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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502화 (501/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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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성거림은 없었다.

불파겐 자작이 아니라서 크게 반기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대놓고 면박을 주지도 않았는데 드낙의 위세를 그녀가 받고 있어서였다. 또한, 지금은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것이 북부의 인간들이었다.

몽펠리에의 기사가 말했다.

“어떻게 알고 있었소? 몽펠리에는 섬투(閃投)의 기사와 접점이 잘 없지 않았소?”

“〈빌프레스 포렌스〉. 자유기사가 말해주었고, 그는 죽었소.”

이에 이실레아는 빠르게 대화를 진행하게 했다.

이렇게 배경을 논하는 것도 아깝다고 느껴서였다. 한 걸음을 내디뎠지만 절로 무기가 드세어졌고, 기사 또한 앞에서 비키지 않았다. 그 모습에 이실레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투구를 벗었기에 그 표정은 횃불의 불명확한 불빛에 더욱 진하게 드러났다.

“죽었다니? 어떻게 죽었소?”

비밀 통로로 꾸준히 지원을 해주는 인력이었다. 빌프레스 포렌스의 무력도 제법 좋았고, 이번 위기를 맞이해서 몽펠리에의 방계에 이름을 올리며 비전도 몇 개 전수하였다.

그런 자가 죽었고, 그 죽음은 다른 이의 입에서 삐져나왔다.

가문에 대해서 깊은 애정을 가진 것이 귀족이었기에 당연히 크게 관심을 가졌다. 이실레아는 굳이 각을 세우고 싶지 않았기에, 순순히 대답해주었다.

“오크의 손에 죽었고. 산악전에 야습까지 걸쳐있었기에 제법 무력하게 당했을 것이오.”

자유기사를 낮게 평가하는 말에 욱하는 병사들이 제법 나와서 소란이 조금 일어났다.

“이놈들! 뭐 하는 것이냐! 지하에만 있더니 정신을 놓은 거냐!”

책임자인 기사가 호통을 치자마자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말이 지나치셨소. 브릴리언트 경. 그는 이곳에 보급을 꾸준히 주던 자였소.”

이실레아는 짧게 목례하며 사과했다.

“목숨을 바친 전우에게 내 못할 말을 했다면 사죄하겠지만, 지금 뒤를 보시오. 이들은 전우가 아닌가?”

몽펠리에의 기사가 힐끔 이실레아의 뒤로 시선이 갔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통과하시오. 몽펠리에의 〈쌍둥이 성채〉에 오신 것을 환영하오.”

이실레아가 거침없이 투구를 다시 썼다. 그녀의 뒤로 독기를 풀풀 풍기는 병사들이 수백은 되었고,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보다 커 보이는 짐과 물을 담은 가죽주머니를 한가득 짊어지고 있었다.

‘엄청난 강병이다.’

겉으로는 잘 버려진 검과도 같이 보였다.

실제로는 대규모 실전 하나 겪어보지 못한 병사들이었다. 신병과 베테랑 사이에 위치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물론 근속이 짧은데도 정규병처럼 보인다는 것이 이실레아의 군사적 재능을 말하고 있었다.

‘드디어 도착했다.’

이실레아가 눈을 빛냈다. 지하통로로 들어섰기에 300명의 병사만 데리고 왔지만, 그녀가 이번 전쟁에 투입한 병력은 500기의 기병이었다.

200기의 경기병은 고숙련자들로 이루어졌고, 〈바세안 토성〉 출신들이며 당연히 마적질을 하던 자들이었다. 이들이 있었기에 불파겐의 기병전력은 시작부터 어느 정도 수준을 지닐 수 있었다.

나머지 300기는 중기병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실력은 평균에서 상위권이며 이주민 출신이 많았다. 이실레아의 친위대나 다름없었는데, 그만큼 그녀의 사적인 관심이 듬뿍 들어가 있었다.

공공의 병사들이었지만, 그 속은 지나칠 정도로 그녀 개인의 사병으로 보일 정도였다.

‘이곳에서부터 새로운 바람이 시작될 것이다.’

