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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연기가 드낙을 덮쳤다. 그것은 매우 농밀했으며, 검은 연기 속에서 보이는 칠흑과도 같은 어둠의 핏줄 같은 것이 반짝거렸는데, 이것은 드낙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중립신이 흘리는 피 같은 것이었지만, 드낙은 그렇게 생각하지는 못했다.
‘확실히 오크를 그렇게나 죽이니, 달라도 뭔가 달라지는구나!’
그렇게 나온 드낙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검은 꿈의 내부가 이상한 구멍이 많이 뻥 뚫려있었다.
녹색의 점액질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이내 검게 변질되며 바삭해져서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당황한 드낙이 중립신에게 물었다. 이에 중립신은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녹색 도끼가 개입했다.”
‘오크를 그렇게나 아낄 줄은 몰랐다. 신답지 않아. 그에 대해서 지금까지 몰랐다는 게 아쉽다. 엘프들의 오크 개입을 한 번쯤은 방해했어야 했나··· 이런 곳에까지 힘을 사용하다니. 어리석은 신이야.’
중립신은 중요한 정보는 드낙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다.
“괜찮으십니까?”
드낙이 안절부절못하며 걱정부터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오크들의 신은 완전한 신이고, 중립신은 아직 부활조차 하지 못한 채 이 세상에서 암약하며 부활을 꿈꾸는 반쪽짜리였다.
“괜찮다. 나의 챔피언아. 하지만 이번 일에서 더 큰 도움을 주기는 힘들다. 그가 주시하고 있는 게 느껴진다. 나 스스로 오크들을 죽인다면, 본격적으로 출혈을 감내하고도 개입할 것 같다.”
“그가 개입하면 어떻게 됩니까?”
중립신은 거기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드낙이 겁을 먹을 것 같아서 일을 그르칠 것이라 여겼다. 그가 바닥으로 쑥 들어가버렸고, 검은 문이 드낙의 눈에 들어왔다.
그 눈은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문의 숫자가 적네.’
그는 하나씩 문에 서면서 환상을 경험했다.
오크의 육체 인자가 뒤틀리고, 변형되며 소형화가 진행되었다. 그것은 이내 드낙의 체내로 들어갔고, 자리를 잡았다. 육체의 강화와 면역체계의 혁신이 이루어졌고, 재생 불가능한 장기 또한 회복할 수 있게 변했다.
‘맞춤형이구나.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오크의 면역 체계나 이중 관절, 심장 등. 이미 가지고 있는 능력들이 소멸하는 것도 있었다. 오크 피지컬 레플리카는 전신을 인간의 육체에 맞게 변형된 오크의 인자를 넣었기 때문이다.
그 덕에 비대칭적인 힘들이 지닌 강인함은 오히려 사라져버렸다. 대신 보다 인간적이고, 인간치고는 강인한 힘을 매우 자연스럽고, 부작용이 없도록 만들었다. 최대치의 힘은 줄어들었지만, 평균치의 힘은 높아졌다고 할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좋다.’
드낙은 그 환상을 경험하며 이것이 자신에게 맞도록, 인간에게 착 달라붙을 정도로 정교하게 교정된 오크 인자임을 알 수 있었다.
〈오크 피지컬 레플리카(Orc Physical Replica)〉는 오크를 모조했다는 것을 당당하게 밝히고 있었다. 인간의 모습으로 계속 남고 싶어하는 드낙의 요구조건을 충족시키는 능력이었다.
‘무조건 먹어야지.’
인간에게 딱 맞도록 스며드는 것이었다. 장기는 비대해지지 않고도 기능이 향상됐고, 피부는 두꺼워지지 않으면서도 질겨졌고, 내구력이 상향조정 되었다. 더불어 오감 또한 더욱 민감해졌다.
모든 면에서 육체적인 강화가 부작용 없이 이루어지는데 마다할 리가 없었다.
‘대단한 정성이야.’
드낙은 중립신이 눈을 뜨고 나서 검은 문을 거부한 적이 잘 없었다. 그만큼 중립신은 드낙이 선택할 법한 검은 문을 뱉어주고 있었고, 이것은 드낙이 중립신에게 불만 하나 안 가지게 하고 있었다.
