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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463화 (462/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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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사(呪術師) 크야타드 울스(Khyatad uls, 하나되는 손가락)〉의 난입에 〈대전사(大戰士) 규르소모스(Guurshormos, 다리 힘줄)〉가 머리에 열이 나도록 두들겨맞고 반지하로 꾸며진 움막의 안에 들어가서 앉았다.

“또 무슨 잔소리를 하려고 이러나.”

규르소모스가 앉는 순간 엄청난 허벅지의 근육이 절로 도드라져 보였다. 이족보행 하는 짐승이라는 말이 괜한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대전사라고 하지만 주술사가 부르면 와야지.”

나긋나긋하게 말하는 모습에 규르소모스가 배를 잡고 웃자 머리통에 두툼한 나무 지팡이가 그대로 박혔다.

“크하하하.”

오크 중에서도 황소 같은 자가 규르소모스였다. 맞아도 웃음을 멈추는 남자답지 못한 행동 따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탕!

주먹으로 젖가슴을 치자 젖가슴이 흔들렸다. 이에 주술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빨리할 말을 하라는 몸짓언어였다.

“이번에는 오크 모두가 하는 일이니, 딴 생각하지 말고, 오크를 위해서 움직여라.”

“그렇게 점이 나왔나? 녹색 도끼의 이름을 걸고?”

오크들에게 있어서 녹색 도끼는 매우 중요한 신이었다. 그들에게 타투를 내려주고, 시련을 부여함과 동시에 때때로 힘들 때마다 꿈에서 찾아와 안정감을 주는 부모와도 같은 존재였다.

이것은 주술사 전사 관계없이 오크 종족 전체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녹색 도끼는 이름과는 다르게 매우 상냥한 신이며, 참된 어버이와도 같은 신이었다. 물론 오크 이외의 자들에게는 흉악한 도끼신에 불과했다.

“그런 것은 아닌데···”

“그럼 싫다.”

주술사가 나무 지팡이를 손에 쥐어도 규르소모스는 굽히지 않았다. 작은 일에는 싫다 싫다 해도 해주는 것이 규르소모스였지만 제법 중요한 것에는 고집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이번이 마지막 오크들의 가을인 것은 확실하다. 그러니···”

규르소모스가 껄껄 웃었다. 모닥불에 있는 재를 한 줌 쥐어서 손으로 비볐다.

“주술사가 말이 많다. 그러니까 그 말이 녹색 도끼가 말한 거냐고. 우리들의 아버지가 나보고 그렇게 하라면 내 이 허벅다리를 쥐새끼에게 주라고 해도 줄 수 있다.”

“그건 아니라니까! 그리고 그거랑은 상관이 없어!”

주술사가 짜증을 내며 소리쳤다. 규르소모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래도 싫어. 난 내 부락이 중요하지, 오크는 별로···”

“너도 오크잖아.”

“그렇지. 하지만 난 얼굴도 모르고, 같이 사냥도 안 한 놈을 위해서 내 친구들의 피를 흘리게 하기는 싫다.”

주술사가 코로 깊고 긴 숨을 내뱉었다. 괜히 손으로 모닥불의 재를 만지작거렸다.

‘예언을 해도 소용이 없으니.’

작은 일에 대해서 예언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예언의 결과가 모호한 것이 아니다. 확실하지만 작은 일은 쉽게 바뀌는 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곰가죽 속의 하얀뱀(Bosoo Mogoi)〉라고 불리지는 마라.”

“이미 불리는데 뭘. 내 면상 앞에서 그런 소리를 내뱉는 건 언제나 주술사뿐이지.”

규르소모스가 사람 머리만 한 주먹을 흔들었다.

두개골의 크기는 인간보다 조금 큰 대두에 불과했지만 몸체는 거인이라 불릴 정도로 2m가 넘었고, 두꺼웠다. 마치 외골격 슈트를 입은 체격이었다. 그 위압감 속에서도 주술사는 소신 있게 밀어붙였다.

“규르소모스!”

“응. 싫어.”

그가 주술사의 움막을 나왔다. 오크들이 만든 나무들과 수풀에는 마른 흙이 잔뜩 있었는데, 적의 화공에 당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 수풀과 나무의 그늘을 이용해서 규르소모스가 〈윙스톤 성(兩翼石城)〉을 바라보았다.

‘병사는 적고.’

사기가 하늘을 찌르는 병사들이 곳곳에 배치되어서 차례대로 민병대에게 성벽에서 싸우는 방식을 가르치고 있었다.

물러섬이 없는 병사는 다섯만 모여도 오크 전사를 하나 막을 수 있었다. 적어도 병사는 매우 주의해야 했다.

‘나약한 인간은 많다.’

장비를 걸쳐 입어도 기세가 적은 것이 절로 보였다. 저런 것들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게 정석이고, 정확한 측정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오크와는 다르지.’

