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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전이었기에 핏빛쥐의 시체에 걸려 넘어지는 오크 전사도 있었고, 드낙은 앞으로 달리다가 오크 전사의 태클에 옆으로 데굴데굴 구르기도 했다. 아무리 힘이 강해도 순간적인 기습에 그 방향으로 힘을 바로 줄 수가 없었다.
체중에서 밀리니 당연히 형편없이 나뒹굴 수밖에.
‘젠장!’
〈킬 더 배틀〉이 무색할 정도로 드낙이 빠르게 내달려서였다. 말 그대로 오크를 죽이는데 온 신경을 다하고 있어서 자신을 돌보지 못한 것이다. 피에 미친 건 핏빛쥐나 드낙이나 똑같았다.
쿠당탕!
철과 흙이 부딪치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하지만 귀로는 그렇게 크게 들리지 않았는데, 주변 소음이 너무 강렬했다.
핏빛쥐와 오크가 서로 고함을 지르고, 콥 고블린은 도망치려고 엉엉 울부짖으면서 손을 빌며 뭐라고 지껄였고, 암사자와 멧돼지의 울음소리 또한 뒤섞였다.
“퉷!”
입에서 흙먼지를 침과 함께 뱉어냈다.
형편없이 구른 드낙이 일어서자마자 얼굴에 세 줄기의 짐승 흉터 타투를 지닌 오크가 드낙의 머리를 발로 걷어차려고 했다.
후웅, 턱!
드낙은 그걸 한 손으로 막고, 힘으로 발을 짓눌러서 땅에 놓고, 자연스럽게 자신은 몸을 일으키면서 오크와 그대로 몸을 부딪쳤다.
쿵!
드낙의 투구와 오크 전사의 머리가 거세게 부딪쳤다. 오크 전사의 머리에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뿌드득.
드낙이 쥔 오크 전사의 손이 꺾이면서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지만 오크 전사는 전혀 물러서지 않고, 도끼로 드낙의 옆구리를 꽝하고 쳤다. 제국 전신갑주가 찌그러지면서 드낙의 갈비뼈를 불편하게 만들자 드낙이 발로 오크 전사를 밀어서 거리를 벌렸다.
도끼와 검이 부딪쳤다.
불똥이 크게 튀었다. 하지만 그다음 수는 드낙이 너무나도 빨랐다. 오크의 팔에 긴 선이 그어지며, 피가 쏟아져나왔다.
“급!”
오크 전사가 괴상한 소리를 냈다. 경악하는 눈을 드낙은 보지 못했다. 피 때문이었다.
그 피를 가르며 드낙의 검이 오크의 아랫배에 쑥하고 들어가서 반 바퀴 비틀어지면서 다시 빠져나왔다.
촤아악!
시야가 가려진 상태에서 오크 전사는 드낙을 볼 수 없었지만, 느릿느릿 피가 쏟아지는 곳의 구멍을 통해서 드낙은 오크 전사가 뭘 하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싸우면 싸울수록 쉬워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을 드낙은 그저 우연스러운 경험을 통해서 얻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드낙의 공은 아니었다. 세파리아스의 대련, 그 속에 깃든 자연스럽고, 깨닫지 못한 것이 절로 실전을 통해서 다시 녹여지고 있었다.
〈한성질 쌍쥐〉는 핏빛쥐들을 통해서 〈드레이 캄프펜(Drei Kampfen, 세 명의 싸움)〉을 누구보다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퍽! 퍽! 퍽!
오크 전사의 눈구멍을 흉악하게 찔러대었다. 오크 전사의 허우적거림은 한성질 쌍쥐에게 닿지 못했다. 이미 위치를 옮긴 뒤였다.
“찍!”
그가 빠지자 다른 핏빛쥐가 쓰러진 오크의 사타구니를 발로 걷어찼다. 오크가 들썩거렸다.
전투는 그렇게 오래 가지 못했다. 멈추지 않는 폭주 기관차, 드낙이 있었기 때문이고, 실제로 오크 보급대의 전력은 오크 전사 500마리와 암사자, 멧돼지를 포함한 500마리의 짐승에 불과했다.
3만 vs 1천인 셈.
드낙은 짐승 수십 마리와 오크 전사 310마리를 죽이는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물론 그중 절반이 결정타, 확인사살이었다.. 워낙 넓었기 때문이고, 생각보다 핏빛쥐들이 오크 전사를 잘 내몰았다.
잘 죽었기도 했지만, 그만큼 오크 전사를 빠르게 피해를 입혔다.
“인원 파악부터. 부상자를 확인하고.”
“예!”
〈한성질 쌍쥐〉가 드낙의 명령에 대답했다. 이 주변에는 피냄새가 진동을 했다. 돌이란 돌에 피와 살덩이, 내장 조각이 널브러져 있었다. 바람이 한 번 불어오면 미지근했고, 습도가 높았다.
‘마치 위장 속에 있는 기분이야.’
그 불쾌감은 상상을 초월하는 혐오감을 주었지만, 드낙은 무덤덤하게 넘겼다. 평범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전력으로 충분하다 못해 넘쳐나.’
