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495화 (494/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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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위에 떠오른 4개의 색이 다른 별이 반짝였다. 이 별들의 밑에는 드낙의 정수리가 딱 맞춰있었다.

“몽펠리에의 전투 요새로 갈 생각이오. 아마 그곳에서부터 역공이 시작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소.”

“〈쌍둥이 성채〉를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가능성이 클 것이오. 대부분의 북부가 다른 영지가 뚫리면서 빠르게 남쪽으로 피난길에 올랐기 때문이오.”

오크 부락 중에 전투를 경험하지 않은 부락이 많을 정도로 텅 빈 성을 점령하는 오크도 많았다. 보급 없이 성에서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으므로 후퇴한 다음에 힘을 합쳐서 다시 올라올 생각을 하는 게 보편적인 북부 영주들의 생각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오크의 가을이 아니라, 오크의 대침공이라서 감당이 불감당이었다.

“팬크리스 남작은 계속 몽펠리에 쪽으로 향할 것이오? 이 많은 피난민을 받아줄지 의문이오만.”

“파이룬 영지에서도 제법 도움을 받았소. 몽펠리에는 체면을 중시하기에 분명 받아줄 것으로 생각하오.”

“다른 영지의 피난민들이 몰릴 것이라는 생각은 안 해보셨소?”

“했으나···”

팬크리스 영주가 한숨을 내쉬었다. 달리 갈 곳이 없어서였다.

박호훈은 마치 자신의 일인양 참견을 했는데, 시민들의 피난민을 보고 괜히 마음이 찡해서였다. 피해자에게 감정 이입이 잘 되는 게 한국인 아닌가. 하도 두들겨 맞은 역사 때문에 한(恨)을 자신들의 정신 중 하나로 세울 정도로 원통스러움이 많은 민족이었다.

물론 검은 머리 짐승처럼 자신을 위해서 피해자를 만들기도 많이 만들었다.

그 모순이야말로 인간이 지닌 인간성이었다.

구질구질한 진창 속을 기어가며 깨끗하기를 원하는 것 또한 인간다움이기도 했다.

드낙은 깨끗한 인간이 되고 싶어 했다. 그래서 대중목욕탕을 건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크흠. 그러지 말고 내 영지로 오는 게 어떻소?”

“괜찮으시겠소? 3만 명의 피난민들이오.”

그 말에 드낙이 당황했다. 많아도 얼마나 많을까 생각했는데, 3만이라니. 이 정도로 피난민을 끌어보았다는 것이 황당해질 지경이었다.

‘완전히 미친 인간이네. 앞일이 어찌 될지도 모르면서 3만을 끌어안아?’

조금만 상황이 나빠졌다면, 수천 명의 사람이 굶어 죽거나, 병이 퍼졌을지도 몰랐다.

“혹, 사제나 신관이 속해있습니까?”

“북부의 전투 사제들이 많은 걸 도와주고 있습니다.”

그제야 드낙이 조금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하기야 3만의 피난민이 여기까지 오면서 병 하나 안 걸릴 리가 없었다.

‘전투사제라, 보통 사제랑 다른가?’

드낙은 묘한 기대심리 또한 가졌다. 잠깐 침묵이 도는 동안에 술잔이 돌았는데, 오크들의 약탈물에서 나온 것이었다. 드낙은 팬크리스 남작이 말도 꺼내지 않았음에도 약탈물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내가 오크 약탈자들을 서른 마리 죽이고 약탈물을 많이 얻었는데, 그것을 내어드리겠소. 가는 길이 더 편해질 것이오.”

공짜는 아니었다. 불파겐 영지로 오라는 소리였고, 나중에 돌아가더라도 빚이 남게 된다. 이것은 게제라스 총관도 환영할 일이었는데, 〈북부 8가문〉 중에 하나인 팬크리스 가문을 통해서 북부에서 영향력을 얻을 수 있었다.

힘이 약하다고 해서 오크의 방파제 역할을 하는 팬크리스 가문을 가벼이 대하는 귀족들은 없었다.

이에 대해서 드낙은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다분히 정치적인 요소였고, 당장을 위한 생각이 아니었다.

‘인구가 많아야지.’

피난민 전부가 북부로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고, 게제라스의 육중론에 입각해서 인구를 먹기 위해서 취한 행동일 뿐이었다.

“고맙소. 하면 피난민들을 불파겐 영지로 보내겠소.”

“토치라이트 영지의 오크들은 물러가고 있으니, 가는 길이 힘들지는 않을 것이오.”

“그게 무슨 소리오? 못해도 3만 이상이 토치라이트 영지를 침략했다던데, 오크가 물러가다니?”

드낙이 자세하게 이야기해주었다. 상대는 피난민을 자신의 영지로 보내겠다고 결정해서 선심을 쓴 것이다.

그 무용담을 들은 팬크리스 영주는 머리에서 빅뱅이 터지는 쾌감을 맞이했다.

