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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481화 (480/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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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낙이 순식간에 도망쳤다. 불의 정령의 양팔에서 불꽃이 토해졌다. 아래로 떨어지는 불구덩이를 힐끔 본 드낙이 입을 달싹거렸다.

지금을 위해서 아껴두고 아껴둔 소중한 마력을 사용했다.

‘역시 마력은 애지중지해야 해.’

마력을 못 쓰고 죽을지언정, 마력을 쓰는 일을 최대한 자제해야 했다. 그게 이 세계에서 싸우고, 싸우면서 얻은 진리였다. 소위 무협에서 3할이니 3푼이니 실력을 숨겨야 한다는 말과 비슷했다.

실력을 숨기다가 뒈진 협객들의 숫자만큼이나 이 세상에는 마력을 아끼려다가 뒈진 자들도 많았다.

워낙 생존에 대한 눈치가 남다른 드낙은 마력은 쓸 줄 알았다.

“〈솟구치며 올라가는 얼음의 화살〉.”

드낙 또한 마법으로 응수했다. 순식간에 얼음 화살은 불꽃에 상쇄 현상을 일으키며 사라졌지만, 불꽃이 드낙에게 도달하는 시간을 느리게 했다. 그것은 곧 명중률의 하락으로 이어졌고, 회피하는 데 성공하게 만들었다.

호다닥!

어찌나 도망을 치는지, 십년일보(十年一步)의 검은 꿈 능력으로도 감출 수 있는 발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그만큼 은밀성보다는 속력을 원한 것이다.

쿠우우우!

거친 화염이 모든 것을 휘감았다. 오크들 또한 허겁지겁 물러났다. 몇몇 오크가 휘말렸지만, 주술사들의 주력이 그들을 보호했다.

“허억.”

기겁하며 뒷걸음질 치며 화염에서 벗어나 엉덩방아를 찧은 오크가 손을 떨었다. 그 어떤 생명체도 화염이 사방을 덮치는 것을 보고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 살았다는 안도감도 컸다.

오두막으로 드낙이 훽 사라졌다가 냉큼 몸을 돌려서 다시 반대편으로 움직였다. 오두막을 따라서 화염이 거세게 토해지고 있다가 드낙이 반대편으로 쏙 도망치는 불의 정령의 정신파동이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미꾸라지 같은 인간놈! 죽음을 받아들여라!]

드낙이 그런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그는 부락을 빠져나가기 바빴다.

‘이크!’

콰지직!

주력이 깃든 도기를 수백 개나 먹은 불의 정령이었다. 그 몸은 이미 공격 마법으로 이루어진 육체나 다름없었다. 그가 지나가는 곳에는 새하얀 재만 남게 되었다. 그만큼 주술사들이 그간 모아둔 도기가 많다는 뜻이었다.

〈흙〉으로 빚었기에 〈자연의 주력〉을 가장 오래 보존할 수 있어서 마력 탱크보다 더 높은 보존율을 보였다.

‘도망치는 게 옳은 판단이었어.’

가는 내내 보이는 주술사 또한 오크들에게서 빼앗은 투척 도끼로 상처 하나는 만들어주었다. 물론 방해도 많았다. 오크들이 아주 작심을 하고 드낙에게 함정을 팠기 때문이다.

철컥!

철로 된 곰덫에 드낙의 발이 걸렸다. 덫에는 그 어떤 기세도 없었기에 그 어떤 암살자보다 효과적이었다.

콰드득!

곰덫과 함께 움막의 기둥이 흙에서 빠져나와서 드낙에게 끌려 나왔다.

“흐읍!”

“그악!”

돌려차기하듯이 발을 돌리며 몸도 한 바퀴 회전하자 다가오던 오크 서넛이 옆으로 쓸려나갔다. 뛰어난 전사였다면 순식간에 몸을 틀어서 체중을 옮겼겠지만, 이곳에는 오크 전사가 없었다.

있어도 그런 수준은 안 되었다. 그 틈에 드낙은 한 손으로 곰 덫을 강제로 열고 발을 빼내며 검을 박아넣어 손을 뺀 뒤에 다시 검을 빠르게 빼내었다.

