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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472화 (471/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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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받아들일 수 없어. 자네도 알다시피, 전황은 크게 안 좋네.”

드낙의 강한 거부에 맹금 기사가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

“그럼 토치라이트를 버리시면서 왜 이곳에 오신 겁니까?”

“나 나름대로 토치라이트 가문을 돕기 위해서네. 불파겐 영지는 토치라이트 가문과 인접해있지 않은가.”

그 위가 바로 백설산맥의 동쪽이었다. 자연히 불파겐 입장에서는 토치라이트에 힘을 실어주는 게 옳았다. 몽펠리에나 파이룬이나 백설산맥과는 거리가 제법 되었다. 그의 판단은 그럴듯했다.

“군대도 오십니까?”

그 말에는 고개를 저었다.

“모아봤자 기병뿐이고, 숫자도 적지. 영지 발전에만 신경을 써서 말이야.”

가레아스가 실망한 눈치를 했다. 정규군은 숫자가 적어도 능히 전력이 되었음에도 드낙이 한 걸음을 물러섰기 때문이다. 그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발언이었다.

“어떻게 토치라이트를 도와줄 생각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자네가 횃불 성채로 입성할 수 있을 수 있으니, 당연히 말해줘야지.”

드낙이 웃었다.

“난 오크들의 보급을 노릴 생각을 하고 있고, 이를 위해서 횃불 성채의 반대편에 있는 오크들을 적당히 잡으면서 가고 있지.”

보급을 노린다는 말에 가레아스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불파겐 다운 판단은 아닌데.’

맹장(猛將)이 생각할 법한 전술이 아니었다. 지장이 생각할만한 전술이었고, 드낙은 그런 인간이 아니었다. 오크 10마리를 홀로 단시간만에 때려잡는 기사가 후방을 노리고 싶어한다? 신뢰하기 어려웠다.

‘토치라이트의 일을 방관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최소한으로 하겠다는 뜻이다.’

그간 보여준 드낙의 행동들. 그것은 결코 아군이라고 할 수 없었다. 시작은 토치라이트가문이 했다고 말하는 이들은 외교를 모르는 병신들이었다. 외교에는 감정이 없다. 외교에 감정을 불어넣는 이들은 결국 당할 수밖에 없었다.

‘보급에 피해를 주면 오크들은 불파겐 영지까지 가지 못한다.’

드낙은 정면 싸움에 끼어들지 않았기에 〈횃불 성채〉의 승패가 모든 것을 결정할 것이다. 이겨도 토치라이트 가문은 큰 피해를 홀로 감당해야 했다. 반대로 진다면 그대로 멸문 혹은 불파겐 가문의 방계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했다.

몇몇 비전들까지 내줘야 할지도 몰랐다. 대장장이, 연금술사, 마법사로 이루어진 3대 전문직 또한 불파겐에게 흡수될 터였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해두고 행동하고 있다.’

불파겐 영지의 안전.

고급인력의 흡수.

근접한 토치라이트 가문의 멸망을 오크들에게 맡겨 언제든지 나중에 토치라이트 영지를 수복하겠다고도 해석될 여지가 충분했다.

“······”

깊은 생각에 빠진 모습에 드낙이 의문을 품었다.

‘뭔 생각을 저렇게 하지? 내가 도와준다는데.’

토치라이트 영지의 서쪽을 해방해 깊은 산골 마을까지 오크들이 못 가게 사전에 차단함으로써 〈검은 산골 마을〉의 사람들을 지켜낸다.

동시에 보급에 타격을 줘서 오크들이 토치라이트 가문에서 물러나도록 한다.

이게 바로 드낙의 생각이었다.

서로 같은 곳에 있어도 사람의 의도에 따라서 다르게 생각하기 마련이었다.

“최대한 활약을 해주십시오.”

맹금 기사가 고개마저 숙였다. 드낙은 그를 독려하고, 빠져나왔다.

“응?”

밖으로 나온 드낙의 눈에 오크들을 도축하여 얻은 부산물이 눈에 들어왔다. 다가가자 지키던 병사가 일어나서 경례했다.

“오크 약탈자를 잡았나?”

“예.”

이에 드낙이 의문을 품었다. 떠돌이 오크가 아닌, 부락원으로 살며 타투를 얻은 오크 전사는 상당한 강함을 지녔기 때문이다. 솔직히, 기사도 오크를 잡기가 쉬워 보이지는 않았다.

그만큼 인간과 오크 사이에는 큰 벽이 존재했다.

“어떻게 잡았는지 말해줄 수 있나? 기사라고는 가레아스 경 하나 뿐이지않나.”

“예? 그것은···”

병사가 크게 당황했다. 자신의 영지에서 사용하는 전술을 다른 영지의 귀족에게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당장 문제 될 것이 없다고 해도 세상일은 모르기 때문이다.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했다.