‘이거다! 이 사람이다! 이 귀족을 통한다면, 이 전쟁의 판도를 바꿀 수 있다.’

팔뚝에서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이 자를 이용한다면, 이 전쟁에서 단번에 공신에 들 수 있었고, 주인공이 되는건 불보듯 뻔했다.

난세에 천하에 하나밖에 없는 맹장을 만난 기분이 이러할 것이다. 천하를 홀로 두 쪽 낼 것만 같은 기상을 지닌 장수는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크게 떨릴 수밖에 없었다.

드낙이 그러했다.

단 한 명이 전쟁의 판도를 바꾸었고, 기괴한 힘 또한 가지고 있다.

팬크리스 영주가 털을 곤두세울 정도로 전율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동물떼를 움직이고, 검은 늑대 15마리를 데리고 다니는 기사라니?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또한 드낙은 저녁식사 전에 씨앗을 뿌리고, 마법을 통해서 과잉성장시켜서 많은 과일을 뿌리기도 했다.

‘거기에 마법까지.’

과실을 토해낸 식물은 단번에 말라죽었지만, 식량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중요했다.

마법사가 전쟁터에 자주 나서지 않는 상황을 고려했을 때, 자주 있는 일이 전혀 아니었다. 또한, 강제적으로 과실을 뱉어냈기에 보존 기간도 짧았고, 발효도 되지 않고 바로 썩는 것이라 술로 만들 수 없었다.

남부 왕국이 평민, 견습 마법사를 많이 육성하는 이유도 이렇게 전쟁터에 마법사를 동원하기 위해서였다. 수많은 이득이 있어서였다.

“불파겐 자작, 그대도 나에게 많은 조언을 해주었듯이 나 또한 조언을 해줘도 되겠소?”

드낙은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의견이라면 노예 새끼의 말이라도 그대로 행하는 게 팔랑귀 드낙 센세였다.

“해보십시오. 겸허하게 들어보겠소.”

그는 팬크리스 남작을 안심시켜 주었다. 내심 토치라이트 령에서 말한 자신의 전공에 겁을 먹었다고 생각해서였다.

“나와 같이 피난하는 북부 귀족들이 사방에 있소. 이들을 하나로 뭉치게 할 수만 있다면, 능히 오크들을 물러가게 할 수 있을 것이오.”

“허나, 많아 봤자 병사가 1천을 못 넘기지 않소? 오크는 그것보다 훨씬 많은데. 제대로 전면전 하나 치를 수는 있을지 의문이오.”

풍요로운 남부의 자원을 빨아먹고, 핥아먹는 몽펠리에와 파이룬과는 양적으로 차이가 너무 심했으나, 뛰어난 기사를 배출하기도 잘 배출해서 질적으로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기사들의 숫자는 더 많소. 당장 나만 하더라도 일백의 기사와 함께하고 있으며, 그들 모두 오크 셋은 감당할 수 있소.”

합치면 300마리의 오크를 감당할 수 있는 전력이었고, 병사(정규든 비정규든) 1천

오크를 상대하면서 실질적으로 킬수를 올리는 건 기사였기에 자연스럽게 기사전력이 많은 것이 북부였고, 굉장히 기형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당장 팬크리스 영주만 하더라도 기사가 100명이 넘었다. 그중에 노기사는 40명이었지만, 근육이 감소하여도 기사는 기사였다. 깡 마른 자가 아니라면 대부분 현역다운 힘을 지니고 있었다.

새벽 단련을 밥을 먹는 것처럼 행하기 때문에 근육 감소가 거의 없는 노기사도 많았다.

‘근육량이 중요한 게 아니지.’

오크와의 싸움을 통해서 드낙은 꼭 체급이 대단해야지 이길 수 있는 건 또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곳의 인간들이 지닌 검술은 대단히 실용적이었다. 그저 불파겐만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맨손 격투와는 다르게 무기를 다룬다는 점이 강한 상대를 고꾸라뜨릴 수 있어서였다. 애초에 갑옷, 무기를 사용하는데 권투 선수를 통해서 비교한다는 것이 우스운 일이었다.

멸치같이 생긴 자도 단검 하나 들면, 전문가도 조심하며 서로 실력이 비등할 때는 작은 나이프칼을 든 이를 맨손으로 제압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것을 드낙은 자세히 몰랐지만, 오크와의 싸움을 통해서 깨닫게 되었다.

냉병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체감한 것이다.

멍청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에서 오는 깨달음은 귀중한 법이었다.

드낙은 턱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보급을 생각했는데, 고르곤의 심장이 가지는 마력 회복을 생각한다면, 마력을 전투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을 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 보였다.

‘카이야도 있으니까. 겨울을 앞두고 살찐 동물을 잡기도 쉽고.’

귀가 팔랑팔랑했다.

“토치라이트 영지의 경우와 같다고 보시면 되오. 흔들면 오크들은 분산될 것이고, 우리는 점점 하나로 합치게 될 것이오. 많은 이들이 오크보다 더 퍼져있는 상황이오.”

