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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푹길 부락〉은 산과 숲을 즐기며 이동했다. 이들의 숫자는 물경 2, 800마리로 그 병력은 실로 대단했다.
평범한 오크의 가을 정도 수준이었다.
나무와 수풀,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오크 또한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녹색 물결은 실로 장관이었다.
그것은 기이한 감성을 만들어내는 풍경이기도 했다.
자연과 가장 잘 어울리는 종족이 오크였고, 그 때문에 전쟁을 하러 왔음에도 감탄하게 만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 멋진 풍경화를 보는 인간들은 그 아름다움을 보지 못했다.
〈대전사 크후비 크훈(Khuvi khun, 변덕스러운 갈대)〉가 느긋하게 산의 능선을 지나며 산의 풍경을 구경했다. 저글링을 하듯이 투척 도끼를 여럿 꺼내서 던지며 받기도 했는데, 그만큼 여유로웠고, 평안했다.
최고의 포식자의 여유로움이었고, 오크 전사가 이만큼이나 모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들의 뒤로 이어지고 있는 콥고블린의 보급로도 오크 전사들의 숫자만큼 길었다.
졸졸졸.
계곡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흐르는 곳에는 나무를 베어서 만든 둑이 있었는데, 누더기 천도 여럿 놔두어서 만들어진 만큼 위태로워 보였고, 조잡했다.
본래 흐르는 것보다 대단히 적게 흐르고 있는 계곡의 양옆의 한쪽은 가파르고, 한쪽은 능선이었다. 능선의 뒤편에는 이실레아를 비롯한 기병이 기습할 준비를 마치고 대기하고 있었다.
팬크리스 영지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실레아는 침을 손가락에 묻혀서 높이 들어 올렸다. 바람은 역풍이라 냄새는 오크들에게 닿지 않을 것이다. 단점이라면 화살의 파괴력이 낮아진다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큰 상관이 없었다.
‘어떻게 오크들이 이곳으로 오는 줄 아셨던 것이지. 영문을 모르겠네.’
이실레아는 드낙의 정보에 대해서 깊은 의심을 하게 되었다. 결코 알 수 없는 게 정상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 빈도도 괴이할 정도로 빨랐다.
3일의 거리에 있는 곳의 소식을 듣기 위해서는 미리 보내놨다면 3일, 그것에 대해서 반응을 한다면 또 3일이 걸려서 총 6일이 걸린다. 미리 보내지 못했거나 정보원이 죽는다면 그것보다 더 오래 걸리게 된다.
오크와 인간의 전쟁에서 더더욱 정보를 얻는 건 힘들었는데, 종족이 달라서였다. 첩자, 간첩 같은 게 통하지 않았다. 잡히면 노예 혹은 죽음이다.
‘어떻게?’
이실레아는 드낙이 지닌 힘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지만,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예언, 마법을 통한 기적? 점성술? 다양한 것들이 샘솟았다. 밤마다 하늘을 바라보는 드낙의 모습은 점성술에도 조예가 있게 여겨졌다.
‘못하는 게 없지만, 때때로 빈틈을 보이기도 한다. 이상한 인물이야.’
양파처럼 까도 까도 그 능력이 마를 날이 없지만, 썩은 양파조각도 보인다는 점이 특이했다.
질끈.
이실레아는 강철글러브의 조임새를 강하게 조이며 생각을 그만두었다. 곧, 전투가 시작된다. 이번 회전은 드낙이 장소를 지정했고, 이실레아가 전술을 펼친 곳이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회전이었다.
“꾸우.”
〈벼락사슴 발룬〉이 특수제작된 갑옷이 불편해서 소리를 내며 이실레아에게 칭얼거리듯이 뿔을 전신갑주에 대며 긁었다. 그녀는 조금도 휘청거리지 않고, 부드럽게 그 체중을 다른 곳으로 옮기며 머리에 주먹을 꽂아넣었다.
“켕!”
은근히 뿔이 엉덩이를 건드려서였다. 입꼬리를 올렸던 발룬이 혀를 깨물며 격하게 반응했다.
“얌전히 있어야지.”
이실레아는 한 번 쥐어팬 뒤에 턱을 긁어주며 말했다. 그제야 발룬이 큰 눈망울을 데굴데굴 굴리며 눈치를 보는 것도 잊고 기분 좋아했다. 맷집이 하도 대단해서 몇 번 후려쳐도 기분이 별로 상하지 않을 정도로 터프한 신체능력을 갖췄다.
