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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cm가 넘는 길이를 지닌 헤비 랜스는 투척할 수 없는 랜스였다. 속이 빈 나무로 된 라이트 랜스나 속이 꽉 찬 나무로 된 라이트 랜스와는 격이 다른 무게를 지녀서였다.
이런 헤비 랜스는 수많은 단점을 지녔다.
헤비 랜스는 여러 번 사용할 수 없었다. 한 번 찌르면 손에서 놓아야 했고, 회수하려고 한다면 낙마하는 게 정상이었다. 몇몇 비숙련자는 헤비 랜스를 찌름과 동시에 반발력을 버티지 못하고 낙마한다.
오크조차도 헤비 랜스를 적에게 찔러넣고, 회수할 수 없었다. 길이가 4m나 되는 무식한 길이를 지녔기 때문이다. 무게가 아무리 가벼워도 부러뜨리지 않는 이상, 온전하게 회수하는 방법은 없었다.
버티는 힘과 기술을 터득해야 했기에, 중기병 기수는 타고난 신체와 요령이 필요했다.
불파겐 영지가 풍족한 철을 지녔음에도 단 300기의 중기병을 배출해낸 이유가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장비는 많아도 인재를 찾기 힘들었다. 왜냐하면 불파겐 영지의 인구 대다수가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덩치가 그리 크지 않아서였다.
이주민이 이주를 결심할 만큼 그들의 상황은 안 좋았다.
게제라스가 지닌 육중론의 보이지 않는 단점이기도 했는데, 궁핍한 자들만 많이 받아들였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3왕자 길게이 플래티넘의 유입으로 희석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
두두두두.
느긋한 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씽씽 내달렸지만, 말 또한 체력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덕에 중기병들은 천천히 접근하고 있었고, 그런데도 무게가 무게인지라 발굽 소리는 대단했다.
‘엄청나네.’
이실레아는 드낙이 쌓아올린 오크의 시체언덕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중기병 300기가 피해를 준 오크보다 많아 보여서였다.
“도끼 투척 준비!”
중기병이 오는 방향으로 오크 전사들이 고개를 돌렸다. 그만큼 고슴도치처럼 헤비 랜스를 이곳저곳으로 겨누고 있는 중기병들이 모여서 만든 모습은 위압적이었다. 단번에 오크 전사들이 시체 언덕을 오르다가 내려왔다.
물론 다른 곳에 있는 오크 전사들의 관심도 중기병들에게로 옮겨갔다. 언덕 덕분에 도끼를 던질 사격각도 잘 나왔다.
‘쯧.’
이실레아는 혀를 차면서 곁가지를 치듯이 방향을 계곡 위로 옮겨갔다. 내리막길로 시작하기보다는 오르막길을 충분히 오르고, 오크를 치면서 내려갈 생각을 가졌다. 주변에 나무와 수풀이 제법 있었지만, 이 주변의 땅 높이를 최대한 고르게 하고, 나무뿌리도 찍어서 빼내는 등의 작업을 했기 때문에 돌진에 어려움은 없었다.
보이는 나무만 잘 피하고, 수풀은 짓밟고 지나가면 그만이었다.
중기병들이 계곡 위로 방향을 틀면서 오르자, 오크 전사들은 모든 준비를 마치고 기다렸다. 그 숫자는 200마리가 넘지는 못했는데, 워낙 덩치가 커서였다.
같은 공간에서도 많이 모이지 못했다.
“크악!”
또한 중기병과의 대치 상황에서도 오크들의 뒤에서는 소란이 일어났다. 손목 하나가 언덕의 꼭대기에서 날아가서 투척 도끼를 준비하던 오크의 검은 머리카락에 쑥하고 손가락이 박혔다.
“지랄.”
오크 전사가 분노를 억누르고 머리에 힘없이 들러붙은 손을 잡아서 바닥에 내던졌다. 무엇보다 뒤에서는 강철을 두른 인간 놈의 고통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불타는 동물 기름으로 범벅이 되었음에도 〈방어마법〉을 지닌 것처럼 제법 오래 버티고 있었다.
〈대전사(大戰士)〉 같은 오크가 있었기에 〈화염 동물기름 슬링〉이 존재했다. 젤리처럼 응고된 동물지방에 기름을 묻혀서 투척하는 식이었다. 지방에도 기름이 잔뜩 있는 게 당연했기에 고소한 냄새마저 풍겨왔다.
“온다! 최대한 산개해! 멍청하게 당하지 말고!”
오크 전사들은 서로 자신만의 회피 거리를 벌렸다. 인간이 기병을 상대하는 것과는 체계와 방식 자체가 달랐다. 한 마리, 한 마리가 중기병 한 기는 낙마시키거나 말을 죽이고 회피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전사들의 집단이었다.
뭉쳐서 상대하기보다는 흩어져서 상대하는 게 더 자신의 실력을 펼치기 좋았다.
“좌로 겨누어엇!”
따닥. 타다다닥.