팬크리스 영주가 지도까지 펼치며 상세하게 말해주었다. 다른 북부 가문들의 예상로까지 짚어내며 내친김에 경로까지 만들어냈다.

“몽펠리에의 위에 있는 〈멜마론(Melmaron) 영지〉로 향해서 그곳에서 힘을 한 번 합쳐서 오크들을 흔들면 오크 주력군은 올라올 것이고, 우리는 그때쯤이면 서남으로 이동하고 있을 것이오.”

멜마론 영지의 서북에는 〈스틸리코(Stilico) 영지〉가 있었다. 그들은 서남으로 이동하며 우회하여 피난하고 있을 터였다. 이들과 만나 군을 다시 합치는 게 중요했다.

드낙 불파겐이라는 맹장이 있다면 능히 해볼 만한 시도였다.

작은 전투에서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보증서나 다름없었고, 이미 토치라이트 영지를 해방했다는 전례도 남겼다.

그 전공을 보고 도박수를 안 던지는 자는 입으로 금을 떠줘도 못 받아 처먹는 자라고 할 수 있었다. 팬크리스 영주는 그런 자는 아니었다.

‘리스크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의 눈이 강렬하게 타올랐다. 드낙은 그 열정적인 눈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갈등하고 있는 눈치였다. 특히나 수십에 달하는 노기사들이 풍기는 노련미를 한 번 접해서 그들과 한 번 전투를 하고 싶었다.

그들의 싸움을 보고 싶다는 욕망이 스멀스멀 올라왔는데, 전투를 경험하면 할수록 성장해서였다. 점점 재밌어지고 있었다. 배우고, 깨닫고, 성장하는 맛은 순수한 기쁨을 내어주었다.

그게 바록 뭔가를 죽이는 일이라도, 성취감을 주었다.

“···오크 놈들을 찾는 방법은 걱정하지 마시오.”

드낙은 팬크리스 영주의 계획에 설득됐다. 본래는 몽펠리에로 갈 드낙은 그렇게 팬크리스와 함께 움직이게 되었다.

다음 날이 밝자마자 피난민들이 기사 셋과 정규군 20명, 민병대 일백과 함께 불파겐 영지로 향했다. 드낙의 지도를 필사했기에 가는 길을 잃지는 않을 터였다.

전투 사제는 40명이 드낙과 함께했고, 잘 싸우지 못하는 전투 사제들만 피난민들을 따라갔다. 말 그대로 1군 전투 사제가 전투를 위해서 자원했다.

그 전투 사제를 이끄는 자는 〈쌍주먹 롤락〉이라 불리는 거한이었다.

“불파겐 자작님을 뵙습니다. 대단하신 분이라 들었습니다.”

드낙은 날이 밝고, 전투 사제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이 직접 스스로 찾아와서 인사했다. 그만큼 불파겐의 명성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사제로는 안 보이는데.’

조폭 비주얼이라고 해야 하나, 험악함이 있었다.

어디서 담배를 피던지 느와르 분위기가 물씬 풍겨올 정도였다.

드낙의 눈이 절로 롤락의 손으로 향했다. 놀랍게도, 손에는 기사처럼 〈특징적인 굳은살〉은 없었지만, 수많은 흉터가 가득했다.

검지와 중지의 손가락 관절은 움푹 들어가고 딱딱한 굳은살이 있어서 얼마나 많은 타격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반갑소. 대단히 강해 보이는데. 사제라고 할 수 있소? 성기사라고 하는 게 옳을 듯한데.”

롤락이 크게 웃어 보였다.

“북부에는 성기사가 없습니다. 철이 있으면 금방 팔아버려서 믿을 건 이 몸뚱어리 하나뿐이지요.”

가슴을 탕탕 쳐대었다.

〈인간 정예 137명〉

노기사 39명, 기사 58명, 전투 사제 40명

〈인간 병사 780명〉

정규병 380명, 민병대 400명

총 917명의 대군이 파이룬 영지에서 이빨을 드러냈다. 자신들이 지킬 피난민에게서 벗어나 오크를 향해 창칼을 겨누었다.

드낙은 카이야를 통해서 〈오크 보급소〉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자연으로 만든 요새였으며.

뒤로는 산이 있고, 앞에는 강이 흐르는 천혜의 요새였다. 적당히 목책이 자리잡고 있는 민가였지만, 도망쳤기 때문에 텅텅 빈 곳을 오크들이 점령하여 보급소로 이용하고 있었다.

돌다리는 세 곳이었고, 그곳을 통해서 오크 약탈자들이 약탈물을 보관하여 몽펠리에로 보급을 주거나 다시 백설산맥으로 옮길 듯했다.

반드시 박살내야할 곳이었다. 또한, 불파겐과 팬크리스의 연합군이 치르는 첫 전투였다.

매우 중요한 전투였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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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연휴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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