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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494화 (493/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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콱! 콱!

어둠 속에서 흙을 거세게 파헤치는 소리가 났다.

“후우, 하악.”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이어졌고, 손으로 파헤치는 소리는 거친 밤바람에 파묻혔다.

숲은 추웠고, 시끄러웠다.

벌레가 우는 소리와 나뭇잎이 계속해서 흔들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사박.

거친 발소리에 순간 멈칫하며 파헤치는 소리가 사라졌다.

꿀꺽.

사박!

발소리는 다시 한 번 들려왔고, 이번에는 더 컸다.

굶주림에 숲으로 향했고, 길을 잃은 지 3일이 된 소년 필립은 그대로 내달렸다.

“악!”

손에 뭔가가 맞았다. 화끈거렸고, 끔찍했지만 이를 악물고 내달렸다. 달리면서 손을 확인했다. 새끼손가락이 사라져있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이내 발을 헛디디며 그대로 나뒹굴었다.

“크하르큽 꾸브(Kharkh Kub, 쥐새끼), 판달라 쿰!”

오크의 거친 말소리가 들려왔다. 도망가는 체격을 확인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는데, 실로 주도면밀했다. 상대의 체격을 보고 단번에 다 자라지 않은 인간임을 확인한 것이다.

어둠 속에서 윤곽을 가늠하는 실력이 대단했다.

“컹!”

그때 늑대의 소리가 들려왔다. 오크 전사가 고개를 돌리자마자 다른 곳에서 검은 늑대가 그대로 손을 물었다.

“가악!”

오크 전사가 손을 거칠게 움직였다. 검은 늑대는 그 힘에 저항하지 않고, 날아가더니 수직으로 자라난 나무에 소리 없이 내려앉아 가볍게 내려 달려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처음 짖은 검은 늑대는 보이지도 않았다.

사사사사!

수풀과 나무가 바람에 거세게 흔들리며 소리를 크게 냈다.

탁! 탁!

오크 전사가 부싯돌에 불똥을 토해내어 횃불에 불을 붙여 그대로 손에 쥐었다.

후욱!

거칠게 반 바퀴를 돌았다. 빛과 어둠의 경계선에 새까만 앞발이 보이자 오크 전사는 단번에 횃불을 자신의 앞에 던지며 투척 도끼를 빼 들었다.

“칼 초노(Khar Chono, 검은 늑대)!”

오크들에게 결코 조련돼지 않는 칼 초노는 오크들이 반드시 죽이고, 새끼까지 철저하게 수색해서 멸살시키는 늑대 종이었다. 한 마리가 성체가 되면 다른 늑대 무리를 크게 키우기 때문이었다.

고만고만한 늑대 무리 3개가 산 하나를 두고 경쟁을 벌이는데 칼 초노가 1마리 유입되면 하나의 무리로 합쳐지고, 산을 10개는 먹었다.

그만큼 검은 늑대는 산이든, 들이든, 눈 내린 곳이든 해안가든 어디서든 대장질을 하며, 곰과 최상위 포식자를 다투는 놈이었다.

그것도 몇 마리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가을이라서 쌍으로 다니나? 새끼를 뱄나 안 베었나.’

새끼를 뱄다면 암컷 칼 초노는 분명 소극적일 것이다. 아마 처음 짖은 놈이 암컷일 가능성이 컸다. 더 안전해서였다.

빙글, 빙글.

오크 전사가 투척 도끼를 돌렸다. 그만의 습관이었다.

검은 늑대들은 오크 전사의 눈동자가 횃불 때문에 축소되자 아주 대놓고 어둠 속에서 놀아났다.

“컹!”

“놈!”

바로 코앞에서 짖자 투척 도끼를 단번에 날렸지만, 민첩함이 대단한 늑대였다. 순식간에 피해냈다. 상대의 모습이 횃불의 빛으로 절로 보였지만, 오크 전사는 동공이 축소되어서 어둠을 꿰뚫을 수 없었다.