오크는 개인주의가 상당하다. 스스로 강하니, 남에게 기댈 필요가 적고 혼자 힘으로도 자연을 이겨낼 수 있다. 그들이 부락에서 모여서 사는 이유는 〈녹색 도끼〉 때문이었다.

젊은 오크는 그런 규율을 잘 어기고 독립을 하지만, 힘든 순간을 겪고 나면 항상 부락으로 돌아왔다. 힘들 때마다 녹색 도끼가 꿈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것이 강인한 종족인 오크가 무리를 이끌고 사는 이유였다. 오크 부락이라는 울타리를 신이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홀로 오롯이 설 수 있는 오크는 상황과 환경에 따라서 변모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평화로울 때는 반목을 하고, 재해와 재앙이 닥쳐오면 생판남이라도 어깨동무를 하며 으쌰으샤한다.

우정을 확인한 사이라도 그 우정을 자신들의 선택이 아니라 외부요소 때문에 부러 먹기도 한다.

오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외팔이가 되어도, 다리 하나가 없어도 오크는 오크이기 때문에 우직하게 세상에 홀로 정면으로 맞설 수 있었다. 그 결과가 죽음이라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 오크였다. 그 심지는 절대 부러지지 않는 강철과도 같다.

그래서 저 나약한 기세를 품은 채 이리저리 성벽을 오가면서 허벅지에는 밧줄을 두른 채 실전적인 성벽전투술을 익히는 민병대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늙은 강철의 전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저 깃발만 들고 있어도 저렇게 노쇠한 강철의 전사가 있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정신력은 오크와 비슷하게 변해버린다.

〈오크의 가을〉을 통해서 인간에 대한 많은 것을 전해 듣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강철을 두른 늙은 인간이 있으면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것은 포기를 해야 한다는 격언이 내려올 정도였다. 반면 강철을 두른 인간이 없으면 건장한 인간 남자를 묶지도 않고 가축으로 삼을 수 있었다.

그게 바로 인간이었다.

“대전사. 보니까 어떤가. 늙은 강철의 전사가 있던데.”

“필요없어. 우리는 이길 수밖에 없다. 휴식이나 취해라.”

규르소모스는 황소같이 생겨도 머리는 매우 현명한 자였다.

그는 전쟁을 할 줄 알았다.

“팔콘 경!”

“영주님!”

17세의 어린 영주와 노쇠한 봉보리 팔콘이 서로 달려와서 끌어안았다. 팔콘은 상체를 조금 숙여야 했다.

“늦지 않아서 정말 다행스럽소.”

그렇게 말을 한 팬크리스 영주는 고개를 돌려서 외쳤다.

“서둘러 지친 병사들을 들여보내라! 장작을 아낌없이 써야 할 것이다!”

“예!”

많은 이들이 성안으로 들어갔다. 팬크리스 영주 또한 마찬가지였다. 영주의 행렬에 합류한 민병대의 숫자는 2천 명이 넘어갔다. 근 5천 명에 달하는 인간들이 〈윙스톤 성〉에 입성했다.

“방비는 잘 되고 있는가?”

“예!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뒤로는 계속해서 식량과 장작을 모으고 있고, 앞으로는 오크들을 주의하고 있습니다.”

“오크들의 움직임은 어떤가?”

이에 봉보리 팔콘 경은 인상을 조금 찡그렸다.

“조용합니다. 그래서 더 걱정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다른 영지에 대해서는 들은 게 있으십니까?”

“사방에서 난리요. 오크의 가을이 아니라 대침공이라고 해도 무방하오.”

오크들은 남동서 구분 없이 미친 듯이 쳐들어오고 있었다. 팬크리스 가문은 동쪽에 치우친 영지였다.

“그렇습니까···”

노기사의 눈에 절망이 살짝 깃들었다가 사라졌다.

영주가 오고 나서 〈속굽이 부락〉의 오크 전사들이 본격적으로 공세를 시작했다. 휴식과 준비를 모두 끝냈기 때문이다.

우엉! 부엉! 우엉!

부엉이 소리가 나면서 부엉이 한 마리가 하늘 높이 올라갔다.

쉬시식!

오크들의 화살이 성벽 위를 두드리고, 성벽을 지나서 땅에 꽂혔다.

퍽!

나무로 된 판에 화살이 반 이상 관통하자 병사가 냉큼 소리쳤다.

“오오오크들이다아아아!!!!!”

활을 쏘는 오크들을 향해서 병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더 많은 나무판을 가져오는 일이었다. 하나같이 진흙을 묻히고 왔다.

후루루!

화염이 이글거리면서 나무판에 들러붙었다. 진흙 덕분에 불은 전혀 번지지 못했다. 내부의 나무를 그을렸지만 산소가 없거나 적었기에 알아서 꺼진 것이다.

“오크 개새끼들아! 이거 진흙 묻힌 나무판이야!”

