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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471화 (470/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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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낙은 민병대로부터 큰 환대를 받았고, 이 주변에 대해서 듣게 되었다.

“〈맹금 기사〉?”

처음 듣는 명성 있는 기사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가레아스 토치라이트〉 경입니다. 〈언덕 지하성〉의 함락 이후에 이 일대에서 활동하며 패잔병들을 모으며 다시 힘을 기르고 있습니다.”

“자네도 그러한가?”

드낙의 말에 자유기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한 번 들어갔지만, 큰 대우를 받지 못해서 나와서 민병대를 이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가장 낮은 간부로서 사용된 듯했다. 혹은 정규병을 통솔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드낙은 지도를 확인하여 다시 한 번 이곳의 위치를 자유기사를 통해 재조정했다. 척도, 나침판이 없었기에 이게 최선이었다.

지도가 있다고 해도 현지인이 없으면 크게 어긋나기 일쑤였다.

‘토치라이트 영지의 중앙 근처로군.’

드낙이 거침없이 지도에 표기했다. 한 번 쓰고 말 것인지, 거침없이 잉크를 찍는 모습에 자유기사의 눈썹이 움찔했다. 항상 돈이 없어서 쩔쩔매던 그였다. 드낙이 양피지, 그것도 지도를 훼손하는 것에 막힘이 없다는 것에 열등감을 느꼈다.

“고맙다. 혹 이들의 가족과 함께 내 영지로 이주할 생각은 없는가? 그곳은 기회의 땅이지. 자네도 출세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게 저, 정말이십니까?”

이름도 모르는 자유기사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드낙은 그 모습에 속으로 히죽 웃었다. 거침없이 은화 100닢이 든 가죽 주머니를 건네주었다.

“밖에 있는 식량이 잔뜩 든 마차를 3대 가져가게. 부족함이 없을 거야.”

“알겠습니다. 반드시 사람들을 이끌고 불파겐 영지로 가겠습니다.”

자유기사로서는 이곳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다. 버팔로나 거대 늑대 혹은 약탈한 말을 타고 다니는 오크를 보병만으로 잡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전공을 세우기도 힘들었다.

여기서 작은 것을 탐하고 물러가는 것이 좋았다. 그는 아직도 젊었고, 기회는 다시 또 찾아올 것이라 여겼다.

현명한 판단이었다.

“자작님. 사제들과 성기사들이 면담을 원합니다.”

“들어오라고 해라.”

“예!”

민병대에 속한 사제들은 드낙과 함께 가기를 원했다. 이곳에서 죽어갈 이들을 조금이라도 막고 싶어하는 것이 그들의 마음이었다.

‘이렇게 희생적인 종교인들이라니. 신성력 때문인가?’

신의 실체를 본다면 어떤 인간이라도 선해질 수 있을까? 드낙은 제법 그럴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문자답에 불과했지만, 자신이라도 그럴 수 있었다. 물론 중립신은 생각보다 착한 신은 아니었다.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을 드낙은 하게 되었다. 그것은 마치 독처럼 서서하게 퍼지고 있어서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중립신을 믿고 따라야 하는 게 드낙의 처지여서다.

이미 용에 올라타 있는데 그 용이 마냥 좋은 용이 아니다.

‘나에게 오크의 가을이 올 거라고 말도 안 해줬다.’

중립신에 대한 의심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인간을 위한 신같지 않았다.

‘그게 원하는 게 뭔지 난 도통 모르겠다.’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업(業)을 얻는데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중요한 단서였지만 그것을 풀어낼 머리가 없는 게 드낙의 아쉬운 점이었다. 다른 이에게 상의할 수도 없었다.

‘이 의심을 밖으로 꺼내는 건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어디서 어떻게 보고 있을지 몰랐다. 실체를 지니지 않고, 꿈에서 만나기 때문에 드낙은 때때로 자신이 이미 세뇌를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흉흉한 망상에 빠지기도 했다.

“자작님? 불파겐 자작님?”

드낙이 정신을 차렸다. 눈앞에는 오직 인간을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북부의 사제와 성기사들이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드낙이 이 혈로를 뚫어주기만을 원하고 있었다.

“민병대가 아무리 싸운다고 해도 오크에게 많은 이들이 죽을 뿐이다. 그들이 피난하는 것을 도와주었으면 한다.”

남부의 사제들이라면 그것을 들었을지도 몰랐다. 전투로 죽는 이들보다 굶주려서 죽는 이들이 많았기에 후일을 도모하는 선택을 많이 하는 것이 남부의 사제들이었다. 대표적으로 〈산딸기 사제〉가 있었다.

“오크들이 문제인데, 뒤로 도망간다 한들 무엇이 바뀌겠습니까.”

북부의 사제들과 성기사들은 매우 호전적인 자들이었다. 일종의 〈호국불교〉 같은 특징이었다. 워낙 두들겨 맞다 보니 종교적으로도 호전적인 성향이 두드러졌다.