초반 피해는 극심했지만, 패주하는 핏빛쥐는 한 마리도 없었다. 그게 매우 중요했다. 피에 미쳐서 콥 고블린을 뜯어먹다가 죽는 놈은 있어도 도망치는 놈이 없었기에 승리할 수 있었다.
드낙은 그것을 매우 높게 쳐주었다. 피해가 그나마 적은 이유는 핏빛쥐의 놀라운 투지가 있어서였다. 결코 부정할 수 없었다. 늑대가 곰을 사냥할 수 있는 이유는 그 덩치에 결코 도망가지 않아서다.
핏빛쥐들은 그것을 해냈다. 드낙이 워낙 빨리 오크의 멱을 따고 다녀서 그렇지 거진 400마리의 오크 전사에게 계속해서 피해를 주고 있었다. 드낙이 없었어도 오크 보급대를 처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도망치지 않는 투지. 경직되지 않고, 회피하려고 하는 뚝심.’
전투력이 있는 생명체의 기본적인 능력치다.
씨익.
드낙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피비린내가 꽃향기처럼 느껴질 정도였는데, 앞으로 다가올 보상과 생각보다 핏빛쥐들의 투지가 강했다는 걸 깨달아서였다.
부상자들을 챙기고, 핏빛쥐들은 시체를 종족별로 분류하였다. 나중에 먹을 콥 고블린의 시체와 암사자, 멧돼지의 시체를 따로 놓고, 오크 전사들의 시체부터 알뜰살뜰하게 먹기 시작했다.
〈한성질 쌍쥐〉가 가장 많이 포식하지는 않았다. 그는 성질이 급해도 선두에 안 서기로 유명했다. 다른 핏빛쥐보다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만 먹고, 리전의 힘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해가 저물고 나서야 드낙은 피해 보고를 받을 수 있었다.
“저희 동족 3만2천 마리 중 4, 500마리가 죽었고, 2천 마리가 크게 다쳤습니다.”
고작 1천을 상대로 3만의 군세가 6천의 피해를 봤다. 남들이 보았을 때는 상처투성이의 승리였지만 드낙과 한성질 쌍쥐는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오크와의 첫 전투였으며, 무엇보다 오크들은 너무나도 우월한 종족이었다.
그들에게서 승리했다는 것만으로도 축포를 터트릴 만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오크 십여 마리가 도주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괜찮다. 전선이 너무 넓어져서 그럴 수 있다. 충분히 예상했다.”
한성질 쌍쥐의 사죄에 드낙이 가볍게 넘어갔다. 이번 전술의 단점을 알고도 행한 것이 드낙이었다.
수백의 오크 전사에게 홀로 뛰어들어서 전투의 개막을 열 자신이 없어서였다. 그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이었고, 드낙의 활약 때문에 핏빛쥐 중에서는 누구도 그런 의심을 하지 않았다.
“충분히 휴식해라. 시체도 모조리 굴로 끌고 들어가고.”
“예.”
그렇게 피해 보고가 끝났다. 드낙은 모닥불을 하나 지펴놓고, 핏빛쥐들이 파놓은 깊은 굴로 향하는 입구 안에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습도가 높은 것을 시체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먹구름이 가득했고, 비가 밤부터 내리기 시작했다.
‘남은 핏빛쥐는 2만4천. 하지만 계속해서 부대는 증원될 것이다.’
드낙이 눈을 감았다. 도노가 드낙의 옆에 가만히 배를 깔았다.
검은 연기가 드낙을 덮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중립신의 밀랍과도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승리를 축하한다. 녹색 도끼를 섬기는 오크들을 많이도 죽였어.”
“과찬이십니다. 앞으로 더 험난한 길뿐입니다.”
드낙의 말에 중립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오른손을 뒤집어서 조금 들어 올려 가슴팍까지 올렸다. 다섯 개의 거무튀튀한 구슬이 중립신의 주위를 맴돌았다.
“뭡니까?”
“오크들의 업을 통해서 내가 선별한 힘들이다. 녹색 도끼가 시작을 이끌었고, 오크가 완성한 타투들이지. 내가 새로이 가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번처럼 오크를 많이 죽여서다. 또한, 〈조련술의 업〉을 피로 공유하는 핏빛쥐들의 죽음 또한 도움이 되었다.”
구슬은 하나씩 드낙에게 흡수됐다. 오크들처럼 타투가 크지 않았다. 〈쇄골 도마뱀 타투〉는 쇄골 전체를 뒤덮을 만큼 길쭉한 것이었지만, 이번에 중립신에서 받은 타투들은 하나같이 주먹보다 작았다.
중립신이 입을 달싹거리며 말했다. 그때마다 구슬이 하나씩 드낙의 몸으로 스며들어 갔다.
“〈사자의 발톱 타투〉.”
드낙이 쾌감에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단순히 신체능력이 상승할 뿐인 사자의 발톱 타투는 어떤 오크나 하나씩은 가지는 타투였다. 오른팔에 새겨졌다. 이어지는 다른 타투도 오른팔을 따라서 나선형으로 조금씩 위치를 바꾸어가며 손으로 향하였다.