“오크들이 계곡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감히 산에서 오크를 습격할 것이라곤 여기지 않겠지.”
계곡을 선택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둑을 지어서 흐르는 물을 줄인다면, 능히 내달릴만했다. 건조한 가을이라 돌들도 바짝 메마르고, 수초도 남김없이 바삭바삭해져 있었기에 미끄러질 염려도 없었다.
“우리의 목적은 허리를 끊고, 그대로 내려가면 된다. 아래에는 팬크리스 영지군들이 추적해오는 오크들을 막아줄 것이다. 나는 그때 홀로 남아서 되돌아갈 것이고, 너희는 흙먼지를 자욱하게 내며 우회하는 모습을 보여줘라.”
“예!”
간단하게 이실레아가 다시 한 번 전술토의를 했다. 시작의 물꼬를 틀어야 하는 만큼 기병의 책임이 막중했다.
“진형은 어떻게 잡습니까?”
미리 약속된 진형이었지만, 다시 한 번 부관이 그녀에게 물으면서 각인시켰다. 두 번, 세 번 말하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그렇게 말해도 못 알았어 먹고 까먹는 자들이 있어서였다.
“〈전후방 교체 쐐기 진형〉으로 간다.”
고차원적인 기병 전술이 튀어나왔다. 일종의 기만전술이기도 했고, 상대가 아군의 전력을 잘 모를 때 쓰는 진형이었다. 가볍고, 기동성이 좋은 경기병은 언제나 기병 진형의 물꼬를 트는 핵심이었기에 가능한 전술이었다.
‘중기병은 여기서 힘들지.’
불파겐의 중기병은 경험이 적어서였기에 중기병 주도의 고차원적 전술 행동을 계곡에서 하는 게 어려웠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땅도 고르지 못해서 달리는 것만으로도 힘겨워할 것이 분명했다.
경기병의 경우는 마적 출신이고, 말이 짊어진 것이 적어서 능히 선봉에서 전술 행동을 적극적으로 펼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전후방 교체 쐐기 진형〉은 선택될 수밖에 없었다.
“마이락! 선봉을 서고, 경기병들을 통솔해라!”
“예!”
〈경기병장(輕騎兵長) 마이락〉이 얼른 대답했다. 그는 바세안 토성 출신자로 다양한 전술 훈련에서 두각을 보였고, 이실레아가 경기병들을 통솔하는 자리로 그를 중용(重用)했다.
시작은 기병인 것처럼 보였지만, 드낙이 이런 날에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살성(殺星)〉을 획득하며 얻게 된 업으로 중립신은 그에게 〈전초극(戰超克)의 오른팔〉을 내어주었다.
없는 살림에 양복 시원하게 맞춰준 것이다. 궁핍했지만, 가난하게 살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는 구질구질한 짓거리였지만, 그게 아니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가파른 계곡 쪽에서 드낙이 모습을 드러내며 고함을 크게 내질렀다. 이미 멀리 있지만, 살성의 빛무리가 그에게 내려오며 드낙은 결코 낼 수 없는 흉흉한 기세를 내뿜었고, 오크들의 고개가 단번에 돌려졌다.
“무시무시한 외침이다.”
호전적인 오크는 무조건 멈출 수밖에 없었다. 드낙이 거침없이 절벽과도 같은 곳을 주르륵 내려오자 오크들이 무기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은 대전사인 크후비 크훈에게로 향했다.
“그하하하하!! 단기 돌격이라, 반드시 주변에 매복병이 있을 것이다! 흩어져서 놈들을 확인하라! 그리고 저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은···내 몫이다!!!”
덩치가 큰 멧돼지를 타고 대전사가 그대로 내달렸고, 오크 전사들은 너도나도 비켜섰다. 그리고 툴툴거리며 약한 놈들은 알아서 주변으로 퍼지며 인간들을 찾았고 나머지는 빠르게 대전사를 따라갔다.
강을 건넌 오크 전사들은 드낙에게서 일찌감치 손을 뗐다. 다른 오크 전사들이 달려가는 폼을 보니 팔 하나 뜯기도 어려워 보였다.
“근처나 뒤지자고.”
대전사도 눈이 돌아갔는데, 정남쪽으로 내려친 오크 주력 4만은 한 번도 제대로 싸워보지 못해서였다.
두두두두.
