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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샤삭!
바람 소리가 거칠게 수풀을 헤집었다. 한 방향으로 쓸리는 수풀 중에 홀로 툭 튀어나온 언덕처럼 흔들리는 수풀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흐으. 흐으.”
‘개같은 순찰자 놈들.’
긴 침이 오크 전사의 입에서 흘러내려 걸쭉하게 땅에 떨어졌다. 오크의 몰골은 끔찍했는데, 화살이 안 박힌 곳이 없었다.
오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는데, 피를 많이 흘려서 주의력이 많이 떨어진 것도 있고, 상대의 실력이 출중한 것도 있었다.
질겅···
오크가 수풀의 나뭇가지를 당겨서 겉껍질을 벗기지도 못하고 씹었다. 무엇이든지 씹어먹을 수 있는 게 오크였고, 그게 오크의 힘이기도 했다. 무엇이든지 잘 먹었고, 잘 소화할 수 있었기에 어느 곳에서든지 큰 덩치를 유지할 수 있었다.
바람이 잠잠해지자 귀도 밝아졌다. 이 틈에 오크는 갈등 끝에 몸을 바짝 엎드린 채 눈을 감았다.
킁킁.
냄새에 그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음을 편하게 먹는 순간 등에 화살이 그대로 파고들었다.
“큭.”
난도질이 된 것 같은 피부는 하늘에서 내리꽂히는 화살을 막지 못했다. 오크 전사가 다시 한 번 내달렸다. 인간이 못 덤비는 곳으로, 못 쫓아오는 곳으로 향했지만, 하늘에서 떨어지는 곡사는 오크 전사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게 마지막 놈이다.”
오크의 시체에서 화살을 수거하며 순찰자가 입을 열었다. 화살깃만 챙길 때도 있었고, 화살대까지 챙기기도 했지만, 화살촉은 회수하지 않았다. 오크 전사의 피부 안쪽에 금속조각이 쉽게 박히도록, 촉은 부서지기 좋은 합금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오크 패잔병이라니, 토치라이트 가문이 역공에 성공한 건가?”
목소리에 희망이 깃들어있었다. 그만큼 고무적이었다.
“그건 아닐거다. 뭔가 다른 게 있다.”
‘전황은 절망적일텐데, 여기서 변화가 일어나다니. 토치라이트는 아니다. 다른 세력이야.’
영지의 서쪽은 말 그대로 무주공산처럼 변하여 오크들에게 약탈을 당하고 있었고, 동쪽의 횃불 성채는 고립이 된 지 오래였다.
성의 함락은 초읽기에 들어섰다고 말하는 순찰자가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이 동쪽의 백설산맥 초입에 있는 이유는 자신들의 가슴 속에 깃든 사명감, 그것 하나 때문이었다.
순찰자들은 오크 패잔병을 역으로 짚어갔다.
“까악!”
나무 위에서 까마귀가 한 번 울었다. 순찰자 하나가 손을 가리켰다.
“새하얀 까마귀다.”
“뭐?”
다른 순찰자가 고개를 들어 올렸지만, 이미 까마귀는 날아가고 없었다. 〈새하얀 까마귀〉. 드낙 불파겐이 절로 생각이 났는데, 카이야와 도노는 드낙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불파겐 자작이 이곳에?”
“횃불성채가 아니라 여기에 온 게 이상한데.”
의심만 가진 채 그들은 더욱 빠르게 오크의 흔적을 역추적했다.
나무가 듬성듬성 있고, 수풀과 잔디가 적은 곳까지 들어가야 해서 매우 조심스러웠다. 은신하기에 가장 어려운 곳이었다.
‘이런 곳은 절대로 가면 안 되지만···’
리더로 보이는 자가 손짓을 했다. 그만큼 정보를 캐야 하는 순간임을 잘 파악한 것이다. 무언가 큰 물결이 쳤고, 조금이라도 빨리 파악해야 했다.
그곳의 중앙을 지나면서 수십이나 되는 순찰자들의 모습이 절로 보였다.
“멈춰라. 순찰자.”
나무 위에서 툭하고 사람이 떨어졌다. 새하얀 백색과 철색이 교묘하게 서로 뒤엉킨 기괴한 색상의 전신갑주였다. 남부 왕국의 양식은 결코 아니었다.
