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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괴의 안정적인 보급. 그게 아크온과 드낙이 서로 암약한 것의 대가였다. 그리고 그 대가를 받았다고 해서 드낙은 멈추지 않았다. 아크온과 우정을 가지고 있지만, 게제라스의 입김 때문에 드낙은 다른 것까지 보고 있었다.
호구라는 명성답게 게제라스는 하나부터 열까지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었으므로 드낙이 게제라스 총관의 말을 안 들을 리는 없었다.
자신의 주관보다 더 좋은 생각이 있다면,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 드낙의 습관이었다. 아크온의 우정이 그것을 막기에는 게제라스가 제시한 의견이 더 먼 곳을 보여주었다.
눈앞의 상황에 대한 분석을 듣는 것보다는 제갈량처럼 삼분지계 같은 큰 그림을 들으면 사람 눈이 돌아가기 마련이었다.
“록시 몽펠리에가 가진 장원을 몰수하겠소.”
잘 거래를 마쳤다고 생각했는데 드낙이 추가로 말하였다. 아크온은 눈썹이 꿈틀거렸지만 나무라지는 않았다. 황소처럼 보이는 아크온이었지만 남부에서 기사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처신이 늘었다.
‘너무 잘해주었고, 길게이 왕자 또한 이 자리에 있다.’
일이 틀어진다면 파이룬은 보급을 대줄 것이 분명했다. 영지가 맞닿아 있는 상대의 힘을 뺄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부 기사는 수준이 좀 낮았지만 그래도 300명 모두 전신갑주를 입고 있었다.
“······알겠소.”
아크온이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거기에 드낙은 한 발을 더 들이밀었다.
“주전파에 속한 8가문이 지닌 재산 또한 분배받고 싶소.”
‘끝을 모르는구나.’
“그것은 어렵소. 그리고 8가문이 아니라 7가문이오.”
아크온의 말에 길게이가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프론 경은 8가문이라고 하지 않았나?”
아직 프론 경을 버리겠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기에 프론은 냉큼 대답했다.
“예. 총 8가문이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가했습니다.”
“한 가문은 내 입김을 받고 그들을 주시하기 위해서 투입된 인력이오. 관계가 없지.”
아크온의 말에 드낙이 수긍했다. 증거가 없는 세상이었고, 선동과 날조가 무엇보다 강한 시대였다. 스파이는 들키지 않는다는 선에서 무조건 이득이었다. 또 들키더라도 상대는 더욱 조심할 것이기에 그것 또한 손해는 아니었다.
“그럼 7가문에 대한 재산을 몰수하여 배분받고 싶소.”
아크온은 그 지분에 관해서 물었다. 드낙은 한 손을 쫙 폈다.
“절반? 너무 과한 것 아닌가.”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별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다 가져가 주면 오히려 더 고맙지.’
시민들의 분노는 드낙으로 향할 것이고, 아크온은 더 혁명적이고, 개혁적인 활동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또한 다른 가문들 또한 이를 갈 것이다.
과정적으로 보면 아크온 또한 더러운 면이 있었지만, 그런 과정을 잘 파악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드낙이 나쁜놈이 될 가능성이 더 컸다.
귀족들이 받아들이는 정보는 제한적이었다. 또한 드낙이 탐욕하게 굴수록 관심이 절로 드낙에게로 향할 것이다. 하던 분석도 버려놓고 드낙 때문에 골골거리는 영지를 위해서 동분서주하게 될 터였다.
‘단기적인 가치보다는 장기적인 가치.’
가주가 된 아크온은 가주로서의 영향력을 더 크게 보기도 했다. 그것은 아크온이 어렸을 적부터 꿈꿔온 꿈 때문이었다. 올바른 귀족정을 실현한다는 그 숭고한 꿈은 아크온에게 많은 것을 빠르게 선택할 수 있게 해주었다.
드낙이 팔랑귀처럼 구는 이유는 그러한 꿈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이득만 본다는 마음가짐이었기 때문이다.
“질라크 몽펠리에는 볼모로 잡아두겠소.”
죽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었다. 게제라스는 직계를 볼모 잡는 것을 크게 추켜세웠다. 인접한 영지를 얌전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매우 좋았기 때문이다.
대놓고 몽펠리에가 전쟁을 건다면, 아크온은 핏줄을 가벼이 여기는 패륜아가 될 것이며 절로 명예가 깎여질 터였다.
순식간에 계약서가 작성됐다.
