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461화 (460/1,239)

461 <-- -->

다시 패로 눈을 돌린 〈베테랑 병사 맥스〉의 눈동자가 살짝 떨렸다. 눈에서 뭔가를 잡아챈 것이다. 그건 맥스가 원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건 반복된 훈련으로 통해서 만들어진 행위였고, 아름다운 현상이기도 했다.

〈노기사 봉보리 팔콘〉!

그 지옥에서 돌아온 영감에게 훈련을 받은 병사는 평화 속에서도 신체에 강인하게 각인된 습관이 존재했다.

평화에 찌든 병사가 있더라도, 훌륭한 지휘관이 있다면 능히 그 성은 넘기 힘든 성이었다. 부산진을 지켰던 흑의 장군처럼 수십 배가 넘는 적병을 두고도 전원이 죽을 때까지 싸울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었다.

인간의 나약함을 생각한다면 지휘관이 누구냐에 따라서 성의 방비가 정해질 수 있었다.

쿠당탕!

그대로 판이 엎어졌다. 맥스는 다리에 통증을 느꼈다. 또한 성벽 쪽으로 시야를 두고 있는 병사의 얼굴이 단번에 구겨졌다. 원수를 만난 것처럼 일그러졌지만 맥스는 그럴 때가 아니었다.

“부우울근 깃발이다아!!”

고함을 지르면서 허둥지둥 성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다른 병사들도 붉은 깃발이라는 말에 서둘러 뒤를 다시 돌아보았다.

점 하나에 불과할 정도로 작았지만, 분명 붉은색이 보였다.

“이런 씨···! 켁!”

서둘러 달리려다가 고꾸라진 병사가 혀를 깨물었다. 하지만 입을 헤-하고 벌린 채 미친 듯이 내달렸다. 다른 놈들도 마찬가지였다.

먼지가 일어났다.

맥스는 가장 먼저 성벽 위로 올라가서 허름하다 못해서 한쪽은 살짝 꺼져있는 조잡한 망루에 있는 주먹만 한 종을 쳤다.

댕댕댕댕댕!!!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종이 일관된 소리를 냈다. 척 보아도 엄청난 장인의 솜씨가 보일 정도로 잘 만들어진 종이었다.

종 제작 기술은 수백 년을 투자해도 수준에 오르기가 힘들고, 또 기술이 있다고 하여도 쉬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윙스톤 성(兩翼石城)〉의 방비는 최상급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종소리에 병영의 문이 발칵 열렸다. 창문을 뛰어넘어서 갑옷도 입지 않은 채 상체만 훌러덩 벗은 병사의 팔뚝이 나무틀에 긁혀서 피가 조금 나기도 했다.

상체를 벗고 뛰는 병사는 〈숨바람 콕〉은 이 성에서 가장 폐활량이 좋은 병사였다. 그의 보직 또한 〈숨바람 병(兵)〉이었다.

“후욱! 후욱! 훅!”

성의 양쪽에 마련된 가파른 계곡을 서둘러 올라갔다. 그 중간지점에는 기암괴석이 위태롭게 튀어나와있었고, 사각형의 나무상자가 크게 있었다. 마치 간이 화장실 같은 모습이었다.

콰득!

손도끼로 단번에 나무판을 뜯어내고, 주먹으로 판을 후려쳐서 떨어뜨렸다. 거칠다 못해 위험천만한 행위였다.

나무판을 그렇게 다 뜯어내자 길쭉하게 고정된 사람보다 긴 뿔나팔이 모습을 드러냈다.

〈큰뿔곰〉의 뿔나팔이었다. 불기도 어려울뿐더러 소리가 제대로 나기 위해서는 큰 폐활량이 필요했다.

오직 오크의 가을에만 쓸 수 있도록 지정된 것이었는데,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아 있었다.

챱챱.

입에 침을 바르고, 혀로 입을 이리저리 굴려서 촉촉하게 만든 콕은 어깨에 뿔나팔을 바치면서 천천히 내렸고, 앞쪽 끝을 땅에 놓았다. 큰 입구로 먼지가 후루룩 떨어져 내렸다.

‘후웁.’

어깨를 들어 올려서 뒤를 들어 올려 나발에 입을 대었다.

구웅! 구우우우우-웅!

웅장한 소리가 퍼져나갔다. 매우 저음이었기에 아주 멀리 퍼져나갔고, 성 전체를 뒤흔들었으며, 성 좌우에 있는 계곡의 정상까지 미약하게 들려올 정도였다. 계곡의 중턱에서 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벌컥. 구륵, 벌컥!

기름통이 원을 그리며 나선형으로 차곡차곡 꼼꼼하게 쌓아진 봉화에 뿌려졌고, 병사가 불을 붙였다. 불길은 쉽게 번지지 않았다. 기름을 뿌렸지만, 워낙 봉화의 크기가 컸기 때문이다.

