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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두두두!
들소를 탄 오크들이 거침없이 피난민들을 향해 들이박았다. 발굽 소리 때문에 나무창이 버팔로의 머리를 치는 소리는 인간에게 들리지도 않았다.
“크우으!”
들소가 신경질을 내며 닥치는 대로 뛰어들어갔다. 두개골이 워낙 두꺼운 것이 버팔로였기에 나무창 따위로는 상처 하나 나는 게 끝이었다.
“으아아악!”
사람 하나가 버팔로에게 밀려서 그대로 뒤로 넘어지고 아랫배가 밟혔다. 그것만으로도 끔찍한 소리를 냈다. 중량만 해도 700~1500kg에 달하는 것이 오크들이 타고 다니는 버팔로였다.
거기에 면적이 비교적 작은 발굽에 밟히면 더욱 고통스러웠다. 똑같은 무게를 지니더라도 송곳처럼 찌르는 것과 방패처럼 찌르는 것은 다르기 마련이었다.
끔찍한 소리 속에서도 〈자유기사 막센〉은 거칠게 소리를 지르며 사정없이 피난민들을 인형처럼 세웠다.
‘읏!’
뭔가가 시야에 들어왔고, 막센은 반사적으로 방패를 들어 올렸다.
캉!
오크 전사의 투척 도끼였다. 사각에서 던진 것이 아니라서 천만다행인 셈이었다. 막센과 오크 전사의 눈이 마주쳤다. 절로 욕이 나왔다.
퍽!
버팔로의 뿔에 들이받아 진 사람이 순식간에 들어 올려졌다. 워낙 완력이 좋아서 인간은 수수깡처럼 휘둘러졌다. 오크는 사람이 들어 올리자마자 그대로 도끼로 머리통을 쪼개버렸다.
“불파겐이 온다! 시체를 이용해서 버텨라! 방패로 써라!!”
그런 외침이 있었지만 버팔로의 진입을 막는 인간 하나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받쳐주지 못하고, 무식하게 막기만 했기 때문에 제대로 버티지 못한 것이다.
순식간에 버팔로들이 피난민들을 돌파하고 지나갔다.
퍼억!
버팔로에 치인 남자가 형편없이 옆으로 튕기듯이 움직였고, 피난민의 어깨에 몸이 부딪치면서 넘어졌는데, 부딪친 남자가 들고 있던 나무창이 부딪치면서 옆으로 움직였고, 그대로 목이 찔렸다.
“케엑! 켁!”
꿀럭, 꿀럭!
“으그으으···”
짓밟힌 피난민이 태아처럼 웅크린 채 부들거렸다. 그들 옆으로 도끼에 찍힌 시체가 즐비했다.
“허억! 허억!”
거칠게 숨을 내뱉는 이가 눈에 피가 들어와서 시야가 붉게 변하자 눈을 비볐다. 하지만 손에도 피범벅이었다. 손발이 저리면서 뒷걸음질 쳤다.
사방이 시체들뿐이었다. 돌산에 숨어있을 아내와 아이들이 걱정되었다.
한 명이 몸을 돌려서 돌산으로 뛰기 시작했다. 불파겐이 왔다면, 돌산에서 버티면 되는 일이었다.
“멈춰! 자리를 지켜라!!!”
막센이 고함을 질렀지만 한 명이 도망치자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에게 우선시 되는 것은 가족이 사는 것과 자신이 사는 것이었다. 그렇게 된 이유는 불파겐이 왔기 때문에 희망이 생겨서였다.
헛된 희망은 용감하게 죽을 수 있게 해주었지만, 햇살과도 같이 실체를 지닌 희망은 오물 구덩이에서도 버둥거릴 힘을 주었다.
〈자유기사〉가 가지는 카리스마와 통솔력을 뛰어넘은 것이 〈불파겐〉의 등장이며 희망이었다.
비겁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렇게 사람들이 돌산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오크들은 닥치는 대로 올가미를 걸어 넘어뜨리고, 어깨나 옆구리 혹은 급소가 아닌 곳에 도끼질을 하면서 피난민을 공격했다.
“아아악!”