컹!

짐승 소리와도 같은 부딪침이 일어났다. 곰 덫을 버리고 드낙이 움직였다. 사방이 해질녘처럼 주홍빛으로 물들어있었다. 거대한 불의 정령 탓이었다. 그 덕에 곳곳이 길쭉한 그림자로 가득했다.

“어딜 가려고!”

“놈을 막아라!”

똑같은 타이밍에 소리를 지르며 달려드는 오크 2마리가 서로 어깨를 부딪쳐서 크게 옆으로 넘어졌다. 드낙은 한 놈을 밟으며 지나가며 목의 옆을 베었다. 제법 깊게 베어서 피가 쏟아져나왔지만, 죽지 않을 것 같았다.

지나칠 정도로 생명력이 높은 게 오크들의 특징이었다. 목젖을 뜯기에는 바닥까지 쓰러져있어서 그러지 못했다. 대신 사타구니를 발의 뒷부분으로 강하게 걷어차 주었다.

“꺼읍.”

오크가 눈을 까뒤집고 기절했다. 정신을 잃었기에 출혈이 더 심해졌고, 죽을지도 몰랐다. 운 좋게도 2번을 타격해야 해서 다른 놈은 드낙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무형의 충격파〉.”

움막이 날아갔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나며 드낙은 불의 정령의 환한 빛 때문에 만들어지는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쌔애애액!”

깜짝 놀랄 정도로 큰소리를 지르는 갈매기 하나가 또 드낙을 방해했다.

‘어떤 주술사인지 몰라도 사람 짜증 나게 만드는 데는 도사네.’

드낙의 주먹이 갈매기를 터트렸다. 갈매기는 허무하게 터져나가 연기로 변하며 아래로 흩날렸다. 오크들의 주의는 당연히 드낙이 있는 곳으로 다시 한 번 쏠렸다. 물론 걸쭉한 느낌이 나는 용암도 떨어져 내렸다.

[죽어라!]

분노가 잔뜩 오른 불의 정령의 외침이 드낙의 뇌를 흔들어대었다.

‘마을 밖으로 나가야겠다. 핏빛쥐들도 후퇴시켜야겠어.’

불의 정령과 주술사의 협력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특히 〈갈매기 주술〉을 부리는 주술사는 실로 드낙의 천적으로 여겨졌다. 놈의 이름만이라도 새겨듣고 싶었지만, 딱히 드낙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정보에 대해서 잘 아는 놈이다. 지금 죽이면 좋을 텐데.’

100미터, 200미터. 지형에 따라서는 코앞까지도 적을 식별하지 못하는 게 전쟁터였다. 서면으로 읽으면 병신같은 짓을 저지른 것 같지만, 현장은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곳이었다.

그것을 사전에 막아주고, 그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을 아는 주술사 내지는 마법사는 보기 드물었고, 희귀했으며, 가치가 있었다. 마치 전쟁과 전투에 이골이 난 마법사 같은 괴짜였다.

‘아쉽지만, 여기서 만족해야겠지.’

어둠을 이용해서 도망치지 못했지만, 드낙은 무식하게 길을 뚫었다. 때때로 주술이 그를 방해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후퇴하라! 후퇴!”

드낙이 크게 소리쳤다. 핏빛쥐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유비라면 응당, 이렇게 했겠지. 자신보다 병사를 위하는 마음. 크~, 이거지.’

불의 정령에게서 도망칠 자신이 있었기도 했다.

수확은 많았다. 패배도 얻는 게 넘쳐났다. 마치 사업에 실패해도 다시 또 사업할 여건이 되는 것과 같았다. 남들은 하지 못하는 일을 드낙은 할 수 있었다. 언제 어디에서든 살아남는 게 중요했다.

‘하루를 기다리며 오크 부락에게 시간을 주지 말았어야 했어.’

별의 선택을 받은 자는 은밀함에서 큰 페널티가 있었다. 인간과 다르게 오크들의 대응이 실로 대단했다.

‘오크 주술사들이 정령에게 큰 힘을 주는 게 가능해.’

