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464화 (463/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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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따, 좋다!’

드낙이 수증기 속에서 고개를 뒤로 빼 툭 튀어나온 사각형의 돌에 기대었다.

콸콸콸.

작은 폭포 소리가 그의 귀에 들어왔다.

‘이게 천국이지.’

적당히 뜨거운 목욕탕 물에서 오랫동안 있는 건 제법 오랜만이었다. 목욕탕 물이 계속 흐르는 이유는 다른 게 없었다. 위생을 생각해서였다.

‘비누가 없어.’

손을 뽀득뽀득 씻을 때는 그게 그렇게 중요하고 엄청난 가치를 지닌 것인지 알지를 못했다. 현대사회에서 버러지같이 살아도 그게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박호훈은 남들보다 상거지 새끼처럼 살았지만, 그래도 다른 이들은 누리지 못한 것을 누리고 있었다.

비누칠로 몸을 씻지 않았기에 때가 둥둥 뜨기 일쑤였다. 이 때문에 〈대중 목욕탕〉은 당초 예상과는 다르게 언덕을 통해서 계단식으로 탕을 잘게 잘게 구분하게 되도록 대대적인 재설계에 들어간 상태였다.

‘하지만 케이샤 덕분에 비누가 해결되었어.’

〈케이샤 킹슬레이〉는 대중 목욕탕의 그 소식을 듣고 제국에서 비누를 수입해오겠다며 드낙을 외조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드낙이 처음으로 총관의 뜻이 아니라 자기 뜻으로 시행하는 사업이었기 때문이었다.

‘제국의 모든 것에 대해서 미리 알아야 했는데···’

워낙 불파겐 영지가 척박하다보니 제국인들의 삶에 대해서 아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리고 알았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비누는 사치품이었기 때문이다.

〈남부 왕국〉의 경우에는 목욕문화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신성력이면 만사형통인데, 무슨 필요가 있냐는 식이었다.

‘한다고 하더라도 향이 나는 오일을 바르기 위해서 하는 식이지.’

일종의 향수처럼 사치품의 성격이 강한 것이 남부 왕국의 목욕이었다. 하지만 드낙의 대중 목욕탕도 모양에 제법 신경을 쓰고, 조각가를 고용하여 건설했기 때문에 겉으로 보면 굉장히 사치스러워 보였다.

금이나 은을 쓰지 않았음에도 다양하고 섬세한 조각으로 고급스럽게 보였다.

이 때문에 케이샤 또한 관심을 끌게 되었다. 남들이 부러워할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비누세〉라니. 제국도 이상해.’

비누를 만드는 비누장인과 비누를 사는 사람들에게 2중으로 세금이 부과되고 있었다. 정신이 나간 짓거리였는데, 그만큼 사치품으로써 비누를 여긴다는 것이 명확하게 보이는 행동이었다.

‘내가 모를 만도 하지.’

드낙이 비누에 대해서 듣지 못한 것이 당연했다. 이야기를 자주 할 정도로 자주 언급이 될 수가 없는 물품이었다.

특히나 북부 귀족들이나 상인들은 많은 돈을 국방비에 쓰고 있었기에 사치품보다는 마법 물품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중 목욕탕을 서둘러 짓기를 잘했어.’

문제가 생기니 알아서 해결방안이 튀어나왔고,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다. 무책임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드낙은 그냥 넘기지는 않았다. 지금이라도 케이샤를 통해서 제국에 대한 자잘한 정보까지 모조리 가져와 달라고 부탁한 상태였다.

‘지금 당면한 것이 커도, 나중을 위해서라도 제국에 대한 정보를 구하는 게 필요하다.’

대중 목욕탕 덕분에 드낙은 제국을 알기 위해서 힘을 투자했다. 이 시대는 알려면 돈이 필요하고, 인력이 필요했다. 그 돈을 아낀다면 불파겐 영지에 다양한 시설을 건설할 수 있겠지만, 오늘의 교훈을 드낙은 그냥 넘기지 않았다.

손해를 보더라도 제국의 생활상, 문화 등에 대해서 빠삭하게 훑어봐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촤악.

개인탕에서 나온 드낙이 꼭지를 잠갔다. 수도꼭지는 드낙의 생각이었다. 물론 그것을 만드는 대장장이는 머리가 터져나가야 했다.

〈돌리면 물길을 막는 길쭉한 철〉이라니?

영주나 귀족이 아니었다면 면상에 달아오른 숯을 던져버리거나 바로 귀싸대기를 후려쳐서 대장간에서 내쫓았을 터였다.

나선형이라거나, 대충 그림을 그려줘도 지랄이 개지랄이었다. 그 덕에 은화를 제법 만졌지만, 아직도 수도꼭지를 만든 대장장이는 술자리에서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를 자랑하며 역정을 내기 바빴다.

‘개인탕. 괜찮은 것 같다.’