강철로 이루어진 랜스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랜스는 좌로 겨누었지만, 우직하게 직선으로 내려갔다.
이실레아가 천천히 내려가며 외쳤다. 그녀는 라이트 랜스도, 헤비 랜스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특수한 장검 한 자루뿐이었다. 부무장으로 레이피어와 대거를 부무장으로 혁대에 차고 있었고, 발룬의 옆구리에는 짧은 투척창이 여러자루 있었다. 또한 특수한 장검의 검집도 발룬의 반대편 옆구리에 딸려있었다.
뭔가 주렁주렁 달고 있었지만, 발룬은 크게 무거워하는 눈치도 아니었다.
헤비 랜스를 왼쪽으로 겨눈 것은 잘못된 선택으로 볼 수 있었는데, 오른손잡이가 대부분이었고, 왼손잡이도 오른손으로 랜스를 겨누고 있어서였다. 이것은 〈주된 눈〉이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서 왼손잡이도 능히 오른손잡이 군대에 속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천천히! 천천히! 누가 속도를 내나!”
곳곳에서 속력을 맞추기 위해서 노력했다. 말들은 개체마다 성격이 다 달랐고, 보폭마저 달라서 매우 주의해야 했는데, 똘똘 뭉쳐서 내려오고 있어서였다.
멀리서 보면 굼벵이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 덕에 오크의 기세는 처음 중기병의 등장과는 다르게 폭발적이지 못했고, 몇몇 오크 전사는 다시 몸을 돌려서 언덕 위로 돌아가 버렸다. 그곳이 더 전투적으로 보여서였다.
보통 평지라면 50걸음에서 속도를 냈겠지만, 계곡을 내려가며 오크들의 곁가지를 치는 수준이었기에 이실레아는 우직하게 천천히 움직였다.
선공은 오크 전사들의 투척 도끼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이실레아가 마법을 사용했다. 제국 전신갑주는 아니었다. 구성 마법을 보고 이내 포기해서였다. 마력을 다른 전신갑주보다 많이 담을 수 있어도 전쟁에서 활약하기 힘든 마법이어서였다.
제국 전신갑주와 파이룬 얼음 전신갑주를 두 벌이나 들고 다니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인간들과 있을 때는 제국 전신갑주를 보여주며 은근히 자랑했지만, 오크와의 전투에서는 파이룬 전신갑주를 착용했다.
“〈솟구쳐오르는 빙산(Rising Iceberg)〉.”
그녀의 눈길이 강하게 새겨진 곳에서 빙산이 솟아올랐다. 투척 도끼의 절반이 넘게 그곳에 틀어박혔다. 좌측으로 랜스를 겨누었음에도 정직하게 직선으로 내려왔기에 투척 도끼가 모였기에 가능했다.
“좌로 움직여 돌파!”
“좌로 움직여 돌파!”
투척 도끼를 한 번 막고 나서 빙판에 가까이 간 다음에 그대로 이실레아가 머리를 돌렸다. 거리는 불과 30걸음에 불과했고, 그때 이실레아가 발길질을 발룬의 옆구리에 했고, 발룬이 우렁차게 소리를 지르며 누구보다 먼저 내달렸다.
“꾸우엉!”
흙이 패일 정도로 힘이 대단했다. 거기에 내리막길, 미친 듯이 질주하는 큰 덩치를 지닌 사슴은 오크 전사들의 관심을 끌 만했다.
스슥!
이실레아의 발놀림에 발룬이 벼락을 좌측을 향해 넓게 퍼뜨렸다. 주술 도기가 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파자자자작!
광범위였기에 오크 전사들에게 피해는 주지 못했지만, 적극적 태도를 위축시켰다. 동시에 다수 마법 〈교차하는 결빙 구역(Crossing Frost Zone)〉이 3번 모두 사용됐다. 전신갑주에 있는 마력이 모조리 동났다.
큰 혹한이 불어닥쳤고, 주변 곳곳에 얼음 송곳이 튀어나왔다. 오직 중기병이 달릴 곳을 제외하고, 무던하게 퍼진 다수 마법은 오크 전사들을 방해하고, 발에 얼음이 돋아나며 상처와 동상을 입혔으며 강추위가 오크들이 던지는 투척 도끼의 명중률 또한 저하했다.
터더더덩!
힘이 워낙 대단해서 마갑이 아주 두꺼운 발룬은 투척 도끼를 맞으면서도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대신에 투척 도끼가 많이 박힐수록 둔해졌고, 이실레아는 몸을 최대한 숙이며 장갑이 얇은 곳을 보호했다.
퍽!
“흐윽.”
눈먼 도끼가 내달리는 와중에 이실레아의 무릎을 치고 지나갔다. 박히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지만, 큰 고통이 따라왔다.
그 사이에 중기병들이 오크 전사들의 진형을 정면돌파하지 않고, 좌측으로 지나가며 돌파를 시작했다.
후우웅, 퍽!