그냥 넘어졌는데, 죽어버리는 게 인간이었다. 황당한 죽음은 언제나 있었고, 그 영역을 넓혀서 생각해도 전혀 나쁘지 않았다. 드낙 또한 그러했다.

“됐다. 가레아스 경에게 물어보지.”

드낙이 다시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깊게 고민하던 가레아스가 병사의 외침에 다시 고개를 들어 올렸다.

“무슨 용무라도 남으셨습니까?”

“오크 말이네. 제법 많이 죽였던데, 지금 있는 기사라고는 하나 뿐이지 않은가. 어떻게 잡았는지 조금 흥미가 생겨서 말이네.”

“아.”

그 말에 가레아스가 소리를 냈다. 드낙의 나이가 그제야 머리에 스쳤고, 그가 본디 〈자유기사〉 신분이었음을 기억해냈다.

거기에 멸문당하고 영지마저 황폐화가 이루어진 피의 역사가 있었다. 〈계승〉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의문을 풀어드리는 대신에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오시면서 따라온 짐마차에 식량이 가득하였습니다. 맞습니까?”

드낙이 수긍했다.

“나중에 대금을 치르겠습니다. 군량으로 쓸 수 있게 지원을 해주십시오.”

“2, 500포대 정도가 있는데, 전부를 말인가?”

“예.”

드낙이 별로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바짝 올라있던 돈독도 크게 벌어서 누워보니 허무했기 때문이다. 목적은 이루고 나서 그 기쁨이 사그라지는 법이었다.

“1, 500포대 정도는 줄 수 있네.”

드낙의 권유를 가레아스는 냉큼 받았다.

“포대당 동화 50닢으로 하지.”

전쟁 중이다. 시세는 언제나 판매자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동화 15닢에 구매한 포대가 순식간에 동화 50닢으로 돌변했다. 계약서를 쓰자마자 가레아스 경이 병사를 불렀고, 그 이후에 드낙은 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이실레아가 있었다면, 이렇게 안 들어도 될 텐데. 평소에 더 공부할걸.’

드낙은 아쉬움을 남겼다. 마법사들을 처형하고 나서 온갖 마법 아이템을 만드는 데 시간을 썼고, 그것에 후회가 남았다.

“자작님이 보시기에 오크 전사들의 수준은 기사와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이셨을 겁니다.”

“그렇지.”

“병사들이 고전을 하게 될 거라고 여기실 것이고, 저렇게 오크 부산물이 널린 것도 이상하게 생각하실 법합니다.”

드낙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고, 의문이 크게 남았다. 보통 오크 전사와 정규병의 교전비율이 1:5라는 것도 믿을 수가 없었다.

오크 전사는 신체적으로도 우월할 뿐만 아니라 〈타투〉라는 초월의 힘까지 가지고 있었다. 반면 병사는 그러지 못했다.

“오크는 개인주의가 강합니다. 자기 혼자 세상을 들어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남의 도움은 크게 바라지도 않습니다. 예외가 있다면, 전신갑주를 입은 기사와 싸울 때뿐입니다. 그때를 제외하면 자기 내키는 대로 싸우는 게 보통입니다.”

강자에게는 강하지만, 약자에게는 큰 협력을 하지 않는 게 오크였다. 치면 휘청거리는 병사를 상대로 협공을 한다? 그들은 사냥꾼이었지만, 토끼 하나 잡는데 오크 사냥꾼 두 마리가 함께 활을 쏘지는 않는다.

“일백야수나 그보다 더한 일각수를 잡을 때는 오크도 자존심을 접고 몰이 사냥부터, 온갖 짓거리까지 다 합니다.”

그들 또한 지능이 있었다. 오히려 협력을 인간보다 더 잘하는 게 오크 전사들이었다. 하지만 그 면모는 자기보다 강한 놈, 자기한테 제법 큰 상처를 줄 법하고, 위협적인 놈에게만 한정된다는 점이 뚜렷했다.

“아하.”

드낙이 그제야 아는 눈치를 했다. 가레아스 경은 입에 침을 묻히며 더욱 상세하게 말했다. 받은 것이 있었기에 할 일을 하려는 것이었고 드낙이 딴소리를 하지 못하게 정보를 여럿 주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정규병 다섯이 오크 하나를 죽이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병사가 엉망진창으로 밀리면서 거칠게 오크 전사가 비집고 들어오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드낙은 절로 악바리를 지르는 병사의 고함 소리를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 명이 엉망진창 물러나고, 오크 전사가 들어왔을 때, 4명이어서 단번에 득달같이 달려들 것이고, 그건 드낙이 〈헤드스 하이에나〉의 협공을 받은 것보다 더 쉬울 수 있었다.

