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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잡이 노릇을 하며 이번 전쟁에 동원된 용병 대장이 말했다. 파이룬 영지에서 활동하는 자였으며, 파이룬 영주의 양피지를 받고 팬크리스 영지군과 함께하고 있었다.
“분명 〈돌다리 마을〉입니다. 다리가 3개 있는 걸 보니 틀림없습니다.”
카이야가 그린 그림을 보며 확신을 했다.
그는 〈정보꾼〉이기도 했다.
신뢰할 수 있는 자는 아니었지만, 함께하면 도움이 되는 자였다.
“뒤에는 그리 크지는 않지만, 산딸기 수풀이 엄청나게 많은 야산이 있습니다. 앞에는 강이 흐르고 돌다리가 3개가 있는 곳입니다.”
“강의 깊이는 어떠한가?”
팬크리스 남작이 물었다.
“사람 머리가 잠길 정도로 깊습니다. 중장비를 입고 도강할 수 없고, 말 또한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음···다리에서 싸우는 것은 피해야 할 듯하오.”
도강의 어려움은 인간 군대에게 매우 힘겨운 환경이었다. 경장비 혹은 나무나 털가죽을 입은 오크는 인간보다 강을 건너기가 쉬웠다. 특히나 힘이 좋고, 팔다리가 쭉쭉 뻗어있으며 폐에 공기를 인간보다 더 많이 담아놓을 수 있어서 웬만하면 익사하는 경우가 잘 없었다.
“다리의 길이는 어느 정도인가.”
드낙의 말에 용병 대장이 대단히 두려워하며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일반인들과는 다르게 용병들, 그중에서도 정보꾼에 해당하는 자들이 가진 정보의 힘은 실로 대단해서 드낙의 무서움을 가장 잘 체감하고 있었다.
“긴 곳은 600걸음이나 내달려야 합니다. 짧은 곳은 200걸음 정도입니다.”
차이가 심했다. 그래서 더더욱 다리를 점거하는 건 어려워졌다. 드낙의 머리에 악어처럼 빠르게 잠수해서 헤엄치다가 호로록 위로 퉁겨지듯이 올라와 다리로 올라오는 오크 전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공포 영화가 따로 없네.’
포위는 가장 피해야 하는 전투 형세다. 무엇보다 자신들은 〈돌다리 마을〉로 쳐들어가야 했는데, 이것은 〈원하는 전장터〉를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서 많은 의견이 오고 가고 치밀하고 세세하게 하나씩 따져봐야 했다.
전설적인 명장들이 하나같이 ‘이길 수 있을 때, 싸운다.’라는 명제를 철칙처럼 여긴 것처럼 그렇게 전투의 형세를 만들고 가야 했다.
이것을 모르고 싸움에 임한다면 운을 이길 수가 없고, 대군을 가졌음에도 패하기도 하며, 소군을 지녔을 때 운 좋게 이기기도 하는 종잡을 수 없는 장군이 되어버린다.
믿고 군병(軍兵)을 맡길 수가 없다.
〈그라돈 군사학서〉를 1번 완독하고, 2독을 실시하고 있는 드낙도 알고 있는 전술의 기본이었다. 아쉬운 점은 항상 1쪽에 있는 것이라 까먹거나, 가볍게 여기는 자들이 많다는 점이었다.
“다리에서 싸울 수 없다면, 목책이나 성문을 점거하는 수밖에 없소.”
두 다리 단단히 세우고 버틸 만한 곳을 가장 먼저 찾는 게 인간의 오크 대응법이었다. 병(兵)으로 버티고, 장(將)으로 오크를 베어낸다. 그게 정석 중의 정석이었다.
“목책의 높이에 대해서 말해보라.”
드낙이 소리를 냈다. 이에 용병 대장이 대답하였는데, 생각보다 드낙이 기세를 안 뿜어내고, 얌전해서 이번에는 목소리를 떨지 않았다.
