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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취.’
시체 타는 냄새가 바람을 타고 병사의 코에서 맡아졌다. 새하얀 콧물이 빠르게 주륵 흘러내렸다. 그제야 코로 강렬한 피비린내가 뒤늦게 맡아졌다.
드낙의 뒤로 뭔가가 꿈틀거리는 윤곽이 땅에서 보였다. 그게 뭔지 몰랐지만, 그것이 시체 냄새를 가득 뿜어내고 있었다.
‘죽음의 기사 같다···’
병사가 멍하게 횃불의 빛에 들어온 드낙을 보며 생각했다.
새까만 전신갑주는 아니었다. 재로 검은 부분은 있었지만, 그건 오크를 쫓기 전의 모습이었고, 지금은 피가 잔뜩 굳어서 검붉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살 조각이 들러붙어 바짝 말라 있었고, 내장이 무릎에 걸쳐져서 꼬아져 있었는데, 가시 씨앗 같은 것들이 다닥다닥 들러붙어 있었다.
지옥에서 튀어나온 기사의 모습이나 다름없었고, 전설에서나 볼 법한 데스나이트의 모습으로도 보였다.
“수고가 많다. 연기를 보니 수습도 잘하고 있나 본 데.”
드낙은 투구를 벗었다.
“후우.”
시원한 바람이 그를 지나갔다.
오크를 죽이고, 돌아오는 길에 조용히 걸어와서 마음이 착 가라앉아있었다. 물론 자기만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기이한 기세가 잔잔하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예! 히끅!”
병사는 왠지 모르게 등뼈가 서늘해서 온몸에 닭살이 돋았고, 호흡도 불편해졌으며 딸꾹질을 해대었다. 드낙은 병사의 어깨를 두드리며 덕담을 몇 마디 내주면서 지나갔다. 병사는 드낙이 뭐라고 하는지 전혀 기억할 수 없었다.
스슥, 스슥···
대신 뭔가가 끌리는 소리에 눈이 아래로 향했다. 그건 오크의 수급들이었다. 턱이 떡 벌어져 있는 오크의 머리가 보였다. 그중에 이빨은 반쯤 뜯겨서 살과 함께 덜렁거리고 있었다.
눈알이 텅 빈 오크 수급도 있었고, 머리가 반쯤 쪼개지거나 박살이나 뜯긴 머리도 있었다. 하나같이 정상적인 수급이 아니었고, 더러웠으며 훼손이 심했다.
위이잉!
파리떼가 오크의 늘어진 혓바닥에 잔뜩 있다가 날아오르기도 했는데, 비위가 약한 이라면 그대로 몸을 돌려 토했을 것이다.
‘흐윽.’
병사는 안에서 헛구역질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횃불의 불빛 너머로 보이는 꿈틀거리는 것들. 드낙의 손길에 맞춰서 끌려오는 듯한 윤곽들이 무엇인지 깨달아서였다.
핏빛쥐들이 수급을 챙기고, 오크의 검은색 머리카락을 다른 오크와 엮고, 엮어서 만든 긴 줄기는 드낙의 왼손에서 시작되어서 끝을 모르고 포도처럼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괴, 괴물···’
병사가 입을 틀어막았다. 엄지와 검지가 코를 막았다.
숨을 쉴 수가 없었지만, 그런 것도 잊고 드낙이 지나가고 나서야 숨을 내뱉다가 이내 뒷걸음질 쳤다. 오크 수급이 줄줄이 엮어져서 땅을 기어가고 있어서였다. 그렇게 보였다.
실제로는 드낙이 끌고 가는 것이었지만, 너무나도 기괴한 장면이라서 마치 몬스터를 마주한 기분을 들게 하였고, 정상적으로 사고하지 못했다.
화르륵.
중얼 중얼···
화장은 새벽 4시가 넘어도 계속되고 있었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죽은 듯했고, 드낙이 모습을 드러내자 잠시 식이 멈추기도 했다.