‘기사!’
나무 위에서 죽은 듯이 있었고, 풍성한 나뭇가지와 나뭇잎 덕에 가려져 있어서 보지 못했다. 나무의 밑둥에서 튀어나온 뿌리와 함께 지반이 아래로 움푹 들어간 곳에 숨어있던 도노도 몸을 일으켰다.
입을 살짝 벌렸는데, 푸른 불꽃이 아주 작게 일어났다가 사라졌다.
“어디의 기사입니까?”
“내 이름은 드낙 불파겐이다. 책임자가 누구냐?”
“피피익!”
순찰자가 소리를 냈다. 가장 후위에 있던 순찰자가 거침없이 달려왔다. 그는 드낙의 앞에서 머리를 가리고 있던 로브를 뒤로 넘겼다.
볼살이 베여서 떨어져 나가 딱지가 크게 있었고, 머리의 한 부분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드낙은 그 모습에 자신까지 따끔해지는 기분이었다.
“〈곡사의 조〉라고 합니다.”
중지 손가락이 사라진 오른손을 그가 내밀었다. 드낙은 그 손을 마주 잡았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는데, 조의 눈빛이 사람 같지 않아서였다.
‘무슨 눈빛이···’
뭔가에 홀린, 어떤 것에 미쳐버린, 그런 광기가 얼음으로 가득한 호수처럼 잔잔하게 눈에 들어가 있었다.
“이곳을 벗어나서 이야기하지. 내가 좋은 곳을 알아.”
드낙과 조는 서로 일어선 채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이곳을 벗어나기로 했고, 빠르게 벗어나서 잠시 발을 멈추었다. 뒤로는 가파른 언덕이 있어서 후방을 주시할 소수의 순찰자만 올려보내면 이야기를 나누기에 아주 좋았다.
“토치라이트 가문은 힘든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난 오크 보급대를 처리하러 이곳에 왔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지.”
그 말에 조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드낙은 거기에 상세하게 대답하지는 못했는데, 핏빛쥐들을 숨겨야 했다.
“서쪽부터 시작해서 이곳에서 내려오던 오크 보급대도 박살냈지. 암사자와 멧돼지를 다루는 오크들이었다. 그 외에 자세한 것은 말해줄 수 없다.”
조는 일단은 납득하고 지나갔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이번엔 드낙이 질문을 했다.
“순찰자의 숫자는 몇 명인가?”
“이제 50명이 넘습니다. 산을 몇 개 점령하면 더 많은 순찰자를 모을 수 있습니다. 많은 순찰자가 소수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어쩌다가 그렇게 부상을 당했지?”
조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부서질 것만 같았다. 태풍 속에 휘말린 듯한 끝없는 절망감과 두려움이 그를 아주 짧은 순간 덮쳤다가 사라졌다.
“전 원래 팬크리스 영지에서 활동하는 순찰자였습니다.”
기존의 순찰자 방식이 아닌, 능동적인 순찰조장과 짧은 교류를 했으며 그 방식을 지금까지 유지하며 강물처럼, 폭포처럼 흘러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이야기를 들은 드낙은 피냄새를 맡았다.
“오크들이 백설산맥에 있는 순찰자를 모두 밀어내지 못했는데, 왜 계속 남침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나?”
“그럴 만 합니다. 누구보다 빨리 침공했기에 많은 약탈품을 얻을 수 있어서 사실 보급이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을 겁니다. 있으면 좋다고 생각할 겁니다.”
곡사의 조라는 순찰자가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것 같자, 드낙이 자세히 물었다. 이에 조가 대답했다.
“북부는 후퇴를 시작했습니다. 서쪽은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기괴할 정도로 북쪽이 형편없이 밀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동쪽의 경우에는 지나칠 정도로 튀어나와있는 〈횃불 성채〉 때문에 부서질지 버틸지는 모르겠습니다.”
대나무처럼 부서지면 부서졌지 굽히지는 않을 것이 토치라이트 가문의 형세였다. 드낙이 의견을 물어보는 뉘앙스를 풍기며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내가 오면서 서쪽을 헤집으며 오크 약탈자를 60마리 정도 잡았는데, 토치라이트 가문이 조금이라도 숨통이 트일 것 같나?”