물론, 중립신의 기이한 행보에 의심을 품고는 있었지만 그걸 실행할 배짱도 없고, 배경도 없는 게 드낙의 현 상황이었다.
‘다음 검은 문은 무엇을 줄까.’
드낙이 손을 뻗었다.
쿵쿵 뛰는 심장이 보였다.
좌측의 심장이 더 두껍고, 컸는데 이 때문에 마치 비정상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비대칭은 오크 인자를 통해서 똑같은 크기가 되었다. 완벽한 결합이었다.
쿵쿵!
거세게 뛰는 고르곤의 심장이 새빨갛게 변색하면서 마력을 미친 듯이 뽑아내기 시작했다. 과열된 듯한 모습이었는데, 신체 내구도가 증가하여서 그 어떤 부하도 없었다.
‘피지컬 레플리카랑 호응이 되는 능력이구나!’
〈고르곤 과열(Gorgon Overheat)〉.
급속으로 마력을 회복하는 능력이었다. 심장에 무리가 가지만, 드낙의 괴물 같은 신체 내구력은 오버히트를 계속할 수 있을 정도로 강인했다.
‘필살기가 하나 생긴 것이나 다름없다.’
궁지에 몰렸을 때, 사용해서 단번에 전세를 역전하기도 쉬웠고, 마법사를 처형시키며 얻은 〈간략화된 마법〉을 폭풍처럼 쏘아 보낼 수도 있었다. 엘프가 아니라면 대처할 수 없고, 대처한다고 하더라도 승세가 기울 것이 분명했다.
‘이 정도의 〈초월의 힘〉이라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두렵지 않다.’
“흐흐흐.”
드낙이 짜릿한 기분을 느꼈다. 세상에 나오고, 귀족이 되고, 트롤을 암살하면서도 항상 불안했다. 언제든지 자신의 실수로 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것을 많이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초월의 힘〉의 증가는 마치 목숨을 여러 개로 만드는 것처럼 만들어서였다. 드낙의 정신이 고통에 압살 되어 무기력하게 마력을 대기 중에 퍼뜨리는 짓거리만 하지 않으면 어느 상황에서든 대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확정적으로 거의 탈인간이 된 거라고 할 수 있지.’
그만큼 고르곤 심장을 과부하 시켜서 급속으로 마력을 회복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한 것은 신의 한 수나 다름없었다.
‘결국에는 마법이야.’
세파리아스를 따라잡으려고 했지만, 좌절을 겪은 것이 드낙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직접 자신을 따라 하지 말라는 소리도 듣기도 했다. 알게 모르게 그에게 압도되었고, 그를 목표로 잡았던 것.
이 때문에 드낙은 초월의 힘에 기대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검술 비전 수련을 완전히 버린다는 뜻은 아니었다.
‘못해도 불파겐의 극의(極意)는 배워야지.’
불파겐 중급 검술인 이강(肄講)을 완숙하고 다음으로 넘어가야 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이미 드낙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상승(常勝)의 묘리(妙理)〉, 일류의 흐름.
용병 시절 때부터 습관적으로 연습했고, 지금도 대련을 할 때마다 상대의 호흡을 보곤 했다. 습관이 들여버릴 정도로 상승의 묘리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전투의 흐름을 지배할 수 있기에, 비전을 사용하기 위한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일류의 흐름이었다. 그것을 얻는다면, 세파리아스가 보여준 것처럼 그저 검 한 자루로 기사를 수백이나 한 전투에서 베어낼 수 있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리네.’
만약 그 경지에 도달할 수만 있다면, 드낙은 자신이 무력에 관해서는 완성될 수 있음을 확신할 정도였다.
‘갈 길은 멀겠지만.’
드낙이 생각을 접고, 마지막 남은 검은 문을 두드렸다.
오크가 지닌 주술사로서의 재능에 대한 환상을 경험했다. 본능적으로 주력을 통해서 정령과 교감을 하고 거래를 할 수 있는 힘이었다.
