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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10개의 부족이었지만, 이제는 9개의 부족이 된 오크 본대에 소속된 주술사들이 예언에 제법 공을 들였다.
‘무시무시하다. 믿을 수 없을 수도 없고.’
강인하면 강인한 오크 전사는 하나같이 대쪽같은 자들이었다. 덮쳐오는 파도에서도 능히 버틸 수 있는 그들의 강인함은 거짓말을 안 하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무서울 것이 없어서였다.
삶이 여유로운 사람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주관을 높일 수 있는 것과 같았다. 그게 바로 힘이라는 단어였다.
‘천 명의 오크를 벤 강철을 두른 인간.’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주술사였기에 오크 전사가 얼마나 대단한 계급인지 잘 알았다. 모두가 전사 계급이 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탈락한 오크는 노역하거나 사냥꾼이 된다.
그런 오크를 1천 명 베었다는 것은 이미 탈인간, 아니 마신장(魔神將)과도 견줄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설마 설마 변덕스러운 갈대마저 뽑을 줄이야.’
기술로는 오크 대전사 중 누구도 따라올 자가 없었기에 오히려 인간을 상대로 상성이 좋은 〈대전사(大戰士) 크후비 크훈(Khuvi khun, 변덕스러운 갈대)〉을 3합만에 죽인 인간은 보통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이 쌓아올리는 기술이 아니라 다른 점 또한 특출 나다는 반증이나 다름없었다.
“정성을 들여야 한다.”
“최대한 주력을 토템에 집어넣어야 해!”
“예언의 방식도 바꾸어야 하고.”
그에 대한 굵직한 예언의 줄기를 만들어야 했다. 예언은 업을 들춰보는 것이고, 녹색 도끼의 힘을 빌리는 것이며, 흐르는 물처럼 4차원에 속하는 시간의 연속성을 손으로 더듬는 작업!
보통은 그저 오크에게 한없이 어버이 같은 사랑을 지닌 녹색 도끼만 믿으면 그만이었지만, 상황이 상황이었기에 정성을 보여야 했다.
촤악! 철퍽, 철퍽!
수백 명의 주술사들이 지하수를 붓고, 흙을 질척거리며 저급한 점토를 만든 뒤에 쌓아놓으며 토템을 만들었다. 보통은 나무지만, 원시 주술에 해당하기 위해서 재료를 저급하게 만들었다.
저급함은 성능의 저하가 아니었다. 보다, 원초적인 감각을 높인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것은 시간을 손으로 더듬는 것을 눈으로 보도록 만들게 할 것이다.
보통은 이런 짓을 하지 않는데, 귀찮고 힘들어서였다. 하지만 도네투스는 적의 강대함을 가리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고, 명명백백히 오크들에게 알렸다.
‘못 알릴 게 뭐가 있어?’
태평하다 못해 대담했다.
경각심을 모두에게 가지게 하는 것이 자신의 명예, 권력을 낮추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상남자의 방식으로 담대하게 나선 것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
힘을 가지면 두려워질게 없는 법인데, 오크는 더더욱 그러했다.
점토로 빚은 토템이 곳곳에 만들어지고, 그곳에 물길이 만들어졌다. 높낮이를 다르게 하고, 기울기도 다르게 하여 평지임에도 유속이 만들어졌다.
기술이 아니라 경험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었기에 늙은 주술사의 역량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 〈주술 물길〉이었다. 평범한 이라면 주술이나 마법으로 여길 정도로 유속이 재빨랐다.
가장 물이 파동치는 곳에 주술사들이 모두 모였다.
“시작하겠다. 도와줄 정령이 없으므로 후달리는 놈들은 허튼짓하지 말고, 물러서라. 알겠지?”
“알았다.”
“모르겠는데.”
도중에 딴소리하는 미치광이도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온갖 것을 보고 경험하고 받아들이는 주술사의 특성상 성격이 뒤틀리거나 상황에 맞지 않게 농을 걸기도 했기 때문이다. 못 배운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신분열에 시달리는 주술사들도 제법 있었다. 자아가 강인해도 오랜 세월 많은 예언을 훑으면 생기는 부작용이었다. 그래서 주술사들은 예언을 보는 주기를 결정하기도 한다.
“오크의 대침공 때 예언만 3번 째니, 앞으로 3년은 쉬어야겠어.”
툴툴거리는 소리 속에서 주술사들은 하나씩 편한 자세를 잡으며 눈을 감았다. 하나씩 반수면 상태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실로 그 부분에 재능이 있어서 눈을 일찌감치 까뒤집는 주술사도 보였다.
토템으로 주력이 하나로 연결된 주술사들은 모두 같은 예언을 꿈꾸었다. 하지만 서로 보는 것이 전혀 달랐다.
‘황금빛. 끝없는 전투.’
