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505화 (504/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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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전적인 오크를 밀어내는 일에는 반드시 〈핏빛쥐〉의 군사 활동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것을 사용하는데 드낙은 거리낌이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핏빛쥐들은 신의 한 수였어.’

중립신조차도 〈조련술의 업(業)〉을 더 강한 능력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만큼 핏빛쥐들이 쓸모가 있다고 판단했다.

〈멜마론(Melmaron) 영지〉의 단단한 산에 똬리를 튼 핏빛쥐들은 그 산 지하에 이미 필수적인 시설들이 활성화되어 있었고, 11개의 리전으로 나누어져 남부 왕국의 지하 세계를 통일하려고 뻗어 나갔다.

‘어디에나 있겠지.’

무엇보다 멜마론 영지의 남쪽에 있는 몽펠리에에는 〈배불뚝 리전(potbelly Region)〉이 향했다.

드낙이 야심한 밤. 산책을 빌미로 홀로 마을을 벗어나 강을 따라 내려갔다. 횃불을 들고 있었기에 그 모습은 절로 보였지만, 거친 바람에 횃불의 불꽃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역풍이 부는 곳은 적게 비추었고, 바람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그 불빛이 드낙의 오른쪽으로 치우쳐졌다.

“핏빛쥐 있느냐?”

목소리를 몇 번 내며, 기다렸다. 땅에서 소리가 났고 이내 찍찍거리는 쥐소리가 났다. 구덩이 속에서 머리만 튀어나오자 드낙은 걸음을 옮겨서 자신의 몸으로 그 구멍이 마을 목책 위에서 경비를 서는 병사 시야에서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뜨낙! 부르셨습니까.”

배불뚝 리전의 핏빛쥐들은 정예 중의 정예였고, 덩치가 가장 큰 핏빛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지상으로 뚫어놓은 구멍에 머리가 끼이듯이 삐져나왔는데, 살집이 어찌나 두툼한지 끝에 가서는 살이 겹쳐져서 층을 만들어냈다.

‘만지고 싶다.’

콧구멍이 움직일 때마다 따라서 땡땡하게 끼여져서 뭉쳐진 살집은 실로 탐스러웠다.

“대장쥐는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지?”

“큰 지하 수원을 발견했고, 그곳에서 돌이끼와 버섯을 키울 작업을 하고 계십니다. 콥고블린들을 통해서 민물고기도 여럿 방생하며 노하우를 터득 중입니다.”

식량!

핏빛쥐들에게 가장 중요한 사업이 바로 1차 산업이었다. 그중에서도 식량은 항상 부족했는데, 벌레와 두더지로는 감당이 되지 않았다.

이윽고 인간들의 문화 속에서 염장 생선을 보게 되었고, 그것을 이용하기 위해서 물고기에 눈을 돌린 상태였다. 이것을 잘 이야기하지는 못했는데, 해당 핏빛쥐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어서였다.

직업의 다분화가 일어나있었다.

“최대한 빨리 보자고 말해라. 나는 이대로 멜마론 영지와 스틸리코 영지를 거칠 생각이다. 가봐도 좋다. 서둘러 움직여라!”

“최대한 빨리 전하겠습니다. 뜨낙!”

발버둥치는 소리가 나며 배불뚝 리전의 최정예 핏빛쥐가 모습을 감추었다. 항상 드낙을 소수의 핏빛쥐가 따라다녔기에 가능한 만남이었다.

스토커라고 말하기 부족함이 없었지만, 그런 점에서 무신경한 것이 드낙이었다. 생각하면 소름이 끼치지만 아무 생각이 없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었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다른 것들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있었다.

‘핏빛쥐들에게 아주 호되게 당할 것이다. 보급품을 모조리 훔쳐먹겠지.’

오크들은 그것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보급이 줄어들면 다시 위로 올라갈 터였다. 곧, 겨울도 다시금 다가오고 있었기에 시기적으로도 옳았다.

‘그 사이에 인간들은 오크 보급소나 오크 약탈자를 치면서 하나가 되고.’