길이가 워낙 길어서 도망치는 오크 전사도 있었지만, 맞는 오크 전사가 더 많았는데, 생각보다 중기병의 헤비 랜스 컨트롤이 좋아서였다. 용감하게 나서는 오크 전사 중 10에 9은 무조건 얻어맞을 정도였다.
기술이 대단히 뛰어난 이실레아를 상대로 헤비 랜스 차징 연습을 했기에 그것보다 더 크고 기술이 조금 낮은 오크 전사를 맞추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웠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실레아의 전술로 첫 투척 도끼를 피해서 기세도 오르고, 다수 마법을 통해서 오크들의 대응이 늦춰졌으며, 발룬의 단기돌격으로 어그로도 끌려서 중기병들의 사기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기 때문에 본 실력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었다.
본래라면 반반싸움이 될 수도 있는 것을 이실레아는 전술과 마법 그리고 자신을 통해서 강제로 승기를 휘어잡았다.
대전사의 부재가 만들어낸 그림이기도 했는데, 이실레아가 혼자 덤빌 정도로 오크 전사들 중에 인물이 없어 보였다. 또 드낙이 영물 발룬을 그녀에게 빌려줘서이기도 했다.
이 세상에서 한 명에게 올인하는 것보다 나누는 것이 더 전쟁에 쓸모가 있었다.
퍽!
“읍.”
물론 오크 전사들은 당하고 있지만 않았다. 얼음 송곳에 발이 찔리든 말든 회피하고, 내달리는 오크 전사도 많았다. 그들이 쏜 투척 도끼는 기수의 옆구리에 박혔다.
독기에 찬 눈으로 옆구리에 투척 도끼가 박혔음에도 중기병은 말 고삐를 팔뚝에 두른 채로 계속 나아갔다.
깡!
“헉!”
아슬하게 투구에 큰 충격을 주며 지나가는 투척 도끼도 있었다. 맞은 중기병은 전율하며 고개를 숙였다. 절로 위축되며 결국 랜스로 누구 하나 찌르지도 못했다.
몇몇은 가득 긴장해서 헤비 랜스를 찔러넣고, 반발력을 이기지 못하거나 그 타이밍 혹은 감각을 잊어버려서 낙마하기도 했다.
“억!”
오크 전사가 무기를 버린채 네발로 달리며 헤비 랜스를 기민하게 회피하며 말과 충돌하기도 했다. 옆치기에 약한 것이 사족보행이라 형편없이 함께 나뒹굴었다. 말의 무게에 짓눌린 기수는 내장이 파열되었고, 오크는 말의 뒷말에 재수없게 걷어차여서 눈이 함몰되어 피를 쏟아냈다.
“그, 크아아아아아아!!!!”
소리를 지르는 오크의 어깨에 헤비랜스가 투박하게 박혔다.
“거헉.”
수백의 오크가 헤비 랜스에 관통 당하여 전투불능에 빠졌다. 4미터가 넘는 강철 작대기가 몸에 박힌 채 움직일 수 있는 오크는 매우 드물었다. 길이가 너무 길어서 이리 휘청, 저리 휘청거리며 갈피를 못 잡았다.
“그악!”
“이런 빌어먹을!”
“왜 이쪽으로 피해!”
무엇보다 길이가 길어서 서로 회피를 하다가 겹쳐진 오크가 두서 마리가 하나의 헤비 랜스에 꿰뚫리기도 했다. 터프한 오크 3마리는 깔끔하게 몸을 관통당한 상황에서도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무식한 놈들이었다.
그 때문에 전술적 조건에서 압승한 이실레아가 이끄는 중기병들도 큰 피해를 입어야했다. 이들이 오크를 좌측돌파하고 지나갔을 때, 100여 기가 사라져있었다.
‘끔찍하구나.’
이실레아는 가슴이 도려낸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되돌아갈 수는 없었는데, 그만큼 피해가 커서였다. 고작 300기의 중기병으로 수백 마리가 넘는 오크 전사들을 돌파한 대가였다.
정면으로 치고 간 것도 아님에도 이 정도였으니, 정면으로 들어갔다면 이것보다 더 심했을 것이다. 적어도 한쪽 방면으로는 오크가 없었기에 다행이었다.
“철퇴 들고, 팬크리스 영지군을 돕는다!”
이실레아가 명령하자 랜스가 떨어지는 소리가 몇몇 들렸다. 겁먹은 기수가 쓰지 못한 해비 랜스들이었다.
철퇴를 들고, 중기병들이 정면을 향해서 질주했다. 그들의 눈에 50기의 경기병이 팬크리스 영지군의 정면으로 치고 나오며 오크들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푸히히힝!
오크 전사가 몸통 박치기로 경기병이 탄 말을 옆으로 쓰러뜨리고 있었다. 나뒹구는 기수는 먼지 속으로 사라질 정도로 종잇장처럼 굴렀다.
‘영주님은 조금 더 버틸 수 있으시겠지.’
드낙을 한 번 도왔으니,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팬크리스 영지군의 정면이 너무 위태로웠기에 그곳으로 향해야 했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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