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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찰조장 벤〉 그리고 〈곡사의 조〉는 함께 팀을 이루기로 했다. 백설산맥이고, 오크의 영역에 들어선 이들의 활동 노선은 순찰조장 벤의 스타일대로 이루어졌다.
‘확실하게 관심을 끌 수 있다.’
그것만큼 순찰자의 구미를 당기게 한 것이 없었다.
“생각보다 여기까지 흘러들어온 순찰자들이 제법 된다.”
벤은 심장이 쿵쿵거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고양된 마음은 하나가 된 소속감으로 번져나갔고, 강인한 신념으로 자리를 잡았다.
탈주한 순찰자는 정신적인 면에서 순찰자의 반도 따라가지 못했다.
한 번 꺾어진 신념을 지닌 순찰자는 전투력에서도 크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정신력은 나약하면 얼마든지 나약해질 수 있었기 때문에, 한 번도 부러지지 않은 순찰자와 한 번 정신적으로 패배하고 굴복한 순찰자는 차이가 컸다.
촤아아!
촤아아!
파도 같은 소리를 내며 벤이 장작을 모았다. 〈곡사의 조〉는 〈하늘 쏘기〉의 달인이었기에 주변을 경계하기에 좋았다. 숲의 허공으로 쏘아서 오크를 내려 맞추는 〈하늘 쏘기〉는 오크전사의 시야를 피하고 화살을 맞출 수 있는 순찰자들의 전투 궁술 중의 하나였다.
벤보다 하늘 쏘기를 잘했기에 조는 몸은 편할 수 있었지만 정신은 얼굴에 열이 차오르고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르륵 내릴 정도로 힘들었다.
그래야지만 오크를 먼저 간파할 수 있었다.
피부가 초록색에 명암만 서로 다른 오크였기에 찾아내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미쳐버릴 정도로 뇌를 혹사하는 집중력이 요구되었다.
그만큼 오크와 숲과 산에서의 싸움은 인간에게 힘들었고, 승산도 적었다.
장작을 모은 벤이 그대로 불을 붙였다. 잘 타는 것을 확인하고, 그대로 도망줄을 놓았다.
“헉헉!”
산불은 빠르게 번질 것이다. 다름 아닌 순찰자가 불을 냈기 때문이다. 마른 장작이 곳곳의 생나무를 두르고 있었고, 바람을 타고 불똥이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갈 터였다.
첫 번째 산불은 성공적이었지만, 그다음부터는 불을 낼 엄두조차 못 냈다.
“아르가단흐! 오트고오오온!!!”
제법 높은 계곡을 사이에두고 벤과 오크전사가 서로 마주했다. 벤은 주먹감자를 먹여주었고, 오크 전사는 길길이 날뛰면서 욕을 몇 번 하더니 나무에 뭔가 흔적을 남겼다. 아쉽게도 바람은 순찰자의 편이었다.
흔적을 남긴 염료에서 나오는 썩은 악취가 벤에게서 맡아졌다.
오크들의 추적향이다. 벌떼같이 냄새를 맡은 오크 전사가 찾아올 것이다.
“산불까지 냈으니, 똥꼬에서 내장이 줄줄 흘려도 튀어야 한다.”
오크가 가장 싫어하는 게 산불이었다. 약재를 먹인 오크 나무 중에서도 적응력이 좋아서 대단히 크고 오랫동안 자라온 오크 나무도 한순간이기 때문이다.
길길이 날뛰는 게 당연했다.
벤은 조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지만, 그가 잘 따라오고 있다고 믿었다.
이들은 두 번째 산불을 내고 나서야 오크들에게 노출되고 말았다.
“가아알 아루루우긴!!!”
“기라! 기이룬!”
상당한 정보가 퍼졌는지, 오크들은 벤과 조를 〈갈 아루루긴(Gal Eruugin, 미친 방화범)〉이라고 불러대었다.
벤은 내달리면서 슬링을 꺼내고, 왼손으로 돌을 낚아채어서 단번에 슬링에 걸었다.