계단식으로 개인탕이 있는 곳과 대중탕이 있는 곳을 나누는 게 최고였다. 값을 매겨서 운영할 생각이었는데, 은화나 동화를 회수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영지가 주도적으로 은을 쓰고 있는 게 많았다.

개인탕은 1은화. 대중탕은 10동화로 가격에서 크게 차이를 둘 생각이었다.

극명하게 차이가 나야 개인탕을 쓸 사람들이 많아지고, 대중탕에 최대한 많은 사람이 자주 이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은 상관없고.’

동부의 중앙, 그곳에서도 북쪽에 위치한 마탑 근처에 세워진 목욕탕은 많은 양의 지하수를 통해서 물이 부족할 수가 없었다. 생각보다 지하수원이 대단했다.

‘엘라한의 가문이 목욕탕을 관리하도록 해야겠어.’

물 정령의 가호를 받은 엘라한의 가문원들은 물을 상당히 대량으로 뿜어낼 수 있었다. 그것을 통해서 굵은 유리로 된 물탱크에 하루에 한 번 채우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엄청난 돈을 벌 것이 분명했다.

돈 버는 것에는 현대인을 따라올 자가 없었다.

어떻게 돈을 벌었다~ 어떤 돈벌이가 있다더라~ 이런 이야기를 술자리에서 한 번은 꼭 하기 마련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TV에서 줄창 월 5천만원 버는 사장님을 인터뷰하는 프로그램도 꼭 하나씩은 있었다.

‘하나의 행사로 자리 잡겠지.’

엘라한 가문은 기사로, 무인이 되고 싶어 했지만 사실 그것보다는 〈옹골찬 물의 정령〉이 지닌 가호가 더 가치 있었다.

‘사실상 무한동력으로 맑은 물을 생산하는 것이니.’

호수 마을에도 엘라한 가문이 관리하는 작은 목욕탕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수원(水源)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니 엘라한 가문 또한 자연스럽게 불파겐 영지에 중요한 한 분야를 휘어잡게 되어서 드낙의 명령을 무조건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아~ 기분 좋다!’

반쯤 건설이 된 대중 목욕탕을 나온 드낙이 기분 좋게 웃었다. 이렇게 목욕탕 하나만 있는데도 뭔가 문화를 즐긴 것 같았다. 그만큼 즐길거리가 적었던 것이 이 세상이었다.

‘과학을 증진해야 해. 연금술사 단지를 만들어서 대규모 프로젝트를 시행하기도 해야겠어.’

자연스럽게 과학에 눈길이 갔다. 드낙이 그렇게 장기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신성력〉 때문이었다. 중금속이나 오염된 물질을 만져서 연금술사가 단명하기에는 중립신의 〈초월의 힘〉이 있었다.

‘천재가 하나는 나오겠지. 그리고 나오면 그 천재는 죽고 싶어도 못 죽는다!’

드낙이 탐욕에 물든 눈을 했다. 지구에 돌아가서 문화를 즐길 수도 있겠지만, 아주 나중을 생각한다면, 평생 중립신의 챔피언으로 남는 것이 좋았다.

검은 꿈이나 중립신의 신성력이나 하나같이 포기할 수 없었다.

‘다 내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누리면서 동시에 온갖 문화를 탐닉하고 싶었다.

‘〈테라〉가 완성된다면, 지구로 향하는 차원문도 중립신이 열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

절로 웃음꽃이 피었다.

드낙은 태평하게 온갖 상상을 하며 〈미래의 행복〉에 대해서 꿈꾸었다. 그건 정말 재밌는 상상이었다.

새벽 훈련 이후 목욕을 하고 나서 오전 업무를 봤는데, 바로 메시지 마법에 대한 것이었다.

‘호수 마을에 〈마법 첨탑〉을 세우고, 불파겐 마탑에도 세우고···’

메시지 마법은 이곳의 인류를 연결하는 아주 중요한 마법이었다. 전기와는 다르게 닿는 속도가 느린 것이 특징이었지만, 지형이 상관없다는 것에 장점이 있었다. 심해든, 고산지든 어디든지 닿을 수 있었다.

드낙은 전봇대 같은 것들을 생각하며 몇 가지 메시지 마법을 실험했는데,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마력〉의 운동속도를 빠르게 하는 것에 있어서 사실 물체에 기대는 것은 어리석었기 때문이다.

‘한다면, 도로를 깔아야 한다.’

그것도 지하에 매몰시켜야 했다. 훼손되기 쉽기 때문이다. 또한 메시지 마법이 아니라, 마력의 속도를 빠르게 하는 〈가속 마법〉이어야 했다. 당연히 〈메시지 마법〉과 〈가속 마법〉이 서로 힘을 합치는 것에 효율성 문제까지 덮쳤고, 드낙은 손을 놓아버렸다.

머리가 아파졌기 때문이다. 대신 이 과제를 〈일법사 페리에 러셀〉에게 줘버렸다.

