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503화 (502/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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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성웅성.

“어차피 영지전까지 한 마당인데, 이제는 뒤가 없어. 이제는 진짜로 맹목적으로 불파겐에게 도움을 줘야해.”

“맹목적이게 도와주면 그게 방계지. 미친 소리를···”

메시지 마법진이 있는 첨탑의 지하에서 빠져나온 귀족들이 시장바닥처럼 떠들어대었다.

이들은 내성의 대전으로 향했다. 아크온이 가장 마지막으로 빠져나와 천천히 걸었다. 다른 이들을 배려해주기 위해서였고, 그의 최측근도 함께하지 않았다.

깊게 고민에 빠진 모습이었다.

“식량이 제일 문제라니까!”

“오크 4만이 내려오는데 식량 같은 소리하네. 병사가 죽어나가도 성밖으로 나가야해.”

큰 원탁이 있었으며, 천장은 7m는 너끈했다. 상석의 옆에는 몽펠리에의 깃발과 이 성의 총책임자인 아크온의 개인문양이 새겨진 깃발이 놓여있었다. 또한 개인깃발의 장대 끝에는 황금 고정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가주라는 뜻이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남부왕국과는 다르게 북부는 한 가문이라도 귀족의 연합체와 같았다.

메시지 마법을 마을마다 연결하지 못하기에 영지의 구석구석에 행정권을 행사하기 위하여 방계가 생겨났고, 그 숫자만큼의 깃발이 대전의 구석진 곳에 나열해 있었다.

큰일마다 화환이 복도에 나열된 것과 비슷했지만, 더 개성이 넘쳤다.

“한 마디씩 해보라.”

아크온이 한 번 방계와 직계의 귀족들과 눈을 마주치고 나서 말했다. 가주인데다가 〈버팔로 나이트〉의 명성, 그리고 가주에 오르자마자 숙청까지 해버린 아크온이라서 하오체를 쓰는 귀족이 거의 없었다.

북부 귀족은 목이 잘려도 명예를 숭상하는 면이 강했고, 남부 귀족은 몰락한 데다, 백금 왕가의 무시무시한 정치질에 당해서 실익을 추구하는 면이 강했다.

몽펠리에의 귀족들은 북부와 남부의 귀족 성향이 뒤섞여져 있었다.

“기존의 전략을 지켜야 합니다!”

“찬성합니다.”

“인정, 또 인정하는 바입니다.”

대전까지 오면서 시끌시끌 거리며 숙덕거린 이유도 이처럼 뭉치기 위한 것도 있었다. 서로 의견이 맞는 사람끼리 모여서 발언하는 것은 일을 진행하는데 수월했다. 잔가지를 쳐내기 좋아서였다.

원탁의 중앙에 원형으로 자리 잡은 주변 지리가 적힌 지도에 지휘봉을 단번에 겨누었다. 남쪽에 놓인 지휘봉이 탁탁 지도를 쳐대었다.

“남부는 보급만 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밖으로 나가서 불파겐 자작의 전략에 동참한다? 허허, 백금 왕가의 뜻대로 움직이는 꼴입니다.”

한 번 비웃으면서 차가운 뱀처럼 말하다가도 이내 고개를 살짝 올리면서 주먹을 왼팔을 역동적으로 들어 올리며 주먹을 움켜쥐며 흔들어대었다.

“그들은! 북부인의 죽음을 원하고 있고, 고위 기사가 죽으면 덩실덩실 춤을 출 여우같이 간사한 자들이요! 오크보다는 남부를 생각하는 판단이 필요합니다!”

물론 반박도 이루어졌다.

“불파겐 자작의 무위가 아깝지도 않습니까!”

다른 쪽에서 쏘아붙이는 소리가 불만을 짓눌렀다.

“모험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꿈에만 젖은 채 세상을 우습게 아는 놈들이나 모험을 하는 법이었다. 이곳에 있는 자들은 가진 것이 많았기에 모험을 할 수 없었다.

“더러운 소리를! 어떤 자가!”

그것은 실로 더럽고, 모순적이었는데, 안전만 원했다면 이런 최전선에는 와서도 안 되어서였다. 한 마디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모른 채 눈앞의 일에만 급급한 자의 소리에 불과해서였다.

희번덕!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가 돌아갔지만, 워낙 서로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고 자빠져서 누군지 알 길이 없었다.

원탁의 구조는 상석이 가장 높았고, 하석이 가장 낮았으며, 의자 간의 간격도 밑으로 갈수록 조밀해졌기 때문이다.

점점 말싸움으로 번져갔다. 아크온은 방관을 하며 고민했다.

“지금까지 불파겐 자작이 실패한 적이 있는가! 악마의 힘, 그중에서도 우리 차원을 넘보는 〈아카타베루〉의 간악한 하수인들에게 태어난 트롤 사태를 수습한 것도 그다! 소문을 의도적으로 줄이고, 입단속을 해서 망정이지 그 〈자궁〉이 있던 광경을 확인하지 않았나!”

