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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색전이 끝났다.
드낙은 본격적으로 이빨을 드러냈다.
세파리아스의 만용.
힘이 약할 때 마주했던 오크 전사의 강인함.
다양한 요인이 뭉쳐서 드낙이 탐색전을 펼치도록 만들었다.
〈솟구치며 올라가는 얼음의 화살〉이 오크 전사의 발밑을 후두두둑 지나갔다. 터프한 오크의 살가죽이 찢기고, 한기가 잔뜩 들어가서 발에 감각이 사라진 오크 전사는 그 둔한 느낌에도 드낙에게 달려들었다.
“크윽!”
드낙의 손아귀가 거칠게 오크 전사의 목을 움켜잡았다. 오크 전사의 팔이 드낙의 팔 중간을 짓눌러서 팔을 내리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기괴한 것은 드낙의 몸이 붕 떠 있다는 점이었다.
오크의 체격 때문에 자연스럽게 발이 들어 올려졌다. 그럼에도 오크 전사의 목을 움켜쥔 손은 떨어지지 않았는데, 그만큼 드낙의 악력이 괴물 같았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카으으···”
오크 전사가 허무하게 무릎을 꿇었다. 발이 땅에 닿자 드낙이 비로소 목뼈를 더욱 강하게 움켜쥐었다.
뿌지직.
물을 머금은 수수깡을 비트는 소리가 났다.
깡!
드낙의 등판이 크게 출렁거렸다. 뒤로 휘청이는 드낙을 오크 전사가 그대로 덮쳐서 엎드리게 하였다.
“말도 안 되는!”
그것도 잠시였다. 순식간에 드낙이 일어났다. 오크가 짓누르는 힘은 아무 소용이 없었는데, 그 때문에 오크 전사가 경악했다.
“공간 타격.”
〈공간 타격〉 마법이 이루어지며 오크의 오른팔에서 스파크가 거세게 튀면서 목에 걸려있던 작은 토템이 가루가 되었다.
‘공간 마법의 체계가 이상하네.’
드낙이 그 현상에 눈을 찌푸렸다. 게임으로 치면 판정이 다른 마법과 크게 달랐기 때문이다.
휘리릭, 탁!
드낙이 투척 도끼가 쏘아지는 소리를 들었다. 몇 번 들어보니, 주변이 시끄러워도 들을 수 있었다. 단번에 손으로 잡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손목이 크게 다치거나 잡아챘어도 넘어졌을 것이다.
그만큼 기술과 힘이 녹아있는 투척이었다.
“인간인가?”
오크가 중얼거렸다. 드낙은 그 말을 들을 수 없었는데, 고블린 언어와 약간 비슷한 체계를 지니고 있어도 전혀 다른 언어가 오크 어(語)였다.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드낙이 목이 분질러졌음에도 살아있는 오크의 멱을 따며 말했다. 이 오크란 것들은 말 그대로 이족보행의 괴물들이었다. 트롤보다는 못하지만 트롤에 준했고, 범보다는 못했지만 범에 준했다.
말 그대로 모든 면에서 최고점을 찍지 못했지만 순위권에 들어와 있었다.
육체의 내구력.
체격.
체중.
기술.
그리고 타투!
하나같이 최강의 종족이라고 부를만했다.
‘이런 놈들이 왜 인간보다 영토를 적게 먹고 있었던 거지? 이해할 수 없네.’
엘프? 드워프? 모종의 개입이 있어 보였다. 드낙은 그것이 매우 궁금했지만, 답을 알 수는 없었다.
남은 오크 전사 두 명은 감히 드낙에게 덤벼들지 못했다. 체격을 앞세우며 밀어내도, 괴이쩍게도 힘에서 밀렸기에 결국 죽을 수밖에 없었다.
기술? 흙먼지 속에서 투척 도끼를 한 손으로 잡는다. 말해봤자 입이 아팠다.
후우우웅!
〈대지 골램(Earth Golem)〉이 팔을 크게 휘두르며 허공을 휘적거렸다. 바람이 크게 불면서 흙먼지가 칼바람처럼 휘몰아쳤다.
“도망친다!”
오크 전사 하나가 대지 골램의 공격을 피하면서 소리쳤다. 도저히 이길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투의 힘을 써도 〈오크를 힘으로 앞서는 강철 전사〉를 이기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애초에 오크들이 강철을 두른 인간을 이기는 방법이 힘과 체격을 앞세우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기술은 서로 반반 먹는다고 할 수 있었다.
오크의 동체시력은 비전의 발동을 뒤늦게 보고도 대처할 수 있었다. 물론 드낙처럼 명검의 힘을 빌린 비전은 간파가 느렸고, 안다고 해도 너무 빨랐다. 초월적인 육체 혹은 타투가 있어야 했다.
예를 들면, 일곱 개의 흉악한 머리가 있는 〈히드라의 타투(Hydra`s Tattoo)〉가 그러했다.
‘굳이 쫓을 필요는 없어.’