“사람 두 명이 목마를 타고 끝에 손을 닿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리 높지 않습니다.”
쯧.
노기사 하나가 혀를 찼다. 목책의 수준이 너무 형편없어서였다. 동사해서 죽는 사람이 생겨도 목책은 유지하는 게 최북부에 있는 자신들의 삶이었다. 그 아래에 있는 파이룬 영지의 목책 수준은 엉망이었다.
“그 정도 높이라면 오크들은 언제든지 뛰어오를 수 있소. 밧줄이나 그런 것 하등 상관없고, 대충 가구만 하나 던지고 발판으로 삼을 수도 있고, 투척 도끼도 힘을 잃지 않을 수준이오.”
“발판으로 삼아 도약한다면, 오크 중에 도약에 능한 놈은 벼락처럼 떨어질 것이오.”
드낙이 뛰어난 상상력과 자신이 겪은 오크들의 신체 능력을 통해서 속사포처럼 의견을 냈다. 노기사들이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나, 발판으로 삼으며 단번에 도약하는 오크는 공포 그 자체였다.
날아다니는 엘프(Flying Elf)만큼이나 혐오스러웠고, 무서웠다.
잘못해서 병사들이 뭉쳐진 곳에 내리면 병사들은 무기를 휘두를 수가 없고, 체중에서 밀려서 목책 밑으로 우수수 추락할지도 몰랐다.
목책의 높이가 낮아서 목책 점거는 해도 장점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성문에서 버티기도 불가능했는데, 오크들은 언제든지 목책을 넘어갈 수 있어서였다.
“남은 건 기습인데.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닌가.”
드낙이 스스로 그렇게 말하며 웃어젖혔다. 다른 이들도 웃음을 터트렸다.
흐흐.
하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인간이 오크에게 야전(夜戰)을 거는 것만큼이나 병신같은 생각이었다. 그들은 우월한 감각기관을 가지고 있었으며, 개체 자체가 인간보다 강했다.
기습의 묘리를 살린다면 오크보다 기사가 더 많은 상황에서나 할 법했고, 오크의 숫자가 많이 적어야 했다. 약탈을 나온 오크 전사처럼 30마리 미만에서나 기습이 먹혔고, 그것도 포위 기습을 해야지 교전 비율이 올라갈 것으로 여겨졌다.
이내 윤곽이 완전히 드러났다.
“결국 유인전을 해야 하오. 오크 전사가 300마리나 있고, 주술사 또한 반드시 있을 터이니 우리의 군세를 보고 도망치지는 않을 것이오.”
오히려 인간이 불리한 상황이었다.
“다리의 입구에서 버티고, 도강하는 오크는 슬링, 투창, 화살로 방해하며 물에 흠뻑 젖은 오크 전사는 기사가 상대하게 할 것이오.”
팬크리스 영주가 순식간에 자신만의 그림을 그렸다. 후방이 안전하고, 오크들은 물에 젖거나 깊은 강을 헤엄쳐서 와야 했고, 도강하더라도 진흙에서 싸워야 했다.
기사와 오크가 싸우기 좋았다. 병사들은 장창을 들고 있어서 보조하기도 수월할 터였다. 또한 원거리를 쏴서 이득을 볼 수 있었다.
괜찮은 방법이었고, 싸운다면 이것 밖에 없어 보였다. 오크의 호전성을 잘 이용했다는 점도 있었다.
“목책 위에서 활을 쏜다면 닿을지도 모르오.”
“오크들의 활은 사거리가 엄청나고, 위력도 상당하여서 방도가 필요한데···”
노기사들이 고민했다. 마차를 분해하여 장벽으로 쓸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에는 강이 너무 넓었다. 조밀하게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 유동적으로 오크가 강을 넘어가는 것에 따라서 움직여야 했다.
한다면, 방패가 유용하겠지만 방패병의 숫자는 고작 100명 뿐이었다.