아무리 성격이 좋아도 돈에 물리고, 사람에 물리고, 사회계급에서 물려 살게되면 괴팍하고, 모든 것을 적으로 생각하게 되기 마련이었다.

북부의 사제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신성력이 있어도 오크를 만나면 사람들은 죽는다. 그렇다면 그 오크를 자신들의 손으로 토벌해야지 사람을 살릴 수 있다.

지극히 간단한 이치였다.

“그렇다면, 〈맹금 기사〉에게 합류하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는 민병대를 받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드낙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오합지졸에, 통솔자가 죽으면 와해가 되기 쉽다고 하지만 북부인, 메디오인들은 하나같이 억센 자들이었다. 일단 한 번은 싸워보고 도망치기 때문에 전력으로 가치가 있었다.

“어째서지?”

“식량 때문입니다···”

보급.

모든 전쟁을 판가름하는 보이지 않는 가장 강력한 카드.

나폴레옹조차도 육군의 전진은 보급이 결정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아무리 강력한 군대가 있어도, 보급이 무너지면 싸우지 않고도 무너졌다.

“그런가. 그렇다면 내가 더 해줄 말은 없다.”

토치라이트 서쪽, 중부의 위쪽 일대에서 활동하는 맹금 기사가 그렇게 보급을 아낀다면 그럴 이유가 있다. 다분히 군사적인 이유일 터였고, 드낙은 그것을 신뢰했다. 북부 기사 중에 ~기사라고 불리는 명성 있는 것들은 하나같이 역량이 평균 이상이었다.

“자작님께서는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네. 그리고 혼자 할 생각이지. 피난민들을 잘 이끌어주게. 유례없는 오크의 가을 아닌가. 이제 그것도 우스운 말이지. 이건 침공이야. 잘못하다간 북부를 잃을 수도 있어.”

드낙의 말에 사제가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가을에 약탈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이 북부를 자신들의 발아래로 하기 위한 거대한 침략이었다. 그 증거가 바로 약탈보다는 성의 함락이었다.

보통은 한 영지에 3천~1만 마리에 불과한 오크들이 약탈하러 나오는데, 이번에는 격이 달랐다.

〈오크 대침공〉이라고 고쳐 불러야 마땅했다.

“···저희도 피난민들을 이끌며 피난에 힘쓰겠습니다.”

결국, 그들 또한 드낙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드낙은 사제와 성기사들에게 5대의 짐마차를 넘겨주었다. 그들은 크게 감동하였는데, 지금 식량은 금값이나 다름없었기에 드낙의 선행에 큰 충격을 받았을 정도였다.

‘진짜 사람을 위해서 이곳에 왔구나.’

‘변변찮은 병력도 없고, 자기 영지를 돌보기 바쁠 텐데··· 혼자서···’

식량은 거의 반 강탈이나 다름없이 상인에게서 뺏은 것은 꿈에도 모르는 사제들이었다.

밤을 보내고 드낙은 민병대와 헤어졌다.

“카이야! 기사와 병사를 찾아라.”

“까악!”

카이야가 단번에 날아올랐다. 드낙의 위를 빙글 빙글 돌다가 이내 방향을 잡은 듯, 서쪽으로 움직였다. 드낙은 냉큼 따라갔고, 도노는 드낙 보다 조금 앞서서 걸었다.

늑대 우두머리는 항상 후위에 서기 때문에 도노가 드낙보다 앞장을 선 것이다. 자신이 드낙의 아래임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병력이 제법 되는군.’

그들은 작은 숲에 숨어있었다. 숲 밖에 나와서 경계를 서는 병사를 카이야가 본 것이다. 이들은 상체만은 판금 갑옷을 입고 있었고, 하체에는 체인메일에 천을 두르고 있었다.

‘하체 움직임을 편하게 했네.’

오크를 상대로 할 것이기에 두 발의 폭을 제법 크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 번 싸워봤기에 드낙은 절로 병사들의 복장에 이해할 수 있었다. 버티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두 다리를 넓혀서 아주 개발악을 해야 했을 터였다.

다그닥.

드낙의 모습은 이미 병사들에게 들켰다. 경계에 아주 철저해서 벌써 병사 중 하나가 숲 안으로 들어간 상태였다.

“불파겐 가문의 기사이십니까?”

“드낙 불파겐 자작이다. 여기에 맹금 기사가 있다고 해서 왔다.”

“바로 들어가십시오. 숲에 길이 있습니다.”

병사는 드낙을 안내하지 못했다. 지금은 전시였고, 경계를 서는 병사가 하나인 것도 큰 문제였기에 더더욱 자리를 비우는 짓은 하지 못했다.

군사학을 잘 모르는 귀족이었다면 안내자가 없어서 불쾌감과 불만을 표현했겠지만, 드낙은 아니었다. 그대로 말을 몰았다.