달리다가 나뒹굴고, 다른 사람과 엉켜서 손목이 그대로 역으로 꺾인 남자는 결코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무너져내렸다. 15분 버틸 수 있는 것을 5분도 못 버티게 되어버렸다. 막센은 그들을 지키기보다는 불파겐의 깃발이 있는 언덕으로 내달렸다.
‘불파겐을 도와야 한다.’
1:5와 2:5는 큰 차이가 있었다.
*
펄럭!
가을바람에 언덕 위에 있는 불파겐의 깃발이 펄럭거렸다.
‘뭐가 저렇게 커.’
드낙은 오크들의 덩치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신체비율이라고 해야 하나. 골격 자체가 인간이랑 너무 다르네.’
이미 세파리아스에게서 들었지만, 듣는 것과 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거인(巨人)이라고 칭할 만 했다. 오크들은 죄다 2m가 넘는 신장을 지니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어깨가 비대했다. 역삼각형 몸을 지닌 것은 물론이고, 옆으로 보더라도 몸의 두께가 인간보다 2~3배에 달했다.
‘트롤이 3m이상인데. 그냥 몬스터인데.’
그냥 몬스터라고 불러도 무방했다. 털가죽까지 입고 있었기에 더욱 덩치가 커 보였다.
두두두두!
다섯 마리의 오크 전사는 버팔로를 타면서 거침없이 드낙에게 덤벼들었다. 늑대들과 카이야를 통해서 이곳을 찾아낸 드낙은 도노를 전투에서 물려놓은 것이 좋은 판단이 되었음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뒤로 물려놓길 잘했다. 싸웠다면 뼈도 못 추렸겠지.’
아무리 〈주술 화염〉을 뿜어낸다고 해도 도노와 오크들은 체급 차이가 너무 심했다. 털가죽이 손에 잡히면 그것으로 죽어야 했다.
‘피난민을 찾은 것만으로 만족하는 수밖에.’
드낙이 숨을 골랐다. 언덕 위를 잡은 것은 버팔로들의 속력을 줄이기 위함이었다.
‘시작부터 전력을 다한다.’
대범한 척, 오만한척하던 드낙은 오크들이 언덕의 절반을 오르자마자 그대로 내달렸다.
“〈한묶음 폭증(Dozen Outburst)〉!”
마력이 전신을 휘감았다. 강력한 힘이 드낙의 신체를 강화했다.
쿠웅-!
드낙이 밟은 땅이 울리며 움푹 팼다. 뒤로 땅이 주르륵 대량으로 밀려났고, 그대로 도약했다.
“하아아압!”
드낙이 무식하게 오크 전사 한 마리에게 착지하면서 검을 내려쳤다. 오크는 비현실적으로 높이 뛰어오른 드낙을 보고는 왼쪽 뒷발꿈치를 살살 하지만 빠르게 비볐고, 버팔로가 순식간에 옆으로 움직였다.
쾅!
흙과 먼지가 하늘 높이 튀어 올라왔다.
챙! 카가각!
불똥이 흙먼지 속에서 튀어나왔다. 도끼날이 긁히는 소리가 강하게 나면서 오크 하나가 데굴데굴 구르면서 먼지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미 목이 베여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지만, 전혀 상관하지 않는 눈치였다.
“보통 기사가 아니다!”
그 짧은 시간에 드낙과 5합을 겨루고 목에서 피를 흘린 오크 전사가 고함을 크게 내질렀다. 한 타이밍 늦게 손아귀에서 핏방울이 후두둑하고 떨어졌다.
“끄어어엉!!!!”
뿌드득!
흙먼지가 사라지고, 목이 분질러진 버팔로가 구슬프게 울면서 바닥에 몸을 누웠다. 드낙은 허공에서 명검, 〈강철이 흐르는 강(Steel flowing river)〉을 휘둘렀다.
팡!
피와 이물질이 털어졌다. 분무기의 미립자는 먼지와 뒤섞이면서 드낙의 오른쪽을 맑게 만들었다. 흙먼지 속에서 그 부분만 원처럼 정화되는 모습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제대로 된 놈인데.”