병사가 반대편 계곡을 보았다. 그곳에서도 불이 올라가고 있었다. 봉화가 두 개가 있는 까닭은 그만큼 오크 전사들이 무시무시한 놈들이었기 때문이다.

“허억! 헉!”

그 사이에 순찰자 수반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하아아악!”

그그그···

병사 여러 명이 오랫동안 열어두었던 성문을 닫기 시작했다. 열기도 힘들지만, 닫기도 힘들어야 하는 것이 이곳의 성문이었다.

“끼랴! 핫!”

복장을 차려입은 경기병 다섯 기가 대로를 달리는 모습이 수반의 눈에 보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붉은 삼각깃을 창에 걸고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정말이야? 오크의 가을이냐고.”

젊어 보이는 병사가 수반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그의 표정은 믿기지 않는 표정이라기보다는 현실을 부정하는 표정이었다.

수반은 그의 볼에 있는 흉터를 볼 수 있었다. 투척 도끼가 지나갔기에 깔끔하게 찢긴 흉터였다.

‘오크에 대한 두려움.’

그것이 병사의 눈에는 있었다. 젊은 놈이 한 번 호되게 당한 듯했다. 분명 성문 밖으로 나가서 객기를 부렸을 터였다.

퍽!

“이 새끼가, 그럼 넌! 씨발새끼야! 순찰자가 붉은 깃발을 괜히 들고 왔겠냐? 뭘 확인하고 쳐자빠졌어? 이 개새끼가! 네가 기사야? 엉? 상또라이 새끼가!”

〈베테랑 병사 맥스〉가 뒤통수를 때리고 뒷발에 다리를 걸면서 자신의 몸으로 밀었다. 단번에 넘어진 녀석의 정강이를 발로 걷어찼다.

“허윽!”

아파서 눈물을 뽑는 병사의 얼굴에 침까지 뱉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남자의 세계는 그러한 것이었다. 서로 봐주고 뭐고 없었다. 잘못하면 맞고, 법으로 때리지 말라고 해도 때린다.

그건 생사가 오고 가는 곳일수록 컸다.

“끙! 끄응!”

병사들이 큰 철로 된 공이 담긴 상자를 성벽 위로 옮겼다. 오크들에게는 병사들이 쏘는 화살은 별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순찰자처럼 장력이 대단히 높은 롱보우는 병사들이 쓸 수 없었고, 있다고 해도 대량으로 만들 수 없었다.

순찰자의 롱보우는 다름 아닌 오크 나무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곳곳에 횃불이 놓였다. 밖에 장대를 꽂으러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는 병사들도 많았다. 대부분이 녹이 슬어있는 조잡한 금속이었는데, 그만큼 오크들에게 효과적이었다.

“순찰자! 팔콘 경께서 부르신다.”

잘 차려입은 병사가 수반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수반은 빠른 걸음으로 병사를 따라갔다. 작은 성이었기에 내성벽도 없었고, 중앙에는 소형 투석기들이 있었기에 영주성이라는 곳도 없었다.

그저 석재로 잘 만들어진 작은 저택에서 수반은 〈노기사 봉보리 팔콘〉을 만날 수 있었다. 순찰자와 억지로라도 만나지 않으려고 하는 봉보리 팔콘은 순찰자들에게서도 제법 유명한 자였다.

무성한 소문이 있었지만 수반은 근육으로 다부져진 그 몸과 굵은 혈관이 부룩부룩 보이는 얼굴을 보고는 깔끔하게 잊었다.

‘전형적인 무인이다. 그것도 노력을 미친 듯이 하는 자다.’

새하얀 머리는 거의 손으로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짧게 잘랐다. 수염도 없이 말끔했고, 한쪽 귀는 뜯겨 있어서 보이지 않았다. 이빨 자국이 보였는데, 척 봐도 오크의 것이었다.

앞니는 촘촘하고, 덧니가 날카로운 것이 오크의 특징이었다. 딱 그 흔적이 보였다.

“순찰자는 정말 오랜만에 본다. 내가 죽을 때까지는 보고 싶지 않았는데.”

팔콘 경의 말에 수반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 모습에 노기사 봉보리가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덩치에 비해서 리액션도 크고, 웃음도 지을 줄 알았다.

“그 뜻이 아니다. 우리 영지의 영주님은 나이가 어려서 말이다. 하늘도 무심하지, 그분이 장성하는 것을 결코 두고 보시지 못하는구나. 그것이 애석해서 하는 소리였다.”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수반이 그리 대답하자 팔콘 경이 소리쳤다.

“부관! 지도를.”

“예.”

옆에 있던 남자가 들고 있던 긴 가죽을 펼쳤다. 양이나 소 따위의 가죽은 아니었다. 더 큰 놈의 가죽으로 보였다. 두툼하고 무게가 제법 나간 것이라 다른 양피지와 다르게 핀을 꽂을 필요도 없었다.

