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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를 사수하라! 절대 여기를 내줘서는 안 된다!”
〈점숲 진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금이라도 좋은 진형을 가져가는 것이었다. 뒤에는 큰 나무가 있다거나, 우뚝 솟은 바위에서 장병기나 슬링을 통해서 타격을 준다거나 하는 일은 인간에게 매우 중요했다.
조금이라도 오크 전사들이 자신들의 체중과 힘을 제대로 못 낼 수 있는 지형은 사막에서 수분을 가득 머금은 선인장을 만난 기분을 들게 하였다.
그중에서도 다른 점숲 지형과 호응을 할 수 있는 곳은 실로 격전지였다. 오크들은 전혀 멍청하지 않았고, 그들은 뛰어난 사냥꾼이며, 타고난 전사였다. 조금만 싸워보면 어디가 인간들에게 중요한 곳인지 알 수 있었다.
“아으아얄타!”
눈이 텅 빈 채 피를 줄줄 토해내는 애꾸눈의 오크 전사가 거침없이 바위터에 뛰어들었다. 이미 왼손목이 날아갔고, 무릎 관절은 슬링을 맞아서 무릎에 금이 가 있었다. 몇번이나 명중 당했는지 짓이겨져있었는데, 병사 중에 분명 슬링의 귀신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돌박이 잼〉이 다시 한 번 슬링을 했지만, 몇 번이고 당한 슬링에 또 당해줄 리가 없었다. 물론 완전한 회피는 불가능했는데, 덩치가 매우 커서였다. 단지 급소만 피했다.
“막아라!”
방패병이 몸을 내던지기보다는, 뒤로 뻗고 있는 왼발을 고쳐잡았다. 단단한 말뚝의 존재가 느껴졌다.
쿵!
“큽!”
방패병은 잘 막았으나, 상체가 뒤로 가는 것은 막을 수 없었고, 2열의 병사가 코를 맞고, 신음을 흘렸다. 그 빈틈으로 오크 전사의 오른팔이 우악스럽게 진형 내부로 들어갔다.
오크의 오른손과 장창병의 창이 서로 교차했고, 오크 전사가 고개를 반대쪽으로 기울었다.
스아악!
볼이 찢기며 피가 철철 흘렀다. 하지만 방패병의 투구를 쥐는 데 성공했고, 그대로 잡아당기자마자 방패병이 수수깡처럼 무너지고, 균형을 잃고, 앞으로 기울었다.
방패병은 끔찍한 기분을 느꼈다. 그의 시야가 흔들리고, 금이 가고 돌에 짓이겨진 피범벅이 된 무릎이 흉악하게 다가왔다.
‘미친 오크놈!’
뻐억!
금이 간 무릎을 공격용으로 쓸 정도로 오크 전사들은 터프했다. 그들의 호르몬 분비는 인간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흥분하기 전에 전투불능에 빠지게 만들기는 쉬웠지만, 전투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오크들은 광전사나 다름없었다.
“그아아아아!!!!”
곤죽이 난 방패병을 옆으로 패대기치며 오크 전사가 진형 내로 움푹 들어오려고 했다. 그때 옆에서 오크 전사의 멱을 딴 기사가 옆으로 치고 들어왔다. 오크 전사가 반응하기도 전에 미리 던진 단검이 정확하게 상황을 예견한 것처럼 앞으로 돌고 있는 오크 전사의 힘과 역으로 맞물리도록 쏘아져서는 그대로 아랫배를 깊게 베고 지나갔다.
사아악, 주르륵!
평범한 투척 단검이라도 오크 전사의 힘이 있었기에, 그 반동을 이용했기에 가능한 압도적인 기술이었다.
아무리 잔뜩 흥분한 오크 전사라도 내장이 줄줄 흐르는 탈력감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렇게 또 하나의 오크 전사가 고꾸라지며 입에서 선홍빛 피가 졸졸졸 흘러나왔다.
죽고 죽이고.
전황은 매우 나빴다.
