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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星)의 힘.
그저 그 선택을 받는 것만으로도 힘을 부여받을 수 있는 초월적인 힘이었다.
그 힘은 운일 수도 있고, 위기 속에서 더욱 날카로운 신경을 지닐 수 있기도 했다. 그 다양하고 다채로우며 제멋대로인 힘은 결코 드낙이 스스로 제어할 수 없었다.
‘그것을 세팔이는 깨뜨렸다.’
자기 멋대로 온전한 별의 힘을 끌어올려냈다. 마치, 강제로 별이 지닌 힘을 사용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드낙은 열지 못했던 그 자물쇠.
그것을 열기 위해서 오늘도 드낙은 열심히 수련에 매진했다. 임팩트가 멋있는 것은 둘째치고, 실질적으로 확실하게 중립신의 부활을 앞당길 수 있어서였다.
“조심해라. 자신을 잃으면 안 돼. 그러면서도 별의 주된 감정을 끌어와야 한다.”
세파리아스 불파겐은 드낙에게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이야기했지만, 드낙이 들을 리가 없었다. 힘이라면 눈이 검게 번들거린 채 소고기 냄새를 맡은 장님처럼 난동을 부리는 게 그였다.
중립신 또한 막지 않았다. 드낙의 자아가 혼란스러워지면 자신에게 이득이어서였다.
온전하고 안정된 정신을 지닌 챔피언보다는 사실 불온전하고 불안정한 정신을 지닌 챔피언이 말로 삼기 더 좋았다. 이것은 세파리아스가 선택되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다.
제어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죽인다.’
드낙은 지금까지 죽여왔던 모든 것들을 떠올렸다. 기분이 메슥거리지는 않았는데, 자신이 생각했을 때, 죽여야 했기 때문에 죽여서였다.
살기 위해서 식육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경쟁 사회에서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다고 해서 먼지 하나 손에 묻지 않은 것처럼 구는 것과 같았다. 물론 드낙은 그것보다 더 악질이었다. 자신이 정한 변명거리로 책임감을 회피하며 자신을 지켰다.
시험을 치기 전날까지 딴짓하는 것과 같았다. 온갖 변명을 늘어놓으며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시험을 치기까지 흥청망청 놀며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는 방법은 박호훈의 장기중에 장기였다.
〈별의 감각〉이라고 불리는 감정이 드낙에게 스며들어와서 그가 지닌 감정을 서서히 변질시켰다. 그것은 변화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인간과 맞지 않았다.
자신의 사상. 관념. 신념. 마음. 생각 등.
그런 모든 것들과 상관없는, 그저 죽인다는 살심(殺心).
“우웨에에에엑!!!!”
드낙이 안에 것을 게워냈다. 검은 꿈에서 깨어나 현실세계로 돌아왔다.
“콜록! 컥. 콜럭!”
코에서 먹었던 것이 줄줄줄 흘러내렸고, 입에 있던 것도 뱉어냈다.
“퉤!”
눈물이 찔끔 나왔다.
‘빌어쳐먹을.’
토하면서 생기는 역한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다.
괴이하게도, 비현실적이게도 피비린내만이 맡아졌다.
손이 덜덜 떨렸다.
“흐.”
‘성공했다. 이렇게 쉽게? 뭔가 재능이 있는 건가.’
인간이 지닌 모든 이성과 감성 체계를 무너뜨리는 것이 살성(殺星)이 지닌 모습이었다. 그것을 감당하기에는 드낙은 지나칠 정도로 죽이는 이유, 상황에서 확실한 지표를 지니고 있었다.
이기기 위해 죽인다.
살기 위해 죽인다.
단순하지만 이유가 있다. 그렇기에 죽여도 마음에 쌓이지 않았고, 그런 세상이었으며 보상까지 있었다. 반동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악몽을 꾸기도 전에 검은 꿈이 그것을 잡아먹는 것도 있었다.
진정이 되자마자 드낙은 눈을 뜬 채로 그 감각을 떠올렸다.
살심(殺心)의 날 것.
속이 울렁거리고, 마음이 불편해졌다. 하지만 이내 드낙의 몸 주변에 붉은 빛무리가 생겼다. 살생의 힘이 드낙의 전신을 돌기 시작했다.
청량감마저 느껴지는 활력이 넘실거렸다.
죽이는 것은 고된 일이었고, 살성(殺星)은 활력을 주는데 탁월한 힘을 내어주었다. 맥동하는 활력에 드낙은 탐욕으로 가득 찬 눈으로 넘쳐나는 스테미나를 만끽했다.
다시 잠에 빠져든 드낙은 기쁜 표정으로 검은 꿈에 다시금 들어왔다. 그곳에서 축하라도 받을 생각을 가졌는데, 전혀 다른 사태가 그를 맞이해주었다.
쿠오오오!
연기가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이게 무슨 일이야!”