도망치는 오크들을 쫓아서 족장을 이기고, 협정을 맺을 것이다. 중립신의 명령사항이었다. 북부 8가문을 주고, 나머지 영토는 살리는 길이다.

폭풍과도 같이 전황은 어지럽게 될 것이다. 거기까지 몇 번이나 생각해서 윤곽을 만든 드낙은 그제야 깨달았다.

‘아니, 잠깐만.’

킁킁.

풍겨오는 피냄새를 맡았다.

중립신이 이야기해주지 않은 것이 그제야 시야에 들어왔다. 모든 풍경은 다 보이는데, 한 곳에만 블랙홀처럼 뻥 뚫려있으니 드낙이 모를 수가 없었다.

‘내가 협정을 맺는다고 해서 북부가 멈춘다는 보장이 없다.’

당연한 소리였다. 드낙과 족장과의 협약이 지니는 효력은 저급한 종이쪼가리에 불과했다. 그것이 효력을 얻으려면 단 하나밖에 없다.

북부가 망해야 했다. 드낙의 말을 들을 정도로 역량 소모가 이루어져야 했다.

‘왜 이런 선택을 중립신이?’

드낙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뭔가, 답을 낼 수 있는 것 같았고 목구멍까지 튀어나오려는 것들은 기어코 나오지 못했다.

“······와.”

그가 허탈한 소리를 냈다. 중립신의 의도를 읽어내서였다.

‘결국에는 테라로 향하는 길을 닦는 것에 지나지 않는구나.’

제국의 시선을 받지 않기 위해서, 엘프가 더는 찾아오지 않게 하려고, 남부 왕국을 몰락시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이해가 가지만 드낙은 그런 함정에는 걸리지 않았는데 전부터 중립신을 의심하고 있어서였다.

‘반반 먹고 들어가라는 소리인가.’

몰락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협정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을 터였다. 적당한 선에서 피해를 보고, 반쪽짜리 승리만 거두라는 말이었다. 그렇게 하는 건 어렵지 않아 보였다.

‘기분 더럽네. 사람을 뭐로 아는 거야. 카르마 수급처로 아나 보네.’

드낙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체념했다. 자기 일이 아니었고, 중립신이 자신보다 더 우월하다고 여겨서 대항할 생각을 가지지 못했다. 또한 당장 그에게서 얻은 것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검은 꿈, 신성력, 수많은 능력들.

‘인간의 멸망을 원하지는 않는 게 희망 아닌, 희망인가.’

다행이라면 인간을 멸종시킬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드낙은 자신을 변호했다.

그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가진 자였고, 그것을 버리기에는 그 힘에 강하게 중독된 상태였다. 드낙이 생각했던 것보다 북부인들은 많은 피를 흘리게 될 것이다.

그것만은 분명했다.

멜마론 영지 동남부

몽펠리에 국경지 인근

반지하 형태의 움막과 천막이 너저분하게 널려있었다. 하지만 짓는 방향에 따라서 구역이 정해졌는데, 하나하나 부락끼리 모여있었다. 다른 부락원들과는 움막이나 천막의 뒷부분을 놓아서 경계선을 놔두었다.

〈족장 도네투스〉는 〈캉카라쿰(Kankarakum, Black scales Wyvern)〉을 옆에 두고 가만히 보고를 들었다.

“동쪽의 〈오크 보급소〉가 털려? 어쩌다가?”

“300명의 오크 전사와 주술사 10명이 지키고 있는 곳이었지만 말끔하게 전멸을 당했다. 강을 헤엄치던 오크 중에서 화살을 맞고 기절했지만 운 좋게 살아남은 몇몇 오크들에게서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고.”

“인간들의 숫자는?”

“1천에 불과했고, 그중에 절반은 전사도 아니었다. 대신 기사의 숫자가 조금 많았다. 수십 정도.”

“그런데도 졌다고?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정규병 1천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게 300의 전사들과 10명의 주술사들이었다. 주술사가 있는 이유는 당연히 정규병을 통솔하는 기사들의 힘을 봉쇄하기 위함이었다.