“검도 좋아 보이고.”
오크 전사들은 버팔로에서 내렸다. 두 다리를 탄탄하게 땅에 놓았다. 목이 베인 오크는 혁대에 있는 가죽 주머니에서 젤리처럼 생긴 진녹색 덩어리를 손으로 덜어서 목에 소리가 날 정도로 찰지게 때리듯이 묻히고 손바닥으로 눌렀다.
높은 체온의 손에 젤리가 녹으면서 단번에 목의 출혈을 막았다. 워낙 목이 두꺼워서 베여도 경상에 불과했다.
‘미친 육체야.’
〈엘라스티쉬 제스트렁(Elastisch Zerstorung, 탄력적인 파괴)〉으로 목이 베였다. 물론 도중에 도끼가 검의 속도를 줄이기는 했다. 그래도 베였음에도 경상에 그쳤다는 것이 드낙은 믿기지 않았다.
‘세파리아스의 말과는 조금 다르네. 오크들도 발전을 했다는 것인가.’
드낙의 눈에 다친 오크의 쇄골에 있는 도마뱀의 타투가 진녹색으로 아주 옅게 발광하는 것처럼 보였다. 저 타투 때문에 오크는 구사일생을 한 것일 수도 있었다.
“합!”
드낙은 흙먼지가 가라앉기도 전에 다시 한 번 오크들에게 덤볐다. 오크 전사들 중에 드낙의 표적이 된 자는 뒤로 빠졌고, 다른 이들이 거리를 좁히는 동작을 취했다. 드낙이 순식간에 목표물을 바꾸었다.
“웃!”
오크 전사가 말도 안 되는 속력으로 순식간에 자신에게 덤벼오자 당황한 오크가 투척 도끼를 두 자루 던졌다.
카그극!
드낙은 막을 생각도 안 하고, 전신갑주로 흘려보냈다. 곡선을 그리는 방어구라서 알아서 흘려졌다.
쉬익!
드낙의 롱소드가 순식간에 하단을 베었다. 양측면으로 거리를 좁혔기 때문에 발이 가장 앞에 있었기에 하단을 노렸다. 정석 중에 정석이었다.
오크 전사는 능숙하게 발을 빼면서 도끼로 방어 태세를 취해갔다. 그 동작 속에서 드낙의 비전이 빛을 발했다.
〈로티에라덴 벨러(회전축, Rotierenden Welle)〉
하단을 노리던 검.
드낙의 손목이 순식간에 돌려졌고, 단번에 상단을 노렸다. 번개와도 같았고, 단번에 오크의 손목이 깔끔하게 날아갔다.
서걱!
평범한 검이었다면, 손목을 조금 베는 것에 그칠 정도로 위력이 약한 것이 〈비전, 로티에라덴 벨러〉였다. 하지만 강철이 흐르는 강은 말 그대로 물이 흐르듯이 아래로 향하던 힘이 꺾여져도 그 방향에 따라서 최대한 많은 힘을 유지했다.
“그아아아아!!!”
손목이 잘렸음에도 오크 전사는 뒤로 크게 물러나지 않았다. 되려 손목이 잘리자 왼손으로 허우적거리면서 드낙을 덮쳤다.
깡!
투구와 오크의 머리가 부딪쳤다. 드낙도 지지 않고, 들이박았기 때문이다.
“꺼억.”
오크가 숨 한 번 뱉어내더니 그대로 대(大)로 뻗었다.
드낙은 보통 인간이 아니었다. 본래라면 체격 차이가 난 상태에서는 드낙이 뒤로 넘어가야 정상이었지만, 그 반대현상이 일어났다.
‘어딜 깝쳐.’
이미 육체는 오크를 뛰어넘은 지 오래인 데다가 〈한묶음 강화〉가 육체를 보살피고 있었다. 평범한 박치기, 박투에서는 그 힘의 차이가 크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아야야알타아아아!”
오크 전사 하나를 무력화시켰지만, 동시에 그 시간을 이용해서 오크 전사 4마리가 한순간에 드낙을 노렸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완벽한 협공은 온전하게 이루어질 수 없었다.