드낙이 거친 광풍 속에서 소리를 질렀지만, 바람 소리가 잡아먹혔다. 몇십 분이나 흘러서야 검은 문이 조용해졌다.
바닥에서 중립신이 느긋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무엇이 어떻게 된 것입니까?”
“살성의 선택을 챔피언인 네가 받았고, 그 연결로를 통해서 살성의 힘을 내가 취했다. 그 과정에서 검은 꿈이 조금 흔들렸다.”
뭔가 축하는 중립신이 받아야 하는 듯했다.
“축하합니다. 그럼, 부활이 더 앞당겨진 것입니까?”
중립신은 고개를 저었다.
“이 세상에는 점성술사들이 있고, 엘프 또한 있으니 함부로 살성의 힘을 가져가지는 못한다. 그저 살성을 지배했다고 생각하고 있어라.”
드낙이 냉큼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대답했다.
살성이 그간 여러 생명체에게 알게 모르게 힘을 내어주며 자신의 욕망을 채우며 쌓인 카르마는 오롯이 중립신에게 들어왔기에 살성의 힘은 가져가지 않아도 그 업은 중립신에게 흘러들어왔다.
그 덕에 중립신은 자신의 신체 조각들이 뿌려진 이 행성에서 더 넓은 정보망을 획득하게 되었다. 인신(人神)에 불과하며 육체조차도 없는 중립신에게 있어서 살성을 통해서 세상 곳곳을 누빌 수 있게 되었다.
이미 살성은 드낙의 정수리 위치에서 벗어나고 엘프가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살성의 업.’
중립신이 눈을 감은 채로 생각보다 많은 살성의 업을 생각했다. 계획을 바꿀 정도로 엄청난 카르마였다. 죽인다는 욕망에 충실히 움직인 별이라서 더욱 심했다.
전쟁의 시대, 다종족의 시대였기에 죽고 죽이는 것이 빈번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중립신만해도 인간을 죽음으로 내몰며 그 업을 통해서 부활을 위한 업을 쌓았다. 드낙에게 앞으로 일어날 것에 관해서 이야기해주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인신들의 대신(大神), 엘 마르토 카사다민.
그의 전략은 신들의 땅(Holy Land)에서 압도적인 세력을 구축한 언데드의 강력한 네크로맨서였던 〈죽음의 세바리악〉을 죽음으로 이끌게 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곳에서 한 줌의 빛을 짚어내는 것이 중립신이었다.
“대계가 틀어졌다. 계획을 변경해야 할 때가 왔다.”
드낙이 움찔했다.
‘여기서 중립신의 대계가 틀어져?’
중립신은 일부러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했다. 그게 드낙에게 잘 통한다는 걸 알았는데, 마치 아무리 욕을 먹어도 과대광고를 포기하지 못하는 기업과 닮았다.
“그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당신은, 신이지 않습니까.”
“맞다. 난 신이지만, 전지전능하지는 않다. 대신이었음에도 여동생에게 배신당하여 조각났지. 그걸 잊고 있는 건 아닌가?”
그 말에 드낙이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스스로를 깎아내리며 말하니,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상대는 중립신이며, 그는 그의 챔피언이었다. 상사가 스스로 자해 개그를 듣는 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따라서 맞장구쳐줄 수도 없는 노릇.
중립신은 다시 주제를 돌렸다. 드낙의 이런 착오들은 언제나 있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이참에 어느 정도 알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두루뭉술하게라도 그가 생각하는 테라로 향하는 길을 말해주기로 했다.
“제국이 생각보다 제법이다. 그들을 이용할 생각이지만, 그러기에는 남부에 드리워진 전쟁의 피해가 크다. 만약 오크를 위로 밀어붙인다면, 그럴 역량이 있다고 여겨져서 더 큰 화를 당할 터다.”
가장 먼저 향후 일어날 일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해줬다. 드낙은 자연스럽게 집중했는데, 마치 예언을 듣는 것 같아서였다.
“고로, 드래곤 오크 라이더를 죽이지 말고, 그에게서 승리를 따내어 협정을 맺어라. 또한 영토를 잃은 북부의 8가문을 동부에 정착시켜라.”
“아, 아니.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오크들을 규합시킨 오크를 못 죽이면 당장 일이 어찌 될지 모릅니다.”
부족 단위의 규합력을 보여주고 있었고, 그것을 잘라내는 게 가장 효과적인 오크 전략으로 떠오르고 있었는데, 그러지 말라고 하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오크 주력 4만을 쳐부숴야 했다.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이미 각개격파 전략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중도에 그만두기에는 교통과 통신이 끔찍한 수준이었다.
“어떻게 오크 주력을 쳐부숩니까?”
“그럴 필요가 없다. 드래곤 오크 라이더가 있으므로 전황을 누구보다 먼저 파악할 수 있으니, 핏빛쥐들을 이용해서 보급을 끊어라. 너 또한 기존의 전략대로 움직여라. 100점짜리 전략은 아니지만, 운이 따라주면 70점은 받을 수 있는 전략이다.”