야전사령관으로 이실레아가 잠을 자지 않고, 있었는데 금세 소식을 듣고 드낙에게 다가왔다. 팬크리스의 불침번 기사들도 걸음을 바삐 했다.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쫓아갔던 일은 어찌 되었습니까.”
드낙이 손아귀에 힘을 주며 오크들의 수급을 보여주었다. 머리카락으로 서로 엮이고 엮어서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한 머리에 세 개의 머리통도 엮이기도 했다. 대중없었기에 더더욱 괴기스러웠다.
‘엄청나다.’
이실레아의 눈이 뒤쪽으로 향했다. 수급의 길이만 해도 8m는 되어 보였고, 대충 300~400개의 오크 머리통들이었다.
“병사! 수급을 회수해서 모아 쌓아두어라.”
“예!”
병사들이 너도나도 달려들어서 오크 수급을 한곳에 모아두었다. 머릿수를 세 알리는 병사도 있었다. 큰 전투라 반드시 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이렇게 큰 피해가 있었다니.”
드낙이 끝도 없이 높아지고 있는 모닥불을 보며 가슴 아프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눈은 화장시키는 곳보다는 그 뒤에 놓여 달빛에 절로 보이는 오크 전사들의 시체로 쌓아올린 언덕이 보였다.
자신이 쌓아올린 언덕이었다. 벌써 잠을 청하고 싶을 지경이었고, 군침이 돌기까지 했다.
“쉬어야겠다. 먼저 들어가 보겠소.”
“편히 쉬십시오.”
이실레아가 서둘러 답하였다. 다른 기사들 또한 인사를 나눈 것만으로 만족하는 눈치였다. 내일도 있었기에 급할 것도 없었다.
“인간이 아닌 것 같으셔.”
“불에 타면서도 죽지 않으셨다던데.”
“도플갱어가 아닐까?”
엮어놓은 오크 수급들을 정리하던 병사들이 수군덕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이번 전투에 보여준 드낙의 모습은 인간 같지 않았고, 괴물 같았다.
민병대들이 자고 있어서 그나마 덜 소란스러웠지만, 수군거리며 생기는 어수선함은 단번에 눈에 보일 정도였다.
이실레아는 굳이 그것을 막지 않았다.
‘사기를 위해서 놔두는 것이 좋다.’
전투는 끝났고, 휴식하며 이완을 시킬 때였다. 주변에 적은 이미 물러간 것을 확인했기에 최소한의 군율만 지키면 그만이었다. 불침번을 잘 서고, 명령을 잘 따라준다면 조금 느슨하게 할 필요성이 있었다.
평생 강철과도 같이 심지가 단단하게 굳어있다면 좋겠지만, 인간은 나약했다.
쉴 땐 쉬고, 할 땐 해야 했다.
그녀가 가만히 있자, 그녀의 〈부관 폰벨스 브릴리언트〉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정말로 인간인지 의심스럽지 않습니···”
짝!
단번에 폰벨스의 눈이 돌아갔다. 경의 호칭도 없는 그는 말 그대로 이실레아의 낙하산을 타고 그녀의 부관이 된 자였다. 어찌나 갑작스럽게 뺨을 맞았는지 폰벨스가 그대로 옆으로 픽하고 쓰러졌다.
무인답지 않은 모습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이실레아를 잘 알기에 그렇게 허무하게 넘어질 정도로 무방비였다.
벌이 있다면 그 벌에 대한 사유를 자세히 설명하고 벌을 주는 것이 이실레아의 방식이었다. 상대가 납득하는 것은 별개였지만, 통보는 무조건 하는 것이 이실레아였다.
그런데 갑자기 뺨을 때렸으니,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그녀는 결코 폭력적인 상관이 아니었기에 화끈거리는 뺨보다는 마음이 더 놀랄 정도였다.
