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497화 (496/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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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움직였다.

그것만큼 이해하기 힘든 광경도 없었고, 설명하는 것도 어려웠다.

눈은 깜빡거리지도 않았다. 아니, 마치 눈썹이 없는 것 같았다. 계속 이리저리 천천히 움직이는 어둠을 바라보았다.

마치 짐승이 어슬렁거리듯이 주위를 배회하던 어둠은 마침내 일그러졌다.

늑대의 어금니가, 누런 이빨이 들러붙은 괴상한 형체가 만들어졌다.

시야가 미친 듯이 흔들렸다.

“흐어어억!”

오크 주술사 〈따이반 무루-돌(Taivan Moroodol, 태평한 꿈)〉이 팔을 허우적거리며 일어났다. 머리가 어지러워서 그대로 뒤로 넘어가 나무 지팡이에 뒤통수가 찍혔다.

띵했다.

“으그극.”

소리를 내며 눈을 뜬 따이반의 눈에 인간들이 거주하는 곳의 거실 풍경이 들어왔다. 거실의 중앙바닥을 뜯어내고 화덕이 하나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월한 오크의 시야에 검은 뭔가가 움직였다. 꿈이 생각난 그는 과민하게 반응했다.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렸을 때, 늑대의 이빨이 그대로 목을 깊게 물었다.

“칵!”

일어서려고 했지만 다른 검은 늑대가 오크 주술사의 가슴을 치며 함께 넘어졌다.

“으르르···”

목젖은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이빨에 박혀서 고정되었는데, 바람이 새는 소리만 들렸다. 주술사의 손이 지팡이를 찾았지만, 뒷머리와 부딪치면서 멀리 가버렸다. 버둥거리며 지팡이를 찾는 동안 다른 검은 늑대가 단번에 손목의 힘줄을 뜯어버렸다.

까득. 까드득!

뼈째로 손목을 씹었다.

“끄으윽!”

4마리에 달하는 검은 늑대가 오크 주술사 하나를 물어 죽였다. 허망하디, 허망한 죽음이었다. 못해도 인간 병사 십여 명은 감당할 수 있고, 오크 전사의 보호를 받는다면 서른 명을 전투 불능으로 빠지게 하는 고급 전력이 덧없이 죽어갔다.

지독한 현실이었다.

능력치가 아무리 높아도, 결국 유기체의 죽음은 갑작스럽기 그지없었고 때때로 지나칠 정도로 나약하게 꺼트려 지는 촛불과도 같았다.

게임과는 달랐다. 0과 1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싸움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심했다. 어린아이조차도 찾아내지 못한 적이 있는 드낙이었다. 암살자와 사냥꾼으로의 재능이 높아도 별 수 없는 일도 많았다.

주술사 10마리 중에 그 누구도 다가오는 〈별의 기사〉에 대해서 예언해내지 못했다. 유일하게 예지몽을 꾸는 따이반 무루-돌만이 자기 죽음을 예언해냈다.

하늘을 가득 메우는 별 중에서 드낙과 함께 움직이는 별을 특정하는 것은 〈점성술사〉 중에서도 뛰어난 자만 가능했다.

왜 점성술사 중에서 극소수의 점성술사만이 〈별자리 지도〉를 제작하고, 그것을 배포하는지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수십 마리의 오크 주술사가 모여서 예언을 하지 않았다면 결코 드낙의 존재를 파악할 수 없었다. 그렇게 예언을 해도 드낙의 모습만은 철저하게 볼 수 없어서였다. 그저 색이 다르고 성향도 다른 4개의 별이 기괴하게 함께 빛을 내고 있을 뿐이다.

혹은 대전사를 쥐어팰 수 있는 권한을 지니고, 대전사를 조언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주술사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두 개의 조건 모두 충족하지 않은 것이 〈오크 보급소〉의 병력 현황이었다.

퍽!

골이 그대로 부서졌다.

뿌루루룩!

죽은 오크 주술사의 엉덩이에서 방귀가 튀어나왔고, 변이 흘러내리며 악취를 풍겨냈다. 죽은 자의 최후는 아름답게 그려지지만, 이곳에서는 어림없었다.

‘이제 한 방이네.’

짜릿함을 느꼈다.

드낙의 무위는 한 층 더 늘어났는데, 오크의 두개골을 단번에 부술 정도로 커졌다. 오크가 가지는 체중의 우위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서였다.