그제야 땅이 진동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크 전사들의 귀가 꿈틀거리고, 고개가 계곡 위로 올라갔다. 일단의 경기병이 우루루 몰려오고 있었다. 이들은 벌써 활시위를 당겨서 높은 곳으로 화살을 쏘았다.
보통 화살 사거리보다 200걸음이나 멀었지만, 지대가 높은 곳에 있었기에 능히 오크가 있는 곳에 닿았다.
“새끼들!”
날아오는 화살을 놀라운 동체 시력으로 잡아챈 오크 전사가 그것을 부러뜨리며 미소를 지었다. 벌써 입에 침이 고였다. 피난민을 구워 먹은 적이 있어서 인간 고기의 맛을 알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응사해!”
“숨을 곳도 없는데 무슨 응사! 능선으로 올라간 다음에 화살을 쏴!”
오크는 두 부류로 나누어졌다.
끼기긱, 핑!
바로 화살을 쏴서 경기병의 얄팍한 방어력을 뚫고 피해를 빠르게 주는 곳과 전술적으로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 능선 위쪽을 선점령하고 후사격하는 곳으로 나누어졌다.
경기병 200기의 화살 세례가 먼저 시작되었기에 바로 응사를 하던 오크들도 이내 빠르게 태세전환을 해서 능선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공간이 생겼고, 경기병들은 능선 위로 올라간 오크 전사들에게 방향을 서서히 틀었다. 그 모습에 오크 전사들 500마리가 자신들 쪽으로 돌진할 것이라 여겨서 더더욱 화살을 쏘지 않고, 나무를 베어 장애물을 단번에 만들기 시작했다.
힘이 장사인 오크가 많았기에 금방 세 겹, 네 겹 통나무가 올려졌다. 그 과정을 보며 경기병은 다시 말머리를 돌려 계곡강의 건너편으로 향하였다.
“놈들이 포기했다! 화살을 쏴라!”
오크 전사들이 단번에 장애물 밖에 몸을 훤히 드러내서 활시위를 다시금 당겼다. 화살이 정확하게 쏘아졌는데, 마치 망처럼 경기병들이 향할 곳을 노렸다.
“느리게!”
“느리게!”
100걸음까지 내달리던 경비병들이 순식간에 속도를 늦추면서 서로 간의 간격을 넓혔다. 화살 대부분이 예측 샷이었으므로 허무하게 땅에 박혔고, 몇몇 화살은 경기병들의 넓은 간격으로 떨어져 내렸다.
속도가 느려진 경기병들 때문에 메마른 강가에서 피어오르던 흙먼지 속에서 발룬을 비롯한 중기병들이 튀어나왔다.
“경기병들은 좌익에 장애물을 쌓은 오크들에게 사격을 개시하며 내려가라! 중기병은 나를 따른다!”
“와아아아아!!!!”
중기병 중 몇몇은 라이트 랜스를 쥔 손의 반대편으로 허리를 기울면서 앞으로 나아가며 튕겼다. 라이트 랜스가 단번에 올라서며 라이트 랜스에 묶인 삼각깃이 휘날렸다가 다시금 천천히 내려왔다.
300기에 달하는 중기병의 규모는 흙먼지 때문에 아직 자세히 알 수 없었는데, 경기병들의 무리 중 후미에 있는 말꼬리에 짚단이 무성하게 있어서였다. 흙을 잔뜩 넣어서 아직도 흙먼지가 거세게 나오고 있었다.
바람 또한 기병의 진행방향과 반대되었기에 중기병들의 모습은 아주 잘 가려졌다. 그 덕에 경기병들이 교차하면서 중기병과 위치교환을 하며 완전히 떨어질 때까지 중기병의 정확한 규모가 숨겨졌다.
“후미에 강철 기병이 따라붙었다! 역전하여 대응해라!”
대전사가 거세게 명령을 내렸다. 이미 허리는 끊어져 있는 상태에서 그 빈공간을 통해서 손쉽게 경기병과 중기병이 나누어졌고, 경기병은 계곡을 건넌 오크에게 사격을 하며 빠르게 도망치고 있었다.
쿠구구구!
드낙의 반대편으로 반전하려는 오크 전사들을 드낙이 가만히 놔둘 리가 없었다.
흙의 골램이 모습을 드러내며 단번에 토사물을 토해냈다. 오크의 체중으로도 밀릴 정도로 골램이 여럿 튀어나와서 흙으로 이루어진 몸으로 오크 전사들을 방해했다.
‘모조리 내가 죽인다!’