병사들이 괜히 객기를 부렸다. 워낙 민병대가 많았기 때문에 자신감을 주기 위함이었다. 밤이었기에 병사들은 불붙은 볏짚을 성벽 아래에 던졌다. 오크들이 올라오는지 안 올라오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하면서 몇몇 병사들은 화살을 맞기도 했다.

“윽!”

앞으로 쓰러지는 병사를 민병대가 여럿이서 붙들었다.

“이거 병사양반이 화살에 맞았어!”

어깨에 맞아도 고통에 순간적으로 균형이 비틀린 것이다. 잘못하면 그대로 떨어져서 죽었을 터였다. 병사는 웅크린 채로 기어서 성벽 아래로 내려가야 했다.

“사격!”

피피핑!

궁수들은 노기사들의 명령에 따라서 활을 쏠 기회를 잡았다. 노기사들은 전신갑주에 투구를 쓰고 있었고, 아래에서 위로 쏘는 화살을 맞아도 끄떡없었다.

“준비! 준비하라고!! 병사! 잘 안 들리나!”

“오크들이 너무 시끄럽습니다!”

야간이라서 기사들이 더 많이 성벽 위로 올라와야 했다.

잘못하면 지휘를 잘못 듣거나 봐서 오크들의 화살을 맞을 수 있었다. 장궁병은 매우 귀할 수밖에 없었기에 이렇게 하는 게 최선이었다.

비거리가 오크활 보다는 낮았지만 성벽 위에서 쏘는 것이라 오크들에게도 인간들의 화살이 닿았다.

“오오. 제법인데.”

높은 곳에서 쏴서 그런지 오크의 피부에 인간 따위가 쏜 화살이 박힌 것을 본 오크가 감탄했다. 어린 애새끼가 성인처럼 달리기를 성공한 것처럼 기특한 표정이었다.

단번에 화살을 뽑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촉을 확인했다.

“낄낄.”

순찰자들의 저급한 화살촉과는 다르게 깔끔하고 질 좋은 철로 만들어진 화살촉은 오크의 신체에 그 어떤 자취도 남기지 못했다.

“후퇴하라! 물러나!”

그렇게 동이 트기 전에 오크들은 물러났다. 물론 물러나지 않는 오크가 많아서 대전사인 규르소모스는 버팔로를 타고 다니면서 꿀밤을 먹였다.

“끄아악.”

맞는 오크마다 골통을 부여잡으며 데굴데굴 굴렀다. 솥뚜껑으로 머리통을 처맞는 기분이었다.

야간전에서의 사격전은 오크들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인간들 또한 피해를 줬지만 오크들의 체력이 워낙 좋고 터프했다. 다쳐도 약바르고 다시 쏠 정도였다. 반면 인간 병사는 갑옷이 아닌 곳에 맞거나 다치면 그대로 성벽 밑으로 내려가야 했다.

오크들이 쏜 화살은 일단 관통했다 하면 조금 위험할 정도로 깊게 박히기 때문이었다.

“오크들이 겁을 먹고 오지 않으니, 집 안에서 병사만 치료해야 한다니.”

거한(巨漢)이 다친 병사를 허리에 둘러매고 바닥에 눕히면서 안타까운 눈을 했다.

〈쌍주먹 롤락〉!

주먹 하나로 범의 골통을 부순 전투사제였다. 가히 육신이 기사와 다를 바 없다고 소문이 자자한 사제였다.

파아앗.

“고, 고맙습니다.”

치료 행위를 철야로 하고, 쪽잠을 잔 뒤에 롤락은 서둘러 팔콘 경을 찾았다.

“들어오십시오.”

“제가 방해를 한 것은 아니지요?”

“예. 전 어제 잠을 푹 잤습니다. 다른 기사들이 더 고생을 했지요.”

그런 것치고는 제법 피곤해 보였다.

“원래 오크들이 이렇게 싸웁니까?”

“아니오. 순찰자들이 성으로 돌아와야지 알 수 있을 것 같소. 보기만 해서는 알 수가 없소. 밤이라서 어떤 부락인지 알 수가 없으니···”

달빛조차도 적었던 밤이었다. 규르소모스의 버팔로를 보지 못한 것이다.

후퇴해도 성에는 잘 오지 않는 게 순찰자들이었다. 가봤자 〈궁수〉로서의 역할밖에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에 박혀있는 것보다는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게 오크를 압박하기 더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오크의 숫자가 적을 수 있다.’

정말로 대침공을 한다면, 오크는 한 방향으로 큰 병력을 움직일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저렇게 나무와 수풀로 자신들을 가리는 것도 이해가 되었고, 야간 사격전을 행한 것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밖에 나갈 수는 없는 법이다.’

적어도 오크였고, 나간다고해도 오크는 도망가면 끝이었다. 그리고 도망가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만큼 오크들은 미친놈들이었다.

상대해야할 적군이 많아도 일단 부딪치는 놈들도 충분히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위험요소를 끌어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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