중립신은 인간들의 대전략에 대해서 평가를 하기도 했다.
“더 좋은 전략이 있습니까?”
그가 흥미를 느꼈다. 각지로 피난 간 다른 영지군을 모아서 연합을 여러 개 형성하여 오크의 보급소를 털고, 잡기 위해서 흩어진 오크 부락을 각개격파하는 전략 이상의 전략이 있다니.
“토치라이트를 해방했을 때, 북부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버렸다면 더 좋은 결과가 생겼을 것이다.”
“그게 무슨···전략입니까?”
드낙은 결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중립신은 이미 지나간 것에 대해서 말해주지 않았다. 자신의 챔피언의 성향을 잘 알았다.
‘말해줘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하겠지.’
하나를 가르쳐주면 다른 하나를 까먹는 것이 드낙이라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나마 무재가 수재는 되어서 천만다행일 지경이었다.
대한민국의 영어 교육 사업과 같았다. 17년을 공부해도 어리둥절한 것이 영어였다.
“더 이상은 말해주지 않겠다. 알아도 이미 지나갔으니. 드래곤 오크 라이더와 교전을 할 때가 곧 올 것이다. 앞으로 그 표적이 그대가 될 수 있도록 눈이 부시도록 움직여라.”
“근데, 제가 이길 수 있기는 합니까?”
중립신이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이내 자신의 오른팔을 왼손으로 잡더니 그대로 뜯어냈다.
뚜둑. 쯔억.
뼈가 분리되고, 피부가 찢어지는 소리가 나자 드낙이 질색을 했다. 특히나 그것을 자기 자신이 뜯어내서 더 생소하고 기분 나빴다.
‘어우, 씨.’
“〈전초극(戰超克)의 오른팔〉이다. 이 권능을 너에게 주겠다.”
살성을 통해서 얻은 막대한 카르마를 통해서 건네줄 수 있었다.
“어떤 능력입니까?”
드낙의 숨이 거칠어졌다. 마치 마약을 코로 흡입하기 직전의 약쟁이의 모습이나 다름없었다.
“싸움에서 모든 페널티를 뛰어넘어 승리로 향하는 강력한 권능이다. 내일이나 환상을 통해서 상세히 그 능력의 이모저모를 보여주겠다. 지금은 준비가 안 되어있다.”
중립신이 오른팔을 내던졌다. 바닥에 떨어진 오른팔은 녹아서 말끔하게 사라져버렸다.
“예. 그런데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흔쾌히 허락하자 드낙이 그에게 물었다.
“오크를 놓아준다면 그것으로 제국의 관심을 돌릴 수 있겠지만 그게 왜 제국을 이용하는 것이 됩니까?”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었다. 중립신은 정확하게 제국을 이용할 생각이었고, 드낙은 그들의 관심에서 사라져야 했다. 이것은 모순이었다.
“······ 나중에 다 드러난다. 지금 이야기해주기에는 그대의 역량이 의심스럽다. 가만히 때를 기다려라.”
중립신은 드낙의 빈틈 많은 모습을 매우 경계했다. 자기를 바보라고 생각하며 따돌리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자 드낙은 기분이 상했다.
“아니, 저 그 정도는 아닙니다.”
중립신이 그대로 바닥으로 들어가버렸다. 더는 할 말이 없는 듯했고, 볼일도 다 봤다고 여겨서였다. 이에 드낙의 눈은 세파리아스 불파겐에게로 향했다.
“야, 세팔아. 내가 그 정도는 아니잖아? 나도 뭐, 중립신님의 대계 정도는 이제 들어도 되는 거 아냐? 전술도 좀 할 줄 알고, 공부도 제법 했지. 그 굵은 그라돈 군사학서를 이제 두 번째 읽는 중인데다가···”
세파리아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딱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는데, 교육의 수준과 지혜는 결코 비례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내정도 제법 내 의견이 좀 나왔잖아. 너는 어떻게 생각해?”
“네 얼굴만 봐도 이제는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다.”
세파리아스가 검은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나에 대한 평가가··· 난 분명 유비 포지션에 무력은 여포 포지션이었는데.’
드낙이 충격적인 표정을 지은 채 우두커니 홀로 검은 꿈에서 서 있다가 대(大)자로 드러누웠다.
남들은 다 알지만, 자신은 모르는 일은 언제나 있는 일이었다. 적어도 오늘 드낙은 자신을 선택한 신에게서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발바룽의 찌꺼기도 받았는데, 내가 그 정도라고? 아닌데···”
그것도 잠시였다. 현실도피가 절로 이루어졌다. 그게 보통 사람들이 세상에 상처 입고 살아가는 방법의 하나였다.
상처가 무뎌지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상처가 없었던 것처럼 사는 것이 더 편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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