“···조금 전에 보급 부대까지 박살을 내셨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실이라면, 부락마다 판단을 다르게 해서 재미를 많이 볼 수 있을 겁니다.”
드낙이 웃었다. 확신이 없었는데, 이것으로 확신했다.
‘이대로 백설산맥에 있는 오크들을 조진다. 그게 베스트야.’
그의 눈이 순찰자에게로 향했다. 걸림돌이 있다면 이들이었다.
‘핏빛쥐들을 전력으로 사용하려면 이들의 눈을 피해야 한다.’
“나는 더 깊은 곳으로 가서 오크들을 공격할 텐데, 순찰자들은 앞으로 어찌할 건가?”
드낙은 내심 순찰자들을 이번 기회에 영입하고 싶었다. 그들을 자신의 영지에 데리고 갈 수 있다면? 순찰자 전력이 크게 상승할 수 있었다.
‘산악전의 달인들. 매력적이야.’
죽여서 검은 꿈을 얻기보다는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마치 수집가처럼, 독특한 특색을 지닌 것이 순찰자들이었다.
“저희 또한 백설산맥에서 꾸준히 활동을 할 생각입니다. 만약 저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큰 연기를 내십시오. 오크들보다 빠르게 도착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퇴로 하나는 만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완곡한 거절이었다. 드낙은 아쉬움에 한 번 더 권유했다.
“나와 함께 싸우는 건 어떤가. 내 밑에 들어와서 오크들을 비롯한 적들과 싸우는 거지.”
조는 고민하다가 이내 그것을 거부했다. 전신갑주를 입은 기사는 순찰자와 산에서 함께 싸우는 게 힘들었다.
“죄송합니다. 너그럽게 이해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순찰자는 개인에게 속하는 법이 없습니다.”
드낙은 탈주한 순찰자를 생각했다. 그들은 영악하고, 판세를 읽으며 판단을 달리했고, 드낙한테 굴복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순찰자는 정면으로 부딪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쩔 수 없지.’
깔끔하게 포기했다. 이들보다는 오크로 이득을 챙기는 것이 좋았기에 단번에 포기할 수 있었다. 드낙은 순식간에 돌변해서 오만하게 말했다.
“흠, 그럼 나 대신에 다른 영지의 정보를 모아줄 수 있는가? 이 근방의 오크들은 내가 싸악 죽일 생각이네. 사실, 순찰자가 필요하지는 않아. 전령이라면 모를까.”
드낙의 오만한 말에 조가 순간 말을 잊지 못했다. 아니, 머리통에 돌을 맞은 것처럼 띵했다.
“······?”
상황 파악을 전혀 하지 못하는 조에게 드낙이 혀를 찼다.
“쯧쯧. 대답을 왜 못하나. 공이라도 세우려고 그러는 건가?”
엄청난 무례였다. 이름 없이 죽어나자빠진 숫자가 얼마나 되는가. 그들은 명예를 포기하고 고결한 길을 걸었다. 그 죽음에 오물을 씌우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무슨, 무슨 말씀을. 지금 하시는 겁니까?”
일그러진 조의 얼굴에 드낙이 손사래를 쳤다.
“후방으로 빠지라는 소리네. 살기는 살아야 할 것 아닌가. 커흠.”
드낙이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땅바닥에 순식간에 지도를 대충 만들어내고 말했다. 모든 것은 드낙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지금 풀린 정보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서쪽에서 60마리를 잡았지. 그렇다면 놈들의 부족원들은 날 잡으려고 백설산맥으로 향할 것이다. 그럼 자연히 그 소식이 다른 오크 부락에도 들리겠지. 오크들이 역으로 이곳으로 몰려들 것인데, 어떻게 살려고 하는가?”
드낙의 말에 그제야 조가 앓는 소리를 냈다.
‘못해도 3천 이상의 오크와 싸워야 한다.’
순찰자의 전력은 형편없었다. 하지만 드낙은 그런 숫자와 싸우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자작님께서는 싸우려고 하는데, 저희들 또한 싸우겠습니다.”
드낙이 즉시 대답했다.
“그렇다면 내 밑으로 들어와서 싸워야지. 머리가 두 개인 채로 강대한 적을 어찌 감당하겠나.”
“음.”
