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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딱.
“까악!”
카이야가 거만하게 고개만 똑 부러지게 돌렸다. 그 눈에 드낙에게서 도망치는 오크 암컷과 새끼들이 보였다. 그중에 제법 몸이 큰 오크 남자애는 엄마의 말을 안 듣고 도끼 한 자루와 투척 도끼를 몇 자루 챙긴 채 드낙이 있는 곳으로 대범하게 나서고 있었다.
뻑!
오크의 턱이 비틀어지면서 비대칭 구조로 변했다. 한국이었다면 성형비가 제법 들 것이다. 소량의 피가 침과 함께 질척하게 땅으로 떨어졌다.
“크아아아악!!!!”
드낙의 손가락이 오크 청소년의 두 눈알을 짓뭉갰다. 양손으로 드낙의 한 손을 이겨내지 못했다. 체중의 힘을 크게 낼 수 있도록 체급이 큰 것도 아니고, 달려왔지만 기습에 턱주가리가 날아갔기 때문이다.
드낙은 끔찍한 소리를 내는 오크의 목젖만 뜯어냈다. 두꺼운 목과는 다르게 오크의 성대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약점 중의 약점이었다. 뜯겨진 목구멍에서 피가 쏟아져나왔다. 오크의 손이 드낙의 발을 잡았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드낙은 우직하게 앞으로 나갔다.
“헉! 헉!”
암컷 오크의 허리밖에 못 오는 어린 오크가 거친 숨소리를 냈다. 자꾸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한계에 달했다는 걸 보여주었다. 그제야 오크가 멈춰 섰다. 등에 둘러매었던 큰 바구니는 버린 지 오래였다.
과일부터 약초까지 잔뜩 들어있는 큰 바구니에 대한 생각은 일절 나지 않았다.
“저기로 무조건 계속 달려라. 알았지?”
“헉. 헉.”
말을 하지 못하자 큰 손바닥으로 엉덩이를 세게 세 번을 후려쳤다. 엉덩이에 불이 난 어린 오크가 징징거리면서 앞으로 내달렸다.
마른 침을 삼키며 암컷 오크가 전방을 바라보았다. 방금만 해도 쫓아오던 강철을 두른 전사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스스스스.
수풀이 바람에 크게 흔들렸다.
사박.
발소리에 옆으로 몸을 돌렸다. 뛰어난 동체시력을 지닌 오크답게 그것이 돌임을 알 수 있었다. 냉큼 반대편으로 돌려보자 소리 없이 지척까지 다가온 드낙이 시야에 들어왔다.
후웅!
크게 팔을 휘저었다. 돌부리를 쥐고 있었고, 여자지만 드낙보다 체격이 컸다. 하지만 그 강력한 훅은 허공을 가를 뿐이었으며, 어깨에서 피가 솟구쳤다.
“으윽.”
앓는 소리를 내며 오크가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도망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드낙은 다친 오른팔의 방향으로 움직이며 그대로 목젖을 움켜잡았다. 다른 팔로 드낙의 손길을 거부하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몸 전체로 밀어붙여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드낙과의 힘 싸움에서 이길 수 없었다.
뿌드득.
순식간에 암컷 오크가 바닥에 누웠다. 조금 늦게, 피가 대량으로 흐르며 흙을 적셨다.
“크르르.”
도노가 새까맣게 탄 어린 오크의 팔을 문 채로 드낙의 앞에 놓았다.
“으으···으으으···”
‘생명력이 대단하네.’
주술 불꽃에 전신이 노출되었음에도 살아있었다.
푸걱!
피가 솟구쳐올랐다.
백설산맥에서 시작된 남침은 오크들이 밑으로 내려와서 생활권을 빠르게 형성하게 하였다. 애초에 농사를 많이 짓지 않고, 오크 나무를 통해서 재배를 하는 게 오크들의 생활 방식이라 너도나도 남쪽으로 내려왔다.
이들은 모두 드낙의 표적이 되었다.