몽펠리에 령의 가장 북쪽에 있는 전투요새, 〈쌍둥이 성채〉는 파이룬의 전투요새인 〈쌍둥이 언덕성〉과 닮은 면이 많았다.

거의 비슷한 양식이라고 보면 되었다. 다른 점은 파이룬의 전투요새에는 성과 성 사이에 다리가 있었지만, 몽펠리에는 다리가 없다는 점이었다.

위에서 보면 사람의 고환처럼 딱 붙어서 있었다.

그녀와 300의 병사는 보급품을 한 짐 들고 통로를 지나갔다. 깊은 곳에 자리 잡은 통로였기에 오크들에게 들킬 수가 없었다. 소리를 크게 지르지만 않으면 되었다. 직선으로 이루어진 곳은 아니었다.

꺾어지는 곳이나 큰 바위에 놓인 사다리를 걸어가야 하기도 했다. 그런 상황마다 3명 이하의 병사와 마주하기도 했다.

걷고 또 걸어서 드디어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멈추시오!”

50명의 병사가 출입구를 지키고 있었고, 이실레아의 신분을 증명함과 동시에 불파겐 깃발을 보고 나서야 통과할 수 있었다. 전신갑주를 있다고 해도 소용이 있을 리가 없었다.

전쟁에서는 무슨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었다.

시간이 급하다, 시간이 급하다 해도 모든 검문 과정에 싫증을 내거나 짜증을 내지 않은 것이 그녀였다.

이실레아 브릴리언트는 당장 아크온 몽펠리에를 만나지 못했다. 대신 〈스웬슨 보두앵(Swenson Baudouin)〉과 마주할 수 있었다.

‘나쁘지 않다.’

몽펠리에의 기병전력에 있어서 주력을 담당하는 것이 보두앵 가문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반갑소. 스웬슨 보두앵이라고 하오. 브릴리언트 경.”

“보두앵 경, 큰 전투를 앞두고 마주하게 되어 반갑소.”

보두앵은 간도 보지도 않고, 바로 자리를 권했다. 그녀는 거침없이 앉았다.

“불파겐 자작께서는 함께 오시지 않으셨소?”

“당연히, 토치라이트 영지로 가셨소.”

이실레아의 당연하다는 말에 보두앵은 헛기침 한 번 하는 것이 전부였다. 지리적으로 본다면 불파겐은 솔직히 외척보다는 토치라이트 영지가 멸망하지 않는 게 중요했다.

‘이거 할 말이 없군.’

군사학서의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그걸 아니라고 말한다면 무인으로써의 자존심에 금이 가는 것이다. 아니라면 대쪽같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무인이었다. 특히나 자신의 분야에서는 더욱 고집이 컸다.

그것을 찔렀으니, 딴소리를 못했다. 아크온 몽펠리에 또한 득과 실을 가늠해보고 받아치겠지만, 지금 이 자리에는 없었다.

‘남부의 버러지 같은 녀석들.’

군대를 보내지 않고, 후방 보급만 담당하고 있는 것이 남부 왕국의 결정이었다. 그 때문에 아크온은 수많은 가신들과 모든 군사학서를 뒤지며 참고할 수 있는 것들을 찾기 바빴다.

“오크들은 점점 다가오고 있소. 북부 8가문이 빠르게 영지를 버리고, 피난을 한 덕분에 인명피해는 적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오.”

하지만 오크 4만이 서서히 북부의 남쪽에 있는 몽펠리에 영지로 다가오고 있었다. 곧, 수성전이 시작될 것이다.

“오크의 진격속도는 지나칠 정도로 느린 수준이오. 다행이라면 다행이고, 그 덕에 많은 준비를 하는 상태요. 소수의 오크 별동대가 활동하고 있긴 하지만 위협적인 수준은 아니오.”

