨며 목소리를 드높였다. 남부에 물들어서 탐욕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도 그들은 메디오인이었으며, 붉은 요새에 다시 인간의 발자국을 놓고 싶어하는 민족적 염원이 있는 자들이었다.
“몽펠리에를 위하여!”
“우리의 명예를 드높여 보이자!”
또한 더 이상 뒤로 물러날 곳도 없었다. 몽펠리에나 파이룬이 무너지면 북부는 그것으로 끝이나 다름없었고, 몽펠리에는 〈쌍둥이 성채〉가 무너지면 본성도 무너질 공산이 컸다.
수많은 몽펠리에의 역사가 담겨진 그곳에 오크의 발자국이 남는다? 죽음으로 막아야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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