농락당한 오크 전사는 욱했지만 한 호흡 만에 진정했다. 이내 지원군을 기다렸다.

“삐이이익!”

입으로 소리를 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몰랐다. 입이 바짝 마를 정도로 불어대고 나고 나서 오크 전사는 더는 휘파람을 불지 않았다. 대신 거칠게 숲을 벗어났다.

“컹컹!”

“컹!”

검은 늑대가 단번에 쫓아왔다. 놈들을 뿌리칠 수 없었고, 한쪽에서 짖으면 다른 방향에서 앞니로 살짝 깨물고 금방 놓아주었다.

얕게 물때는 앞니로, 깊게 물때는 어금니로 무는 것이 늑대들이었다.

두 가지 모두 장점이 있었다. 얕게 물면 금방 입을 뗄 수 있어서 도망치기 좋았고, 깊게 물면 상대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철저하게 검은 늑대들은 이빨 자국을 피부에 남겼다.

오크 전사는 금방 피 칠갑이 되었지만, 금방 피가 아물어서 생각보다 많은 피를 흘리지는 않았다.

“헉! 허억! 헉!”

달빛이 내려오는 바위 터에 오른 오크 전사가 그제야 숨을 골랐다. 검은 늑대들이 포위하고 있지만, 한 곳만 막으면 되었고, 다른 곳에는 도약하거나 기어 올라와야 했다.

막기 편했다.

대치하는 사이에 가죽 주머니에서 약초를 손에 묻혀서 따가운 곳에 대충 발랐다. 투척 도끼는 하나를 소모한 상태였는데, 그 판단에 오크 전사는 안도감을 느꼈다.

무려 4마리나 되는 검은 늑대가 자신을 쫓았다는 걸 이제야 파악해서였다.

검은 늑대들은 으르렁거림 하나 없었다. 청각과 관심을 끌기 위해서 짖는 게 전부였고, 조용한 암살자들이었다. 물론 겁을 먹은 상대를 아예 주눅 들게 하려고 짖기도 했다.

화르르륵!

불타는 소리가 오크 전사의 귀에 미세하게 들려왔다. 인간과 비교할 수 없는 월등한 감각을 지녔기에 시끄러운 가을 숲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하나의 점이었던 불꽃은 단번에 오크에게 근접했고, 하나의 창으로 모습이 드러났다.

‘마법!’

도끼로 쳐낼 생각은 버렸다. 초월의 힘은 특수한 타투가 없는 한 쳐낼 수 없었다. 단번에 회피했다. 불의 창은 나무를 천천히 관통하며 지나갔다.

“······”

달빛에 바위 터에 모습을 드러낸 강철의 전사를 보며 오크 전사가 그제야 긴장했던 근육을 이완시켰다.

코를 통해서 피비린내가 들어왔다. 놈의 왼손에는 머리채가 잡힌 오크 전사들의 수급이 15개나 주렁주렁, 포도처럼 달려있었다. 그것만으로도 깨달은 것이다.

오늘 자신은 죽는다는 것을.

“후우우···”

깊게 심호흡하고 오크 전사가 도끼와 투척 도끼를 고쳐잡았다. 사라진 기세가 거세게 타올랐다. 포기를 모르는 투지라고 할 수 없었다.

오크 전사들은 똑똑하다, 결코 멍청하지 않았다.

이들은 정말로 패배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전력을 다해서 부딪칠 줄 알았다.

치킨 레이스 대회가 있다면 1등은 당연히 오크들의 차지였다.

죽는 것을 알고도 행할 수 있는 담력이 이들에게는 있었다.

“아얄타!!”

짧게 함성을 내지르며 땀에 범벅이 된 오크 전사가 바위에서 뛰어내렸다. 투척 도끼는 차가운 달빛에 시퍼렇게 빛났고, 그 무엇보다도 빨리 쏘아졌다.

캉!