강렬한 황금빛에 뒤덮인 인간들과 오크들이 싸우는 거대한 전쟁터였다. 하지만 괴이하게도 〈검은 연기〉에 뒤덮여 있어서 뭐가 어떻게 되는지 정확하게 판단하기 힘들었다. 멀리 내다보지 못했기에 마치 시력이 낮은 사람이 코끼리를 보는 것과 다름없었다.
뭔지는 알겠지만, 정확하게 묘사는 할 수 없었다. 마지막에는 캉카라쿰의 울음소리가 귀를 흔들었다.
‘거대한 성벽.’
다른 주술사는 성벽을 짚으며 방황했다.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지만, 오크는 볼 수 없었다. 위에서는 싸우는 소리보다는 강철이 부딪치는 소리가 끝없이 들려왔고, 뭔가 끄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위로 들어 올렸지만, 검은 연기가 자욱했고, 운 좋게 볼 수 있어도 성벽만 우두커니 있었고, 깃발만 휘날릴 뿐이었다. 기어서 올라가려고 했지만, 괴이쩍게도 다시 땅을 걷고 있었다.
마지막에는 성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무너진다, 우뚝 솟은 거대한 건축물이.’
또 다른 주술사는 떨어지는 첨탑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의 눈을 헤집는 검은 연기를 손으로 휘적거렸다. 가장 높은 곳이었기에 멀리는 더더욱 볼 수 없었다. 검은 연기의 농축이 컸기 때문이다.
웃긴 것은 그렇게 시야가 단단히 차단되었음에도 첨탑의 형상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진짜로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녹색 도끼님이 나에게 이것을 강하게 보여주신 것이다.’
쿠웅! 쿵!
몇 번이나 흔들리며 이내 옆으로 기우는 첨탑을 마지막까지 집중해서 모든 것을 담아내려고 애를 썼다. 특히나 캉카라쿰의 브레스를 볼 수 있었고, 그 울음소리를 코앞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피, 시체 조각? 아, 이건.’
주술사는 땅을 바라보고 있었다. 걷고 있는 곳으로 피가 계속해서 줄줄 흘러내려 왔다. 도끼를 움켜쥔 채 잘린 오른손은 말끔하게 잘려있었는데, 거기서 흘러내리는 피에 개미가 버둥거렸다.
도끼에는 피하나 묻어있지 않았다.
죽은 오크도 볼 수 있었다. 아래턱이 강제로 뽑힌 채 혀가 길쭉하게 내려와서 땅과 맞닿아있었다. 그런데도 살아있었는데 주술사와 눈이 딱 마주쳤다.
오싹.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임에도 오크 전사의 두 눈에는 투기(鬪氣)가 가득했다.
“아흐아아, 아아아!!!!”
혓바닥이 덜렁거리는 오크 전사가 일어나더니 앞으로 내달리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주술사는 고개를 들 수 없고, 그저 땅만 볼 수 있었다.
섬뜩하게 베어지는 소리. 둔탁한 소리가 울리며 박 터지는 소리가 났고 이내 육중한 오크 전사가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헉. 헉. 헉헉. 헉헉헉.
주술사는 자신의 숨이 미친 듯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예언의 반동 하지만 그렇기에 여기가 가장 중요하다는 뜻.’
코에서 축축함이 느껴졌지만 무시했다. 계속 걸어나갔고, 쓰러진 오크 전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이이이잉! 이이잉!
이명(耳鳴) 소리가 거칠게 들려왔다.
죽은 오크는 두개골이 완전히 박살이 나 있었다. 뇌수가 흘러내렸고, 왼팔부터 시작해서 말끔하게 갈라져서 상체와 하체가 나누어져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흔들!
갑자기 시야가 흔들거렸다. 머리채가 잡힌 것처럼 주술사의 시야가 위로 올라갔다. 강철을 두른 다리가 보였고, 왼손에 뇌수 조각이 들러붙어 있었고···
“허억!”
그대로 주술사는 깨어났다. 코에서 검은 피가 죽죽 흘러내려 왔다. 토악질을 몇 번이나 하면서 눈물이 났다. 그리고 그대로 피를 한 번 토하더니 기절해버렸다.
오크 전사가 그 주술사를 얼른 짊어지고, 치료하러 움직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드낙의 싸우는 모습, 향하는 동선, 도네투스와의 결전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녹색 도끼는 오크들의 신이었으며, 수많은 차원계에 뻗어 나간 오크들을 보살폈기 때문에 정면으로 중립신과 붙을 힘이 없었다. 예를 들면 녹색 도끼는 땅이고 빌딩이고 많았지만, 현금이 적은 상태나 다름없었다.
반면 중립신은 부활을 위해서 많은 현금을 쥐고 있었기에 한껏 싸움질을 할 수 있었다. 더더욱 드낙의 감성, 지성, 이성을 살짝살짝 천천히 변모시켜서 자기 입맛에 맞는 성향으로 변질시킨 지 오래였다.