동시에 예언도 할 수 있었는데, 아쉬운 점이라면 녹색 도끼의 도움이 없는 예언이었기에 주력이 대단히 많이 소모되어도 썩 좋은 예언은 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주술에 대한 효율성이 증가하기도 했다. 특히나 이것은 〈주력 저장 척수〉의 검은 문 능력과도 연관이 깊었다. 자연스럽게 〈내부 저항력(Inside Resistance)〉이 높아지는 결과를 낳았고, 저장 척수의 주력이 완전 충전되기 위해서는 62일이 걸렸지만, 이제는 그 절반인 30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주술에도 이제 손을 놓아야 하는데. 그와 관련된 힘은 안 주네. 주술사도 제법 죽였는데.’
드낙이 입술을 핥았다. 그는 더 많은 것을 원했다. 혼자서 다 해먹고 싶었고, 정령과 거래도 제대로 하고 싶었다. 단순히 주력을 닥치는 대로 주면서 정령이 폭리를 취하는 모습은 더는 보기 싫었다.
배가 아파졌기 때문이다.
검은 문을 모조리 취하고, 검은 꿈에서 드낙은 마법 수련을 했다. 그가 원하는 마법과 간략화되어서 영창 한 번으로 쓸 수 있는 마법이 조금 달라서였다. 대부분의 마법사는 전투 마법사가 아니었기에 전투용 마법은 간략화가 안 되어있었다.
있더라도 효율이 낮았고, 갑옷에 부여하는 게 더 이득인 마법들뿐이었다. 인챈트용 마법을 무식하게 간략화해서 쓰는 게 드낙이 취할 수 있는 것의 전부였다.
“검은 연습 안 하느냐?”
휴식할 때 세파리아스가 태클을 걸기도 했다. 하지만 드낙은 쿨병걸린 것처럼 대답했다.
“초월의 힘이 먼저지. 어디서 조잡한 검술 따위가.”
“옘병하네.”
“귀족이 그런 말을 해도 돼? 미쳤어?”
“지랄하네.”
드낙이 결국 벌떡 일어났다. 어느새 검이 뽑혀 있었고, 그 모습에 세파리아스도 히죽거리며 검을 뽑아들었다.
“한 번 하자 이거냐?”
이번에 얻은 오크 피지컬 레플리카 때문에 드낙은 제법 자신감이 있었다.
“이기고 나서나 말해라.”
드낙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중립신의 설계로 받아들여진 변형된 오크 인자 때문에 몸놀림이 더욱 빨랐다. 그 빠른 속력 속에서도 세파리아스는 드낙을 압도해보였다.
세상의 변수는 많았고, 그것을 모두 통제하는 세파리아스는 백병전에 있어서 신이나 다름없었다.
‘이씨.’
드낙이 답답함을 느끼고 무호흡 상태에 돌입하며 더욱 거세게 움직이자 세파리아스는 그대로 빤스런을 쳤다.
샤샥!
삐끗! 멈칫!
몸을 측면으로 보여주면서 뱀처럼 교묘하게 발을 놀려 좌우를 귀신같이 움직였는데, 드낙이 어떻게 공격할지를 시작하기 전부터 알고 있는 것처럼 움직여서 드낙의 흐름이 끊기기도 했다.
‘아, 아!’
드낙은 마치 스턴에 걸린채 두들겨 맞는 것처럼 끊이 끊어진 인형처럼 멈칫거렸는데, 그만큼 세파리아스가 흐름을 잘 끊어냈다. 역량 차이가 전에있던 대련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달랐고, 드낙은 형편없이 당했다.
‘이게 아닌데! 왜 이러지? 몸이 적응을 못했나? 내가 모르는 부작용이라도 있나.’
3할의 승률을 보이던 대련이었다. 하지만 이번 대련은 달라도 심하게 달랐다.
카강, 탁.
검은 드낙보다 느렸지만, 항상 드낙이 두 번 움직이게 하였다. 못해도 검으로 막고, 옆으로 걸음을 걷도록 만들었다. 특히, 드낙이 오른발을 움직일 때마다 기습적으로 들어와서는 오른쪽으로 검을 쳤는데, 거기에 대해서 대응이 거의 불가능했다. 어떻게 대처할 줄을 몰랐다. 그렇다고 오른발을 안 움직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젠장, 불구도 아니고. 어떻게 내 움직임을 저렇게 간파하고 있지?’
