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480화 (479/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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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허억! 헉! 후읍! 케엑!”

호흡을 제어하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상태가 크게 나빠져서 발을 헛디뎌야 했다. 그 정도로 육체는 한계에 도달했다.

〈곡사의 조〉는 산의 정상에서 넘어졌지만, 금방 일어났다. 서둘러 품을 뒤져서 강력한 화력을 지닌 주술돌을 꺼냈다. 몇몇 오크를 사냥하면서 얻어낸 것이다. 생나무를 바짝 태울 정도로 화력이 강한 불꽃을 내뿜는 돌이었다.

“퉤!”

침을 잔뜩 모아서 걸쭉하게 뱉었다. 침이 묻은 주술돌에서 화염이 튀어나오더니 맹렬하게 쏟아져 나왔다. 그 돌을 생나무 밑에 그대로 던져놓자 단번에 매캐한 검은 연기가 쏟아져나왔다.

‘제발.’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건 모두 했다. 남은 것은 신에게 비는 것뿐이었다.

‘제발.’

그의 시선이 검은 연기를 따라서 올라갔다. 매캐한 검은 연기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의 뒤로 뻗어 나갔다. 마치 달리는 기차가 내뿜은 연기처럼.

‘역풍이다.’

끝났다. 알려주지 못했다는 감정이 화살처럼 꽂혔다.

“으아아아아아아!!!!!!”

조가 괴로워하며 고함을 내질렀다. 메아리처럼 퍼져나가는 외침에는 끔찍한 감정이 깃들어져 있었다.

〈곡사의 조〉가 있는 산의 앞으로 녹색 물결이 난잡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물결은 끊기기도 했고, 얇게 되거나 너무 뭉쳐있기도 했다.

규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만큼 오크들은 빨리 달릴 수 있는 놈은 달리도록 진형 자체를 뭉그러뜨렸다.

그 선두에는 〈대전사(大戰士) 뚜쎠드(Tsusshud, 피 묻은 이빨)〉가 있었다.

그 눈은 밤하늘에 선명하게 돋보이는 별을 추적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움직이던 별은 어느 순간 멈추어섰다.

뚜쎠드의 마음이 타들어 갔다. 피 묻은 이빨, 그의 이름과 관련이 있는 〈송곳니 산〉. 저 별의 밑에 있는 것은 자신의 부락이 있는 곳이었다.

“빨리, 빨리 가야 한다! 〈토므 크홀(Tom Khol, 큰 발)〉!”

“컹, 컹컹!”

〈거대 늑대(Giant Wolf)〉가 무식하게 내달렸다. 그들의 눈앞에 송곳니 산이 보였다.

오크와 순찰자의 달리기에서 순찰자가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이 달리기는 목적지가 분명하고, 결승점이 확실하다. 잔재주가 통하지 않았고, 오로지 달리기 속도만이 모든 승패를 결정했다.

산악 기병이라고 할 수 있는 오크를 순찰자들은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 또한 그들은 〈주술사 우데스 흐레그(Udes hleg, 조용한 입)〉의 예언을 믿고 있었고, 순찰자들은 오크 전사들이 어디로 달리는지, 그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몰랐다.

바로 앞에 범인이 내달리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목적지 없는 곳을 달린 것이 순찰자였다. 자연스럽게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나 혼자만 목적지를 모르고 달리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숲이 빠르게 지나갔고, 홀로 우뚝 서며 구름이 정상을 지나가는 〈송곳니 산〉의 아래에 목책 하나 없는 조잡한 오크 거주지에 구름이 크게 지나가며 어둠이 내려앉았다.

끼익.

드낙이 내부로 들어섰다. 오두막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그의 코에 맡아지는 냄새는 강렬한 피냄새가 아니었다. 마법 투구는 그런 불쾌한 냄새 따위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투구에 검지를 넣고 살짝 들어 올렸다.

‘피냄새. 지하실인가?’

나무 창문 때문에 환기가 이루어짐에도 피비린내는 지나칠 정도로 농후했다. 드낙은 순식간에 오두막 안으로 들어와서 창문을 닫으며 위층부터 조사했다.

오크가 사는 흔적은 없었고, 버려진 집이었다. 먼지가 소복하게 올라와 있고, 몇몇 가구가 빼내어 진 자국이 드낙의 눈에 보였다.

큰 이상은 없었다.