2, 800마리나 되는 부락 하나를 1500 남짓한 병사로 막으려고 한 결과였다.
파직!
우레와 같은 소리는 나지 않았다. 발룬의 전격이 서로 난전을 벌이고 있는 오크들의 후방을 후려쳤다.
“그거극!”
강렬한 한 줄기의 전격은 광범위하지 않았다. 확실하게 오크 전사 하나를 조져버렸다. 초록색 피부는 새까맣게 변했고, 눈썹은 재가 되었으며, 눈의 겉이 타버려 시각이 크게 저하되었다.
“크아아악!!!”
점숲 진형이 무너진 곳에서 오크 전사 하나에 들러붙은 병사 두 명이 단검으로 미친 듯이 오크 전사의 복부를 찌르고 있었다. 오크 전사가 병사 하나를 쌍주먹으로 내려쳐서 쓰러뜨렸지만, 그 사이에 이미 수십 번이나 찔러진 상태였다.
“그거걱!”
쓰러지면서도 오크 전사는 손가락을 마지막 남은 병사의 입에 쑤셔 넣으면서 그대로 턱을 잡아당겨서 탈골 시켰다.
난장판 속에서 불파겐 중기병들은 빠르게 오크들의 뒤통수를 철퇴를 휘두르며 후려갈겼다. 아무리 단단한 두개골을 지녀도 빙글빙글 돌리면서 원심력을 최대한으로 올린 채 묵직한 철퇴에 머리통을 맞고 뇌진탕에 안 걸리는 오크는 없었다.
작게는 균형을 잃거나, 크게는 그대로 기절해서 뒤로 넘어가서 땅에 머리를 부딪쳤다. 재수 없으면 뾰족한 돌에 두개골이 박살이 나야 했다. 오크의 체중이 무거웠기에 그만큼 쓰러지면서 얻는 충격은 강력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도 자갈밭에 앞으로 고꾸라지면 앞니가 박살이 나는데 오크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쑤욱!
이실레아의 특수장검이 그대로 투척되어서 비전에 실패한 노기사를 도왔다. 장검은 날카롭게 오크 전사의 오른쪽 어깨를 명중했고, 마무리하려는 오크 전사의 도끼는 허공을 갈랐으며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노기사에 의해서 뱃가죽을 지나며 심장을 찌르는 찌르기에 그대로 당했다.
발룬이 쓰러진 오크 전사를 밟고, 이실레아가 능숙하게 박힌 특수 장검을 뽑아냈다.
파직! 파직!
이실레아의 몸에 전격이 으슬으슬 퍼져나갔다. 발룬이 많은 힘을 사용하는 동안 계속 타고 있어서였다. 〈마법 방어〉의 장신구가 힘을 다했다는 뜻이기도 했는데, 고블린 주술사가 만든 것이라 어쩔 수 없었다.
발룬에게서 내린 이실레아가 발룬의 엉덩이를 치며 말했다.
“최대한 휩쓸고 다녀!”
“꾸엉!”
팬크리스 영지군의 정면은 순식간에 승기를 잡았다. 양쪽으로 헤집혀지는 오크들은 앞으로 도끼를 휘두르다가 뒤에서 철퇴를 맞고 휘청거렸고, 중기병을 옆에서 덮치려다가 창에 찔리며 데굴데굴 굴러야 했다.
반면, 팬크리스 영지군의 우익은 계속해서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계곡을 넘고, 경기병의 화살 세례를 받았던 오크 무리가 우회 타격을 감당했기 때문이고, 강하게 부딪치지 않기 위해서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헉! 헉! 그학.”
오크 전사 하나가 지쳐서 쓰러졌다. 화살과 창으로 인한 잔상처가 온몸에 가득했고, 털가죽은 여기저기 찢겨서 너덜너덜했다. 그의 지친 눈이 천천히 뒤로 움직이는 인간 병사들로 향했다.
‘지치지도 않는 건가?’