적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 일본 장교가 되어 그들의 싸움법을 알고 난 뒤 만주로 탈출한 독립투사처럼, 오크에 대해서 알아버린 드낙의 일격은 두꺼운 두개골을 단번에 격파할 수 있게 한 단계 진화할 수 있었다.

‘이거지.’

왜 무협지에서 깨달음, 깨달음 노래를 부르면서 사람을 쳐 죽이고 다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오크의 수법.’

그의 눈에 강렬한 성취욕이 일렁거렸다.

줏대도 없고, 팔랑거리기 때문에 오크의 수법을 누구보다도 잘 자신의 몸에 녹일 수 있었던 것이 그였다. 인간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짓이었지만, 드낙이 지닌 육체와 열등감은 그것을 가능케 했다.

‘불파겐의 이강(肄講), 〈에이너 클린제(Einer Klinge, 하나의 검)〉에도 큰 도움이 될 깨달음이야.’

〈오크의 깨달음〉이라고 할 정도로 오크에게 배운 것이 많았다. 무엇보다 인간을 초월한 드낙의 몸에 딱 맞는 힘의 사용법이기도 했다. 여기에 세파리아스의 관점이 들어간 것도 있었다.

깨닫는 것과 체득(體得)은 또 다르기 때문이었다.

일격에 오크 주술사를 죽인 드낙이 어둠 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엉금, 엉금!

숨도 크게 쉬지 못하며 병사가 기어갔다. 산의 가파른 곳이었고, 내리막길이었지만, 지나칠 정도로 느렸다.

‘도착했다. 여기야.’

가만히 있던 병사가 눈알만 굴려서 주변 윤곽을 확인했다. 산이라 달빛 하나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산딸기 수풀이 많아서 숨기도 좋았지만, 주변을 확인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제기랄. 도박이나 다름없네.’

오크 전사가 없다는 걸 그냥 믿고 움직여야 했다.

진흙과 땀으로 범벅이 된 병사가 슬금슬금 움직였다. 긴장으로 손가락이 이상하게 저렸다. 손을 몇 번 주억거리고 나서야 움직일 수 있었다.

샤삭! 뚜둑.

주변 수풀을 뜯어내어 더욱 뭉치게 하였다. 자신의 모습을 가리기 위한 게 아니라, 오크들이 있는 방향에서 부싯돌 부딪치는 걸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규칙적인 번쩍임은 인위적이라서였다.

이 어둠에서는 촛불조차도 멀리서 잘 보일 터다. 매우 조심해야 했다.

탁, 탁.

단단히 수풀을 아래에 모아놓고, 두꺼비집처럼 만든 다음에 안에서 부싯돌을 부딪쳤다. 불똥이 튀겼지만, 생수풀이라 불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대신 아래에 놓아둔 지푸라기를 비빈 것과 작은 나뭇가지에 불이 들러붙었다.

“후···.”

약하게 하지만 길게, 꾸준히 산소를 공급했다. 연기는 나지 않았지만, 부는 걸 멈추자 단번에 연기와 함께 불이 일어났다.

‘됐다.’

가죽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동물 기름을 꺼냈다. 생나무에 바르고 불이 살살 나는 더미의 아래를 들어서 가까이서 던졌다.

파악!

불똥이 거세게 튀면서 단번에 불길이 치솟았다. 엎드린 병사가 계속해서 이동해서 또 어둠 속에서 그 짓을 반복했다.

후우우웅!

거친 밤바람이 마을을 지나 산 위로 올라가며 불똥이 그 바람을 타며 나뭇잎에 들러붙었다. 삽시간에 불이 번지기 시작했다.

투둑, 뚝!

나뭇가지가 떨어졌다. 같이 붙어있던 나뭇잎은 불길로 가득했고, 산딸기 수풀도 빠르게 타올랐다. 물을 조금 머금고 있었지만, 불길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수풀이 머금은 수분이 타면서 검은 연기가 거세게 피어오르고, 그 뒤에는 새하얀 연기가 잔뜩 산 위로 올라갔다.

“신호가 떨어졌습니다!”

새하얀 연기는 달빛을 받으며 나무 위로 모습을 드러냈고, 인간 군대가 잡아내었다.

“돌다리를 점거하고, 도강하는 오크들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다리막이〉부터 앞으로!!!”