드낙이 버팔로에 단번에 올라타며 도망치는 오크들을 보며 생각했다. 쫓아간다고 해도 잡지 못할 것이다.
쿠구구.
골램이 그대로 무너져내렸다. 드낙은 몇 번 공격 마법을 오크들에게 쏴봤지만, 소득 하나 건지지 못했다. 오크들의 투척 도끼만 소모하게 만든게 전부였고, 오크는 달리는 버팔로에서 순간적으로 발을 땅에 대는 묘기까지 보여주었다.
드낙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크 전사 3마리의 시체가 보였다. 모두 초반과는 다르게 순식간에 격살당했고, 땅에 형편없이 누워있었다.
‘처음엔 쫄았는데.’
드낙은 예전에 만난 오크를 떠올렸다. 그것보다 훨씬 큰 놈들이었다. 아마 그 오크는 떠돌이 오크거나, 어린 오크였을 터였다. 그래서 더욱 겁이 났다.
‘기술도 좋고. 싸울 줄도 안다.’
오크의 가장 무서운 점이었다.
싸움 기교에서 인간과 비슷해질 수 있었다. 말 그대로 기술과 비전에 있어서는 서로 반반 먹고 싸운다고 봐야 했다.
드낙과 세파리아스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것이었지만, 드낙은 무력이 낮았던 때가 있어서 되짚어서 복기하면 깨달을 수는 있었다.
세파리아스와 다른 큰 자산을 지니고 있었다.
‘평범한 기사라면 오크에게 비전이 성공해도 치명상은 주지 못하겠네. 혹은 체급에 밀려서 역으로 당할 수도.’
자연스럽게 중장기전에 돌입한다. 그렇게 되면 체력이 좋은 오크가 승리할 확률이 높다. 고로, 인간 기사는 단기전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예를들면 아크온 몽펠리에처럼 큰 양손 전투망치를 드는 게 베스트다.
내 자신이 상처를 입더라도 오크 전사를 10~30합 안에 반드시 쳐죽인다는 확신을 줄 중병기를 선호할 수밖에 없었다.
‘오크들이 초반에 적극적인 것도 이 때문이겠지.’
기세가 흉포하고, 협공에 있어서도 매우 적극적이었다. 마법을 조금만 더 늦게 썼다면 큰 낭패를 겪었을 터였다.
구두로 듣든, 문서로 듣든 기사와의 싸움 경험을 말한 오크 전사 대부분이 인간 기사는 초반에 승기를 잡을 것이라고 말할 터였다. 하지만 드낙은 오히려 크게 웅크렸었다. 오크 전사가 어떤 놈들인지 매우 혹독하게 탐색했다.
‘오크들의 약점은 힘이다.’
자신보다 작으면서 자신보다 힘이 강한 상대를 만나지 못했다. 그 덕에 드낙은 허무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오크 전사를 쉽게 죽일 수 있었다.
흙먼지 속에서 오크 전사 한 마리를 놓친 〈자유기사 막센 페리어스〉가 드낙을 찾아왔다.
“상황은 끝났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드낙은 작위를 받았고, 페리어스는 그러지 못했으므로 말하는 것에 매우 조심했다.
“두 마리는 도망쳤고, 세 마리는 죽였지.”
“죄송합니다. 한 마리라도 붙잡아두려고 했는데, 흙먼지 때문에···”
드낙이 손사래를 쳤다. 황소를 혼자서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그것도 고삐도 없이. 당연한 일이었다. 되려 조금이라도 붙잡아 둔 것이 대단했다.
“전신갑주도 없이 조금이라도 붙잡아주었으니, 그것은 공이라고 할 만하다.”
“감사합니다.”
드낙이 추켜세워주자 막센이 크게 감사를 표하며 고개를 제법 많이 숙여 보였다. 그 모습에 드낙이 빙그레 웃었다.
사람은 으레 존경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기 마련이었다.
오크 전사 3마리는 피난민들에게 도축됐다. 드낙이 일감을 맡긴 것이다.
“오크들의 가죽과 뼈만 추려내어 말려라. 따로 가져갈 것이니.”
“예.”
사람들은 열정적으로 오크 전사를 도축했다. 가죽은 곰가죽처럼 두꺼웠고, 뼈는 특히나 굵었다. 모두 큰돈이 되었는데, 가죽이 곰보다 질겨서 방어구로 만들기에 좋았다. 무엇보다도 〈오크 가죽〉은 자랑하기 좋았다.
〈오크 뼈〉는 무인(武人)은 물론이고 병든 이가 가장 원하는 것 중에 하나로 뽑히는 것이었다. 실제로 약재를 많이 먹고 사는 오크들의 뼈는 굉장히 좋았다.
“오크 고기는 어찌합니까?”
“도축의 대가이기도 하고, 힘든 피난민들에게 내가 베푸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막센은 마치 드낙의 가신처럼 굴었다. 미리 묻고, 널리 알렸다.
