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451화 (450/1,239)

451 <-- -->

케이샤의 진통은 6시간이나 계속됐다. 신성력이 소진한 사제가 3명이 오고 가서 드낙은 괜히 불안감을 느꼈다. 또한 에드윈 가문의 안젤리카의 과정도 다른 이를 통해서 들을 수 있었다.

“순산하셨답니다.”

그녀는 신호가 오고 나서 1시간 만에 낳고, 휴식 중이었다.

물론 만나러 가지는 못했다. 상식적으로 킹슬레이가 더 대우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차순에 불과했다. 하루를 꼬박 기다리고 나서야 여사제가 드낙에게 다가왔다.

“들어가셔도 됩니다.”

여사제의 말에 드낙이 안으로 들어갔다. 게제라스가 그놈의 명분을 들먹거려서 안젤리카가 먼저 낳은 아기는 보지도 못했다.

‘아.’

아기를 보자마자 드낙은 뭔가 가슴이 꿀렁꿀렁해졌다. 괴상한 기분이었다. 쾌락? 그런 것은 아니었다. 뭔가 이상한 기분이었다. 불안감, 책임감 동시에 간질간질하고 기분 좋은 뭔가가 뒤섞인 감정이었다.

단순히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감정도 금세 행복으로 변했다. 아기란 것은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기 마련이었다.

“머리가 참 붉죠?”

케이샤의 말에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과 견주어봐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붉은 머리카락의 색이 똑같았다.

‘세대가 낮아질수록 덜 붉어지는 게 아닌가? 아니면 내가 특별하기 때문인가.’

드낙은 잘 판단이 서질 않았다. 단 한 세대였기 때문이다.

짧은 머리털이 난 아기의 붉은 털을 드낙이 만지작거리면서 눈을 바라보았다. 케이샤의 황금색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지만 빛에 반사되면서 약간 녹색 또한 보였다. 완전한 녹색은 아니었고, 틈틈히 보일 정도에 불과했다.

“으흐아아앙!”

드낙이 그렇게 뚫어지라 보자 아기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드낙이 반사적으로 한 걸음 크게 물러났다. 그 겁쟁이 같은 모습에 케이샤가 웃음을 빵하고 터트렸다.

다음으로는 안젤리카에게 향했다. 그녀는 드낙이 늦게 왔음에도 투정을 부리지 않았다.

“몸은 괜찮습니까?”

“예. 애초에 단련된 몸이라. 레이디 킹슬레이가 진통을 심하게 겪어서 오히려 그쪽이 더 걱정입니다.”

드낙이 아기를 바라보았다. 역시나 붉은 머리카락이 있었고, 드낙과 큰 차이가 없었다. 눈에도 녹색빛이 약간 감돌았다. 눈동자는 드낙의 푸른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눈 또한 녹색빛깔이 감돌고 있었다.

안젤리카의 아기는 조기출산임에도 우량아였다. 그녀는 아기의 입에 손가락 하나를 넣어서 약간 벌리며 앞니를 보여주었다.

“벌써 앞니가 있어요. 신기하죠?”

“허. 보통 놈이 아닌 것 같습니다.”

드낙이 황당해 했다. 태어난지 1일 된 녀석이 앞니가 조금 튀어나와있었기 때문이다.

곧이어서 길게이가 축하를 해주었고, 사제 중에서도 가장 축복받았다고 여겨지는 〈성기사 케이슨〉이 직접 방문하여 아기들에게 기도하며 축복을 1시간씩 베풀어주었다.

그 뒤에 길게이에게 계약서를 써주었다. 어차피 장원을 내어줘도 세금이 걷어지기 때문에 알짜배기 평야를 줘도 상관이 없다는 모습이라 길게이가 오히려 얼떨결 할 정도였다.

길게이는 볼레티안 기사단원 10명을 레이시아의 호위를 맡기고 그대로 남쪽으로 향했다. 몰락한 남부 귀족들과 어서 만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드낙은 자신의 자식에게 굳이 자주 찾아가지 않았다.

‘어차피 조금 크면 해당 가문으로 갈 자식.’

이성적으로 생각하였지만, 때때로 불현듯이 찾아오는 감정 때문에 드낙은 일에 매달리게 되었다.

“이쪽으로!”

깡! 깡! 깡!

철판을 두들기는 소리가 드낙의 귀를 때렸다. 막대한 은화를 저장하기 위한 창고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바닥까지 철판이었고, 지반 자체가 돌로 가득 채워놓아서 도굴의 위험도 적었다.