“그쪽의 땅은 거의 무주공산처럼 인간 전사 하나 보지 못했다는 곳 아니었나?”

“맞다. 오히려 그 덕분에 인간들이 발톱을 드러낸 것일 수도 있다.”

오크의 대군이 없고, 약탈자 혹은 보급소만 있으니 충분히 찌를 마음을 지닐 수 있었다. 늑대의 음흉한 사냥법을 알았기에 인간들의 모습을 짐작했다.

약한 놈부터 조지는 것은 야생의 법칙이나 다름없었다.

새끼 코끼리가 크기 전에 물어 죽여 먹는다. 그 이치가 〈오크 보급소〉를 턴 상황을 이해하게 하였다.

“빌어먹을 인간 놈들. 제대로 한 판 시원하게 싸워주지 않고, 곁가지만 쳐대는군!”

도네투스가 성을 냈다. 아주 병신같은 잡것들이 그동안 풍요로운 대지의 꿀을 빨아먹고 있어서였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대로 쭉 내려간다고 해도 오크 보급소를 털 정도면 다른 보급소도 위험하다. 부락 하나를 보내서 말끔하게 정리하는 게 좋다.”

“지랄. 그렇게 가면 또 도망치겠지. 아니냐?”

부정하지는 못했다. 도망줄을 하도 잘 놓아서 오크 전사 중에서는 자랑스러운 전리품인 〈붉은 요새〉를 다 허물어버리자고 주장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선조가 부끄러워질 정도로 인간은 도망만 쳤다.

“산은 어떻다고 했지? 그나마 제법 하는 인간들이 숨어들어 가지 않았나.”

“대부분은 잡았지만, 못 잡는 놈들은 계속 못 잡고 있다. 오크 나무의 피해가 커.”

순찰자들은 오크의 대침공이 한가을이 지나도록 계속되자 보급만 집요하게 노리고 있었다. 오크에게 피해를 주기보다는 오크 나무를 조져서 보급을 줄이는 데 노력했다.

“요즘에도 불을 지르나?”

“아니. 새로운 방법을 쓰기 시작했다.”

불을 지르는 자들도 있었지만, 오크 전사들의 추적을 받으면서 점차 그 방법을 쓰지 않게 되었다. 적응의 동물이 인간이었고, 학습하지 않으면 투척 도끼나 오크 전사를 잔뜩 불러모으니 싫어도 방법을 바꿔야 했다.

“어떤 방법을 쓰는데?”

“그 미친놈들이 오크 나무 밑에 물을 고이게 하여서 뿌리를 썩게 만들어서 죽이고 있다.”

오크를 죽이기보다는 오크 나무 밑을 파고, 자갈이나 돌들을 넣고, 물을 부어서 고이게 하여 뿌리를 썩게 하기 시작했다.

“또, 약재만 빼내서 다시 흙으로 덮는다고 하더라.”

“악마 같은 새끼들.”

오크들로서는 제대로 화딱지가 돌 수밖에 없었다. 그 수많은 오크 나무의 바닥을 파서 약재가 잘 있는지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짜증 나는 일이 두 번 일을 하는 것이다. 살인까지 저지를 만큼의 스트레스가 똑같은 일을 또 하게 되었을 때였다.

잠깐 다른 곳으로 흘러갔던 주제가 다시 되돌아왔다.

“보급은 아직은 문제없지?”

“오크 보급소가 털린 건 처음이다. 어떻게든 그걸 막아야 해.”

“주술사는 뭐라든?”

“족장이 직접 와야지 알려준다던데.”

도네투스가 한숨을 깊게 내뱉었다. 부락의 주술사 경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선 주술사는 항상 당당했다. 예언에서 수십 마리의 오크 주술사와 대등하기 때문이고, 더 날카로워서였다.

대전사 수브락키를 죽이고 〈높은산 부락〉의 대전사로 올라갔고, 이를 통해서 세력을 크게 만들고 단번에 족장의 위치에 선 도네투스라도 예외는 없었다.

오크 주술사가 있는 움막으로 단번에 홀로 들어갔다.