“그 문제는 내가 해결해줄 수 있소.”
드낙이 나섰다.
“병사들의 갑옷 바깥쪽에 마법진을 새기겠소. 〈흘러붙은 얼음(Flow Attached Ice)〉이라는 방어 마법이오. 지속력이 높고, 마력 소모는 적으며 잘 부서지기도 부서지지만, 파편이 많이 생기면서 충격량이 잘 퍼져나간다는 장점이 있소. 특히나, 화살 같은 것을 흘려내는데 탁월한 효과를 지니고 있소.”
“마법도 사용할 수 있으시다니, 불파겐 자작의 재능은 마르지 않는 우물과도 같구려. 대단하십니다.”
노기사가 감탄했다. 말 그대로 인간이 올라갈 수 있는 곳에는 모두 올라간 것처럼 보였다. 전투를 위해서 만들어진 전쟁병기와도 같았다.
‘고르곤의 심장은 마력 회복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걸 가장 잘 이용하는 방법은 아티팩트를 만드는 것이지.’
제국 전신갑주에 개 짓거리를 한 외척과 화해를 했지만, 피를 묻혀야 하는 큰 사건이었다. 마법사들이 줄줄이 드낙에게 목숨을 잃었다. 두 가문은 마법사 전력을 잃어 큰 피해와 배상금을 지불해야했다.
그 덕에 드낙은 마법진을 새길 줄 알았다. 이미 오면서 필요한 재료도 모아놓았다.
‘〈음각 마법진(陰刻 魔法陣)〉을 사용한다.’
연금술 놔두고 양각 마법진을 사용한다는 건 미친 짓이었고, 대장장이도 없었다. 갑옷이 만들어질 때 미리 함께 튀어나와있는 것이 양각 마법진이었다.
이미 만들어진 갑옷은 녹여야 했다.
“병사가 880명인데, 가능하겠소?”
팬크리스 남작의 말에 드낙이 손사래를 쳤다.
“불가능하오. 한다면 정규병들에게만 지급할 수 있소.”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어쩔 수 없는 것 때문에 민병대 400명은 큰 피해를 볼 것이었지만, 말 그대로 불가피했다. 전투 사제가 40명이 있다는 것에 위안을 했다. 살 사람은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물떼는 어찌 써야하오? 이번 전투에 쓰기는 써야 할 것 아니오.”
드낙의 말에 팬크리스 영주가 고심했다. 결론은 나지 않았고, 하루의 여유를 두고 다음에 다시 한 번 이야기를 나누기로 하였다.
“흉갑을 모두 벗어라!”
병사들의 흉갑이 드낙에게로 향했다. 파이룬 영지에서 보급받은 흉갑들이었다.
‘더럽게 많네. 될까?’
드낙은 곧바로 병사들의 갑옷을 불의 마법을 통해서 겉을 녹이고, 만들어놓은 〈결빙 촉진 물약〉을 흘러서 응고시켰다.
〈결빙 촉진 물약〉의 재료를 모은 이유는 다 〈파이룬 얼음 전신 갑주〉 때문이었다. 방어 마법은 얼음 계열이 좋다는 걸 알았고, 이를 이용한다면, 단순하게 병사들을 무장시킬 수 있었다.
단 하나의 방어 마법이 갑옷에 있는 것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피통이 오르는 것과 같았다.
결빙 촉진 물약은 얼음 마법의 마력 소모를 줄여주고, 마법 지속력을 높여주는 효과를 지녔다. 당연히 물약에 마력이 흐르고 있었고, 갑옷도 마력을 담을 수 있는 저장소 역할을 할 수 있어서 제법 오래 유지되는 방어 마법이었다.
하루 만에 380벌의 아티팩트를 만들 수는 없었다.
