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4 <-- -->
서로 간의 격돌, 당연히 선공은 리치가 긴 놈의 차지였다.
불합리했지만, 현실은 지독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상냥함을 원한다면, 이상론자에 불과했다.
후우욱!
공기를 찢는 소리가 드낙의 귀에 들려왔다. 〈킬 더 배틀〉따위 없었기에 빠르게 판단해야 했다.
‘피하지 않는다.’
휘둘러지는 도끼를 보면서도 드낙은 검을 휘두르지도 않았다. 왼손으로 그것을 후려쳤다. 당연히, 뚜쎠드가 거기에 당해줄 리가 없었다. 도끼날이 단번에 꺾였다.
푸걱!
피가 튀고, 강철 글러브가 찌그러졌다. 대전사의 힘의 극점. 그곳에 자진해서 손을 내밀었으니 당연했다. 아무리 제국 전신갑주라도 찌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헤비급 복서의 펀치가 600kg 이상이다. 인간보다 압도적으로 체급이 큰 오크 대전사의 펀치는 상상을 초월하는 충격을 주는데, 그 대전사의 팔을 지나 연장선으로 뻗어 나간 도끼질이다. 강철성문조차 찌그러질 판이었다.
‘흐윽!’
왼손이 그대로 도끼에 찍히자 드낙이 이를 악물었다.
주춤.
드낙의 몸이 순간적으로 휘청거렸지만, 그 또한 불파겐의 중급 기사였으며, 이 세계로 따지면 고위기사에 턱걸이하는 수준은 되었다. 계속 밀고 들어갔다.
끝없이 들이밀었다. 짧은 거리였음에도 멀게만 느껴졌다.
쉬이익!
그 힘의 물결에 편승하며 몸을 틀며 오른쪽 어깨를 앞세우며 상체를 옆으로 틀며 그대로 비집고 들어갔다. 하단에 쥔 롱소드가 벼락과도 같이 어깨 위로 올라갔다.
상단세.
‘놈의 대응은 투척 도끼다!’
후루룩!
괴이한 바람 소리가 나며 전과 다르게 똑같이 무시무시한 속력을 내며 오크 대전사의 손을 바람처럼 지나가며 투척 도끼가 쏘아졌다.
휙, 휙!
연달아 두 개가 쏘아졌는데, 그 차이는 0.1초밖에 되지 않았다. 왼손에 쥐고 있던 투척 도끼를 쏘자마자 동시에 혁대에 달린 또 다른 투척 도끼는 이미 허공을 날고 있었고, 뚜쎠드는 투척하며 왼손이 내려간 것을 다시 위로 올리며 투척 도끼를 위로 던졌다.
‘피하지 않는다. 피하면 다시 간격이 멀어질 뿐이다.’
퍽! 캉!
투척 도끼 하나는 드낙의 오른쪽 관절에 박혔고, 다른 하나는 목에 박혔다.
“끄읍.”
드낙의 눈이 부릅떠졌다. 고통에 눈이 충혈되고, 몸이 비명을 지르며 움츠러들려고 했지만, 오히려 드낙은 척추를 곧추세웠다. 고함을 지르며 고통을 억눌렀다.
“하아압!”
‘미친놈!’
뚜쎠드는 투척 도끼가 유효타를 내자마자 회피기동을 했다.
동시에 시리도록 차가운 드낙의 롱소드가 뚜셔드의 목젖을 찌르려고 했지만, 뚜쎠드는 도끼와 체중을 이용해서 옆으로 넘어지듯이 체중을 기울여서 순식간에 몸을 움직여나갔다.
‘어딜.’
모든 것을 예상한 것처럼, 뱀처럼 휘어지는 롱소드에서 금속이 비틀어지는 소리가 뚜쎠드의 귀에 섬뜩하게 들려왔다.
끼기기긱!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힘이 깃든 검이 탄력적으로 움직이며 사람 허리만 한 오른쪽의 어깨를 그대로 잘라냈다.
푸화아아악!
피가 솟구쳐오르면서도 추가로 드낙은 공격을 펼치려고 했다. 자신과는 다르게 워낙 체격이 커서 조금만 움직여도 확 뒤로 갔기 때문에 팔을 자른 것에 그쳐서였다.