훙, 훙! 훙훙!
빠르게 슬링질을 하면서 바위에서 도약했다. 그 밑으로 조를 쫓는 오크 전사의 뒤통수가 보였다.
쉬익! 퍽!
돌에 맞은 오크의 피부가 짓이겨지면서 피가 소량 사방으로 튀었다. 슬링에 타격 당한 오크는 순간적인 뇌진탕에 그대로 무릎이 꿇려지면서 얼굴부터 땅에 처박았다. 하지만 그것도 1초에 불과했다.
무슨 기계로 된 몸을 가진 것처럼 코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입에서 이빨을 피와 함께 뱉어내면서 다시 내달렸다.
단 1초지만 그사이에 조는 몇 걸음이나 더 멀리 도망칠 수 있었다. 산에서 그건 매우 치명적이며 중요한 시간이었다.
돌을 맞은 오크 전사는 잘만 뛰어다니다가 갑자기 힘을 잃고 쓰러졌는데, 나무에 머리를 처박았다. 뽀족한 나뭇가지가 입을 지나가면서 그대로 목을 찌르며 내부를 출혈시켰다.
정신을 잃은 오크 전사는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셋, 넷, 다섯!’
단번에 은신한 조는 자신을 쫓던 오크들이 여럿 지나가자 엉금엉금 기면서 사위를 살피다가 냉큼 몸을 일으켜서 벤에게 향했다.
‘도와줘야해!’
“후으읍!”
조는 시위를 당기자마자 그대로 활을 놓았다. 긴 간격으로 유지되는 출렁거림이 롱보우의 장력을 가늠케 했다.
쉬이이익!
오크전사에게 쏘아졌지만, 매우 아쉽게도 산이었음에도 소음이 적었고, 바람이 멈춰있어서 화살의 소리가 정확하게 오크 전사에게 들려왔다.
“흐앗!”
오크 전사가 상체를 숙이면서 왼손으로 땅을 짚고 단번에 하체를 들어 올리며 크게 굴렀다. 화살이 손쉽게 허공을 지나갔다. 다시 일어선 오크 전사는 어느새 발소리도 나지 않게 된 벤을 찾으려고 했지만, 조가 다시 화살을 쏘자 일단 엄폐를 했다.
‘버티기만 오면 동료들이 온다.’
그런 마음가짐이 오크 전사에게 있었다.
그들은 용맹한 전사였지만, 뛰어난 사냥꾼이었다.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타다닷!
“놈!”
순찰자가 도망치는 발소리에 오크 전사가 살짝 오른쪽으로 모습을 드러내다가 다시 왼쪽으로 향하며 나무를 지나갔다.
정작 화살은 〈하늘 쏘기〉에서 오크 전사가 엄폐하고 있는 곳을 정확하게 내리꽂았지만 한 호흡의 차이로 오크 전사는 벤을 쫓았다.
벤과 조는 서로 다른 그룹이라서 미세한 차이로 이렇게 합이 맞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행스럽다면, 생각보다 벤은 도망을 잘 친다는 점이었다. 오크 전사는 결국 벤을 코앞에서 놓치고 말았다.
이 행운은 다음 날에 불운으로 찾아왔다.
“크윽!”
〈전투 로브〉는 오크의 힘이 담긴 무기를 결코 막아주지 못했다. 단지 그 충격을 경감시켜주었다. 투척 도끼가 전투 로브에 여럿 박혔기에 벤은 전투 로브를 포기했다. 최소한의 가죽 주머니만 챙겼다.
털털털!
가면서 독가루를 뿌렸다. 자연스럽게 손의 살구색 빛이 초록으로 물든 산에서 명확하게 보였다.
휘리릭, 퍽!
“끄악!”
도끼가 그대로 손목을 날려버렸다. 그대로 뒹군 벤은 손목을 잡고 옆으로 엎드린 채 미친 듯이 기었다.
“알가다! 아르가다아아!!!! 흐으!”
오크 전사가 코앞을 거칠게 질주하며 산 아래로 내려갔다. 벤은 순간 멈추어서 침을 꼴깍 삼켰다.