“······”
폰벨스가 감히 입을 열지 못한 채 서둘러 일어났다. 주위의 어수선함으로 누구도 깨닫지 못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린 이실레아가 그제야 그에게 말했다.
“들은 자가 하나라도 있었다면, 당장 목을 쳤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퍽!
사죄를 빨리하자 이실레아가 그대로 정강이를 걷어찼다. 폰벨스 브릴리언트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온몸에 힘을 주고 있었기에 정강이를 맞아도 움직임 하나 없이 가만히 있을 수 있었다.
“그렇게 쉽게 사과해서 끝날 일로 보였나?”
“······”
고개를 숙였다.
“진심으로 영주님에게 충성하는 모습을 보여도 시원찮을 마당에···괴물? 인간이 아닌 것 같아?”
독기가 잔뜩 들어간 소리에 폰벨스는 자신이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것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그것을 다른 병사들과 똑같이 주둥이에 담아? 이번 전쟁이 끝나면 본가로 돌아가라.”
“그, 그것만은···단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폰벨스가 애걸했다. 감히 큰 누님이라고 혈육에 기대지 못했는데, 그만큼 이실레아의 카리스마가 강렬해서였다.
“어리석은 놈. 가문의 가르침을 잊은 놈에게 줄 기회는 없다. 너보다 더 오랫동안 이 세상에서 살아 숨 쉬며 이어져 온 것이 브릴리언트 가문이며 가풍이다.”
더 이상의 기회는 없었다.
사람의 마음은 갈대와도 같고,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다. 그것을 입에 담은 것부터 〈부관 폰벨스〉는 끝이 났다.
이실레아는 드낙의 군사적 재능을 하찮게 보고 있지만, 그것을 결코 입 밖으로 내지 않고 충성을 다하고 있었다. 그의 오른팔이며 누구보다도 권력을 잡은 것처럼 보이는 이실레아가 그렇다.
그녀의 기준은 엄격했으며, 강철과도 같은 심지를 지닌 것이 이실레아 브릴리언트라는 무인(武人)이었다. 또한 그녀는 자신의 세대에 가문을 일으킨 것에 대해서 대단히 만족하고 있었다.
그 꿈에 균열이 나는 모습은 하나라도 보지 못했다.
“넌 운이 좋다. 그래도 가문으로 돌아는 갈 수 있으니. 기병 양성을 위해서 열일 하라.”
쫘악!
거칠게 부관이 착용하고 있는 완장을 뜯어냈다. 폰벨스의 표정이 검게 죽었다. 하지만 만약 병사 중 누구라도 그의 말을 들었다면 그는 즉결처형을 당했을 것이다. 드낙이 너무 과하다라고 말하며 말리기도 전에 죽였을 것이다.
그게 폰벨스가 운이 좋은 이유였다.
다음 날, 이실레아는 부관없이 홀로 움직였다. 아침 해가 뜨면서 보이는 〈오크 시체 언덕〉은 사람들의 시선을 잡기 좋았지만, 그것보다 더 시선을 사로잡는 게 있었으니, 드낙이 가져온 오크 수급들이었다.
“저 일그러진 표정을 봐. 얼마나 고통스럽게 죽었을까.”
그 수급들을 쌓아놓은 곳에는 민병대원마저 모여있었는데, 실로 형상이 기괴해서였다. 머리카락으로 서로 엮어져 있음은 물론이고, 머리가 터진 모습을 지닌 오크 머리는 흉측했다. 멀리서 보이는 시체 언덕보다는 가까이서 모이는 머리통 무덤이 더욱 시선을 사로잡았다.
“뭘 그렇게 모여있나! 오늘 할 일이 태산처럼 쌓여있다!!”
기사가 한 소리치고 나서야 사람들이 흩어졌다.
“하나씩! 하나씩! 아래에서부터! 살아있는 오크가 있을 수 있다! 무너질 것 같으면 바로바로 말하며 물러날 수 있도록 해라!”