지하감옥에 갇혀있는 방계의 가주들은 금방 드낙에게 인도됐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드낙은 그들 가문의 3족을 모조리 잡아들였다. 단 7가문에 대해서만 이루어졌기 때문에 큰 반대에 부딪히지는 못했다.
소수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이 몰락하면서 드낙이 물러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는데, 길게이 플래티넘이 끌고 온 300명의 기사전력 때문이었다.
드낙이라는 처형검에 기사 300명이라는 세력까지 갖춘 상태에서 영지전을 지속하는 것은 실로 어리석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보통이라면 다른 북부가 도와줬겠지만, 이번 일은 자초한 일이니.’
명분은 진창이 되었지만 그것 때문에 오히려 백금 왕가의 개입이 자연스러웠다. 이미 엉망진창 개차반이었다.
그 덕에 몽펠리에의 귀족들은 찍소리도 하지 못한 채 드낙이 이것저것 챙기는 것을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불파겐을 그렇게 건드리다니. 생각이 있는 건가, 없는 건가.”
아크온은 불파겐의 이름을 들먹거리며 귀족들과의 연결고리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프론의 박쥐질은 정말로 꿈에도 몰랐는데.”
“가주가 9족까지 멸하라고 소리를 질렀다더라.”
“아닌데? 전가주가 대낮부터 병사를 끌고 와서는 박살을 내는걸 본 사람이 있어.”
“아, 그래?”
온갖 뇌피셜이 뭉게뭉게 피어났다. 실로 재미났다.
특히나 귀족들도 보는 눈이 있었다. 아크온에게 협력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저런 미친 불파겐 같으니라고.’
은화가 1궤당 3천닢은 들어있는 궤짝이 1400궤에 달했는데 그것이 마차에 실려서 대로에 주르륵 줄을 이었다. 또한 그 뒤로 밀 120만 포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남부의 자원을 빨아먹었던 비밀 모임 8인 원로회가 착복한 것들이었다.
마법으로 식량이 잘 보전되어있어서 오래된 것도 방금 수확한 것처럼 질이 좋았다.
드낙은 장식품보다는 돈과 밀을 선택했다. 아크온은 몽펠리에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명확하게 하려고 굳이 말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소리를 떵떵 치고 다니면서 드낙의 평가는 말 그대로 하수구의 쥐새끼보다도 못한 상거지 새끼가 되었다.
“귀족이라는 놈이, 명예도 없더라고.”
“불파겐이 괜히 불파겐이겠어?”
“돈이랑 식량만 골라서 몰수했다던데. 몽펠리에가 가져간 건 조각상 따위라고 카더라.”
온갖 카더라 통신이 술집에서 드글드글 움직였다. 이실레아가 이에 대해서 언급했지만 드낙은 말을 듣지 않았다.
“이히히히. 히히히···!”
유비유비 거리면서 민심을 찾던 모습은 온간데 없고, 은궤짝을 밤 늦게까지 창문에서 멍하게 보면서 히죽거리기 일쑤였다. 남들이 보면 미친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만큼 자본주의에 살아온 인간의 면모를 잘 보여주었다.
‘상단도 있겠다. 제대로 굴러가겠어.’
드낙이 간사하게 양손을 비비적거렸다.
돌아가는 길은 평탄하다 못해 지루했다. 길게이는 그 사이에 드낙에게서 확답을 들으려고 애를 썼다.
“제가 말한다고 뭐가 바뀌겠습니까. 영지가 혼자서 다 하는 거면 뭐하라고 가신들이 있겠습니까.”
드낙답지 않게 정론을 이야기했다.
결국 길게이는 게제라스를 통해서 이야기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전에 봤을 때, 협조적이었으니. 설마 내치겠어?’
이런 생각이 바탕에 깔려있었다. 또한 동부는 생각보다 너무 광활했고, 이 때문에 길게이가 활동할 공간은 충분했다. 특히나 남부와 교역하는데 있어서 쓸모가 있었다.
여름이 끝나고, 낙엽은 생기지 않았지만, 바람이 제법 강해졌을 때 드낙은 호수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드낙이 있는 상태에서 게제라스와 길게이가 서로 대면했다.
“성주가 될 정도의 영토를 준다면, 동부는 남쪽의 막강한 자원을 얻게 될 것이오.”