“컹!”
그 순간에 거대 늑대 한 마리가 귀신처럼 달려와서 드낙의 팔을 물었다.
휘청거리면서도 드낙의 팔뚝이 늑대의 이빨을 털어버렸다.
“깨갱!”
“아이야알타!”
오른팔이 완전히 날아갔지만, 뚜쎠드는 균형이 무너지려고 하는 드낙에게 투척 도끼를 손에 쥔 채 휘둘렀다.
캉!
어깨가 부딪치며 드낙이 뒤로 나뒹굴었다. 다시 일어서려고 했지만, 뚜쎠드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한 걸음을 쭉 내뻗으며 쫓아왔다.
‘왔다.’
투구 속에서 드낙의 눈이 반짝 빛났다.
오크를 죽이는 불파겐 가문의 비전이 순식간에 드낙의 몸을 통해서 실현되었다. 바로 쓰지 않은 이유는 지금처럼 상대가 피해를 입은 상황이 일어나야 했다. 왜 그런 상황이 나와야 하냐면 지금을 위해서였다.
드낙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뚜쎠드는 리치, 간합에 상관없이 뒤로 구른 드낙을 향해 한 걸음을 크게 내디뎠다.
서로 거리가 가까웠다.
언제든지 무기를 휘두를 수 있었다.
오크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 사라졌고, 확실하게 오크에게 비전을 먹일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 드낙은 이 상황을 원했고, 이 상황을 그려냈다.
〈스쿠펜 제브레첸(Schuppen Zerbrechen, 흘려내리는 파편)〉.
드낙의 상체가 스쿼트 자세처럼 굽혀진 무릎에 닿았다. 투척 도끼가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으아, 케헥!”
고함을 지르려던 드낙은 목에 피가 차서 기침을 했다. 왼쪽 눈이 찌푸려졌지만, 다행스러운 일은 기세만 줄어들었을 뿐, 몸은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몸은 그런 게 가능했다.
숙인 상태로 드낙의 머리가 뚜쎠드의 사타구니 밑을 지나갔고, 어깨가 허벅지 안쪽에 걸쳐지며 쇠사슬처럼 팔이 허벅지를 움켜쥐었다.
“이익!”
뚜쎠드의 도끼가 자신의 허벅지에 감긴 드낙의 팔을 내려찍었다. 하지만 드낙은 그대로 뚜쎠드를 들어 올려 넘어뜨렸다.
넘어지는 오크 대전사 또한 곱게 넘어지지는 않았다.
뿌드득!
투척 도끼가 박힌 왼팔이 수수깡처럼 비틀어졌다.
“뿌득.”
드낙이 이빨을 갈았다. 피가 주르륵 튀어나왔다.
동시에 드낙의 머리 또한 땅에 살짝 부딪혔는데, 넘어진 뚜쎠드의 머리를 향해서 드낙의 다리가 굴러지면서 단번에 드낙의 두 다리가 땅에 쓰러진 뚜쎠드의 어깨를 지나 땅을 밟았다.
“커흑, 큭!”
드낙이 입에서 피를 쏟으면서 숨을 못 쉬는 채로 온 힘을 다해서 검을 내려찍었다.
푸우욱!
뚜쎠드가 발악을 했다. 손으로 검을 막으려고 했다. 검은 손을 관통했고, 내려갔지만, 온 힘을 다해서 팔을 움직였기에 검로가 어긋나서 목을 살짝 베고 땅에 박혔다.
‘지금이다!’
“아얄타(Yalalt, 승리)!”
긴 팔이 휘둘러져서 드낙의 머리를 노렸다.
후웅.
드낙은 뒤로 움직이면서 그것을 피했는데, 자연스럽게 체중이 뒤로 옮겨졌고, 오크 대전사가 상체를 일으키자 넘어져야 했다. 드낙이 쓰러지면서 뚜쎠드는 몸을 일으키는 형세.
두 다리가 들렸고, 쓰러지는 상황에 팔 하나는 도끼가 박히고 역으로 꺾여졌다. 도저히 검을 휘두를 상황이 아니었고, 휘두른다고 해도 얕은 상처밖에 못 줄 것이 분명해 보였다.