하루를 돌산에서 쉬면서 죽은 사람들을 매장했다. 드낙의 골램이 단번에 무덤을 만들 수 있어서 모두 하나씩 구덩이를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
“후릅.”
오크 고기와 골램을 통해서 땅을 깊게 파서 얻어낸 지하수를 통해 수프를 끓였다. 드낙은 식사를 마치고, 자유기사를 불렀다.
“내일 바로 이들을 이끌고 불파겐 영지로 가라. 그곳이 가장 안전할 것이다.”
“예.”
막센은 어떤 의문도 가지지 않았다. 그만큼 오늘은 그에게 있어서 큰 경험을 한 일이었다. 말로만 듣던 오크와 전투를 했고, 뒤를 점했음에도 놓치고 말았다.
‘난 한참 부족하구나.’
자신의 부족함을 크게 깨달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이 〈고위 기사〉가 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으며, 이 때문에 조용히 다음 대(代)를 준비할 생각을 가졌다.
찰랑.
“은화 100닢이 들어있다. 가는 길에 상인을 만나면 피난민들을 위해서 쓰고, 이건 내 인장이 찍힌 양피지다. 엘라한 토성이나 〈드높은 장원〉에서 도움이 될 거다.”
막센은 찢어진 양피지를 받았다. 단순하게 드낙의 인장만 찍혀져 있었고, 찍힌 지 제법 되어 보였다. 미리 준비한 것이 틀림없었다.
“자작님께서는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모닥불의 주홍빛이 들어간 막센의 눈은 매우 진지했다.
“따라올 생각인가?”
“아닙니다. 제가 이 피난민들을 이끌었습니다. 오늘 모두 죽거나 노예로 끌려갔을 겁니다. 이들을 마지막까지 좋은 땅에 이주시키고 싶습니다.”
드낙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의지가 확고해 보이니, 말해줘도 괜찮겠지.’
“오크들은 토치라이트 가문의 성을 최우선적으로 함락시키고, 파괴하고 있다. 자연히 주변 마을에는 소수의 오크들만이 약탈을 위해서 움직이고 있지. 난 최대한 오크들을 죽이고, 인간과 식량을 남쪽으로 보낼 것이다.”
드낙에게 구함 받은 인간들은 죄다 불파겐 영지로 갈 가능성이 농후했기에 드낙은 굳이 불파겐 영지로 보낸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물론 은화 100닢을 주고 직접적으로 불파겐 영지로 가라고 말을 하기도 했다. 인솔자 1명에게만.
아주 치밀한 화법이었고, 귀족의 화법이기도 했다.
“······”
막센은 입을 달싹거리다가 다시 다물었다. 말을 크게 아끼는 모습이었고, 불파겐 자작에게 섣불리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했다. 그에게 나쁜 인상을 심어주기가 무서웠다.
“쉬게.”
“예. 편히 쉬십시오.”
막센이 모닥불에서 일어났다.
드낙은 전신갑주를 입은 채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밤하늘 아래에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엘 마르토 카사다민〉이 부재중인지 검은 연기가 드낙을 크게 덮쳤다.
세파리아스 불파겐이 노기에 차서 드낙을 노려보며 책망했다.
“왜 그냥 보내줬어? 버팔로들에게 타기 전에 모두 죽일 수 있었다.”
“오크들은 크게 규합이 되어서 성만 노리고 있잖아. 조금이라도 함락 시기를 늦춰야지. 무엇보다도 난 토치라이트 가문을 돕기 위해서 이곳에 왔어. 나중에 오해의 소지를 줄이기 위함이야.”
오크들의 움직임에 자그마한 변화라도 줘야 했다. 하지만 세파리아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트롤의 재생력을 믿고, 성을 함락하는 오크와 수성전을 벌인다면, 더 크게 도약할 것을··· 정규병 하나라도 더 구해야 너에게 도움이 되는데, 저런 낮은 계급의 버러지 같은 인간은 나중에라도 언제든지···”
“그만해.”
드낙이 진절머리를 쳤다. 전문인력부터 구한다는 세파리아스의 말은 정론이었지만, 그건 사회의 낮은 계급에서 인생을 살았던 드낙에게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으며, 소위 대중이라 여겨지는 보편적 감성에도 맞지 않았다.
“감정을 앞세우면 결국 큰 것을 보지 못한다.”
그 말을 남기고 세파리아스가 검은 연기 속에 사라졌다. 검은 문이 여럿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드낙은 그 말을 혐오했다.
이런 저런 이유를 대었지만 드낙의 목적은 결국 〈검은 산골 마을〉을 비롯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었다.
막대한 화폐 속에서 드러누워보고 드낙은 이제야 사회에 큰 획을 그으려고 하고 있었다. 그건 귀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었다.
그 속에는 자잘한 가족력이 들어가 있었지만, 넓게 본다면 사람을 으뜸으로 생각하는 인본주의(人本主義)가 깃들어있었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사회인이 생각할 법한 치기어린 생각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그렇기에 매우 맑은 생각이기도 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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