팬크리스 남작의 말이 곳곳에서 똑같이 되풀이 됐다. 노기사들은 오랜만의 전장에 복잡한 마음을 이끌고 뛰어나갔다.

뿌우우우우웅!

쿵! 쿵! 쿵!

인간 군대가 내뿜는 뿔나팔 소리가 묵직한 저음으로 뻗어 나갔다. 정규병들이 왼발을 땅에 짚을 때마다 힘을 줘서 함께 발소리를 크게 내었다. 이 정도의 인기척, 소란을 모를 오크 전사들이 아니었다.

돌을 여러 개 쥐고 도박질을 하던 오크 전사가 냉큼 머리 하나를 들어 올렸다.

“적이다아아아아!!!!!”

오크가 고함을 내질렀다. 워낙 소리를 크게 내지를 수 있어서 딱히 뿔나팔 같은 건 특별할 때만 사용하거나, 그런 성향을 지닌 부락만 사용했다.

“우워어아아아!!”

짐승같이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한 주먹도 안 되는 것들이 쳐들어왔기 때문에 화가 났다.

여기에 있는 오크 전사 300마리는 뿔나팔 하나 없었다. 오직 고함을 내질렀는데, 공기가 떨리는 것 같은 착각에 휩싸일 정도로 거센 고함이었다.

목책에 단번에 도약해서 손을 턱 끝에 잡고, 스스로 쭉 몸을 당겨서 한 번에 목책 위로 올라온 오크 전사가 전방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횃불이 강 너머에 꽂히고 있었고, 나무로 된 창이 장애물처럼 박히고 기울어지고 있었다. 그 작업을 하는 인간들의 복장은 저급했고, 체격도 흐물흐물했다.

다리 세 곳의 입구를 막은 곳에 있는 인간들은 방패와 창으로 무장했고, 소수의 강철 전사가 보였다.

‘저기다.’

두꺼운 입술을 혀로 핥았다. 냉큼 뛰어내려서 먼저 다리 쪽 방향에 자리를 잡았다. 오크들이 너도나도 밖으로 뛰쳐나왔다. 자신들보다 많았지만,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숲이나 산에서 만나는 인간들은 잡기는 힘들었지만, 자신의 눈만 잘 보호하면 되었고, 백설산맥을 벗어난 곳에서는 도망만 다녔기에 자신감이 대단했다.

이런 평지전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세 곳의 다리에 오크들이 자리를 잡기도 했다면, 이미 자리가 잡히는 걸 본 오크 전사는 손에 침을 탁 뱉으며 얼굴에 인상을 한 번 찡그린 다음에 목책 위에서 활을 빼 들었다.

그기기기긱.

무식한 소리가 나며 당겨진 활에 화살을 놓고, 그대로 쏘았다.

높은 곳에서 쏘아진 화살은 포물선을 그리며 정확하게 다리에 잔뜩 모인 인간들에게 쏘아졌다.

텅!

한 대였기에 능숙하게 방패병이 방패를 들어 올려 막았다. 숫자가 많다면 방패는 앞에 두고, 고개를 숙이거나 〈방어 마법〉을 썼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드낙 불파겐은 지속시간이 길다고 했지만, 원래 마법이란게 목이 그어질 때까지 아끼는 것이라 아낄 수밖에 없었다.

강에 나무창을 박고 횃불을 꽂고 있는 놈들을 노려보았는데, 강철 전사들이 그것을 막아주었다. 쏘아지는 화살을 그것도 밤에 쳐내는 실력을 보니 보통 노련한 놈이 아닌 것 같았다.

“뭘 벌써 쏘고 있어? 얻은 게 있냐?”

“다리는 속임수다. 진짜는 강 너머에 있는 놈들이다.”

“그래? 확실히 강 너머에 강철의 전사들이 많네. 그래도 저렇게 잔뜩 기세를 돋운 다리 쪽으로 가는 게 좋지 않겠어? 부수는 맛이 있잖아. 크흐흐.”

오크가 젖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말했다. 스테로이드를 20년 넘게 복용한 것처럼 앞가슴이 근육으로 풍만했다.

“난 강을 넘어갈 거야.”

“맘대로 해라. 진짜는 강 너머에 많단다!”

정보를 준 대가로 소리를 한 번 대신 쳐준 오크 전사가 그대로 뛰어내렸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도 무조건 다리로 갈 생각인 듯했다.