‘천운이다.’
가죽 끝을 꺼내서 손목을 묶고, 입으로 당겨서 단단히 묶은 벤이 다시 일으켜서 내달렸다.
퍽!
갑자기 튀어나온 오크가 주먹을 휘둘렀다. 또 다른 오크 전사였다. 벤은 소리조차 못 냈다. 그만큼 기습이 절묘한 순간에 이루어졌다.
“흐으! 흐으!”
벤은 뒤로 쓰러져서도 발로 뒷걸음질을 쳤다. 등에 흙이 주르륵 묻었지만,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오크 전사가 침을 손에 뱉으면서 도를 훙훙훙 돌리면서 탁! 잡아채더니 히죽 웃다가 그대로 덤벼들었다. 누워있는 벤이었기에 내려치기가 이루어졌다. 벤은 가죽 주머니를 던지면서 눈을 감고, 숨을 참은 채 오른손으로 얼굴을 보호하며 옆으로 데굴데굴 굴렀다.
팡!
흉악한 오크의 공격에 가죽 주머니가 터지면서 가루가 사방으로 퍼졌다.
“쿠아아아악!!!!”
어떤 고통에서도 둔감한 모습을 보였던 오크가 고통스러운 고함을 내질렀다. 들러붙은 가루는 피부에 붙자마자 눅눅해지면서 피부를 녹게 하였기 때문이다.
어디서 구했는지는 몰라도 강력한 피부독이었다.
벤 또한 손바닥이 완전히 노출되었다.
“끄흐흐흑.”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벤이 덜덜 떨리는 오른손으로 땅을 짚으면서 다시 기기 시작했다. 고함을 지르던 오크 전사가 성큼걸이로 다가와서 기고 있는 벤의 다리를 거침없이 내려쳤다.
“끄악! 흐으윽!”
벤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그 모습에 오크 전사가 숨을 깊게 들이쉬면서 주위를 살폈다. 근처에 순찰자 동료가 있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최대한 반대편으로.’
벤은 조와 최대한 반대편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오크 전사가 땀을 닦으면서 다가왔다. 이들을 찾는다고 오랜 시간 내달렸기에 오크 전사 또한 크게 지쳐있었다.
덥석!
오른 다리를 잡았다. 벤이 버둥거렸지만 도가 그대로 내려 찍혀진 왼쪽 허벅지를 다시 한 번 내려쳤다.
단 2번 만에 백설산맥의 산을 타면서 강인해진 북부 순찰자의 다리가 절단됐다. 피가 쏟아져나왔다.
“흐으아아아아아악!!!!”
벤이 진절머리를 쳤다. 머리가 새하얗게 되는 감각이 그를 덮쳤다. 그런데도 그의 잡힌 오른발은 거칠게 요동치고 있었다. 오크 전사는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산을 탔기에 벤을 손에서 놓치고 말았다.
36시간을 산행한 오크 전사의 체력 또한 극심하게 소모된 상태였다.
“허억! 후으읍! 허어어억!”
벤이 호흡을 최대한 크게 하면서 작은 낙엽 따위가 눈에 들어갔음에도 눈을 감지 않고 오른팔, 왼팔을 번갈아가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단 1초만이라도 더.’
자신의 동료에게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고, 사람들이 성에 모여서 항전할 수 있도록.
최후의 최후까지.
자신은 발악을 해야했다. 그게 바로 북부 순찰자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마지막 최후였다.
“헉. 헉.”
오크 전사가 흐르는 진땀을 닦았다. 혁대를 풀고, 짊어지고 있던 곰의 털가죽과 그 털가죽 안에 차고 있던 가죽 배낭마저 버렸다.
다시 한 번 기어가는 벤의 엉덩이를 밟고, 검을 내려쳤다. 벤은 오른쪽으로 몸을 틀었다. 도가 오른 어깨에 박혔다.
“끄르으으읍.”