위험했지만 아래에서부터 시체를 끌어당겨서 빼내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저녁때가 되어서야 〈원탁 회의〉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모두 드낙의 눈치를 볼 정도로 이번 전투에서 드낙이 세운 공은 압도적이었다.
병력의 숫자도, 간부의 인원도 적었음에도 드낙이 상석을 권유받았다. 야지에서 이루어진 원탁 회의였음에도 〈상석〉을 만들어 높일 정도로 공을 들였는데, 드낙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었다.
스스로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주기 시작했다.
보고는 이실레아 브릴리언트가 주도했다. 가장 먼저 전체적인 전황을 요약하여 말하기 시작했다. 전공을 논하기 전에 무조건 해야 하는 일이었다. 민감한 사안이었기에 하오체를 쓰지는 않았다.
“전투는 기병을 통해서 오크를 양분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계곡을 넘어서 고립된 오크는 경기병들의 화살 세례를 받고, 버티다가 이내 팬크리스 영지군을 우회 타격하게 됩니다.”
“그 사이에 불파겐 자작께서는 오크의 주력군의 뒤를 쳐서 관심을 끌고, 중기병이 라이트 랜스를 투척하고 남쪽으로 후퇴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후 팬크리스 영지군은 정면에서 〈점숲 지형〉을 통해 백병전을 시작했고, 중기병은 다시 한 번 크게 계곡을 오른 뒤에 좌측돌파를 했습니다.”
“이 와중에 우익은 뒤로 빠지면서 효과적으로 오크의 강인한 힘에 똑같이 맞서주지 않고, 장기전으로 돌입했으며 경기병들 또한 오크 전사들을 흔들어대었습니다.”
“중기병들은 주력을 좌측 돌파한 다음에는 팬크리스 영지군의 정면을 도와줬고, 동시에 우익에서 엄청난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이로 인해서 승기를 잡은 다음 불파겐 자작님을 도와주러 향하였고, 전투는 끝이 나게 됩니다. 물론 영주님께서는 오크 전사를 쫓아가셔서 많은 수급을 챙겨오셨습니다.”
기동성이 좋은 기병이 얼마나 다양한 곳을 찔러주었는지 확연하게 보였다. 또한 보병들도 어깨에 힘을 줄 수 있는 우익의 싸움에서 큰 대승을 거두었다.
“여기까지 말하면 대승 중의 대승이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불파겐 영지군의 경우 500기의 기병이 투입되었고, 중기병 300기 중 250명 중경상, 50명이 사망했습니다. 든든한 방어구에 기동력 덕분에 중경상이 많았고, 죽은 이가 적었습니다.”
이실레아가 양피지를 고쳐 폈다.
“경기병 200기 중 150명 중경상에 20명이 사망했습니다. 사격전을 많이 해서 사망자가 적었습니다.”
제법 희망적이었다. 불구가 되어도 신성력이면 능히 치료할 수 있어서였다. 하지만 팬크리스 영지군의 피해는 무시무시했다.
“팬크리스 영지군, 정규병 280명 중에 살아남은 이가 고작 50명에 불과합니다. 기사 또한 여덟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비올란트 팬크리스(Violent Fanchris)〉는 그 대목에서 고개를 숙였다. 죽은 정규병 중에서는 근속이 15년이 넘는 베테랑 병사들이 대부분이었다. 15년이나 되었기에 숲에서 오크와 정면으로 〈점숲 지형〉으로 붙을 수 있었다. 또한 위험한 진형에 배치되어야만 했다.
그런 상황이었다.
그 대가는 그들의 죽음이었다. 아래로 숙인 그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보였다.
오우거는 물론이고 그 어떤 악독한 것들을 상대할 때도 능히 앞에서 방패를 들이세울 병사들이 이곳에서 230명이나 드러누웠기 때문이다.
불파겐과 팬크리스 연합군은 사실상 전쟁 수행력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른 곳에서 충원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갈 길은 멀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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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추코! 당양한 의견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