드낙의 눈이 검은 탐욕으로 물든 채로 수많은 공격 마법을 사용함과 동시에 대전사와 격돌했다.
투척 도끼로 저글링을 하던 대전사, 크후비 크훈은 싸움법이 매우 부드러웠고, 변칙적인 대전사였다. 들고 있는 도끼도 다른 오크 전사들이 든 도끼보다 짧았고, 그 대신에 도끼날 부분이 더 길고 넓었다.
“실력 한 번 보자! 만용의 전사!”
크후비 크훈이 오른손에 든 도끼를 허공으로 던지면서 양손으로 투척 도끼를 여섯 자루를 단번에 투척했다. 여섯 자루는 서로 간의 간격이 매우 좁았지만 향하는 방향은 던져지는 거리가 멀어질수록 크게 차이가 났다.
탁!
허공에 던진 도끼를 대전사가 다시 받아내며 멧돼지 위에 발 하나를 척 올리며 언제든지 자세를 바꿀 수 있도록 만들었다. 기사의 기술을 경계하는 모습이었고, 다채롭게 변화하는 자세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상대가 공격에 너무 힘을 투자하지 않도록 견제도 했다.
상대의 회피법이 여러 개인데 온 힘을 다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따다다다당!
드낙은 상중하단, 좌우 상관없이 쏘아진 투척 도끼를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쳐내었다. 동시에 기이한 기분 또한 맛보았다.
‘이게 전초극(戰超克)의 오른팔이 지닌 힘.’
생각하는 것보다 앞서나가는 오른팔의 신경과 근육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
짜릿하다? 아니.
‘불쾌하다.’
마치 자신의 의지로 게임을 하는 게 아니라, 프로그램을 써서 억지로 승리를 가져가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승리하는 것에 불과했기에 불쾌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열심히 쌓아올린 무(武)의 탑에 타인이 함부로 손을 대는 것처럼 여겨졌다.
끔찍한 기분 속에서 드낙은 거센 분노를 태우는 것으로 투지를 불태웠다. 지금 자신은 생사를 오고 가는 곳에 있었다.
아무리 대단해도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이었다.
곧장 멧돼지를 타고 있는 대전사에게로 먼저 치고 들어갔다. 그 모습에 크후비 크훈이 비웃었다.
쾅!
흉악한 소리를 내며 단번에 멧돼지의 골이 부서지며 뒷다리가 허공으로 들어 올려졌다. 드낙의 몸도 출렁거리며 균형을 잃었다.
무모하기 그지없는 돌진이었다.
“아이야아아알타!”
균형을 잃은 전사는 죽어야 하는 게 정상이었다. 크후비 크훈의 도끼가 드낙의 투구를 노렸다. 모든 힘과 체중을 더한다면 두꺼운 강철문도 찌그러뜨릴 수 있는 게 오크 전사의 힘이었다.
드낙은 오른팔이 이끄는데로 움직였다. 교묘한 선, 가벼운 발걸음 속에서 전신의 체중이 뒤로 움직인다.
듣도 보지도 못한 한 수.
인간은 결코 생각해내지 못하는 괴이한 수법이었다. 나아가면서 체중을 뒤로 움직여서였다. 당연히 돌진해들어가는 힘이 적은데, 부딪치는 검과 도끼에서 제대로 힘싸움을 할 리가 없었다.
‘검이···비틀린다···!’
검지와 중지, 엄지가 위로 올라가고 나머지는 아래로 향하며 비틀자, 검이 교묘한 궤도를 만들었다. 3차원적인 공간이였기에 드낙의 시야로 정확히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 알 수 없었다.
킹.
짧은 금속음이 났다.
검과 부딪치며 강철성문에도 도끼날을 깊게 박아낼 정도의 힘이 내는 짧고 힘없는 금속음은 크후비 크혼의 눈을 크게 뜨여지게 만들었다.
푸거억!
뱀처럼 휜 검이 정확하게 목과 턱 사이의 연한 곳을 찔러들어가며 두개골을 부수며 검끝이 튀어나왔다.
줄줄줄.
붉디 붉은 피가 검신을 타고 흐르며 드낙의 전신으로 흘러들어갔다. 그만큼 오크의 체격과 드낙의 체격은 큰 차이가 났다.
‘이게 중립신이 지니고 있는 권능.’
싸움에 있어서 모든 조건을 뛰어넘어 극복할 수 있는 신의 힘.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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