그 방식 또한 오늘 봤다. 비슷한 행위 또한 알 수 있을 터였다. 동시에 주술이 가지는 위대함을 알 수 있었다.

시야만 해도 아파트 옥상에서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동시에 생명체가 아니었기에 시야 또한 체계가 다를 터였다. 나쁘다고 해도 갈매기 주술사 때문에 들킨 것을 생각했을 때, 고려 대상은 아니었다.

‘정령으로 큰 상대와도 싸움이 된다.’

부락을 공략하는 것도 좋았지만, 보급대만 골라 털어먹는 게 더 나을 수 있었다.

썰물처럼 핏빛쥐가 빠져나갔다. 드낙이 활화산에게 쫓기는 모습을 보았기에 〈한성질 쌍쥐〉 또한 굴속으로 엉덩이를 쏙 집어넣기 바빴다.

자신들의 신도 도망치는 상황이었다.

‘오크 놈들이 불의 신을 다루는구나!’

“찍찍!”

손이 덜덜 떨렸다. 허둥지둥 지하로 도망쳤다. 그들의 신이 불의 신을 막을 터였다.

드낙은 숲이 아니라 〈송곳니 산〉으로 도망쳤다. 핏빛쥐들을 아끼는 마음이 있었고, 다음 오크들과의 격돌 때에도 핏빛쥐들을 써야 하기 때문이었다.

‘충성심이 높은 놈들이야. 요긴하게 써야지, 개죽음당하게 할 수는 없지.’

핏빛쥐들은 오크들을 포식하고 크게 성장한 자도 있었다. 드낙은 그것을 생각하며 핏빛쥐를 키우는 기분마저 들었다.

산으로 들어가며 어둠이 드낙을 반겼다.

[어디에 있는 거냐!]

주력을 받아먹고, 찬양을 받은 만큼 확실한 결과를 내야 하는 게 〈불의 정령 잘쿠랄〉이었다. 사방팔방 불꽃을 쏘았다. 주력으로 이루어진 불꽃이었음에도 정령의 속성 때문에 불은 나무를 타고 번져나가며 순식간에 산불을 만들어냈다.

오크 나무도 그 여파에 휩쓸렸다.

“이런, 젠장! 주술사!!”

오크 사냥꾼이 기겁했다.

“어쩔 수 없다!”

돌아오는 대답은 받아들이라는 소리뿐이었다.

“우리 가족의 78년의 노력이 들어간 〈단돌이〉가 불타고 있어! 저기 저, 끝도 모르게 높은 나무를 보라고! 다 타고 있잖아!!”

“이 새끼 잡아! 정신 놨어!”

뺨 맞은 어린이처럼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오크도 보였다.

쿠우우우!

불의 정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방팔방이 불을 뿌렸고, 그 불 사이로 주술로 만들어진 갈매기가 날아다녔다. 하지만 면적이 넓은 숲이라 보이는 게 전혀 없었다. 어둠에 들어가기 전의 드낙을 잡는 건 가능했지만, 그 이후에 잡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고 운이 받쳐줘야 했다.

‘평생 찾아봐라. 찾아지나.’

드낙이 〈송곳니 산〉의 중턱을 넘었다. 이제 반대편으로 내려가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발은 땅이 찰떡같이 붙어버렸다.

‘순찰자 이 개새끼들이?’

후방을 봐준다던 것 때문에 드낙은 자신의 뒤통수를 크게 조심하지 않았다. 핏빛쥐들의 전력 또한 〈오크 부락 공략〉에 투입되었고, 송곳니 산을 제외한 3면을 포위하는데 쓰였다.

〈대전사(大戰士) 뚜쎠드(Tsusshud, 피묻은 이빨)〉가 우두커니 서 있는 어둠을 정확하게 꿰뚫어보며 고함을 질렀다.

“안 보일 줄 알았더냐! 별의 기사!”

그의 탈 것이며 동료인 거대 늑대 〈토므 크홀(Tom Khol, 큰 발)〉이 속도를 높였다. 드낙은 칠흑과도 같은 산속의 어둠 속에서 자신을 정확하게 보는 오크 전사를 보며 혀를 찼다.

‘싸우면 안 된다.’