팡!
그 때문에 오크 대전사가 방심했고, 드낙의 검이 그제야 뚜쎠드의 아랫배를 터트렸다. 핏방울이 분무기로 뿌린 것처럼 고운 입자로 흩뿌려졌고, 내장이 마치 파편처럼 조각나서 땅으로 흘러내렸다.
“허억.”
탈력감에 뚜쎠드가 헛바람 소리를 냈다.
꽈악.
몸을 일으킨 드낙이 무릎을 꿇은 뚜쎠드의 목젖을 움켜잡았다. 성인 남자의 주먹만 한 성대가 만져졌다. 오크가 얼마나 거대한 놈인지 알 수 있었다. 신장 2미터 40cm.
괴물 그 자체.
뚜둑! 쯔어억!
성대를 움켜쥐고, 피부째로 뜯어냈다. 피가 쏟아져서는 드낙의 투구를 적시고, 콸콸콸 소리를 내며 드낙의 전신갑주를 물들였다.
뻐금. 뻐끔.
뚜쎠드가 입을 움직였다.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하는 모습이었다. 오크 언어를 검은 여과기를 통해서 얻은 드낙이었다. 그는 능숙한 오크 전사처럼 그의 마지막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좋은 승부였다.”
드낙이 내뱉은 말에 뚜쎠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쿠웅!
앞으로 쓰러진 뚜쎠드는 캄캄한 어둠과 모든 감각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내 뚜쎠드는 느낄 수 있었다.
‘녹색 도끼. 나의 신···?’
오크의 신, 녹색 도끼의 거대한 존재감을 확실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가자, 대전사 뚜쎠드. 고생했다. 넌 누구보다도 잘 싸웠다. 나의 자랑거리다.]
애정이 가득 담긴 정신 파동이 뚜쎠드를 감싸 안았다.
‘아아···’
뚜쎠드의 영혼이 그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것은 결코 꿈이 아니었으며, 영원한 안식도 아니었다. 감정이 대단히 풍부한 녹색 도끼는 오크를 가장 사랑하는 신이었다. 그는 언제까지고 녹색 도끼와 함께할 것이다.
수많은 오크의 삶을 함께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자신과 비슷한 길을 걷는 오크에게 필요한 타투를 빚어서 건네줄 수도 있을 터였다. 그의 정신이 마모되어서 사라질 때까지.
텅. 터덩.
드낙은 자신에게 박혀있는 도끼를 뽑아냈다. 피가 소량이지만 수압이 높은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것처럼 튀었다가, 줄어들면서 흘러내렸다.
“헉. 헉.”
단번에 숨통이 트였다. 팔의 관절 또한 빠르게 아물어갔다.
‘죽였다. 내가 죽였어. 하하하.’
부락을 대표하는 대전사를 홀로 죽여냈다. 큰 성취감이 드낙을 지배했다. 그것도 마력도 없이, 다른 이들의 방해 속에서.
힐끔.
드낙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매우 고요했다. 활화산 같은 분노는 없었고, 쥐죽은 것처럼 싸늘한 한기만이 가득했다.
[뚜쎠드···]
불의 정령, 잘쿠랄의 정신 파동이 퍼져나갔다. 그곳에는 아쉬움이 깃들어있었다.
[하찮은 인간 놈이, 자연을 벗 삼으며 살아가는 내 친구를 죽이다니.]
이글거리는 화염이, 집채만 한 불의 파도가 드낙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드낙은 그것을 보며 앞으로 내달렸다.
“죽여라아아아!!!!”
오크 전사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그만큼 분노에 차있었다.
대전사라는 것은, 부락에서 가장 강한 자가 오르는 자리였다. 동시에 가장 부락원에게 인기 있는 자가 올라서는 자리였다.
아무리 강해도 도네투스가 온전히 부락을 계승 받지 못하고 내전을 치른 것과 같았다. 그저 강하기만 해서는 대전사에 오를 수 없었다.
드낙은 뚜쎠드를 죽인 것으로 철천지 원수가 되었다.
화염이 오크와 드낙을 덮쳤다. 오크는 따스함을 느꼈고, 드낙은 끔찍한 고통을 느꼈다. 그를 지킬 마력은 동났고, 오우거의 적발은 빠르게 사라져 갔다.
