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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469화 (468/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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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문의 숫자는 제법 되었다. 드낙은 하나씩 확인했다.

검은 문의 연기가 드낙을 덮쳤다. 그 속에서 환상을 경험했는데, 저번과는 많이 달랐다.

자글자글한 오크 전사의 주름이 섬세하게 보였다.

‘베테랑. 숙련된 전사를 내가 죽였구나.’

외골격을 입은 것처럼 뼈가 외부로 드러난 큰 악어 같은 도마뱀과 오크 전사는 사투를 벌였다. 뼈를 부수고, 목뼈에 정확하게 투척 도끼가 박히기 전까지 누가 이길지 예상이 되지 못할 정도로 서로 마구 뒤엉켰다.

“아아아야아아알타아아아!!!!!”

오크 전사의 거친 함성이 뻗어 나갔다. 흐릿한 타투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쇄골 도마뱀 타투〉.

신체능력이 강해지는 것은 물론이며, 속살이 돌덩이처럼 단단해지며 신체 부위를 잃어도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손목을 잘라도 힘을 너무 잘 썼어. 이 타투 때문이구나.’

드낙은 오크 전사의 터프함을 도와준 타투의 효과를 보며 짜릿함을 느꼈다.

‘나와 너무 궁합이 좋은데.’

드낙의 입에 군침이 돌았다. 인간의 육신을 포기하지 못한 그에게 있어서 〈전신갑주〉는 필수사항이었고, 자연히 부위 파괴 또한 더욱 쉽게 일어날 수 있었다. 트롤의 재생력과 쇄골 도마뱀 타투는 제법 잘 어울렸다.

‘다른 것도 확인해보자.’

수많은 타투들이 많았다. 백설산맥에서만 살아가는 목이 날카로우며, 무기로 쓰는 기괴한 야수를 잡아서 얻는 〈목날 야수 타투〉, 흥분하면 피부 밖으로 힘줄이 튀어나오는 설인을 잡아서 얻는 〈선명한 힘줄 타투〉 등.

‘···중립신은 어디에 있지?’

드낙은 하나하나 모두 귀중한 것들이라 엘 마르토 카사다민을 기다렸다. 검은 문의 경우 하나를 선택하면 몽땅 사라지기 때문에 그를 통해서 모두 얻고 싶었다.

제법 시간을 기다리자 검은 꿈의 시야가 밝아지며 중립신이 바닥에서 서서히 튀어나왔다.

“챔피언, 나를 찾는 것 같던데.”

“오크들을 잡았는데, 전과 같은 검은 문이 나와서 말입니다. 혹시 전부 얻을 수는 없습니까?”

드낙의 말에 중립신이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타투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닌가?”

“녹색 도끼라 불리는 오크들의 신에게서 받는 힘이고, 오크는 시련을 통해서 그 힘을 얻는 거라고 들었습니다.”

그 말에 중립신이 대답했다.

“뭔가 서로 오해가 있었군.”

말로써 서로 소통하기 때문에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중립신은 최대한 자세하게 말을 풀어야 함을 깨달았다. 그는 척하면 척 알아듣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챔피언이 되었고, 중립신은 드낙에게 거의 올인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만큼 이렇게 한 인간, 객체에게 시간을 할애할 만큼이나 드낙에게 관심을 지니고 있는 게 중립신이었다.

그의 대계에서 가장 큰 주춧돌이 될 것이 드낙이었다. 〈테라〉는 그것을 가능케 할 수 있었다.

“녹색 도끼는 그저 타투의 씨앗만 내려준다. 그다음에 그것을 키우는 것은 오크 자신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오크의 타투를 얻는다고 해도 그 위력이 낮다.”

“또한 검은 문을 통해서 오크가 쌓아온 타투를 얻는 것에 녹색 도끼의 힘은 있지 않다. 그것은 매우 위험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신의 힘은 곧 신 그 자체이기도 하다. 양만 다르지.”