소리 없는 발걸음으로 드낙이 전신갑주를 입은 채 지하실로 향하는 문에 다가갔다. 자물쇠로 막혀 있었지만, 나무 문의 틈 사이로 바람이 살살 불어왔다. 외부의 바람이 오두막 내부로 제법 들어왔기에 이상하지는 않았다.

우두둑. 끼긱.

손으로 자물쇠를 뜯어버린 드낙이 지하실 문을 열고 안으로 내려갔다.

‘개새끼들.’

화덕 몇 개가 놓여 있고, 벽에는 횃불 하나가 전부였다. 하지만 그 횃불 옆의 벽에 걸린 인간의 시체가 드낙의 눈에 들어왔다. 거침없이 내려간 드낙은 횃불을 빼 들어 지하실을 살폈다.

30평이 넘는 공간에 인간들의 시체가 가득했다.

아기, 어린이, 여자, 남자, 늙은이 등.

50여 구의 시체가 벽에 걸려있거나, 작고 협소한 이동식 감옥에 웅크린 채로 들어가 있었다.

스윽.

목 하나하나 확인하며 살아있는 자를 찾으려고 했지만 허사였다.

‘죽은 지 며칠 안 되었어.’

가을 거기에 산맥 그리고 지하실이라서 부패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고려하더라도 죽은 지 얼마 안 된 시체들뿐이었다.

‘반란을 일으켰을까?’

남자들의 손을 확인했다. 특별한 굳은살은 발견하지 못했고, 여자들의 손 또한 확인했다. 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다른 이들까지 이 잡듯이 손바닥을 확인했지만, 소득은 없었다.

타닥···

움찔.

뭔가가 타는 소리에 드낙의 몸이 멈칫했다. 서둘러 지하실을 올라가자 사방이 화염으로 뒤덮여있었다. 하지만 기괴하게도 타는 소리는 마치 작은 쥐가 찍찍거리는 소리보다도 적게 났다.

‘푸른 화염.’

주술로 만든 불꽃이었다. 드낙이 단번에 집을 부수고 튀어나왔다. 전신갑주에 들러붙은 주술 화염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껑충껑충 뛰며 드낙을 휘감았지만 스파크를 일으키며 사그라들었다.

오우거의 적발(赤髮). 초월의 힘이란 힘은 모조리 상쇄시키는 압도적인 능력이 발현되었다.

“함정이라니.”

드낙이 중얼거렸다. 그만큼 그 어떤 전조도 없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오크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었다. 사방에 가득했다. 그들의 발에는 무형의 바람이 아래위로 나선을 이루며 움직이고 있었는데, 〈주술〉로 발소리를 없앤 듯했다.

도끼와 방패를 든 오크들이 뒤로 길쭉하게 솟아난 나무 지팡이들이 수십 보였다.

“어떻게 내가 온다는 걸 알았지?”

능숙한 오크 어(語)가 드낙의 입에서 나오자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시끄럽다, 이놈들! 어디서 혓바닥을 놀리는 거냐!”

대전사의 주술사인, 우데스 흐레그가 뚜쎠드와 함께 부락을 떠났고,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던 오크 주술사가 오크들을 나무 지팡이로 콩콩 머리를 때리면서 앞으로 나섰다.

“어떻게 인간이 오크의 말을 그렇게 잘하지? 누구한테서 배운 거냐?”

“알아서 뭐하게?”

드낙의 물음에 오크 주술사가 손사래를 쳤다.

“됐다. 알고 싶지도 않다. 네가 이곳에 온 것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흐흐흐.”

오크 주술사가 킬킬거리며 웃었다. 다른 오크들도 낄낄거렸다. 배가 아파질 지경으로 웃는 오크도 있었다.

“하늘을 봐라, 이 멍청아. 널 따라다니는 별이 몇 개인지 아느냐? 예언으로는 너의 모습 하나 찾지 못했지만, 너를 가리키는 이정표는 밤하늘에 가득하다.”

‘젠장.’

드낙이 인상을 찌푸렸다. 중립신의 힘은 별들에게도 들어가졌고, 이것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별들을 중립신의 챔피언인 드낙이 선택을 받아야 했다. 그것으로 인한 단점이 오늘 단단히 빛을 냈다.

‘사람들은 별을 별로 추적하지 않던데.’

인간들과는 다르게 점성술을 쓰는 주술사들은 특히나 예언에 밝았고, 그에 대한 대처를 전 부족이 할 수 있었다.