전과는 달랐다.
폭풍처럼 움직여도 세파리아스의 고요함을 깨뜨리기는 힘들자 이번에는 힘으로 부딪쳤다.
카앙!
서로 검 끝이 기울어지며 서로의 손목을 노렸다. 거센소리를 내며 손이 조금 내려간 것은 세파리아스 쪽이었다. 그렇게 손이 내려가는 것으로 그친 이유는 드낙도 몰랐다. 본래라면 완전히 가드가 풀리거나 검이 하단 쪽으로 내려가야만 했다.
그 정도로 드낙의 힘은 강했지만, 세파리아스는 그저 손이 조금 내려가는 것에 그쳤다.
‘진짜 사기야.’
드낙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이 이득을 더욱 벌리기 위해서 한 걸음을 크게 내뻗으며 비집고 들어왔지만, 그 순간을 이용하며 세파리아스의 발이 움직였다.
퍽!
‘웃!’
앞으로 뻗어 나가는 발인데, 옆으로 힘을 줄 리가 만무(萬無)했다. 드낙이 앞으로 체중을 못 기울이게 하였다. 뒤이어서 서로 충돌이 일어났지만 세파리아스가 그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쟁취해냈다.
아무리 힘이 강해도 체중의 극점과 기술의 우위를 지닌 힘을 오로지 완력으로 이길 수는 없었다. 수류탄이 터져도 거기에서 벗어난 사람에게는 털끝 하나 못 건드리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쿵! 쾅!
명치에 세파리아스의 정권이 들어가면서 검은 드낙의 투구를 정면으로 두들겨 팼다. 이어지면서 세파리아스가 균형을 잃은 드낙의 허벅지에 발을 집어넣으면서 그대로 넘어뜨렸다.
능숙하게 한 걸음 물러나며 검을 중단에 놓은 세파리아스가 드낙을 내려다보았다.
“세상은 끝없이 변하는데, 힘만 좋다고 해서 어떻게 승리를 가져갈 수 있겠는가?”
‘응. 방어마법 쓰면 되는데.’
드낙은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입으로 내뱉었다가 마법까지 써서 대련에서 패배하면 자존심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었다.
“어떻게 한 거야? 뭘 한 거야?”
“상승의 묘리이고, 호흡의 지배다. 엘프조차도 다섯 걸음 내에 있다면 죽일 수 있는 힘이지. 엘프를 상대하기 전에 네가 반드시 깨우쳐야 하는 힘이고. 나는 아직 네가 배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중립신이 시간이 없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가르치는 것이다.”
드낙의 눈이 탐욕으로 득실거렸다.
“그래? 어떻게 하는 건데?”
“넌 말해줘도 모르고, 오히려 더 역효과만 난다. 알려줘도 배울 수 없고, 가르쳐준다고해도 응용하기 힘들며, 반복해도 체득할 수 없고, 깨우치도록 만들어도 잊어버리는 것이 흐름이고, 호흡이다.”
“그럼 내가 사용할 수 없다는 뜻 아냐?”
세파리아스는 정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의 재능으로는 사실 쓸 수 없는 기술이다. 다만, 나의 찌꺼기에 희망을 품을 뿐이다.”
“내가 찌꺼기의 재능보다 못하다는 거야?”
드낙이 욱하며 소리를 질렀다. 세파리아스는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신 앞에서도 거래질을 하는게 그였다.
“넌 너 자신을 너무 과신해. 자존감을 가지는 건 좋지만, 이제는 눈을 뜰 때도 되었다.”
드낙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에이. 그래도 십만 시간의 법칙이 있는데, 거기에 난 현대인이고. 이 정도면 똑똑한 건데. 저 괴물 녀석, 자기가 천재라고 재능에 대해서 너무 모르네.’
공짜폰 사업을 통해서 휴대폰 대리점의 황금시대가 열렸던 것이 현대였다.
‘난 적어도 공짜폰에는 안 속았으니까. 어느 정도 똑똑하다고 할 수는 있지.’
적어도 평균 이상은 될 것이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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