그 악마 같은 광경을 보았기에 북부는 불파겐을 곧추세워 올렸다.

백금 왕가의 정치력으로 비집고 들어와 균열조차 내지 못했던 이유는 트롤 토벌의 내막이 있어서였다. 자궁이 된 트롤의 사체를 본 귀족들은 자신들의 비리가 백금 왕가의 손아귀에서 놓아져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더라도 드낙 불파겐에게 붙어야 했다.

또한, 지금까지 항상 승리해와서였다.

불패라고 부르기에는 세상에 나온 지 몇 년 안 되었지만, 3승 0패나 10승 0패나 똑같이 불패였다.

불파겐 코인을 부르짖는 귀족이 있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플래티넘 놈들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 그들을 견제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술책에 놀아나는 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북부의 논리대로 눈앞의 오크와의 전쟁에 힘을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부 왕국은 보급마저도 끊을 것이다!”

“무슨 명분으로 끊는가! 군대도 보내주지 않는 놈들이 여기의 사정은 어찌 알고?”

“모를 리가 없겠지! 스파이는 몇이라도 있다!”

백금 왕가와 오크에 대해서 역량의 저울질도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것은 백마디 말을 해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무엇을 해든 단점이 있어서였다.

“다른 영지들의 힘을 모으려면 결국 불파겐 자작의 전략이 더 좋습니다! 이미 팬크리스 영지군과 연합을 하고 있고, 잘만 흐름을 탄다면 계속해서 많아질 것입니다.”

헛된 희망에 대해서 말하는 귀족도 있었다. 뭐라도 대박이 터지면 리스크도 뭐고 없고 일단 투자부터 하는 마인드나 다름없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로 보급은 어찌하고?”

“우리에게도 기병 전력이 있지 않습니까!”

현실적이지 않고, 위험요소가 너무 큰 것에 대해서 말하자 수염을 기른 귀족이 가슴이 답답해지고, 뒷골이 당겨와서 바락 소리를 내질렀다. 울화통이 터져서 입술이 바짝 말라왔다.

“드래곤 오크 라이더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도 없는 거냐?”

한마디만 하지 않았다.

“시끄럽다, 현역에서 3년밖에 못 구른 녀석이! 어디서 방정맞게!!”

활동한 연수를 말하며 의견에 흠집을 내기도 했다.

모두 공적 때문이었다. 내부분열하기 딱 좋을 수 있지만, 공적이 없다면 이렇게 모이지도 않을 것이고, 역량을 투입하지도 않을 터였다. 이득이 더 많아서 꼭 해야만 했다.

“식량이 남아도는 것도 아닌데, 애초에 불가능한 전략 아닌가! 왜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지 모르겠군. 불파겐 영지에 식량이 많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운반할 여력이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안 그렇소? 브릴리언트 경.”

팩트 체크도 꼼꼼히 하는 면모를 보여주었다.

“예. 맞습니다. 제가 데려온 병사가 여기에 있지 않았다면 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앓는 소리가 절로 삐져나왔다. 결국, 여러 가지 갈래로 날뛴다면 보급이 필수였다. 사람의 발걸음, 육군의 진격은 보급으로 결정된다.

“어차피 재점령하게 된다면 오크들의 약탈물도 얻게 될 터인데, 거기에 걸어보는 게 어떻습니까. 불파겐 자작이라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또! 이미 오크 보급소를 하나 털지 않았습니까.”

“1천으로 300을 잡은 것은 고위 기사가 있다면 우리도 가능한 일이오.”

“거기에 강을 두고 싸우고도 민병대가 죽지 않았나. 많은 준비를 하지 않고 단기전을 노려서 생긴 피해다. 무력은 강해도 전쟁에서는 피해를 감당하지 못하고 패배하게 될 것이다.”

드낙이 지닌 전술적 역량을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다. 민병대가 너무 많이 죽어서였고, 이것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팬크리스 남작〉의 판단이었으며, 기사와 정규병을 살리기 위한 냉혹한 지휘였다.

미래를 위해서는 기사와 정규병을 살려야 한다는 냉철한 판단이 스며든 군사적 판단이었다.

이 모든 요소요소가 짚어지며 대전이 시끄러워졌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재단하고 가늠하여 판단해야 하는 것이 아크온 몽펠리에였다. 그리고 그는 그 모든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이중택일(二中擇一)이면 충분했다.

‘불파겐을 믿는다?’

‘우리가 가진 것을 지켜야 한다?’

결국에는 이것이다.

이 질문에 답하면 충분했다.

탕탕!

상석의 탁자를 강철 글러브로 쳐대자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불파겐 자작은 이미 물꼬를 텄다. 아닌가?”