‘벌목한 흔적.’

마차 한 대는 너끈히 들어가는 길이었다. 길이 조금 안 좋았지만, 숲에 이 정도 길이면 만족해야 했다. 더군다나 여기는 야지나 다름없었기에 오히려 길을 놓은 것에 드낙이 흥미를 느꼈다.

‘뭔가를 꾸미고 있어.’

“불파겐 자작을 뵙습니다! 갑자기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대단히 당황스럽습니다.”

〈맹금 기사〉 〈가레아스 토치라이트〉는 허둥지둥 드낙을 맞이했다. 투구조차 잊은 채 드낙에게 달려왔을 정도였다. 부관이 투구를 건네주자 그제야 투구를 옆구리에 꼈다.

“나도 유명한 맹금 기사를 이렇게 보게 되어서 놀랍네.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해도 되겠지?”

“어서 들어오십시오.”

작위가 있는 귀족과 없는 귀족의 차이는 명백했다. 물론 평범한 귀족은 귀족끼리 구분 없이 대우해주었지만 드낙은 아니었다. 너무 저자세로 나왔다가 제국 전신갑주를 코앞에서 빼앗길 뻔했다.

‘있는 놈들이 더해.’

만만하면 깝치는 법이다. 강자에게는 찍소리도 못하는 건 어디에서나 똑같았다. 불파겐이 강수를 두지 못하고, 드낙이 계속 약하게 굴어서 외척들이 한 짓을 생각해보라. 이제는 어느 정도 강하게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드낙이었다.

‘평범하게 생긴 기사.’

안으로 들어간 드낙은 가레아스 경을 훑었다. 큰 특징이 없어서 의외였다. 담백하다고 할 수 있고, 매력이 없다고 여겨지기 쉬웠으며 인상도 약했다.

“여기서 패잔병들을 모은다고 들었는데.”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오다가 민병대를 도와줬네. 오크 약탈자들에게 덤비고 있더군.”

“그렇게 피난령을 내렸는데도···”

가레아스 경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속내는 다른지 내심 자부심을 지닌 듯했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자신의 민족이 외세의 침략에 거세게 저항하는 것은 무시무시할 열정을 토해낼 수 있게 만들었다.

큰 역경 속에서 사람들의 궐기는 병사들의 사기에도 좋았다. 훈련을 받지 못한 농부도 오크에게 덤빈다는 소리를 들으면 정규병들의 정신은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병사들과 자유기사를 모아서 어떻게 하려고 하는가?”

“자작님께서는 현재 어느 정도까지 알고 계십니까?”

드낙은 간략하게 자신이 아는 정보에 대해서 말했다. 가레아스 경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면서 생각에 잠겼다.

‘나에게 말을 해도 될까 싶겠지.’

드낙의 토치라이트에 대한 방침은 한 마디로 미치광이나 다름없었다. 선물을 받을 때도 있고, 거부할 때도 있고, 말 그대로 미치광이와 외교하는 기분에 빠지게 들었다. 토치라이트 가문을 쥐어박는 것과 동시에 이득도 취하는 드낙 나름의 깡패짓이었다.

“횃불 성채 공방전에 힘을 보탤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작님께서 저희를 도와주신다면, 토치라이트 영지를 오크에게서 지켜낼 수 있습니다.”

〈횃불 성채〉의 위치 때문이었다. 동북쪽에 있는 것이 횃불 성채였기에 백설산맥과도 가까웠다. 자연히 토치라이트 영지에서 최대 격전지인 셈이다. 그곳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보통 병력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결국 〈횃불 성채〉인가.’

드낙이 조금 실망했다. 뭔가 기발한 짓이라도 하는 줄 알았는데, 무너진 서쪽의 병력을 모아서 횃불 성채로 지원을 간다는 생각이라니.

“난 더 깊이 갈 생각이다. 오크들이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들쑤시고 다닐 생각이지.”

그 말에 가레아스가 크게 반대했다.

‘멍청한 짓이다.’

오크 약탈자는 기병이었고, 10마리씩만 몰려다니고 있었으며 그 무리의 개수만 해도 수백 개가 넘었다.

“엄청난 시간을 쓰실 겁니다. 저와 함께 횃불 성채로 갑시다. 그곳에만 오크 2만 이상이 있을 겁니다.”

개인이 오크 1천을 죽이기 위해서는 100그룹에 달하는 오크 약탈자 그룹을 죽여야 했으며, 그렇게 뿔뿔이 흩어진 오크 전사를 찾는 시간, 쫓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정신이 나간 소리나 다름없었다.

반면 드낙은 겁을 덜컥 먹었다.

‘2만 이상!’

성에서 포위당한다면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었다.

결코, 안 될 일이었다.

목숨은 한 개뿐이라는 걸 드낙은 아주 잘 알았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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