그 여파는 드낙이 생각하는 것보다 뛰어났으며, 인간들이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점성술사가 저기다라고 하면 오크들은 마구잡이로 달려가지만, 인간들은 그 외의 다양한 정보들을 취합하고 나서야 움직이는 경향이 심했다.

〈점성술사〉보다 영주가 더 높은 직위에 있어서였다.

‘아차! 이 녀석들, 시간을 벌려고 하는구나!’

드낙이 정신을 차렸다. 오크들은 단 한 마리도 적의를 내비치고 있지 않아서 마치 협상을 이야기하는 분위기처럼 되어있었다.

칼 뽑을 분위기가 아니었다. 당연히 드낙도 거기에 휩쓸려서 말을 내뱉었다.

그런 사이가 아닌데도.

‘멍청한 새끼.’

드낙이 검을 빼 들자 그제야 주술사고 허둥지둥 엉덩이를 꿈실꿈실 거리면서 뒤로 도망쳤고, 오크들이 기세를 뿜어냈다.

‘영악한 놈들!!!’

“이야아아아아!!!!!”

드낙이 거세게 고함을 지르며 그대로 불타는 집의 옆쪽으로 달려나갔다.

“막아! 막아!”

오크들이 소리쳤다. 오크 나무로 만든 지나칠 정도로 두꺼운 방패가 앞으로 들이밀어 졌다.

콰자작!

드낙의 검격에 방패가 박살이 났다. 하지만 워낙 굵어서 오크를 베지는 못했다.

카가각!

또한 롱소드를 쥔 드낙과는 다르게 투척 도끼를 던지는 오크들 때문에 벌써부터 전신갑주에 타격이 들어왔다.

‘포위망을 벗어나는 게 먼저.’

“〈대지 골램(Earth Golem)〉!”

드낙의 앞에 있던 오크들이 흙이 크게 들어 올려지자 토사물에 휩쓸려서 주춤주춤 물러났다. 하지만 오크보다 조금 더 커지자 사정없이 주술사들의 공격이 골램을 타격했다.

와르르르!

단번에 골램이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지만, 그 언덕에 드낙이 내달렸다. 다른 오크도 따라나섰지만, 드낙보다 빠른 자는 없었다.

“흐읍!”

크게 도약하는 드낙에게 온갖 주술이 드낙을 물고, 또 물려고 했다.

갈색의 긴 줄기로 이루어진 이빨이 다닥다닥 드낙을 괴롭히려 했지만 가까워지자마자 흙으로 변해서 땅으로 떨어지며 흙먼지를 만들었다.

수십 마리의 불로 만들어진 새 떼가 드낙을 휩쓸고 지나갔지만, 드낙과 맞닿자마자 잿가루가 되어서 떨어져 내렸다.

“끼룩!”

산에서는 볼 수 없는 갈매기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드낙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쩍 벌린 주둥이에 흉악하고 긴 이빨이 우수수 쏟아져나와서 흉측하게 변해갔다.

팡!

드낙이 검을 휘둘러서 단번에 터트렸다. 작은 안개처럼 연기가 되어서 갈매기가 사라졌다. 깃털 하나 없었다.

‘환영인가. 주술이라서 그런지 지나칠 정도로 현실적이다.’

오두막에서 한 바퀴 구르며 단번에 일어난 드낙이 좌우를 살폈다. 오크들이 빠짐없이 포위하고 있었다. 드낙은 좌측으로 뛰어들었다.

“쫓아라!”

움막이 박살이 나며 오크가 튀어나오다가 천에 걸려서 앞으로 넘어졌고, 그런 오크를 발로 밟고 다른 오크가 지나가기도 했다.

오두막의 나무 창문의 경첩이 떨어져 나가며 덜렁거렸다. 오크들이 우루루 창문으로 빠져나왔다.

콰지직!

나무 방패가 부서졌다. 오크의 도끼가 휘둘러졌다. 드낙의 검이 활처럼 휘어지면서 도끼마저 쳐버렸고, 드낙의 발이 오크의 무릎과 부딪쳤다.

뿌걱!

뼈가 뒤틀리며 부서지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아아아!!!!”

오크가 뒤로 뒤집혔다. 덩치와는 다르게 생각보다 담이 약한 놈이었다. 그제야 드낙의 눈이 빛났다.

‘이 새끼들. 토치라이트 가문에 덤볐던 〈오크 전사〉보다 약하다.’