그 질문에 귀족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이미 오크 보급소를 한 곳 공략했습니다.”

“블랙 스케일 와이번은 능히 전투 요새의 주춧돌인 〈마법 첨탑〉을 무너뜨릴 수 있다. 놈과 4만의 오크 군대를 수성전을 통해서 5일 이상을 막아낼 수 있는가.”

“확률은 반반입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다면 하늘이 무너져도 기회는 3번 주어질 수 있습니다. 그것을 잡아낼 수 있을지 없을지가 판을 가를 겁니다.”

이득을 탐하고, 권리를 핥아먹어도 이곳에 있는 귀족들은 모두 무술을 연마한 자들이었다. 무인이 적을 앞두고 고지를 사수하는 것에 뒷걸음질 칠 이유는 없었다.

성을 지킨다는 것은 현대의 고지전과 같았다.

도망갈 길 따위는 없었다.

“주변 산에 〈마법 신호탄〉을 쏘아 보내라. 순찰자들을 끌어모으고, 전령을 밖으로 보내 불파겐 자작의 예상 경로로 다른 영지군을 움직이게 한다.”

“말도 안 됩니다!”

“그런 경우는 없었습니다!”

“기사보다도 자존심이 대단한 것이 순찰자인데, 기사의 지휘를 받아들이겠습니까?”

“지휘체계의 혼란은 곧 패배입니다! 이건 군사학의 정석 중의 정석입니다! 가주님!”

순찰자를 수성전에 쓰다니?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오크 부락을 떡을 만들어도 죽어도 드낙 밑으로 안 들어가는 대쪽같은 자들이 북부 순찰자라는 작자들이었다.

단 한 번도 타락하지 않은 자가 지니는 신념이 얼마나 단단한지는 누구나 다 아는 바였다.

“그들은 저희의 지휘를 듣지 않고, 자력으로 움직일 것입니다! 성에서의 전투는 어지러워지고 번잡해질 것이 불 보듯 뻔합니다. 차라리 남부의 보급대를 들여서 전투하도록 하십시오!”

성의 구조는 복잡했다. 외성벽도 단조롭다고 여겨질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 겹치고 줄여지고, 높아지고, 낮아져서 합쳐지고를 반복하며 성벽이 점거를 당해도 허리를 끊어지는 것처럼 분리할 수 있게 되어있는 것이 〈쌍둥이 성채〉였다.

이런 구조에서 자체적으로 지휘권을 가진 궁수전력을 운용시킨다? 오히려 없는 편이 나을 지경이었다. 지휘체계부터 서로 합을 맞추지 않은 수성 전이여서였다.

“은퇴한 기사들을 배치하면 될 일이다. 최소한의 조율만 해주면 된다. 성격이 많이 죽으신 분들이 계시지 않나.”

“부, 부관 노릇을 하라는 소리이십니까?”

아크온은 부정하지 않았다.

상석, 하석 상관없이 귀족들이 이마를 치거나 한숨을 내쉬었다.

“해볼 만한데 왜 한숨을 쉬어? 조금만 고생하면 되는 것 아닌가.”

“노기사들이 단체로 몰려들어서 가주님의 뺨이라도 때릴려고 한다면, 그건 어떡합니까?”

그럴듯한 말이었다. 진짜로 그럴지도 몰랐는데, 순찰자의 부관 노릇을 하라니?

아크온은 어깨를 으쓱했다.

“감수해야 할 일이지. 수성전을 성공한다면 다른 뺨도 맞을 각오를 해야겠지.”

“흐어···”

‘미치겠군.’

아크온이 일어났다. 그도 숨을 깊게 내뱉고 다시 말하였다.

“기병이 밖으로 빠져나간다면, 자연히 수성전은 더욱 힘들어지게 될 것이다. 그것을 순찰자로 보완하는 것이니, 실제로 우리는 불파겐 자작의 전략을 도우면서도 오크의 전력을 한 번 막아낼 수 있으니. 결과적으로 본다면 큰 반환점을 이곳에서 만들 수 있다.”

전후 큰소리를 빵빵 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남부 보급군을 쓰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

그 말에는 살기가 뚝뚝 묻어져 나오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절로 알 수 있었다.

그것으로 회의는 끝났다.

기병전력을 끌고 온 이실레아 브릴리언트 또한 지하 통로를 통해서 다시 빠져나가 말에 올라타야 했다.

“어디로 갑니까.”

부관의 말에 이실레아가 짧게 대답했다.

“밤에 파이룬 영지로 가서 영주님과 군세를 합친다. 가자!”

500기의 기병들이 밤을 틈타서 내달리기 시작했다. 몽펠리에 영지를 빠져나갈 때까지는 밤에만 움직일 수 있었다. 잘못하다간 드래곤 오크 라이더에게 걸릴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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