세파리아스 불파겐이 드낙의 육체를 제어할 수 있었던 것처럼, 드낙이 중립신을 통해서 능력을 얻었다면, 중립신 또한 드낙에게 영향력을 줄 수 있었다.
〈심연을 봤으면, 그 심연 속의 존재도 그를 볼 수 있는 법이었다.〉
보는 것만이 아니라 그의 힘을 받았다면, 그 또한 드낙에게 힘을 행사할 수 있었다.
중립신은 결코 자원봉사자 따위가 아니었다. 그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심각하고, 끔찍한 것인지 〈초월의 힘〉이 있는 세상이 아닌 지구에서 살아온 박호훈은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 그 대가는 그의 모든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결코 그것을 모를 것이다.
엘 마르토 카사다민은 선과 악을 동시에 쥐고 있는 인간들의 대신. 전략만으로 죽음의 세바리악을 영면시킨 전략가였다. 일개 인간 따위가 그의 전략을 꿰뚫어 볼 수는 없는 법이다.
무엇보다 중립신은 꼬불쳐둔 업도 많았다.
그 차이 때문에 주술사들의 예언은 하나같이 불확실했고, 불명확했다. 수백 명이 쓴 주력 따위, 중립신이 지닌 신성력에 비하면 보잘것없었고, 그들을 돕는 녹색 도끼의 힘 또한 작은 줄기에 불과했다.
영악하게 모든 것을 가리지도 않았다.
탈진한 주술사들은 제법 되었지만, 금방 깨어났다.
“지독한···”
깨어난 주술사가 욕지거리를 뱉었다.
〈검은 연기〉는 정말로 지독했다. 특히 더듬는 것에서 보는 것으로 토템을 만든 것을 카운터쳤다. 영악하다고 말할 수 있었지만, 그냥 비열한 짓거리나 다름없었다. 생명체가 지닌 감각을 교란시켜서였다.
이들이 본 것을 정리하는 과정이 이루어졌다. 도네투스 또한 주술사의 목격담을 날 것으로 들었다. 절로 표정이 굳어졌다.
“보통 일이 아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지?”
도네투스는 그 길로 수많은 의견을 들으러 뻔질나게 돌아다녔다. 전사는 자고로 주술사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었다.
예언을 봤기에 주술사 모두 만장일치로 후퇴를 결정했다.
“그렇게 하자. 물러나서 인간들의 평야 몇 개만 점령하고 버티면 된다.”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성을 점거하고 버틴다면, 그들도 어찌하지 못할 터였다.
*
천 개에 달하는 오크 시체가 즐비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땅은 피와 기름으로 질퍽거렸고, 발목이 푹푹 내려갔다. 마치 뭔가가 발을 잡는 것처럼 느껴져서 오싹했다. 그곳에 혼자서 우뚝 서 있는 강철의 전사를 보며 〈비올란트 팬크리스(Violent Fanchris)〉는 눈을 떴다.
온몸이 땀범벅이었고, 모두 식은땀이었다.
“······휴우.”
〈오크 계곡 전투〉 이후 대부분 사람들은 악몽을 꾸고 있었고, 드낙이 나오는 악몽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는데, 혼자서 오크를 천 마리나 베었기 때문이다.
‘괴물···결코 함께해서는 안 되는 종류로 보이지만, 그래도 그만큼 이득도 많다.’
귀족들은 그것을 내색하지 않았지만, 병사나 민병대원들은 달랐다. 밤중에 고함을 꽤애액 지르는 일도 종종 있어서 모두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팬크리스 영주는 밖으로 나와서 새벽 공기를 맞이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은 계속 갑갑했는데, 드낙에게 모든 것을 좌지우지 당하고 있어서였다. 그는 남의 의견을 잘 듣는 것처럼 보였지만, 어디로 튈지 알 길이 없었고 그것을 막는 것도 힘들었다.
‘불파겐 자작의 무위는 지금까지 오히려 과소평가 되어왔다. 자신의 오른팔도 모르고 있었으니.’
만약 알았다면 그런 식으로 일을 진행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끙. 속이 더부룩하네.’
모두 평범하게 드낙을 대하고 있지만 속은 전혀 달랐다. 골병이 든 것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속도 안 좋았다. 엘리트 교육을 혹독하게 받았고, 정신 또한 그렇게 성장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절로 표정과 태도에 드러났을 터였다.
“불파겐 자작께서는 새벽 수련에 누구보다 먼저 나와계시는구려. 대단하오.”
“팬크리스 남작도 마찬가지 아니오.”
팬크리스 영주는 웃는 얼굴로 드낙에게 말을 걸며 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거침없이 말했다.
“몸을 풀고 대련을 하고 싶은데, 어떻소?”
“나야 환영이오.”
드낙이 빙긋 웃으며 몸을 풀고, 단련을 시작했다. 팬크리스 영주 또한 몸을 움직였다. 그의 등으로 식은땀이 한 줄기 지나갔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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