강하게 부딪치고, 또 부딪치고 더 강하게 부딪쳤다. 허벅지의 근육이 조금만 힘을 줘도 당겨올 정도로 과부하 걸려서는 앉자마자 쥐가 걸려서 지근지근했다.
반면 인간 병사들은 거친 숨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오크들이 한 걸음 내달려서 돌진하며 부딪칠 때 그들은 강하게 한 번 막고, 물러나며 온몸의 근육을 이완시켰고 오크들은 그런 것 없이 계속 부딪쳐와서였다.
완급조절에 실패한 복서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게 오크 전사들이라면, 인간 병사들은 이러한 대치 상황에서 오히려 오크보다 우월한 지구력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전술의 차이라고 명백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공격하기보다는 방어하고, 맞서 싸우기보다는 뒤로 물러나서 공간을 적에게 내어준다. 하지만 결코 전투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냉병기 시절, 단 1%의 전술가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사상을 이곳의 병사들은 100% 끌어낼 수 있는 전술역량을 가지고 있었다.
종족을 뛰어넘은 다른 적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보통 인간과는 정신적으로 강인하게 무장될 수 있다는 점도 이곳 인간들의 장점이었다.
우익의 팬크리스 영지군과 오크 무리의 싸움은 사망자 하나 없을 정도로 기괴한 싸움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만큼 인간 병사의 전술역량이 뛰어나다는 뜻이기도 했고, 오크들의 전술 패배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잔상처로 가득한 오크들의 활동성이 줄어들수록 그것은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미 끝난 싸움이나 다름없었기에 표면화되어도 꿇릴 게 전혀 없었다.
천천히 뒤로 갔던 인간 병사들이 이제는 천천히 앞으로 향하면서 오크를 장병기로 괴롭혔다.
“개놈들이!”
오크가 도끼로 쳐내다가 화딱지가 나서 덤비면 그쪽에 있는 병사들만 뒤로 빠졌고, 단번에 오목해진 진형 속에서 창이 최대 6자루가 튀어나와 오크 전사에게 치명상을 가했다.
“하야아아!”
뒤로 빠졌던 방패병이 달려들어서 방패로 거침없이 오크의 무릎을 후려쳐서 꿇리고, 입안으로 검을 쑤셔 넣거나, 도끼를 이마에 박아넣었다.
우익의 오크들이 삽시간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진이 빠진 오크 전사들은 결코 전과 같은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다.
강한 적에게는 강하게 상대하지 말고 지치게 만든 뒤에 타격한다는 전술의 정석이 드디어 빛을 발했다. 기사들 또한 진형을 벗어나서 오크들을 손수 죽이며 병사들의 사기를 크게 드높였다.
와아아아아!!!!!
그 함성은 드낙에게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워낙 소란스러웠기 때문이다.
“그악! 그아아! 그아아아아!!!!”
오크 전사가 미친 듯이 드낙의 등에 도끼를 박아넣었다. 하지만 단번에 균형이 무너졌는데, 발목이 어느새 잘려있었다. 쓰러지는 곳으로 검이 지나갔는데, 절로 오크의 목이 깊게 베여서는 피가 쏟아져나왔다.
스거억, 콸콸콸!
허무할 정도로 깊게 잘 베인 이유는 단연코 오크의 체중이 쏠려서였다.
자신의 체중이 단두대 역할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쉬운 기술은 아니었다. 비전이라 불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흉악한 조건들을 만족해야 했고, 상황을 만들어야 했다.
비록, 드낙의 괴물 같은 신체능력이 발목을 잘라내어서 쓰러지게 만들었다고 해도 체중을 이용해서 상대의 신체를 부드럽게 베는 광경은 보기 드문 광경일 수밖에 없었다.
“죽어라! 좀! 죽어어어어!!!!”
오크 전사 하나가 도끼가 드낙의 등에 박힌 채로 뽑히지 않자, 괴성을 지르며 허리를 팔로 감아서 그대로 냅다 꽂아버렸다. 완력이 강하다고 해도 체중이 오크보다 적은 드낙은 그대로 들어 올려졌다.