수많은 주술이 드낙의 발을 붙잡았다.
그건 살아있는 진흙이기도 했고, 나뭇잎들로 묶인 채찍이기도 했고, 새떼가 들러붙기도 했다. 모두 주술로 만들어진 초월의 힘이었다.
드낙은 정신없이 도망치면서 오크들과 부딪치며 뒹굴기도 했다. 바닥을 구르며 일어났다가 투구에 도끼를 얻어맞고 다시 쓰러지기도 했다.
두 손으로 흙을 짚으면서 처참하게 조금이라도 움직이려고 애를 썼다.
“흐으, 흐아아아악!!!!”
끔찍한 화상의 고통에 드낙이 신성력을 방출했다. 빠르게 상처는 나았지만 고통은 계속되었다. 뒹굴고, 뒹굴었다.
눈을 뜰 수조차 없었다. 신성력은 빠르게 소모되어갔다.
[영원히 고통받아 죽어라!]
혼을 쏙 빼놓는 화상의 고통 속에서 드낙이 눈을 까뒤집으며 기절했다. 드낙이 움직이지 않자 불의 정령이 자신의 힘을 거두어들였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제국 전신갑주에서 검은 연기가 매캐하게 일어났다.
오크들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때, 드낙이 있던 땅이 무너졌다. 내리막길이 주르륵 생겨나자 오크 전사들이 너도나도 뛰어들었다.
“찍찍!”
쥐새끼 소리를 내며 핏빛쥐들이 쓸려 내려가는 흙에서 머리를 내밀고, 무기를 들어 올렸다.
“이 쥐새끼들!”
투척 도끼가 쏘아졌다.
쏘옥!
핏빛쥐가 냉큼 흙 속으로 머리를 집어넣었다.
퍼억!
흙이 크게 패였지만 핏빛쥐가 다시 고개를 내밀면서 이리저리 어깨를 움직이며 쓸려 내려가는 흙 속에서 빠르게 움직였다.
아주 능숙해 보였다.
아등바등 오크 전사와 핏빛쥐가 섞인 상태에서 지하 내리막길이 끊겼고, 거대한 충격이 그들 모두를 덮쳤다.
쿠구구구궁!
흙먼지가 크게 올라왔다.
죽은 핏빛쥐도 제법 되었고, 살아남아도 기절한 채 혓바닥을 내밀고 있는 핏빛쥐가 대부분이었다. 오크 전사들은 단번에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온 오크 전사들은 흙을 파헤쳐서 동료를 챙겼다.
몇몇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커먼 어둠, 거대한 지하 공간이라서 벽도 없었고, 그저 어둠뿐이었다.
“레우째.”
오크 전사 하나가 나무로 된 목걸이를 끊어내어 손으로 들어 올리며 부수면서 소리를 냈고, 그곳에서 수많은 반딧불이 사방을 밝혔다. 족히 수백 마리는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끝을 모를 정도로 넓은 곳이었다.
“천장은 낮은데. 공간은 너무 넓어. 안 무너지는게 이상할 지경이야.”
“여긴 뭐 하는 곳이지?”
오크 전사들이 중얼거렸다. 그들의 뒤에 있는 내리막 통로에서 오크 전사들과 주술사들이 끝도 없이 내려왔다.
‘무조건 찾아 죽인다.’
대전사를 죽인 원수였다. 앞뒤 가리지 않고 쫓아 죽일 생각으로 가득했다.
탁! 탁!
부싯돌이 불똥을 토해냈고, 동물의 지방 덩어리가 덕지덕지 발린 횃불에 불이 붙어졌다. 사방을 밝혔고, 그제서야 오크들을 포위하고 있는 〈굳은살 리전〉의 모습이 오크들에게 들어왔다.
“뜨~낙!”
한성질 쌍쥐가 칼을 뽑은채로 소리를 질렀다. 다른 핏빛쥐들도 냉큼 화답했다.
뜨낙!
“뜨낙!”
뜨~낙!
“우리의 신을 지키자!”
“지하 종족의 힘을 보여주자!!!!”
========== 작품 후기 ==========
5832자
평추코! 다양한 의견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