‘난 아이디어만 제공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오전 업무는 페리에 러셀을 방문하여서 아이디어를 툭툭 던지는 일이었다. 당연히 그녀에게 있어서 드낙은 뱃가죽을 드러내도 시원찮을 쌍놈이 되어있었다.

‘제발 좀 안 왔으면.’

훈수를 두는 벌레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훈수만큼 재미난 것도 없었기에 드낙은 싱글벙글했다.

그때, 호수 마을로 하나의 파발이 도착했다.

“어디에서 오는 누구인가!”

병사들이 말을 막았다. 전령은 곧바로 내렸는데, 매우 고분고분했다.

“토치라이트 가문에서 온 전령입니다. 토치라이트 영주님의 친필 서한을 반드시 불파겐 자작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는 돌돌 말아있는 양피지를 꺼내 보였다. 토치라이트 가문의 인장이 찍혀져서 봉해져 있었다.

“영주님은 불파겐 마탑의 건설현장에 계시는데.”

“어디입니까?”

전령이 당장 향하려고 하자 병사가 말의 고삐를 잡았다.

“잠시, 잠시! 일단은 게제라스 총관에게 말씀을 드려보겠다. 마법사가 살고 있어서, 메시지 마법이 통할지도 모른다.”

“그럼 그렇게 해주십시오.”

병사들의 거친 말투에도 전령은 매우 깍듯했다. 왜냐하면 드낙이 하도 토치라이트 가문에게 앙금이 남아있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어떨 때는 선물을 받고, 어떨 때는 선물을 안 받는 등 아주 괴팍하게 굴고 있었다.

이 때문에 토치라이트 가문은 전전긍긍 앓고 있었다. 하도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는 드낙의 태도에 정신을 못 차렸다.

“토치라이트 가문에서 왔다고? 매우 급한 일인가 보구나.”

“예. 게제라스 총관님.”

“바로 들어오라고 하여라.”

전령이 황급히 들어왔다. 그리고 〈오크의 가을〉이 왔으며 그 규모는 가히 붉은 요새 함락전을 방불케 한다고 말하였다.

‘맙소사.’

게제라스의 눈이 크게 떠졌다. 수 천 년 전, 백설산맥에 있었던 초유의 오크 침공이 바로 〈붉은 요새 함락전쟁〉이었다.

그때 〈레드 클럽(Red club)〉 가문이 멸문을 당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영주성을 버리기보다는 결사항전을 행한 까닭이다.

“그때의 규모라니, 정말인가? 말하는 것에 있어서 신중해야 한다!”

“정말입니다. 제 목을 걸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서쪽 남쪽 동쪽 할 것 없이 미친 듯이 오크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제가 여기에 25일에 걸쳐서 도착하였으니, 이미 한 달이 넘었습니다.”

게제라스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평범한 오크의 가을이라면 상관이 없었지만, 지금 북부는 보통보다 조금 전력이 깎인 상태였다.

‘북부가 무너지면 백금 왕가는 불파겐부터 죽이겠지.’

오우거가 잠잠했기에 자연스럽게 인간부터 죽이는 게 정석이었다. 인간의 가장 큰 적은 인간이라는 걸 잘 알았다. 반드시 막아야 하는 일이었다.

“서둘러 마법사를 불러서 메시지 마법을 가동해라! 전령은 토치라이트 영주의 친필 서한을 들고 불파겐 마탑으로 향하라! 병사를 붙여주겠다.”

다섯의 병사가 당장 급한 불을 끄듯이 전령에게 붙었다. 그들은 밤에 그대로 출발을 해버렸다. 말들 또한 번갈아가면서 타기 위해서 20필이 넘게 동원됐다.

3일이 지나서 메시지 마법이 드낙에게 닿았다.

“들리는가? 누구인가?”

“게제라스 총관입니다. 영주님이십니까?”

“그래. 급한 일이 생겼나?”

“예.”

게제라스가 들었던 것을 모두 이야기했다.

‘아!’

드낙의 손이 파들파들 떨렸다.

토치라이트 가문에는 그의 역린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검은 산골 마을〉.

그 조용한 마을이 가장 먼저 생각났다. 또한 차남에게도 넉넉하게 돈을 건네준 아버지와 형이 있는 곳이었다.

아예 연을 끊은 척 살아왔지만, 그런 가족이라도 암 말기나 죽음을 코앞에 두었을 때, 다시 재회하는 법이었다. 드낙은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상황이 돌아갈 수 없게 되었기에 안 가는 것뿐이었다.

“나 홀로 먼저 토치라이트 령으로 가겠다. 총관, 그 이후의 판단은 이실레아 경에게 맡겨라. 하지만 토치라이트 가문에 병사들이 더 올 필요는 없다는 것만 알아두어라.”

“예! 이실레아 경에게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드낙이 거칠게 마탑 밖으로 나섰다. 단번에 마탑에 묶여있는 말들을 있는 대로 다 밧줄로 연결하였다. 그 사이에 고용인들이 물과 식량을 말들에게 걸었다.

“이랴!”

드낙이 그대로 내달렸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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