뻐억!
흙먼지 속에서 나타난 〈자유기사 막센〉의 철퇴가 그대로 오크 전사 하나의 뒤통수를 후려쳤기 때문이다. 막센은 계속해서 오크의 머리만 노렸다. 그 사이에 드낙은 오크 전사 3마리의 합공을 받아내야 했다. 하나가 줄었기에 드낙은 당연히 그쪽으로 발을 옮겼다.
“쿠이팍!”
오크가 고함을 내지르며 우악스럽게 덤벼들어 왔다. 하지만 그런 기세와는 다르게 매우 영악했는데, 기세만 높지 다른 두 오크 전사와 호흡을 맞추고 있었다.
‘새끼!’
드낙이 그 모습에 절로 욕을 했다. 자신 또한 합공을 차근차근 받기 위해서 숨통이 트이는 곳으로 물러났는데, 오크 전사들 또한 그것을 잘 알고 더욱 조여왔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서로의 간합은 2.5~3걸음으로 붙여졌다.
드낙의 운이 나빴다. 상대 오크 전사들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드낙이 합공에 대한 어려움으로 뒤로 빠졌고, 그것으로 인해서 공격의 타이밍을 놓쳐서 서로 크게 가까워져 버렸다.
캉! 카가강!
드낙이 발악하면서 검을 놀리고, 동시에 입을 달싹거렸다.
“〈골램 소환〉, 〈무형의 충격파〉, 〈짓누르는 중력〉, 〈추적하는 불의 창〉!”
드낙이 서 있는 곳의 땅이 크게 올라오며 골램이 튀어나왔다. 동시에 무형의 충격파가 오크 전사 한 마리를 뒷걸음치게 하였고, 짓누르는 중력은 투척되는 도끼들의 명중률을 크게 낮추었다.
동시에 타오르는 불의 창이 오크 전사를 스치고 지나갔다. 회피 동작을 한 오크 전사 덕분에 드낙은 골램의 뒤로 그대로 넘어가며 공중제비를 돌며 발로 등을 굽히고 있는 오크 전사의 어깨를 걷어찼다.
“큭!”
도끼가 위로 베어졌다.
카드득!
전신갑주가 비명을 지르듯이 쇳소리를 냈다. 드낙의 팔이 오크의 팔을 휘감았다.
“흐아아아압!”
콰직!
단번에 관절이 역으로 꺾였다. 하지만 오크는 고함을 지르면서 드낙의 목을 움켜잡고 황소처럼 달려나갔다. 체중이 워낙 차이가 나서 드낙이 형편없이 뒤로 밀려나겠다.
퍽!
드낙의 왼손이 오크의 턱주가리를 때렸다. 또한 드낙은 검을 땅에 지팡이처럼 대어놓아서 완전히 넘어지는 걸 방지했다.
퍽!
내리 다섯 번을 때려도 오크는 주체를 못 했고, 흙으로 만들어진 골램의 뒷다리에 드낙이 쿵하고 등을 박았다.
‘큭!’
충격에 드낙이 눈을 찌푸렸다.
“웅카!”
오크가 드낙을 끌어안듯이 안으면서 오른쪽 겨드랑이에 팔을 넣어서 드낙의 팔을 들어 올렸다. 검이 지랄을 해봤자 치명상을 줄 수 없었다. 하지만 천천히 오크가 드낙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오크 전사가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서로 붙는다면 허리힘, 척추같이 근본적인 체형이 내는 작은 힘으로 모든 것이 판가름나기 때문이다.
투포환을 던질 때, 팔을 최대한 뻗는 것 또한 최대한의 힘을 내기 위해서였다. 그 반대의 상황에서는 그 어떤 힘도 내지 못하는 것이 정상이다.
“크흐! 그아아아아!!!”
오크 전사가 함성을 내지르며 버티려고 했다. 하지만 드낙은 거칠게 오크 전사를 밀어내고, 그대로 롱소드를 휘두를 수 있는 거리를 잡아내자마자 오크의 가슴을 베었다.
피가 쏟아져나와서 드낙의 전신을 물들였다.
‘생각보다 힘이 약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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