항상 병사가 대기하기 때문에 소리를 크게 내지도 못했다.

이주민 덕분에 노동력이 충분하였고, 임금이 일당제로 바로바로 지급되었기에 열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아서 금방 완성됐다. 그곳에 궤짝에서 쏟아져나온 은화가 차곡차곡 쌓였다.

은궤는 또 다른 창고에 저장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분산투자 같은 거지.’

괴상한 논리였지만 게제라스는 창고를 두 개로 만드는 것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인력이 더 들어도 분산하는 게 좋았다.

“난 조금 더 둘러보고 가겠다. 나가봐도 좋다.”

“예.”

횃불로 밝혀진 어두컴컴한 창고에 홀로 남은 드낙이 히죽 웃었다.

은화로 쌓은 언덕이 자신의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걸로 마탑도 만들 수 있고, 떠돌이 마법사나 연금술사를 대거 영입할 수 있을 거다.’

그렇게 되면 드낙의 꿈은 이루어진다.

“흐흐.”

드낙이 은화를 손으로 쓸었다. 그리고 냉큼 은화에 드러누웠다. 금속제 특유의 냄새가 풀풀 풍겨왔지만,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이제 적당히 대산 너머에서 검은 꿈을 키워나가면 된다.’

모든 게 안정화가 되었다고 해도 무방했다. 자신의 무력으로 중심을 잡고, 반란을 짓누르면 모든 게 평화로울 것이다.

혼자서 기분 좋아하던 드낙의 고양된 감정은 빠르게 추락했다.

‘뭔가 허무하다.’

생존을 위해서 열심히 내달려왔다. 그때는 모든 것이 두려웠고, 모든 것이 대단해 보였다. 그래서 더더욱 열심히 달릴 수 있었다.

세상에서 살아갈 법하자 세상으로 뛰쳐나왔다. 부유함을 꿈꿨고, 풍요로운 삶을 노렸다.

그것을 오늘 이룩해냈지만, 드낙은 그 쾌락이 짧은 순간에 끝나버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인간은 간사한 법이었다. 먹고 살기 바쁘면 먹고 사는 것만 생각하고, 먹고 살 만하면 또 다른 것을 원하게 된다. 드낙이 딱 그 꼴이었다. 이미 이룩하고 있는 것은 가치 없는 것이 되고, 더 가치 있어 보이고 자신에게 없는 것을 원하게 된다.

‘아크온은 자신의 가문의 썩은 부위를 도려내고 영웅으로 불리며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싶어한다.’

하지만 드낙은 은화에 눈이 돌아갔다. 부유함을 손에 쥐었으니, 이제 그 부유함이 형편없는 모습으로 보였다.

‘게실리안은 제국을 견제하는 지휘관으로서의 커리어를 쌓고 있지.’

무슨 꿈과 야망을 가졌는지는 몰라도 군사학적으로 위업을 남기고 싶어하는 것이 분명했다.

드낙은 불현듯 돈을 좇는 것이 천박하게 느껴졌다. 다른 귀족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생각하면서였다. 이 과정은 그가 대량의 돈을 소유하고 나서야 꽃필 수 있었다.

‘길게이는 지도자가 되려고 한다.’

영주가 아닌, 그 이상의 지도자를 원했고, 실제로 왕이 되려고 발악한 자였다. 그렇게 열심히 달리는 귀족들의 모습은 드낙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개죽음 당하는 거야.’

속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드낙은 손에 쥔 은화를 버리듯이 내던져버렸다.

자신은 중립신의 챔피언이 되겠지만 그건 중립신의 선택이 있었기에 하는 것뿐이었다. 그곳에 드낙의 주관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거로 변명할 수 없었다.

짤그랑!

거친 소리가 났다.

‘내 인생에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위해서 달려갈 것인가.’

죽을 위험도 사라지고,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믿을만한 가신들과 남들을 쳐부술 힘을 가진 드낙은 비로소 자신을 위한 큰 화두(話頭)를 자신에게 던졌다.

그것은 먹고사는 문제도 아니었고, 암살과 독약의 위험에 대한 문제도 아니었고, 자식과 사랑에 대한 문제도 아니었으며, 명예와 명성 그리고 존경에 대한 문제도 아니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질문에 불과했다. 세상에 비하면 하찮게 여겨지는 객체로서의 방향성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 조잡하고 형편없이 작은 질문에 드낙은 단 한 단어도 대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드낙은 외부 환경에 맞춰서 자신의 주관을 바꾸면서 살아온 자였기 때문이다.

‘마탑이나 지어서 에어컨이랑 히터나 만들자.’