“신성력하고는 다릅니까?”

“녹색 도끼는 다른 신과 전혀 다른 힘을 사용하는 특수한 신이다. 그 여파는 매우 경계해야 하지.”

드낙이 눈을 좁혔다. 절로 그 위험을 깨달았다. 직접적으로 언급되니,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독이구나.’

그 독을 중화하여 드낙에게 투여하는 일은 중립신이 감당해야 했다.

“···그럼 오크 타투는 포기하는 게 좋지 않습니까?”

드낙이 중립신을 생각해서 말했다. 중립신은 아직 부활하지 않았기에 힘을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여겼고, 중립신은 이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했다.

“이제는 괜찮다. 인신(人神)으로서의 역량을 갖춘 상태지. 너를 통해서 나는 눈을 떴고, 신관과 사제들을 통해서 인간에게 다시 한 번 닿을 수 있었다.”

“그럼 부활한 것입니까?”

중립신은 고개를 저었다. 한 번 육신이 갈갈이 찢겼기에 그는 인신(人神)의 한계를 명백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신이라는 것도 결국에는 그릇이 정해져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테라〉를 만들려고 하고 있었다.

“나의 챔피언아, 인신이든 반신이든 무엇이든 결국 크게 보면 그것 또한 하나의 그릇일 뿐이다. 크기는 달라도 결국에는 그릇인 셈이지. 인간과 다를 바 없다. 아무튼, 오크 타투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오크들에 대해서는 많은 힘을 내어주지는 못한다. 기껏해야 〈검은 여과기〉에서 오크들의 특화된 능력을 너에게 줄 수 있다.”

중립신은 먼 곳을 보는 눈을 했다. 드낙은 거기에 따라가고 싶었기에 냉큼 대답했다. 아주 간사해 보였다.

“믿겠습니다.”

중립신이 사라지고, 드낙은 〈쇄골 도마뱀 타투〉를 손에 넣었다. 그리고 검은 여과기를 확인했다. 조금밖에 차있지 않았다.

단번에 실망감이 몰려왔다. 그것은 곧 후회로 번졌고, 절로 의문이 생겨났다. 갈대처럼 감정과 이성이 휘날렸다.

‘이래도 되는 걸까?’

오크들은 전혀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에게서는 얻을 것이 많아 보였는데, 너무 짜게 주는 것처럼 여겨졌다. 조금 더 고민한 드낙은 이내 검은 꿈에서 깨어났다.

‘고민해봤자 소용없어.’

무조건 이득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다그닥.

도노와 카이야에 이끌려서 드낙은 더욱더 북동쪽으로 향했다. 많은 피난민을 만났고, 그들에게 은화를 제법 주었다. 〈횃불 성채〉의 반대에 있는 피난민들이라 거의 다 남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대부분이 불파겐 영지로 갈 것이 분명할 정도였다.

“멈춰라!”

또한 전쟁 상인도 만날 수 있었다. 식량과 식수를 지닌 이들이었는데, 식량보다는 재물을 더 많이 가지고 있었으며 용병도 제법 되어 보였다. 드낙은 이들을 세워서 거침없이 책임자를 만났다.

“내 이름은 드낙 불파겐이다.”

“부, 불파겐 자작님을 뵙습니다!”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이곳에서 피난민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상인이 눈알을 굴렸다. 혹시나 다 빼앗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용병이 30명이나 있었음에도 불안으로 가득했다. 그만큼 〈드낙 불파겐〉의 명성은 하늘을 찔렀다.

특히나 성벽 밖으로 홀로 뛰어내려서 몬스터들을 썰어버렸다는 이야기는 유명했다.

“1포대(20kg)에 얼마나 받고 있나?”

“전쟁 통이라···동화 60닢은 받고 있습니다.”

엄청난 폭리였다. 3배 이상의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 드낙이 혀를 차자 상인이 침을 삼켰다. 부르는 값의 절반을 이야기했음에도 이 정도라니, 천한 신분의 잡것들을 아낀다는 소리가 거짓이 아닌 것 같았다.