물론 꼬박 철야를 했음에도 드낙은 피로하지 않았고, 무시무시한 마력 회복력을 지닌 〈고르곤의 심장〉은 목표를 채우지는 못했지만, 놀라운 일을 만들어냈다.
〈흘러붙은 얼음(Flow Attached Ice)〉의 마력 소모는 보통(中)이 아니라 낮은(小) 축에 속해서 320벌을 단번에 만들 수 있었다. 또한 〈결빙 촉진 물약〉도 필요한 양만큼 만들어냈다.
고르곤의 심장이 지닌 마력 저장력은 보통 마법 40번. 완전 충전까지는 400분이 걸리며 마력이 바닥났을 때, 시작한다면 하루에 160번의 보통 마법을 사용한다. 하지만 드낙은 가득 차있었으며 무엇보다 〈주력(呪力)〉의 존재도 있었다.
가장 자연적인 특성을 지닌 자연의 주력은 기이하게도 〈고르곤의 심장〉의 효능을 증가시켜주는 모습을 보였다.
그 덕에 드낙은 하루 반나절 만에 모든 일을 끝마칠 수 있었다.
다음 날, 다시 한 번 회의하였다.
“산으로 들어가서 뒤를 치겠소.”
드낙이 후방치기를 말했다. 앞으로 인간 군대, 뒤로는 동물떼와 드낙. 양면에서 적을 맞이한다면 오크는 더 큰 피해를 입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너무 위험한 생각인 듯하오. 또 적들이 후방을 먼저 방어하려고 한다면, 강 너머에 있는 우리는 손 놓고 볼 수밖에 없소. 각개격파의 위험이 너무 크오.”
반박이 들어왔다. 당연했다. 주력은 강 너머에 있고, 뒤가 소란스러워지면 오크들이 되려 후방부터 막을 것이 분명했다.
여기에 관해서 노기사 하나가 비책을 내놓았다. 아주 독하디독한 농약과도 같은 수법이었다.
“산에 불을 내는 것이 어떻습니까. 아까 산에 산딸기 수풀이 많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산에 불이 먼지면 오크들은 강으로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용병 대장이 아쉬워하는 듯한 말로 말하였다.
“가을에는 마을로 바람이 붑니다. 하려면 밤에 해야 하는데, 밤에는 바람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이런.”
밤에 오크와 싸우는 건 두려운 일이었고, 특히나 민병대가 제법 있는 불팬 연합군의 특성상 좋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드낙은 환영했다.
“밤에 합시다. 검은 늑대와 함께 들어가서 오크 주술사들의 목을 따고 시작한다면, 대승을 거둘 수 있습니다. 동물떼도 숨겨놓았다가, 측면에서 돌진시키겠습니다.”
동물떼는 소모병 취급을 받았다.
인간이 가장 중요해서였는데, 잡병인 민병대를 위한 게 아니라 정규병의 소모를 줄이기 위함이었다. 적어도 오크 전사들이 동물떼를 몰살하기까지 인간들이 상대하는 오크의 숫자는 적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고민하는 눈치였다. 호탕하게 말했지만 드낙이 싸우는 모습을 직접 본 자가 없었다. 또한 야간 전투는 오크들의 안마당이나 다름없었다.
그 속에서 팬크리스 영주가 결단을 내렸다.
어차피 한 번은 드낙의 무력을 시험해야했고, 지금처럼 드낙이 스스로 후방을 자처할 때야말로 그 시험을 치러야할 때였다. 가장 확실하게 상대의 수준을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드낙 불파겐의 무력을 믿어보자. 야전에서 그가 오크를 이길 수 있다.’
“한 번 싸워봅시다!”
팬크리스 영주가 소리를 크게 냈다. 드낙 또한 외쳤다.
“오늘의 전투로 오크와 인간의 전쟁은 크게 판도가 바뀔 것입니다!”
내친김에 잔에 술을 따르고, 서로 잔을 부딪쳤다.
“북부를 위하여! 인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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