벤의 눈이 까뒤집어졌다. 부르르 떨던 벤은 목걸이에 손을 넣어서 당겼다. 작은 가죽 주머니가 알아서 풀렸다. 입으로 가죽의 끝을 물고, 엎드려있던 몸을 뒤집었다. 그 사이에 오크는 엉덩방아를 찧었다가 다시 일어나고 있었다.
흰 가루가 벤의 입에 들어갔다. 강력한 진통제이며 마약이었다.
눈이 핑핑 돌았지만 이제 더는 시야가 필요 없었다. 그저 앞으로 갈 뿐이었다.
다섯 번 기지도 못하고 머리채가 잡혔다. 벤은 고함을 지르면서 턱을 당겼다. 머리카락이 뜯겨나가면서 해방감을 느꼈다.
퍽! 퍽!
“와아아아아야아아알트으으으으!!!”
오크가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르면서 닥치는 대로 벤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길쭉한 침이 허공을 날았다. 침을 질질 흘릴 정도로 오크는 무리한 행동을 했다.
그것이 벤의 마지막이었다.
시체가 된 인간 순찰자를 본 오크는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형편없이 나약한 신체능력을 지닌 인간이 살기 위해서 발악한 그 행위에서 뭔가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휴식도 하지 않은 채 오크 전사는 벤의 갈비뼈를 뜯어내고, 그 속에 있는 따끈한 심장을 꺼냈다.
우적! 우적!
심장을 통째로 씹어먹었다. 그리고 오크는 오른손등에 통증을 느꼈다. 희미한 타투가 모습을 드러냈다.
로브를 휘날리며 거칠게 달리는 순찰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신체능력을 얻는 것은 아니었고, 그저 정신력에 도움이 되는 타투일 것이다. 앞으로 순찰자를 몇 명이나 잡아야지만 효력을 얻을 수 있을 터였다. 오크보다 나약한 인간의 심장을 먹을 정도로 벤은 오크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오크가 사라지고, 해가 저물어갔고 이내 어둠이 내려앉았다.
꿈질거리며 나타난 〈곡사의 조〉가 벤의 시체를 한 손으로만 더듬었다. 지워야 할 피를 많이 묻힐 수 없었다.
‘개새끼들···개새끼들···!’
그는 얼굴이 시뻘게졌다.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렸다. 갈비뼈가 마치 도축되듯이 뜯긴 벤의 시체에는 심장마저도 없었다. 그것을 그는 끝을 모르고 타오르는 분노와 증오를 느낄 수 있었다.
손에 묻은 피를 지우고 조는 벤의 시체를 끌고 어디론 가로 향했다.
잘 보이는 나무 등치에 그를 놓고, 팔에 줄을 연결했다. 그리고 상처 곳곳을 흙으로 막았다. 입에도 흙을 집어넣었다.
얇은 거미줄로 만든 주머니에 바늘을 관통시켜서 아랫배에 바늘로 찌르고 나서 수풀에 숨었다.
햇빛이 잘 드는 곳에서 해가 질 때까지 방치된 벤의 시체는 순찰을 돌던 오크 전사의 눈에 들어왔다.
후다닥!
상처를 회복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순찰자를 보고 냉큼 달려왔다. 순찰자의 상태를 보기 위해서 상체를 숙이는 순간 조는 줄을 잡아당겼다.
펑!
부풀어 오른 아랫배가 그대로 터지면서 천 주머니가 오크 전사의 입에 그대로 들어갔다.
“켁?!”
몸 안으로 들어간 모습에 조는 짜릿한 느낌을 느꼈다. 잭팟이었다. 오크 전사는 괴로워하면서 죽어갔다. 식도부터 줄줄이 녹았기 때문이다. 호흡하지 못했기에 뛰어난 신체능력도 허무할 정도로 힘을 쓰지 못했다.
쓰러진 오크가 입에서 피를 게워냈다. 그 피는 땅에서 흘렀고, 이내 오크의 쓰러진 오른팔을 적셨다. 오른손의 손등에 그려진 희미한 순찰자의 문신에 오크의 피가 튀어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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