신체적으로는 비슷했지만, 정신적으로 나약했다. 드낙이 고꾸라진 오크의 사타구니를 발로 걷어찼다. 바지가 붉게 물들어가며 오크가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기절하는 오크라니.’

“뭐지? 너희들, 오크 맞냐? 아니, 너희들은 전사가 아니구나.”

“뭐라고!”

“인간 놈이! 강철을 둘렀다고 기고만장해져서는!”

오크들이 크게 분노했다. 하지만 드낙은 그제야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오크들의 복장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나칠 정도로 새것처럼 보이는 한손 도끼와 방패와는 다르게 그럴듯하게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또한 짐승의 피가 굳어있는 투척 도끼도 주렁주렁 한 손이 바로 착 닿는 곳에 있었다.

‘전사 노릇보다는 사냥꾼이야.’

근접보다는 사냥의 달인들이었다. 오크들의 계급이 어디가 윗줄인지는 자세하게 알 수 있었지만, 근접전을 선호하는 오크 전사들보다 사냥꾼들이 죽이기 좋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쾅!

드낙이 오두막 벽을 허물며 도망쳤다. 흙먼지와 나무의 가루가 물씬 풍겼다. 그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간 오크가 악 소리를 내며 무릎부터 꿇으며 땅에 넘어졌다.

“크흐윽!”

발로 무릎을 걷어차서 넘어진 오크의 검은 머리채를 잡은 드낙이 검을 입에 그대로 집어넣었다. 손으로 발악을 했지만 소용없었다. 넘어진 오크 전사가 어떻게 체중을 드낙에게 주나?

힘으로 밀린 오크는 혀가 잘렸고, 목이 헤집어졌다.

부들부들 거리는 오크를 뒤로하고 드낙이 뒤이어서 오는 오크 셋의 가슴을 정확하게 도려냈다. 먼지 속에서도 무시무시한 정교함이었다.

콰직!

드낙의 손이 오두막 벽을 뚫고, 우두둑 옆으로 진행하며 아주 박살을 내었다.

쾅!

발로 걷어차서 문을 하나 만든 드낙이 거칠게 내달렸다. 막으면 부딪쳤다. 제대로 체중을 실을 줄 모르는지 오크들은 사정없이 나뒹굴었다. 드낙의 교묘한 기술의 힘이기도 했다.

“우수수수수!!!!”

주술사 하나가 왼손에 나무지팡이를 가져다 대며 입으로 소리를 냈다. 황토색의 말벌들이 쏟아져나와서 드낙을 뒤덮었지만 드낙은 하등 상관하지 않고, 오크 주술사의 머리통을 박살을 내며 바람처럼 지나갔다.

후두두둑.

작은 돌가루들이 드낙의 아래로 무수히 떨어져 내렸다.

전신갑주를 아슬하게 지나며 오크 주술사의 피가 사방팔방으로 터져나갔다.

상체를 숙인 드낙이 슬라이딩을 하며 주르륵 지나가더니 오크 전사의 손을 낚아채서 당겼다.

“이게!”

오크 전사가 힘으로 드낙을 멈추어 세웠지만, 드낙이 한 바퀴 뱅글 몸을 돌리며 오크의 안으로 파고 들어가며 발 하나로 너끈히 일어나 균형을 잡았다. 오크의 등이 드낙의 눈앞에 있었다.

빠각!

드낙이 하단을 향해서 주먹을 날리고 오크의 척추가 그대로 부서졌다. 인형처럼 오크가 허물어졌다.

“으하하하!”

형편없는 모습에 드낙이 닥치는 대로 오크를 죽이면서 웃어 보였다.

‘이 맛이지!’

한껏 신난 드낙의 뒤로 주홍빛이 크게 밝아왔다. 드낙이 몸을 돌리자 아파트만한 불기둥 속에서 팔 두 개가 튀어나왔다.

화염으로 이루어진 긴 수염이 ㅅ자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오크를 죽이지 마라! 건방진 인간놈!]

‘튀자.’

드낙은 냉큼 몸을 돌렸다. 저렇게 큰 덩치를 지닌 불의 정령이라니? 분명 어제부터 행한 의식으로 주력을 공양한 것이 틀림없었다.

자신이 가진 초월의 힘보다 상당히 많은 힘을 가진 듯했기 때문에 드낙은 곧바로 태세를 전환해서 도망칠 마음을 가졌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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