숫자가 워낙 많았고, 이런 대규모의 공격전은 오크도 처음이라서 그 속도는 느릴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살기 위해서 버린 약탈물도 많아서였다. 부족이 달랐기에 약탈 경쟁이 붙은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아무리 강해도 말 안 듣는다고 다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북부의 서쪽과 다른 이유는 〈킹슬레이〉의 병사들이 악귀처럼 약탈할 거리를 모조리 박살을 내서였다. 다른 곳은 아니었는데, 모든 것을 포기하지 못했고, 미련을 가졌기 때문이다.

“시간···”

이실레아가 중얼거렸다.

그 덕에 몽펠리에에게 시간이 이렇게나 주어질 수 있었다. 오크들의 살을 찌우는 결과가 되어버렸지만, 북부로의 진출이 가능한 몽펠리에나 파이룬의 멸망은 피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시간을 벌어도 남부 왕국이 큰 군대를 보내줄 줄 알았을 때나 희망스러웠지. 지금은 아니오.”

그것도 남부 왕국이 군대 대신에 보급만 해주겠다는 결정을 받기 전에나 했던 일이었다.

이 모든 상황을 가감 없이 전해들은 이실레아는 뼈를 정통으로 얻어맞은 표정을 지었다.

“흐허하하.”

보두앵이 그 표정을 보고 웃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얼마나 심각한 일인데, 웃음을 짓는 것이오?”

“고민해봤자 무엇이 변하겠소?”

그렇게 말한 보두앵이지만, 그 또한 입맛이 썼다. 블랙 스케일 와이번을 막을 수 있는 불파겐 자작이 이곳에 오지 않아서였다.

‘토치라이트가 우리를 도와줄까?’

그럴 역량은 없을 수 있었고, 한다고 해도 한발 늦을 것이다.

“킹슬레이는 정확히 어떻게 대응하고 있소? 움직임이 분명 있을 것인데···”

이실레아는 북부의 서쪽에 대해서도 물었다. 드워프와 국경선을 마주하고 있고, 사막이 있는 곳이라 반드시 상업이 필요한 곳이었다.

“청야전술을 극단적으로 실시해서 오크들이 적당한 선에서 멈추었소. 몰래 서쪽의 군대 또한 결집하여 이곳으로 지원을 와서 북쪽으로 향할 것으로 보고 있소.”

희망적인 말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은 엉뚱했다.

“메시지 마법까지 받았기에 〈쌍둥이 성채〉의 수성전이 성공한다면 때를 맞출 수 있소.”

보두앵의 말에 이실레아는 자신도 모르게 탁자를 쳤다.

“수성전에 지원을 해달라고 해야지요. 왜 그런 판단을 하셨소?”

보두앵이 한숨을 내쉬었다.

“백금 왕가의 군대를 믿었소. 그들은 도착하고 나서 후방 보급만 하겠다며 다른 소리를 지껄이는데, 어찌하겠소?”

그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하여간 정치에 미친 작자들이었다.

“킹슬레이는 이미 오크에게 공작을 시작해버려서 돌이킬 수 없게 되었소. 수성전에 오크의 힘이 집중되기 전에 다시금 그들과 대치하며 국지전을 행하며 오크의 힘을 잡아두고 있소.”

이실레아가 이마를 짚었다. 미묘하게 어긋난 태엽들을 마주한 기분이었고, 답답했다.

‘한 타이밍. 계속해서 한 타이밍이 무너지고 있다.’

좋지 않았다. 뭔가 일어날 것만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래서 브릴리언트 경의 생각은 어떻소?”

“결사대를 내보내 보급을 터는 수밖에 없습니다. 한다면 스스로 기름을 붓고, 불을 지르는 한이 있더라도 오크들이 먹을 것을 없애야 합니다.”

정론 중의 정론이다. 하지만 보두앵이 되물었다.

“우리가 그것을 해보지 않았다고 생각하시오?”

“무엇이 그것을 막았습니까.”

“오크 드래곤 라이더. 블랙 스케일 와이번에 대한 소문은 들었을 것이오.”

이실레아의 고운 눈썹이 깜짝 놀라서 꿈틀거렸다.

“헛소문인 줄 알았는데, 진짜로 있단 말이오?”