바닥에 펼쳐진 큰 지도를 보며 팔콘 경이 말했다.

“오크의 숫자는 어느 정도인가? 우리 영지를 노리는 것이겠지?”

이에 수반이 고개를 저으며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모든 오크 부락이 하나가 되어서 내려오고 있습니다. 북부는 유례없는 큰 피해를 겪을 것입니다.”

팔콘 경의 볼이 순간적이었지만 달달 떨렸다. 그의 늘어진 목의 주름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수반은 자신이 아는 것을 최대한 전하였다.

“···순찰자들의 전략은 무엇인가?”

“적당히 싸워서 시간을 벌고 빠지는 것입니다.”

“그래? 그럼 3일 정도의 여유가 있겠군.”

짧은 시간이었다. 팔콘은 지도를 둘러보면서 부관과 수반에게 말했다.

지휘봉이 윙스톤 성의 뒤를 훑었다. 언덕, 산, 강, 숲이 대부분이었고, 작은 규모의 평야가 조금조금 있었다. 평야가 있는 부분에는 반드시 울타리가 쳐져 있는 표식이 있었는데, 아주 중요하게 여겨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만약 그 정도의 규모라면 초반에 승기를 잡아야 한다. 놈들은 숫자가 많아. 이 성을 지나면 산은 더는 없다. 그리되면 팬크리스 영지는 끝이라고 봐야 한다.”

노기사의 눈이 수반에게로 향했다.

“결사대를 꾸려서 밖으로 보낸다. 지원군이 올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겠어.”

“맡겨만 주십시오.”

수반은 그렇게 말했지만 노기사가 거부했다.

“아쉽지만, 〈관례〉라는 것이 존재해서 말이네. 자네는 후방으로 보내질 수밖에 없어. 그게 북부 순찰자들이 오크의 가을 이후에도 계속 유지가 될 수 있었던 이유야.”

부르르···

수반이 주먹을 쥔 채로 손을 떨었다. 무력감이 그를 덮쳤고 동시에 책임감이 그를 짓눌렀기 때문이다. 모순된 감정과 상반된 이성이 뒤엉켰다.

이도저도 못하는 것이다.

오크를 죽여야 한다는 감정과 자신과 함께했던 순찰자들의 유지를 이어야 한다는 감정.

순찰자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생각과 순찰자들의 명령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

그것은 명료한 것보다 더 효과적으로 수반을 수동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수반! 〈팬크리스 성〉으로 향해서 영주님에게 이 양피지를 건네주어라.”

수반이 팔콘 경의 양피지를 받아들였다. 표정은 썩 좋지 않았지만 거부하지는 않았다.

수반이 떠나고, 〈윙스톤 성〉은 본격적으로 싸움을 준비했다.

“결사대를 뽑겠다! 결사대를 뽑는 이유는 단 하나다! 지원군이 올 때까지 반드시 이 성은 함락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지원자는 모두 죽을 것이며, 결코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봉보리 팔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지원자는 손을 들어 올려라!”

척!

모든 병사들이 앞뒤 재지 않고 손을 들어 올렸다. 이곳에 속한다면 보고서에 이름이 올라갈 것이고,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도 그럴듯하게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재림! 우드톤! 락삼! 레이오!”

노기사는 한 명, 한 명 이름을 단번에 기억하며 그들을 불러냈다. 모두 거침없이 한쪽으로 빠져나갔다. 하나같이 왜소하고, 키가 조금 작은 이들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시간벌기용이었기 때문이다. 단단한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체중이 잘 붙지 않은 이들이고, 키가 애초에 좀 작은 이들이 사용되는 것이 당연했다.

“여기에 선택되지 않았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이미 이 성에 복무하는 이들의 가족력은 모두 문서로 등록되어있다!”

“우!”

병사들이 함성을 한 번 짧게 질렀다. 이들은 성벽의 보수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온갖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특히나 복잡한 성의 구조를 잘 이용하기 위해서 병사들은 며칠 안 남은 기간 동안 맹훈련을 해야 했다.

곳곳에 벽이 많이 있는 게 〈윙스톤 성〉이었다. 어떻게든 오크와 근접전을 벌이지 않기 위해서 통로가 미로처럼 있었고, 그 위에서 쇠공이나 투창을 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위급한 상황일수록 당황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을 결코 잊으면 안 된다.”

“예!”

지휘관 하나 없이 베테랑 병사 2명과 병사 18명으로 이루어진 결사대가 성문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이들은 3일 뒤에 멀쩡하게 돌아왔다.

북부 순찰자 중에 절반이나 되는 인원이 무식하게 오크들과 백설산맥에서 피 터지도록 싸우며 지연전을 펼쳤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5603자

평추코! 다양한 의견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