“〈독수리 눈도장 타투〉.”
시력이 상승하고, 손톱과 발톱이 단단해지는 타투.
“〈매 날개 타투〉.”
근육이 유연해지고, 뼈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타투였다.
“〈멧돼지 송곳니 타투〉.”
체중이 증가하기 쉽고, 지방층이 조금 더 압축되어 더 적은 면적에 더 많은 지방을 저장할 수 있도록 해주는 타투였다. 단기전을 노리는 전사가 아니라면 무조건 이득이었다.
“마지막으로 〈백전갈(白全蠍)의 굽혀진 타투〉.”
뼈에 탄력성이 생기는 타투였다. 많은 충격량을 뼈가 감당하면서 동시에 부러지지 않을 수 있게 되었고, 그 탄력성은 가볍지 않아서 일상생활에도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하아아.‘
드낙이 그제야 숨을 내뱉었다. 중립신은 눈을 감고 있었지만, 드낙은 그가 자신을 보고 있는 기분에 휩싸였다. 몇 번의 호흡 이후에 드낙이 몸을 가다듬었다.
“검은 여과기에서 오크의 언어를 획득해라. 그들의 문자마저 획득할 것이다.”
드낙은 중립신이 시키는 대로 했다. 검은 여과기에서 걸려서 나온 흰 물을 한 번에 꼴깍 목으로 넘겼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중립신은 드낙의 말에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모든 것은 테라로 향하게 될 것이다. 할 수 있는 일을 해라. 나의 챔피언이여.”
중립신이 바닥으로 꺼지듯이 사라졌다.
드낙은 그 말이 더 많은 죽음을 원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미래를 안다면 사람들을 많이 구할 수 있을 텐데.’
더 많은 현대와 비슷하게 이 세상을 만들고 싶은 드낙이었다. 나중에 가면 말없이 달리는 자동차도 마법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것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더 많은 인구.
그 인구에서 나오는 인재창고.
복리처럼 늘어가는 발전까지.
게제라스의 육중론이 그러했고, 드낙 또한 그것을 총관에게 자주 들어서 알고 있었다. 서로 목적은 달랐지만, 결과와 과정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일치하는 면이 강했다.
*
북부의 고전, 오크들의 침공 규모.
그것은 남부 왕국, 백금 왕가 또한 뒤흔들었다.
“당장 지원군을 보내야 하오!”
“무슨 소리! 왕을 왕으로 보지 않는 자들이 북부요! 불파겐을 통해서 다시 한 번 깨닫지 않았소! 군사 대치에서도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었으니, 그 굴욕을 잊을 셈이오? 칼 맞고도 가만히 있다면 누구도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오!”
쿵!
원탁을 거세게 후려쳤다. 하지만 원군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관료도 지지 않았다.
“10만이요! 10만! 추정만 10만이고, 파죽지세로 북부는 후퇴를 거듭하고 있소! 이게 죄다 보급이 부족해서요! 싸우는 자들보다 굶어 죽는 이들이 더 많다고 하지 않은가!!!!”
“지들 업보인게지. 불파겐과 한탕을 해보려고 작정을 한 역적 놈들에게 뭐어? 지원? 보급? 원구우운? 몽펠리에에 얼마나 받아먹었나! 남부의 자존심도 없어진 거냐!”
“말이 지나치시오!”
웅성웅성!
대전이 난장판이 되었다.
개척한 서부 또한 오우거에 박살이 났고, 2왕자가 볼모로 잡혔다. 그 상황에서 북부에는 유례없는 오크의 가을, 아니. 오크의 대침공이 시작되었다.
연일 메시지 마법을 통해서 빠르게 전황이 들어오고 있었지만, 아직도 백금 왕가는 뚜렷한 의견을 내지 못했다.
이날의 판단이 미래의 모든 것을 판가름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소란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는 남부왕이 손을 긁었다.
‘늦어서 후회하더라도 확실하게 가늠해야 할 것이다.’
그게 플래티넘 가문이 왕족이 된 이유였다.
“불파겐은 어떻게 나오고 있나.”
“불파겐 영지의 기병은 미동도 없고, 불파겐 자작만이 토치라이트 가문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거짓이옵니다. 토치라이트 가문의 메시지 마법에는 불파겐 자작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성의 함락에 있어서도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고, 오히려 그에 대해서 물으면 분노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불파겐 자작의 소재파악이 되지 않는 것이 플래티넘 왕가가 움직이지 않는 큰 이유였다.
‘북부가 무너지면 모든게 끝일텐데. 어물쩍 된다? 생각보다 북부의 사정이 좋을 수 있지.’
남부왕이 손을 주억거렸다.
“길게이 왕자 또한 자신의 기사단을 출병하지 않았습니다. 북부와의 관계를 생각했을 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대신들이 너도나도 불파겐 영지에 대한 음모론을 이야기했다. 남부왕의 표정은 절로 고민스러워졌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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