드낙은 은화 주머니를 하나 상인에게 건네주었다. 100닢이 들어있었는데, 상인이 그것을 받으면서 절로 표정이 안 좋아졌다.

“시세대로 구매하고 싶은데, 괜찮겠나?”

“아무렴요. 한 포대에 15닢에 모시겠습니다.”

“짐마차도 몇 대줬으면 좋겠네. 말값도 제하고. 알아서 해주게.”

‘씨발.’

알아서 해달라는 소리에 상인의 속이 뒤집혔다. 권력자가 말하는 알아서 해주라는 소리는 정말이지 지독한 소리였다.

“주변 소식에 능한 자가 있는가? 있으면 데려오고.”

“바로 그렇게 하겠습니다.”

모를 리가 없었다. 전쟁상인이 가장 원하는 것이 바로 주변에 대한 정찰이었다. 척후에 능한 용병을 이끄는 용병단장이 드낙과 마주했다.

“〈쌀로스 용병단〉의 헤밀슨이라고 합니다. 자작님을 뵙게 되어서 대단히 영광입니다.”

“만나서 반갑다. 이 주변에 대해서 듣고 싶은데.”

“예.”

헤밀슨이 주섬주섬 양피지 지도를 여러 장 꺼냈다. 그리고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는데, 드낙이 제법 솔깃할 만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패잔병을 만났었습니다. 여기서 아주 북쪽에서 내려온 병사들이었습니다.”

“횃불 성채로 가지 않고 굳이 여기로?”

“오크 약탈자 때문입니다. 준비가 제대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 소수의 인원이라 크게 돌아서 간다고 했습니다.”

현명한 방법이었다.

“그들에게 식량과 말까지 내어주며 얻은 것들입니다. 토치라이트 가문에 쳐들어온 오크들의 숫자는 3만에 가깝고, 부락은 4개 이상이라고 합니다.”

“보통 오크의 가을에 3천에서 1만이 내려오니 거진 3배가 넘는 오크가 쳐들어왔지.”

“다른 영지에도 쳐들어왔기 때문에 더 힘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원이 못 오기 때문입니다.”

용병이 드낙의 말을 받았다. 병사들에게서 아주 자세하게 들은 듯, 제법 판단력이 좋아 보였다. 병사들에게서 들은 말을 그대로 읊는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그만큼 지금 상황에서 기사가 듣기 좋은 말을 했다.

“오크들의 방향은 알 수 있었나?”

“인간 병사들이 횃불 성채로 모여드니, 대부분 그곳으로 향할 거라 생각됩니다. 오크 약탈자들이야, 원래 오크의 가을 때처럼 소규모로 돌아다니니 신경을 쓸 정도는 아닙니다.”

드낙은 병사들의 의견을 크게 물었고, 용병단장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그대로 말해주었다.

오크들은 횃불 성채로 결집하는 인간 병사들과 기사들을 따라서 그곳으로 향하고 있고, 이곳에는 오크 약탈자들이 많았다.

‘오크 약탈자를 최대한 죽이고···횃불 성채로 가기보다는, 오크 보급대를 〈굳은살 리전〉과 함께 치는 게 낫겠다.’

민병대를 쓰고 싶지는 않았다. 불파겐 영지로 대피시키고 이주시키는 게 더 미래지향적이었다. 토치라이트 가문의 입장은 오크 하나와 민병대를 여럿 교환하는 게 좋았지만, 드낙은 아니었다.

“잘 알겠다.”

드낙은 식량을 실은 짐마차 35대를 이끌었다. 밧줄이 모조리 연결되어있었고, 최대한 순한 말들이 투입되었다. 밀 포대만 3000포대가 넘었다. 말과 마차값이 제법 크기 때문에 시세대로 받았음에도 3천 포대 밖에 가지지 못했다.

“살펴 가십시오!!!!”