물론 이것은 모두 드낙의 뇌내망상에 불과했고, 순간적이며 폭발적인 상상력이 만들어낸 한 가정에 불과했다.
‘나 하나 죽이려고 부락 하나가 여기까지 오겠어?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적당히 둘러대서 순찰자를 내려보내고 난 백설산맥 깊은 곳까지가서 오크 본진을 후려치면 된다.’
“···건투를 빕니다. 그럼 저희 순찰자들은 토치라이트 영지 서쪽에서 활동을 조심히 하겠습니다.”
순찰자들이 발을 빼자 드낙이 투구 속에서 음흉하게 웃었다.
“무운을 비네. 토치라이트 영지는 결코 오크의 손에 들어가서는 안 돼. 특히나 〈횃불 성채〉에는 〈엔토르챠(Antorcha, 모순의 횃불)〉가 타오르고 있지 않나.”
곡사의 조가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서쪽이 아닌 동쪽으로 도망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초대형 그것도 고대에 주술과 마법으로 건설된 〈고대 전투요새〉가 횃불 성채였다.
토치라이트 가문은 그저 그 터에 자리를 잡은 것뿐이었다.
순찰자들은 결국 드낙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는데, 드낙의 밑에서 지휘를 받는다는 건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순찰자의 운용은 순찰자들이 가장 잘 아는 법이었다.
그런데 그런 순찰자의 머리 위에 기사가 있다? 망해도 한 참 망할 조직 체계였다.
드낙은 순찰자들이 엄청난 오크들이 몰려와서 물러간 것으로 생각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그들은 목숨을 초개처럼 던지는 자들이었기에 그만큼 자신들의 고결함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 점을 드낙이 아주 짧은 순간, 한 마디로 정확하게 후벼 파서 생긴 일이었다.
‘오크는 내 것이다. 내가 죽여야 한다.’
순찰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품을 수 없는 순찰자들이었기에 드낙은 깔끔하게 그들을 잊었다.
“조! 정말로 불파겐 자작을 혼자 저렇게 남겨두고 갈 거야?”
“그럼? 넌 우리 순찰자가 저 기사의 밑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 그런 마음가짐을 하고 왜 지금까지 백설산맥에 있었어? 탈주나 하지.”
매우 공격적인 반응에 조에게 말을 건 순찰자가 깨갱 했다. 순간, 조는 거센 파도와도 같은 피냄새를 맡았다. 절로 상체를 숙였다.
“······”
다른 순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주변이 조용했음에도 순찰자들은 매우 넓게 퍼져서 천천히 앞으로 향했다가 다시 모여들어서 뒤로 향하였다.
돌들이 많은 곳이었고, 몇몇 곳에서는 성벽처럼 요긴하게 쓸 수 있어 보였다. 물론 오크를 상대로는 어림도 없었다. 올라가기 쉬워 보여서다.
“이 흙을 봐.”
조금만 팠는데도 피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조는 거칠게 흙을 제법 깊게 팠음에도 계속해서 피가 흡수된 흙이 나타나고, 피가 묻은 돌이 나오자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보급 부대를 박살 냈다는 거. 여기서 한 일일까?”
“그럴지도.”
부욱, 북!
조는 계속해서 땅을 파다가 포기했다. 너무나도 대량이어서 가늠할 수가 없었다.
마음이 크게 복잡해졌다.
“어쩔래? 그를 다시 따라간다면, 큰 변화를 줄 수 있을지도 몰라.”
“전례가 없는 일이야. 우리는 결코 한 명을 따르지 않는다. 우리는 남부왕국의 첨병이고,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만 존재해. 불파겐 자작의 아래로 들어가는 순간 우리는 순찰자가 아니다.”
마음은 복잡해도 말은 단호했다. 〈곡사의 조〉와 순찰자들은 백설산맥 초입을 빠져나와서 남쪽으로 향했다.
========== 작품 후기 ==========
6595자
평추코! 다양한 의견추!
막내라서 둘째 누나야 신혼집에 짐을 옮기러 노역을 하러 갑니다. 보수는 없습니다.
오늘 한 번 갔다왔고, 내일도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일도 1편밖에 못 올릴 것 같습니다. 금방 갔다올 줄 알아서 말씀을 안 드렸는데 그게 아니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