‘인간을 어떻게 보면 이 정도냐.’
겁도 없었다. 오크인 자신들이 진다는 생각을 안 하는 듯했다. 드낙은 그게 정말 짜증 났다. 마치 자신이 무시당하는 기분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오크의 입장도 들어봐야 하는 중대한 문제였다.
승전보만 두드리다가 정신 차려보니 옆에서 오크를 죽이는 인간 도살자 한 명이 칼춤을 추는 격이었다. 오크들도 황당할 터였다.
그 혼란은 빠르게 백설산맥의 안쪽으로 퍼지고 있었다. 보이는 모든 오크를 죽여도 그 흔적은 남기 때문이었고, 핏빛쥐들이 일으키는 소란도 많았다.
자연스럽게 들킬 수밖에 없었다.
‘근데 뭐 어쩌라고?’
드낙이 흉악한 기세를 드러냈다. 그의 마음은 활화산처럼 타오르고 있었는데, 오크들의 태도 때문에 분노를 참기 힘들었다.
말 그대로 열등한 잡것들을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서른 개가 넘는 오크 부락이 남쪽으로 총공세를 펼친 유례없는 역사 속에서 오크들은 참으로 대범했고, 기고만장해있었다. 세상 모든 일을 해낼 수 있는 것처럼 굴었다. 마치 월드컵을 개최한 나라처럼 기세가 바짝 올랐다.
그게 불만이었다.
인간을 시체로 쌓아서 저 높은 곳에 올라간 기분을 느끼는 오크를 보면서 드낙은 기분이 상했다. 이런 기분 속에서 드낙은 무리를 해서까지 오크를 죽이고 다녔고, 〈한성질 쌍쥐〉 또한 드낙의 페이스를 따라가기 위해서 사방팔방을 날뛰었다.
오크 전사가 없는 오크 가족을 죽이는 일은 쉬웠지만, 부락을 침공하는 일은 아직 없었다. 백설산맥 더 깊은 곳으로 가야 했다.
3일을 미친 듯이 백설산맥을 돌아다니며 어린 오크와 암컷 오크 그리고 적당히 자랐지만, 타투는 적은 오크를 사정없이 죽여대었다. 나중에 가서는 분노가 아니라 흥겨움을 느끼게 되었다.
‘꿀이다. 꿀!’
〈열다섯 짐승 타투〉.
대형 짐승 같은 숨소리를 내는 오크 전사와의 전투가 아니라, 그저 도망치다가 반항하는 오크들을 죽여서 얻은 것이었다. 오크들의 가장 기본적인 타투 열다섯 종류를 획득했다.
신체능력의 상승은 기본이고, 신체 장기와 뼈가 더욱 강해졌다.
‘왜 오크가 부락 국가인지 알 수 있을 정도다.’
홀로 태산을 흔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한 명, 한 명이 모두 가지고 있다면? 미친 세상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곳에서 중앙 집권? 꿈도 못 꿀일이다.
〈캉카라쿰(Kankarakum, Black scales Wyvern)〉같이 상징적인 존재를 통해서 만들어야 했고, 그냥 대전사도 한 방에 찢어버리는 무력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놈은 어떤 놈일까. 오크들을 하나로 묶어낸 신화적인 영웅.’
드낙은 그를 그렸다. 하지만 그림자밖에 그리지 못했다. 블랙 스케일 와이번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그의 이름이 도네투스이며 〈족장〉이라는 새로운 직위를 얻은 것도 몰랐다.
타닥!
모닥불이 지펴진 곳의 주황색 불빛에 〈한성질 쌍쥐〉가 모습을 드러냈다. 첫 만남과는 다르게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그가 무릎을 꿇으며 드낙을 경배했다. 단 500마리의 오크 전사를 상대했음에도(거기에 그들은 1군도 아니었다.), 6천 마리의 핏빛쥐 병사들이 죽었다.