모닥불은 제법 오랫동안 피웠는지, 새하얀 재가 많았고 그것을 손에 묻히면서 이리저리 천천히 손을 굴리며 연기 하나 내지 않고 재를 만지는 주술사가 보였다.

“조언을 구하러 왔다. 무엇을 봤지?”

“흥. 이제야 나한테 오는구먼.”

주술사는 도네투스에게 바로 본론을 꺼내지 않고, 딴소리를 해대었다.

“예언이라는 것은 말이다. 첫째로 땅이 좋은 곳에서 해야지 효력이 좋다, 주술의 근간은 대~자연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곳은 인간들에게 오염된 땅이지. 더럽고, 추잡스러운 인간들의 손길이 닿아있어. 마치 자신들이 이 세계의 주인인 것처럼 행세하지.”

탁탁.

손을 털었다. 새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는데, 기이한 움직임을 보였다. 아래로 내려가기도 했지만, 마치 꽃가루처럼 붕 떠서 도네투스에게로 향하기도 했다. 그가 손사래를 치며 흩뜨렸다.

“둘째는 시간이다. 정성을 들이면 들일수록 멀리 내다볼 수 있지. 아무리 허접스러운 주술사라도 대접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마음먹으면 녹색 도끼께서 다 해주시거든. 우리의 신은 상냥하신 분이시지.”

도네투스가 단번에 입을 열었다.

“셋째는 주술사 본인의 실력이다. 그래서 뭘 봤지?”

“인간에게 구걸하는 너의 모습을 보았다. 녹색 도끼의 선택도 못 받은 놈이 요행으로 얻은 히드라의 타투로 혼란무도의 타투까지 얻어봤자다. 너는 영웅으로 보이지만 평범한 오크다. 그걸 보고 느꼈지.”

사족을 붙이기도 했다. 수브락키의 주술사여서 불만이 있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좌천하는 일은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다른 예언을 말하지도 않는다는 걸 잘 알았다.

“어떻게 구걸을 하고 있던가? 캉카라쿰은 어떻게 되었고?”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뭐, 예언이면 다 보는 줄 알어?! 하여간 요즘 전사들은 쉽게 쉽게 도끼질만 해대면서 뭐가 좀 안 되면 와서는 툭툭 묻기만 해대고, 그래놓고는 또 다 듣고가 놓고도 딴 짓거리해서 지랄!”

주술사의 손이 더듬거리면서 지팡이를 찾았다. 부락 31개를 겉으로라도 하나로 합친 도네투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꼬우면 죽여보라는 식이었는데, 실력 있는 오크 주술사를 죽이기에는 그에게서 얻는 이득이 많았다.

“아, 진짜. 그만, 그만 잡고 결론을 말해봐.”

“이미 말했잖아? 앞니가 부서져서는 빌빌거리고 있었다니까. 시체는 주변에 많은 걸 보니 한 판 제대로 붙는 것만 피하면 될지도.”

그게 끝이었다.

“며칠 더 공을 들여봐. 자세히 알고 싶으니까.”

도네투스는 시간과 정상을 더 보태라고 했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잠깐 잔류를 해야 할 듯했다.

‘확실하게 알고 움직이자.’

도네투스는 자신이 전에 들었던 예언을 기억해냈다. 거기서는 죽었지만, 이번의 예언에서는 살기는 살았다.

‘차이는 항상 적극적으로 움직였다는 것.’

평범한 오크의 가을이 아니라 대규모 침공을 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움직이면 되었다.

“예정대로 움직인다면 변하지 않겠지. 지금 당장 〈움푹길 부락〉을 동쪽으로 보내서 오크 보급소를 턴 놈들을 말끔하게 정리하도록 해라. 동쪽의 약탈 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질 때, 남쪽으로 내려가서 확실하게 인간들을 끝장낸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동쪽과 서쪽에서 활동하는 부락의 주력도 불러라!”

예언을 부술 생각을 가졌다.

‘보통이라면 4만으로 붙겠지만, 그렇게 만들지 않겠다.’

도네투스가 결단을 내렸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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