상인은 죽을상을 짓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라도 매듭이 지어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 포대를 만나는 이들마다 건네주었다.

“불파겐! 불파겐! 불파겐!”

식량 포대를 받은 아이 몇을 수레에 담아서 가던 피난민 남자가 연신 불파겐을 외쳐대었다.

“저희도 싸우고 싶습니다.”

사제와 자유기사 그리고 민병대의 무리를 만나기도 했다.

“3만의 오크들이다. 남쪽으로 대피하라.”

드낙은 그것을 크게 거부하였다. 동시에 오크 약탈자 10마리와 홀로 싸우기도 했다. 놈들은 거대 늑대를 타고 다니고 있었고, 노획한 짐마차를 수백대 이끌고 있었다. 말만 해도 800필은 넘어 보였다.

‘제법 큰 피난 무리를 먹었다는 뜻이다.’

고작 10마리가 저렇게 많은 재물을 약탈하다니, 드낙은 인간의 형편없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몽골이 중국을 그렇게나 탐한 이유이기도 했다. 남부에 비해서 척박하게 여겨지는 북부였지만, 마법과 연금술 때문에 오크들의 생각을 뛰어넘는 재물을 약탈할 수 있었다.

평범한 오크의 가을이 아니었기에 인간들의 대처가 늦어진 것도 한 몫했다.

평소 휘몰아치는 태풍의 3배 내지는 5배다. 그간 준비했던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게 당연하다.

“대지 골램 소환. 한묶음 폭증.”

드낙은 골램을 하나 소환하고, 한묶음 폭증을 사용한 다음에 말에서 내려서 홀로 오크들에게 덤볐다. 워낙 많은 약탈물을 옮기고 있어서 오크 전사들은 드낙을 죽여야 했기에 약탈물에서 멀어져 드낙을 향해 움직였다.

“가자아아!!!”

“가자아아아아!!!”

그 때 오크 전사들의 옆쪽에 있는 작은 숲에서 사람들이 우루루 뛰쳐나왔다. 못해도 100명은 되어 보였고, 하나같이 물을 먹인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그중에 성기사와 사제도 5명은 보였고, 질 좋은 체인메일을 입은 자유기사도 3명은 보였다.

워낙 많은 약탈물을 얻은 오크 전사들의 전공 때문에 감히 덤비지 못했지만, 갑자기 나타난 기사가 혼자서 오크 전사 10마리를 향해서 덤비니, 따라서 덤빈 듯했다.

‘저런 씨.’

드낙이 투구 속에서 눈을 찌푸렸다. 본격적으로 〈굳은살 리전〉과 호흡을 맞추려고 했는데 뜬금없이 인간 게릴라 병력과 마주했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한성질 쌍쥐〉가 눈치 좋게 물러났다는 점이었다.

‘핏빛쥐가 눈치를 못 챈 것을 보면 마법사가 있어 보이는데.’

드낙의 생각은 곧 현실로 드러났다. 내달리는 사람들의 왼쪽 주먹에 동그랗고 푸르게 빛나는 원형 방패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주먹 쥔 손에 뭔가를 쥐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먼저 강철 전사를 노린다!”

오크들의 판단은 현명했다. 인간은 뭉치면 강하고, 흩어지면 약하다는 걸 잘 알았다. 바로 드낙을 향해 10마리가 통째로 덤벼왔다. 오크 전사와의 싸움에서 인간은 단기전을 원하기 때문에 더욱 단숨에 기사를 죽이기 위함이었다.

“불파겐의 기사와 함께 싸워야 한다! 최대한 빨리, 더 달려라!!”

말 하나 없는 인간 게릴라 병력이 이를 악물고 내달렸다.

“꺽.”

너무 마음이 급해서 발이 꼬여서 넘어지는 이들도 많았다.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이빨이 그대로 튀어나와 땅에 피가 튀었다. 그것만으로도 전투불능에 빠졌다. 일어나려면 한세월은 걸릴 것 같았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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