드낙이 창고를 떠났다. 하지만 그 눈에는 복잡한 고뇌가 깃들어있었다. 꿈을 이룬다고 해서 인생이 끝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엘프 원정대(Elda Andawaita)가 도시 밖으로 나가기 위한 마지막 장비 점검에 들어갔다. 엘프들의 복장은 새하얗고 착 달라붙는 옷에 옅은 녹색의 실크로 된 날개옷 같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대신 백금색으로 된 딱딱한 금속과도 같은 혁대를 허리에 두르고 있었는데, 사이즈가 딱 맞았다. 또한, 움직일 때마다 그 딱딱해 보이는 혁대는 수축하고 팽창하며 알아서 변화되었다.

이 백금 허리띠에는 사각형의 기묘한 금속들이 수십 개가 붙어있었는데, 하나같이 반딧불처럼 빛을 내고 있었다.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자회로와도 같이 빛을 내는 초록색의 선들이 가득했다.

이들은 또한 은으로 된 온갖 장신구로 자신들을 치장했으며 특이하게도 손톱이 없고, 손톱 대신에 보석을 깎아서 만든 보석 손톱을 끼고 있었다. 엘프 원정대는 손에 면장갑을 끼고, 혁대에 손을 가져다 대자 혁대가 투명화되며 사라졌다.

〈고위 집정관〉 1명

〈집행관〉 1명

〈법무관〉 1명

〈부관〉 4명

총 7명으로 이루어진 원정대는 탈 것 같은 것도 없었다. 배낭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 원정대의 숫자는 단 2개밖에 안 되었는데, 이종족 사회에 무분별하게 조사를 나감으로써 기술의 유출을 막기 위해서 운용 가능한 숫자를 위원회에서 엄격하게 막았기 때문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모방할 수 있고, 자신들이 개발해야 할 계단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위 집정관 에아로테 게이아(Ealote Gaear)〉는 평온한 모습으로 앞장서서 나갔다. 엘프 중 누구도 배웅하러 오지 않았다. 이미 완성된 존재에게 환호성과 갈채는 그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다.

원정대 하나는 제국으로 향했고, 에아로테 게이아의 원정대는 남부 왕국으로 향했다.

‘부정한 별과 선한 별을 동시에 얻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지지부진하던 회의를 한 번에 종결시킬 정도로 큰 변화였다. 몇몇 엘프들과 원로 엘프 중 소수는 〈영혼 감옥〉에 갇힌 〈세리안 불파겐(Serrian Bulpagen)〉을 깨워서 방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너무나도 경솔한 발언이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경한 의견이었기에 당연히 뭉개졌지만, 그만큼 선과 악으로 나누어진 성향을 지닌 별들이 단 하나의 개체 혹은 세력을 선택했다는 것은 이상 사태였다.

처음에는 불파겐의 방계가 별의 선택을 받았다는 예측을 했지만, 지금에서는 세력이 선택을 받았다고 추측되고 있었다.

엘프들은 하나같이 호리호리했다. 키는 180cm로 장신이었지만 체중은 65kg을 못 넘을 정도로 날씬한 이들이었다. 남녀 구분 없이 모두 그러했고, 하나같이 미인이었다.

“여기서부터 마력장벽이 끝납니다. 〈마법 날개(Magical wing)〉를 펼칠 준비를 해주세요.”

고위 집정관의 말에 다른 엘프들이 군말 없이 보이지 않는 혁대에 있는 사각형 금속에 영혼력을 부여했다. 순식간에 혁대에서 튀어나온 〈연혼석(鍊魂石)〉이 허리 뒤쪽에 들러붙었다.

파아앗.

이어서 마력이 엘프들에게서 흘러나왔고, 단번에 푸른 마력으로 이루어진 날개가 펼쳐졌다. 푸른 마력으로 이루어진 푸른 날개는 발광하는 것과 동시에 미증유의 기류가 흐르고 있었는데, 엘프들 자신들의 영혼이었다.

마법 자체에 간섭하여 그 마법의 효율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림과 동시에 이미 정형화된 마법을 변화하고, 제어하며, 마음껏 완급을 조절할 수 있기까지 했다.

단번에 날아오른 엘프들은 구름 위까지 올라갔다. 거센 바람이 불었지만 엘프들의 머리카락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모종의 마법이 대기환경에 엘프들이 노출되지 않도록 하고 있었다. 이들은 그대로 남부 왕국으로 향했다. 그 속도는 가히 철새와도 같았다.

========== 작품 후기 ==========

5378자

평추코! 다양한 의견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