그의 뒤로 가히 500마리가 넘는 오크 전사가 우글우글했다. 오직 이곳에 도달하는 데만 신경을 썼기에 3천이 넘는 오크 전사 중에 2, 500마리가 낙오 아닌 낙오가 된 상태였다.

이들은 적게는 10분, 많게는 3시간 이상 떨어진 곳에서 50~500마리씩 떼를 이루며 뚜쎠드에게 합류하고 있었다.

‘핏빛쥐를 후퇴시켰어. 이 결정을 번복하려면 숲으로 되돌아가야 하는데.’

퇴로는 차단되었다. 도망친다면 이대로 산에서 내려가며 우회한 다음, 역으로 숲으로 재차 들어가 양측에 있는 오크들을 모두 드낙의 꼬리를 쫓도록 만들어야 했다.

‘샌드위치는 사절이야.’

드낙이 자세를 잡으며 저 눈이 좋은 타투를 지닌 오크 전사를 상대할 준비를 했다.

“쿠워우, 억!”

엇박자 소리를 내며 뚜쎠드가 거침없이 투척 도끼를 던졌다. 동시에 오른손을 높이 치켜들었고, 거대 늑대와 함께 드낙에게 덤볐다.

드낙은 전과 똑같이 투척 도끼를 갑옷으로 흘려보냈다. 하지만 소스라치게 놀랐는데, 전신갑주의 팔꿈치 부분을 긁고 지나간 곳에서 고통을 느껴서였다.

마치, 신경을 긁은 것과도 같은 송곳과도 같은 고통이었다. 아주 짧은 순간에 이루어진 격통이었다.

‘타투다.’

뭔지 모르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다른 게 전혀 없었다. 〈초월적인 힘〉을 상쇄시키는 오우거의 적발이 반응도 하지 못할 정도로 순간적으로 고통을 주고 사라졌다.

독특한 효과였다. 상쇄 효과가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드낙의 팔꿈치에 준 송곳과도 같은 통증은 단번에 사라진 것이다.

즉효성이 빠른 것과 동시에 효과가 사라지는 것도 빨랐다. 그래서 오우거의 적발이 소용이 없었다. 왜냐하면, 효과가 일어남과 동시에 오크의 타투 효과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찰나의 순간만 효력을 주는 것이라, 상쇄 효과가 일어나지 않았다.

캉!

당황한 덕분에 드낙은 공세를 펼치지 못했다. 도끼와 검이 부딪쳤고, 돌진에 뒤로 나뒹굴었다. 거대 늑대 중에서도 덩치가 큰 놈이 뚜쎠드의 탈 것이었다.

“고작 이런 놈을 죽이러 오다니!”

뚜쎠드는 화딱지가 나서 털가죽을 벗었다.

어둠 속에서 화려하게 타오르는 왼팔이 보였다. 투척 도끼를 던진 팔이었다.

〈유령의 이글거림 타투〉.

귀신을 때려잡으며 얻어낸 타투였다. 녹색 도끼가 매우 심혈을 기울여서 타투의 씨앗을 만들어준 것이기도 했다. 물리적으로는 죽지도 않는 유령이 오크 전사에게 죽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정신적으로 유령이 피폐해져서 도망쳤고, 그것이 소멸이라는 과정을 밟아서 행해진 것이다.

자신의 원망을 말하는데 자꾸 주먹질과 도끼질을 하니, 유령이 제 명에 못 살아버린 것.

그 덕에 뚜쎠드는 다른 대전사와는 다르게 강력한 원거리 관통 능력이 있었다. 일종의 환상 고통을 상대에게 부여하는 것이었다.

오크와 환상 고통은 실로 어울리지 않아서 타투가 주는 효과는 미미했지만, 드낙 같은 자를 상대할 때는 허를 찌르기에 충분했고, 효과 또한 좋았다.

부모님조차도 인상을 찡그릴 정도의 보신주의를 지닌 게 드낙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무와 수풀을 끼며 도망치는 모습에 뚜쎠드가 손가락을 입에 넣고 휘파람을 높게 불었다.

오크 떼가 사냥감을 몰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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