쿵!
목에 힘을 줘서 턱을 몸쪽으로 최대한 숙였기에 머리나 목이 땅에 부딪히지는 않았지만, 큰 충격이 드낙의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투구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그것은 서로 엉켜지면서 살조각이 되기도 했고, 찢긴 내장처럼 보이기도 했으며, 새파란 핏줄 같은 조각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 빌어먹을!”
그럼에도 드낙이 움직이며 재수 없게 꺽인 오른팔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에 오크 전사들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질린 표정을 짓거나, 겁을 먹은 오크 전사는 없었다.
콰득!
투척 도끼가 일어서려는 드낙을 다시 한 번 넘어뜨리고 오크가 우악스럽게 드낙의 오른 뒷다리를 잡아서 도끼로 내려치려고 했는데, 활처럼 휜 롱소드가 손목을 베어냈다.
푸화학! 깡!
피가 튀는 광경 속에서 검 끝이 팽팽하게 튀어 올라서 위협적으로 도끼를 쳐냈다.
오른발에 왼손이 들러붙은 채로 드낙이 뒤로 구르면서 거리를 벌리며 겨우 일어섰다.
동물기름과 동물지방이 전신갑주에 가득 들러붙어서 검게 타버리며 마지막 남은 불씨가 사그라들었다.
“콜록! 케에엑!”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드낙이 안에 것을 토해냈다. 매캐한 연기를 계속 들이마셨기에 위장 안에 있던 것이 올라오며 검은 잿가루를 함께 토해내서 검은 가루가 가득한 토사물이 바닥에 쏟아졌다.
“흐읍!”
오크 전사가 오로지 힘으로 드낙의 뒤를 잡았다. 불이 모두 사그라들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히려 전신에 불이 잔뜩 타올랐기에 박투를 회피할 수 있는 점 또한 있었다.
서걱!
그 순간 속에서도 전초극의 오른팔은 뒤를 덮친 오크 전사의 오른팔을 말끔하게 잘라냈다. 피를 쏟으면서도 드낙이 쓰러졌다.
“머리를 쳐!”
그 소리에 누구보다도 먼저 반응한 것은 드낙이었다. 오크 언어를 들을 수 있어서였는데, 왼팔이 목을 보호하며, 손가락이 안으로 들어가며, 엄지가 밖을 단단히 잡았다.
“이익!”
체격이 적어서 쉽게 투구를 빼낼 수 있다고 여겼지만, 힘으로는 오크도 드낙에게 상대가 되지 못했다.
“비켜!”
오크 전사가 투구를 잡아당기는 오크 전사를 밀치고 그대로 도끼를 투구에 박아넣었다. 단단히 투구를 잡던 오크 전사가 밀쳐졌으니, 고개를 움직일 수 있게 된 드낙이 고갯짓을 했고, 도끼는 투구를 치고 빗겨갔다.
“걱.”
드낙의 강철로 뒤덮인 손이 있는 힘껏 도끼를 내려치며 상체가 굽혀진 오크 전사의 입에 쑥하고 들어갔다.
부욱!
턱이 말끔하게 뜯겼다. 말도 안 되는 완력이었다. 혀가 아래로 축 늘어지며 피가 쏟아져나오더니 오크 전사가 뒷걸음질 쳤다.
그 피를 모두 받은 드낙이 팔꿈치로 뒤를 단단히 잡은 오크의 턱을 쳤다. 그제야 제대로 일어날 수 있었다.
‘시발.’
머리가 지끈거렸다. 전신갑주에 불에 타면서 내부 온도가 급격하게 늘어났고, 끔찍한 화상의 고통을 경험해야 했다. 미친 듯이 활활 타오르는 가마솥에서 타죽는 경험이나 다름없었다.
“퉷!”
입에서 탄내가 가득했고, 잿가루가 끝도 없이 침에서 개 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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