그 속에서 드낙은 어둠 속에서 타오르는 혜성과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활약을 한 드낙을 경배하지 않는 게 이상했다. 단단한 산에서 트롤을 죽인 건 오로지 암습이었기에 너무 단순했고, 길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트롤에게 핏빛쥐가 죽지도 않았다.
드낙이 검은 탐욕에 미쳐서 홀로 죽여서였다.
상대가 얼마나 강한지 뼛속까지 깨닫지 못하고 있는데, 드낙을 경배하는 건 대장쥐가 유일했다. 〈대장쥐〉의 군사적 재능이 상당해서였다. 지금은 리전을 이끄는 핏빛쥐 위원들 또한 군사적 역량을 키웠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핏빛쥐의 초창기 시절이었다. 그때는 오직 대장쥐만이 크게 빛났다.
“오크 부락을 발견했습니다.”
“드디어.”
드낙이 어깨를 떨었다. 쾌감에 오금이 저릿해질 정도였다.
“어디에 있지?”
“산 하나만 넘으면 바로 아래에 보입니다. 저 산입니다.”
달을 가리는 크게 높은 산이 드낙의 눈에 들어왔다. 폭이 좁고, 길이는 송곳처럼 길었다. 오크들에게는 〈송곳니 산〉이라 불리고 있었다.
슥슥.
한성질 쌍쥐가 급하게 그림을 그렸다. 부락은 동그라미였고, 울타리 하나 없었다. 많은 움막과 오두막이 있었고, 우물이 특히나 많이 놓여 있었다.
강은 없었다.
“겨울에 제법 지내기 좋은 곳입니다. 산이 독특해서 오크 나무를 심고, 방어하기 좋습니다.”
원뿔인데, 매우 가파른 원뿔이라고 생각하면 편했다. 오크들마저 사다리를 놓고, 발판을 만들어서 오르고 있었다.
“지하를 통해서 갈 수 있나?”
드낙의 말에 한성질 쌍쥐가 고개를 더욱 숙이며 말했다.
“힘듭니다. 지하수가 많은 곳입니다.”
“우물 때문이군.”
많은 우물이 의미하는 바는 한 가지뿐이었다. 마을 위로 지하수가 크게 흐르고 있었다. 당연히 굴을 파는 건 매우 위험했다.
‘결론은 포위인가.’
썩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드낙이 고민하다가 이내 결론을 내렸다.
“내일 해가 저물자마자 나 혼자서 부락 안으로 스며들어 가겠다. 그 사이에 너희들은 동이 트기 전까지 도망가는 오크를 막을 수 있게 함정을 파고, 장애물을 설치해라.”
그렇게 말한 드낙이 한 호흡 쉬고 엄격하고, 근엄하며 진지하게 물었다.
“가능하겠지?”
한성질 쌍쥐가 냉큼 대답했다.
“충분히 가능합니다. 믿어주십시오. 단 한 마리도 도망치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좋다.”
드낙은 오면서 많은 오크를 상대했고, 이곳에 제대로 된 오크 전사가 없다는 것 또한 알았다. 오크 부락에 홀로 들어갈 만 했다.
그날, 드낙은 검은 꿈을 꾸었다.
많은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있었다. 〈흰여우 새린〉은 드낙에게 위기를 말하였다.
“될 일도 안 되는 주가 될 거야. 몸을 사리는게 좋아.”
“어차피 후방은 순찰자가 봐주고 있을 거다. 또 일이 그르치더라도, 날 죽일 놈은 없어.”
드낙이 확고하게 말했다. 몇 번이고 오크를 잡아가면서 오크 도살자가 되었다고 해도 무방했다. 은화를 건네주며 오크 앞다릿살 1근을 달라고 하면 순식간에 썰어서 봉지에 담아줄 정도로 완숙의 경지에 올랐다.
세파리아스가 흰여우 새린의 점성술에 비웃음을 날렸다.
“힘으로 깨부수면 그만이지. 운도 실력 없는 것들이나 비는 거다.”