“너무 욕심 아니십니까? 제대로 관리는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망명한 왕자였다. 게제라스는 강하게 나갔고, 길게이는 그것을 탓하지 않았다. 지금이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여기서 실패하면 갈 곳이 없다.’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총관이 강한 어조로 나가는 것이었다.
“남부의 몰락 귀족들이 대거 유입될 것이다. 그리고, 불파겐 또한 곧 이 오지에서 동부의 중앙으로 자리를 옮겨야 할 것 아닌가.”
호수 마을은 동부에서도 북동쪽의 끝자리에 있는 곳이었다. 영주성이 지어질 곳은 아니었다. 드낙이 혼자서 거의 약탈 경제를 만들어냈기 때문에, 외부로 향하기 좋고, 또 큰 의심을 받지 않는 중앙으로 옮기는 게 좋았다.
“그건 생각해봐야 할 일입니다.”
“생각할 자시고가 어디에 있나.”
서로 영지의 향후에 대해서 먼저 점치면서 우위를 점하려고 논쟁을 이어나갔다. 드낙은 그것을 빠짐없이 들었는데, 듣기만 해도 훌륭한 수업이었다. 드낙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것에 관한 이야기였다.
단순 지식이 아니고, 이해를 뛰어넘어 응용을 필요로 하며 분석이 요구되는 복합적인 판단이 내려진 미래 예측이었다.
일류가 보는 시야를 드낙은 이 기회에 접할 수 있었다.
‘뭔가 좀 착잡하네.’
드낙은 마음이 좀 빈 것 같은 감각에 휩싸였다. 그 정도로 보는 관점이 달랐고, 보는 시야가 차이가 날 정도였다.
“좋습니다. 하지만 세금을 내기는 내셔야 합니다.”
“장원인데 세금을 내라니?”
게제라스가 불파겐 장원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다. 길게이가 다른 이들도 먼저 그렇게 하고 있다고하니 반박하지는 못했지만 3년 면세를 요구했다.
단순 월세 25만원을 3년 안 내면 900만원의 목돈이 생기는 것처럼, 장원 세금 면제는 압도적인 성장률을 낼 수 있었다.
“내년부터 세금을 내십시오.”
드낙이 선심을 써주었다. 많은 이득을 올해 보았기에 마음이 너그러워진 것은 아니고, 남부의 자원이 더 유입되면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박리다매지.’
뭔가 경우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멍청했지만, 그럴듯한 대답이기도 했다. 절충안이었기에 길게이는 수긍하였다.
길게이의 장원은 중앙에서도 제법 먼 남쪽에 있는 평야에 이루어졌다. 처음 올 때 충격을 받은 그 평야였다. 〈구불 골〉이라고 남부 지도에 왜곡되어서 표현된 곳이었다.
“〈파도 평야〉라고 이름을 지은 곳이다. 구불구불한 것이 강처럼 보이기도 했지.”
길게이는 아직 동부의 남쪽에 가지도 않은 두 사람에게 자신이 자리 잡을 장원의 위치에 관해서 이야기해주었다. 큰 가치를 지닌 곳이지만, 드낙은 언제든지 그곳을 빼앗아 올 수 있었으므로 그냥 그러려니 하고 그곳을 내어주었다.
쿵쿵!
“영주님!”
병사가 크게 회의장의 문을 두드렸다. 길게이가 불편한 기색을 가졌다. 중요한 협의의 흐름이 끊겼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냐!”
게제라스가 드낙 대신 소리치자 병사가 들어오면서 말했다. 숨이 좀 차있었지만 말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레이디 에드윈과 레이디 킹슬레이가 지금 출산이 가깝다고···”
드낙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달수를 생각하면 아직 1달~1.5달이 남았기 때문이다. 조산의 기미였다.
“사제들은?”
“그곳으로도 병사가 갔을 겁니다.”
“갔을 거라니! 병사를 하나 더 보내어서 한 번 더 확인하라!”
게제라스가 호통을 쳤다. 출산에 대해서 병사가 너무 가볍게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병사가 크게 당황하며 대답하며 허둥지둥 나갔다. 자신이 직접 갈 생각인 듯했다.
“계약서는 나중에하고 일단은 구두로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하는 것이 어떻소?”
드낙의 말에 길게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불파겐의 첫 자식이었다.
“어서 가보게.”
길게이의 말에 드낙과 게제라스가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다.
“킹슬레이 쪽으로 가는 것이 옳습니다.”
게제라스의 말에 가장 먼저 킹슬레이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들어갈 수는 없었다. 진통 때문에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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