“혹은 결집한 병사의 사타구니 밑에 한 명이 드러누워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오크 전사가 비집고 들어오면 하체를 벨 터였다. 아주 간악한 짓이고, 사용하기 힘든 전술로 보였다. 하지만 혹독한 훈련과 높은 수준의 정신 무장이 되어있는 북부 정규군이기에 가능했다.

사타구니를 뱀이 물고 있어도 오크를 죽일 수 있다면 대기할 놈들이 북부 정규병이었다.

“가레아스 기사님!”

“무슨 일이냐?”

“민병대로 보이는 자들이 식량을 들고 왔습니다. 밖에 나가보셔야 할 듯합니다.”

이에 가레아스가 서둘러 일어났다. 드낙 또한 자연스럽게 일어나서 손으로 출구를 권했고, 가레아스가 살짝 묵례하며 빠르게 천막을 나갔다.

말이 민병대지 밖에 온 사람들의 몰골을 본 드낙은 눈을 찌푸렸다. 대부분이 나무로 깎은 창을 쥐고 있었고, 마차도 한 대 뿐인 데다가 사람은 고작 8명에 불과했다.

때가 묻은 얼굴을 하고 있어서 더욱 처량해 보였다. 깃발이라곤 옷을 찢어서 최대한 넓게 만든 사각 깃발 하나가 전부였고, 어떤 장식이나 자수도 되지 않았다.

“어디에서 오는 민병대인가.”

“저희는 〈물고기 산골 마을〉에서 왔습니다.”

이에 병사 중 하나가 혼잣말을 했다.

“그 깊은 곳에서?”

드낙이 이 말을 듣고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 깊은 산중에 있는 마을인데 오크한테 약탈이라도 당했나?”

“아닙니다. 워낙 소문이 무성해서 조금이라도 돕기 위해서 왔습니다. 지미! 짐을 병사들에게 내어줘!”

“예!”

마을 장정으로 표현하고 싶었지만 상거지 새끼들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들이 내린 가죽 포대 또한 낡거나 바느질할 정도로 오래 쓴 것들이었다. 드낙은 그중에 한 포대를 풀어서 안을 확인해보았다.

‘감자네.’

흙도 잔뜩 묻어있었고, 크기도 중구난방이었다. 하지만 병사 중에서도 누구 하나도 실망하지 않고, 이들을 도와주고 있었다.

“오크의 침공이 워낙 거세니, 서둘러 마을로 돌아가라.”

이 중에 4명이나 전투에 임하고 싶다고 했지만 맹금 기사는 그들을 돌려보냈다. 서둘러 숨으라는 말을 세 번이나 당부하였다.

“형편없다고 여겨질지 모르겠지만, 저렇게 감자라도 들고 오는 이들이 많습니다.”

“···병사는 얼마나 모았습니까?”

“이제 겨우 100명입니다. 보름을 이곳에서 더 버텨보고, 더 모이지 않으면 그대로 갈 생각입니다.”

드낙은 가슴이 간질간질했다. 하지만 그를 돕는다는 말은 꾹 참았다. 자신 또한 목적이 이곳에 있어서 왔기 때문이다.

〈언덕 지하성〉에서 도망쳐온 맹금 기사와의 만남을 뒤로하고 드낙은 계속해서 북쪽으로 올라갔다.

오크들을 계속해서 상대했지만, 30마리를 죽이고 난 뒤로는 오크 약탈자들은 드낙을 없는 놈처럼 취급했다.

‘새끼들. 영악하네.’

괴물이나 다름없는 드낙과 싸우지 않고, 할 일을 했다. 전신갑주를 입은 드낙은 생각보다 오크들을 멀리 추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몇 번 야간 기습전을 펼쳐서 전공을 세웠지만, 그리 대단하지 못했다.

다그닥.

불에 전소한 마을에 도착하기도 했다.

‘오크의 짓은 아니다.’

전소한 식량 창고를 드낙이 수색하면서 내린 결론이었다.

청야전술(淸野戰術).

적들을 지키게 하기 위한 전법이 사용된 흔적이었다. 지키지 못할 바에는 불태우는 것이 나았다. 바짝 타버린 밀알을 만지작거린 드낙이 몸을 일으켜서 불탄 농가를 빠져나갔다.

그의 눈에 희미하게 보이는 거대한 산맥이 보였다.

‘이래서 문제야.’

드낙이 그 거대한 산세를 보며 짜증을 냈다.

산맥의 크기는 상상을 할 수 없을 만큼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오크가 북부에서 도망쳤기 때문에 오크가 지닌 〈백설산맥〉을 지도에 작게 그린 것이다.

‘곰처럼 웅크리며 평야를 먹으려고 얼마나 오랫동안 숨죽여 지내왔을까.’

드낙이 몸서리를 쳤다.

이 세상에는 정말이지 너무 똑똑한 자들이 많았다. 종족 불문하고 하나같이 그러했다. 오면서 모든 식량을 곳곳에 은닉한 드낙이 백설산맥의 초입으로 향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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