“그럼 넌 실력이 없어서 죽은 거야?”
세파리아스는 그런 도발에 일절 넘어가지 않았다. 성질이 급한 것처럼 보여도 귀족의 〈계승〉을 받은 자였다. 그런 도발에 어울려줄 때와 어울려주지 않을 때를 잘 알았다.
“오크 부락에 대한 건 잊어도 돼. 아무 전력이 없어. 그리고 어차피 어둠 속에서 암살하면서 시작할 거야. 스스로 무너지겠지.”
드낙이 단칼에 결론을 지었다.
“그것보다 세파리아스, 별의 힘을 어떻게 직접 받은 거야? 나한테도 가르쳐줘.”
“그에 맞게 행동하면 될 뿐이다. 대충 그러하면 대충 힘을 줘.”
“난 아니던데?”
“그건 잘 모르겠네. 별들은 중립신의 큰 힘을 받아들였어. 엘프보다도 더. 그들을 너무 무시하고 있는 게 아닐까?”
“무시라니.”
드낙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럴듯했다. 세상 살면서 신을 믿은 적이 없었다. 빵이나 간식을 얻기 위해서 교회에 자주 간 적은 있었지만, 그런 욕구보다 더 신을 원했던 적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런 고민과 결정을 하기 전에 배가 고팠기 때문이다.
‘별을 믿어야 하는 건가?’
“신을 믿는 것과 비슷한 건가?”
“전혀. 그냥 뒷배가 있다고 생각해. 그들을 그대로 받아들여.”
드낙은 세파리아스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의 뒤를 든든하게 받쳐준 자를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있다면 중립신 하나였는데, 그는 신이었다.
‘애매하네.’
“확실하게 좀 말해봐.”
“그게 다 말해준 거다. 뭘 더 말해줘?”
불친절했지만, 그런 감으로 받아야 하는 게 별의 힘이었다. 그저 위에 둥둥 띄워놓아도 힘은 받았다. 하지만 세파리아스처럼 뭔가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다음 날, 어둠이 내려오기까지 드낙은 오크 부락을 주시했다. 부락은 온종일 나오는 오크가 하나 없었고, 마을의 중앙에서 큰불을 질러놓고, 의식을 행하고 있었다.
‘뭔 짓거리지.’
드낙의 높은 신체능력이 그 광경을 더욱 자세하게 볼 수 있게 도와주었다.
오크 주술사들은 수십 마리에 달했다. 그들 모두가 번갈아가며 제단에 올라 흰 가루 같은 것을 불 속에 쏟아놓았다. 그리고 비어있는 도기를 제단에 놓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어깨춤을 췄다.
도끼질하는 듯한 모습도 볼 수 있었지만, 교묘하게 춤 속에 깃들어있어서 드낙은 간파하지 못했다.
춤을 끝낸 뒤로는 빈 도기를 힘으로 쪼개어 불 속에 집어넣었다.
그 행위는 밤이 올 때까지 계속되지는 않았다. 오크 주술사 소수만 남고 오크들이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드낙이 형체가 없는 유령처럼 소리 없이 산에서 내려갔다.
오크 부락 하나를 모조리 핏물로 만들어버릴 생각에 가슴이 쿵쿵 뛰었다.
첫사랑을 만난 기분과 흡사했다. 다른 것은 손이 근질근질, 폭력적으로 근육이 꿈틀거린다는 점뿐이었다.
========== 작품 후기 ==========
5720자
평추코! 다양한 의견추!
매우 늦었지만 답변을 드려야할 것 같아서요.
애기살에 대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쓰는 사람에 따라서 천차만별의 위력을 내는 무기고, 너무 장점이 많아서 순찰자들은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화살이 부족하면 화살 하나를 2~4개로 쪼개어 사용하기 시작하면 충분히 편전을 개발하게 될 가능성이 있지만, 그냥 너무 강해서 이 소설에서는 언급을 하지 않겠습니다.
기대하신 몇몇 독자 분들에게 사죄를···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