드낙의 검이 투척 도끼를 쳐냈다. 뒤이어서 오크가 덮치듯이 들어왔다. 도끼가 드낙에게 휘둘러졌다. 왼손이 옆으로 오크 전사의 오른손을 쳤다. 도끼의 휘둘러지는 궤도가 단번에 꺾이며 허공을 베었다.

콰득! 쯔어억!

목젖이 잡히고 그대로 뜯어졌다. 피를 뿜는 사이에 검이 오크의 두툼하기 짝이 없는 목을 다섯 번 내려쳐서 잘라냈다.

쿵!

검은 늑대가 죽은 오크 전사의 육신을 탐했다.

까득, 까득!

뼈까지 씹어먹었다. 그 광경을 뒤로하고 검은 늑대가 눈물, 콧물이 범벅된 소년의 목을 문 채로 끌고 와서 바닥에 내려놓았다. 작게 물었음에도 목에 잔상처가 나있어서 드낙이 신성력으로 살살살 뿌렸다.

신성력을 쓰는게 밴댕이 소갈딱지처럼 느렸고, 최대한 소모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구두쇠도 이런 구두쇠가 없었다.

물론 새끼손가락이 없다는 걸 알자, 신성력을 듬뿍 주어서 회복시켰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필립은 냉큼 감사를 표했다. 드낙은 소년에게 말했다.

“너가 함께하던 피난민들은 어디의 누구냐?”

상당히 규모 있는 피난 무리였다. 여기서는 2일의 거리 차이만 앞두고 있었고, 소년을 통해서 조금 더 빨리 상대를 확인하고 싶어서 그를 도와주는 건 개뿔, 그냥 오크 전사가 있다는 걸 카이야가 눈치 좋게 드낙에게 일러바쳤고, 드낙은 고새를 못 참고 피난 무리가 있는 곳에서 살짝 경로를 변경해서 죽인 것뿐이었다.

소년의 존재는 얻어걸린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숲에서 방황하고 있는 작은 체구의 소년은 카이야도 잡기 힘들었다.

소년은 겁을 먹은 채 말했다.

“팬크리스 영주님이 이끄는 피난민들이에요. 전 본 적은 없어요. 항상 뒤에 있어서···”

“어쩌다가 여기에 홀로 떨어졌지?”

“배가 고파서 갔다가 되돌아가지 못했어요. 숲에서 길을 잃어버렸거든요.”

드낙은 소년과 함께 움직였다. 이들은 3일 뒤에 팬크리스 영주가 이끄는 피난민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들을 보자마자 드낙이 욕지거리를 날렸다.

‘엄청난 숫자야. 굶어 죽는 자가 많이 나올 것 같은데.’

물경 1만? 3만? 정확하게 알 수가 없었다. 만(萬)단위를 넘어가면 규모를 가늠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만큼 엄청난 규모의 피난행렬이었다. 또한 이들을 관리하는 병사의 숫자는 많이 잡아봤자 1천에 불과했고, 그중에 절반은 민병대로 보였다.

‘기사는 제법 있네.’

형태가 좀 투박한 전신갑주를 입고 있어도 기사는 기사였다. 되려 투구 속에서 삐져나온 새하얀 백발은 노련미를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드낙을 비롯한 동물떼가 숲에서 빠져나오자 피난행렬에서 노기사 하나가 수행원 다섯을 이끌고 드낙을 향해 다가왔다.

결코 빠르지 않았고, 적당한 속력이었다.

드낙 또한 홀로 말을 몰고 앞으로 나섰다. 야생마 중에서도 가장 덩치가 큰 수놈을 타고 있었다. 불파겐 깃발이 펄럭였다.

“불파겐의 기사! 나는 팬크리스 영주를 모시는 기사, 봉보리 팔콘이라고 하오! 그대의 이름은 무엇이오!”

“드낙 불파겐이다!”

그의 외침 소리에 봉보리 팔콘이 서둘러 투구를 벗었다. 작위를 남부왕에게서 받는 귀족과 그 귀족에게서 사회적 지위를 받는 기사의 위치는 매우 달라서였다.