“주술사가 암살 당했다!!!”

이내 주술사 10마리가 모조리 죽었다는 게 퍼져나갔다. 매우 은밀한 드낙과 검은 늑대는 마을 내부에 숨어있는 상태 그대로였다. 오크 전사를 굳이 죽이지는 않았는데, 작전대로 하기 위함이었다.

“흉수를 찾는 건 뒤로 미뤄라!”

“뒤통수가 얼얼할텐데!”

의견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오크 사회라 당연한 일이었다. 꼬우면 한 바탕 하면 그만이었다. 서로 자신감이 대단했다. 이 상황에서 싸우는 오크는 없었고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움직였다.

흉수를 찾아다니는 오크 전사들이 있었지만 많지는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활을 쏘거나 덤빌 준비를 하는 오크들이 다수였다.

피피핑! 피핑!

오크들의 활 쏘는 속력은 무시무시했다. 워낙 두꺼운 손이라 화살을 크게 쥐고 쏘기 편했고, 힘이 대단해서 파괴력도 무시무시했다.

통으로 된 강철 방패에 화살이 박히거나 화살촉이 찌그러져서 떨어질 정도였으니, 더 할 말이 없었다.

“버텨라!”

때애앵!

소리를 지른 팬크리스 남작의 투구에 화살이 박혔다. 그대로 팬크리스 남작의 고개가 뒤로 꺾이면서 쓰러졌다.

“남작님! 괜찮으십니까!”

“나는 괜찮다! 허억.”

소리를 내지른 팬크리스 남작이었지만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현기증이 강하게 찾아오며 눈이 핑 돌았지만,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일어섰다. 그는 다리 중에서 가장 중앙에 있는 600걸음짜리 다리를 지휘하고 있었다.

“버텨라! 곧 화살이 떨어질 것이다!”

그 말처럼 화살은 금방 동났다.

목책 위에서 활을 쏘던 오크들은 내려와서 강을 넘기 시작했다. 적당한 때를 보아서 다리에 있는 오크들도 두꺼운 나무 방패를 앞세우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깊고 유속이 빠른 강을 헤엄칠 때, 드낙이 동물떼를 이끌고 측면에서 나타나서 고함을 내질렀다.

“우와아아아아!!!!!”

컹컹!

우어어엉!

꾸익!

온갖 동물들이 함께 울음소리를 냈다. 드낙이 횃불도 하나 들고 있어서 오크 전사들에게 확실하게 보였다. 달빛도 도움이 되었다.

“동물떼가 후방을 노린다!”

다리를 달리던 오크들이 일부 머리를 돌렸다. 본래는 강을 도강하는 오크들을 방해하기 위해서였는데, 일이 틀어졌다. 생각보다 동물들이 산을 잘 못 내려왔기 때문이었다. 오르는 것에 비해서 형편없는 속력으로 내려와서 생긴 시간차였다.

대신 드낙은 온갖 공격마법을 쏟아내어 강에서 헤엄치는 오크들의 뒤통수를 노렸다.

“크흐.”

불타는 창이 오크 전사의 뒤통수에 박히더니 천천히 꿰뚫으려고 했다. 오크 전사가 뜨거움에 잠수를 했지만 창은 박힌 채로 그대로 딸려 들어갔다. 결국 주술 도기를 깨고 나서야 드낙이 만든 불의 창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도강하는 오크들은 드낙의 마법에 피해를 입으면서 속력 또한 크게 느려졌다.

‘이런 씨. 개 같은 주술 아이템들.’

드낙은 제대로 공격 마법이 먹혀들지 않아서 화딱지가 났다. 하지만 그것을 볼 여유는 빠르게 사라졌다. 오크 오십여 마리가 자신을 향해서 달려오며 그대로 투척 도끼를 투척했기 때문이다.

직각으로 바로 쏘아지는 투척 도끼가 있는가 하면 앞의 오크를 오인사격 하지 않기 위해서 곡사하듯이 포물선을 그리며 던져지는 투척 도끼도 많았다.

동물떼가 그대로 오크들과 마주 들이받았다.

삽시간에 동물떼가 박살이 나고, 밀리며 피가 솟구쳐올랐다. 그 속에서 드낙이 오크 전사들과 정면으로 격돌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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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연휴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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