보두앵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은 오크의 편이오. 보급을 3번 정도 태웠는데, 그 뒤로는 놈 때문에 번번이 실패하게 되었소.”

“그렇다면, 함정을 파고 대장을 노려야 하지 않겠소? 놈 홀로 보급을 노린다면··· 역으로 대장을 암살하는 것이오.”

“그 또한 어렵소. 그 어떤 전신갑주도 그의 주먹질에 뚫리기 때문이오. 녹색 도끼의 챔피언이 태어났다고 말해질 정도로 강력한 오크 전사가 놈이오.”

‘전신갑주가 주먹질에 뚫려?’

이실레아가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빠르게 이해했다. 원체 이 세상이 그러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겨울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소?”

이실레아의 말에 보두앵은 고개를 저었다.

“방법은 아크온 님께서 찾고 계시오. 그전까지는 버텨야···”

말끝을 줄이며 보두앵이 따라놓은 술을 마셨다.

“불파겐 자작이 수성전 시작 전에 이곳으로 올 가능성은 있을 것 같소?”

이실레아는 고개를 저었다. 회의적이었는데, 그녀가 여기에 출병하기 전까지만 해도 토치라이트 영지에 대한 소식은 하나같이 암울해서였다.

“토치라이트 영지를 해방할 순 있겠지만, 그 이상은···”

쿵쿵쿵!

거칠게 노크 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다. 강철글러브를 끼고 치는 소리였기에 보두앵이 소리를 내질렀다.

“들어와라!”

들어온 기사가 인사도 올리지 못하고 바로 본론을 꺼냈다.

“불파겐 자작의 메시지 마법이 도착했습니다. 현재 파이룬 영지의 〈돌다리 마을〉이라고 합니다! 팬크리스 영지군과 연합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크온 님께서는 브릴리언트 경을 바로 데리고 오라고 하십니다.”

벌떡.

이실레아가 냉큼 일어났다. 서둘러 걸음을 옮기다가 이내 뛰기 시작했다.

천장은 높지 않았지만, 넓은 공간의 중앙 바닥에는 마법진이 푸른빛을 내고 있었고, 마법사가 마력을 구슬에 집어넣고 있었다. 그 주위로 기사와 문인, 가신들이 모여있었다.

열려 있는 문으로 이실레아가 뛰어들어왔다.

마력의 연기 속에서 드낙과 아크온의 대화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팬크리스 남작의 계획은 너무 무모하다.”

아크온은 언성이 조금 높아져 있었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던데. 그리고 드래곤 오크 라이더가 문제라면, 나한테 방법이 있다.”

아크온은 더 말하지 않았다. 이실레아가 도착해서였다.

“브릴리언트 경이 도착했다. 드낙.”

“영주님을 뵙습니다. 이실레아입니다.”

아크온이 몸을 돌렸고, 이실레아가 마법진 안으로 들어섰다.

“영지는?”

“둥근 언덕 마을의 사냥꾼들이 봐주고 있습니다. 염려하실 일은 일어나지 않으실 겁니다.”

드낙은 영지에 대해서 가장 먼저 이것저것 물었다. 이실레아는 모든 질문에 대답했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상태가 이렇게 심각할 줄 몰랐다. 오크들이 물러나도록 만든다. 계획인 나한테 있고, 그들의 기세는 빠르게 줄어들 것이다.”

드낙은 자세한 것을 말해주지 않았다. 다만 겉으로만 다른 영지군을 합치겠다는 팬크리스 남작의 의견을 말해주었다.

“그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또 위험합니다. 적은 대단히 빠른 대처가 가능합니다!”

이실레아는 거듭 부정했다. 오크 드래곤 라이더의 존재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날 믿어라. 시간이 없다. 메시지 마법으로 생기는 마력의 길은 누구나 볼 수 있어서 이만 끊겠다.”

메시지 마법이 그것을 끝으로 사라졌다. 마법진은 빛나고 있었지만, 드낙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아크온이 크게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드낙의 미친 소리를 막을 이실레아의 의견이 말해지기도 전에 드낙에게 묵살당해서였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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