“불파겐 자작의 명성은 몇 번이고 들었습니다! 만나게 되어 대단한 영광입니다.”

“변변찮은 명성이오.”

물론 귀족은 서로를 대우해주는 법이었다. 드낙 또한 투구를 벗으며 목례를 해주었다. 워낙 늙은 사람이라 박호훈의 웃어른 공경에 대한 트라우마였다. 사회가 그렇게 만들도록 만들어서였다.

남부 왕국의 귀족은 워낙 숫자가 적어서 귀족에도 급이 없었다. 개처럼 살아도 귀족이면 대우를 해주는 게 보통이었다.

오히려 귀족의 숫자가 많은 제국이 귀족에도 급이 있다면서 온갖 기준을 계속 세우고 있었다.

봉보리 팔콘은 드낙을 팬크리스 영주에게 데려갔다.

“남작님! 드낙 불파겐 자작입니다.”

봉보리 팔콘 경은 일부러 팬크리스 영주의 작위를 말했다. 드낙의 무력과 맞물려서 드낙이 멍청하다는 소문도 제법 있어서였다.

“불파겐 자작, 반갑소.”

“팬크리스 남작, 힘든 상황에 이렇게 보게 되어서 나 또한 반갑소.”

팬크리스 영주가 손을 내밀었다. 드낙은 그 손을 마주 잡으며 간단하게 인사를 했다. 드낙은 그대로 피난민의 행렬에 합류했다. 온갖 야생 동물들이 드낙을 따르자 모든 이들이 놀라워했다.

“어떻게 동물을 다루는 것이오?”

“마법의 일종이고,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오. 어디로 가는 길인지 알아도 되겠소?”

“파이룬의 도움을 받으려고 했지만, 남부 놈들이 미적거려서 결국 몽펠리에 쪽으로 향하고 있소. 파이룬의 전투 요새도 반파되어서 쓰지 못해서 일찌감치 말머리를 돌린 상태고···”

그의 눈이 드낙에게로 향했다. 그가 부쉈기 때문이었다.

“오크의 대침공이 시작될 줄 누가 알았겠소.”

딱 그 말을 뱉었을 때, 드낙은 등골이 서늘했다. 자연스럽게 중립신이 생각나서였고, 그는 알고 있을 것 같아서였다.

‘무슨 그림을 그리고 있는건지··· 생각해보면 소름만 끼치는군.’

범인은 알 수 없는 전략을 그리고 있어 보이는 게 중립신, 엘 마르토 카사다민이었다. 대계를 꾸밈에 전혀 그 그림의 윤곽을 알 수 없었다. 그저 테라를 만들겠다는 목표만 보였다.

“무슨 생각을 그리하시오?”

“대체 앞으로 어찌 될지 걱정이 되어서 말이오.”

두 사람은 대충 서로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오늘은 여기서 지낸다! 병사들은 바람막이를 설치하라!”

해질녘 전에 피난민들은 자리를 잡았다. 사방팔방 흩어져서 땅을 캐서 뿌리부터 먹을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캐었다. 말을 타고 나간 이들이 돌아왔다. 새나 두더지, 여우와 토끼를 잡아서 왔다.

큰 냄비에 펄펄 끓여졌다. 그 육수만 먹고, 힘이 부족한 이들에게나 고기가 들어갔다.

‘팬크리스 영주도 똑같이 먹네.’

드낙은 그 상황에서 그를 평가했다. 실로 대쪽같은 자였다. 드낙은 동물들이 짊어지고 있는 오크 고기와 뼈를 내어주었다. 사골이라도 내어 뜨끈한 국물로 먹으라고 조언해주기도 했다.

저녁 식사 이후에 제대로 이야기할 장소가 마련되어졌다.

팬크리스 영주와 노기사 봉보리 팔콘이 드낙과 마주했다.

타닥.

모닥불이 타올랐다.

“불파겐 자작은 앞으로 어찌할 생각이오?”

죽어가던 나무가 빗방울을 만난 것처럼 팬크리스 영주의 눈에는 생기가 피어올라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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