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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449화 (448/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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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온은 프론 사일런스가 성을 나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고 다녔다.

“비밀 모임, 말씀이십니까?”

“8인의 원로회라니요? 처음 들어봅니다만···”

이런 움직임에 방계들 또한 움직여서 아크온을 만나려고 했지만, 아크온은 언제 그랬냐는 듯 가주와 만나러 가버렸다.

“허, 참. 이리저리 잘도 돌아다니는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들어야하는데···”

“스웬슨 보두앵이나 에녹 히터나 입이 무거우니.”

충성심 또한 높았다. 몽펠리에의 정예 군권을 가지고 있을 정도였으니, 그 성품이 얼마나 단단할지는 직접 겪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점이었다.

반면 직접적으로 8인 원로회에 속한 가문은 난리가 났다. 그렇지만 그들은 행동력 있게 움직이지 못했는데, 〈프론 사일런스〉가 부재중이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가문이 배상금을 내겠다고 호언장담을 하고 출발했기 때문이다.

아크온이 전쟁 반대를 외쳤고, 이들 가문은 전쟁 찬성을 외친 상태에서 전쟁에서 패배해버렸으니 당연한 순서였다.

그게 아크온의 노림수였다. 드낙이라는 괴물을 통해서 억지로 미래를 손에 쥔 것과 같았다. 모든 과정에서 아크온은 한 수 앞서나갈 수 있었다.

“한 번 찌르고 왔느냐?”

“조금 떠들고 여기에 왔으니, 똥줄이 탈 겁니다.”

몽펠리에 가주가 술냄새가 진동하는 집무실에사 아크온을 마주했다. 테이블은 새로운 것이 놓여 있었고, 큰 오크통 또한 새것이었다.

가주가 웃었다.

“내가 처음으로 가주가 되었을 때, 방계들은 정말 말을 안 들었지. 괜히 너희 할아버지 이름을 대면서 말이야.”

“제가 가주가 되어도 그렇게 할 것 같아 보입니까?”

거기에 대해서 아크온은 답을 얻지 못했다. 대신 술 바가지가 테이블에 얹어졌다.

“남부에서 배워온 것을 그대로 쓰지 마라. 북부의 정서는 완전히 다르다.”

“예.”

아크온은 남부의 좋은 것을 많이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장점은 북부에서는 단점이 될 수 있었다.

“가주로서의 내 영향력이 하루 만에 너에게 갈 수는 없을 거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중에 가서 방계들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화내지 마라. 내가 죽고 나서야 나만큼 가주의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나도 그러했고.”

“명심하겠습니다.”

자식한테도 권력은 양보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북부는 조금 달랐다. 큰 전쟁이나 큰 토벌이 일어나면 한순간에 가주조차도 객사하기 마련이었다. 여러모로 단명할 수 있는 위험이 있었기에 장성한 아들을 놔두고 계속 가주를 하는 일은 잘 없었다.

적당한 일에는 아예 나서지 않는 것도 자식들에게 경험을 주기 위함이었다.

“본샤프 가문은 무슨 일이 있어도 가주만 처벌하고, 나머지를 살려주어라. 가풍 자체가 뛰어난 가문이다. 너한테는 모두 똑같겠지만, 하는 일은 똑같아도 하는 방식은 다를 것이다.”

〈8인의 위원회〉에 속해있는 가문 하나를 콕 짚어서 말했다.

“가풍 하나로 어떻게 썩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농가조차도 잘 받은 가풍 하나로 오랫동안 좋은 가정을 꾸릴 수 있다.”

“사람의 됨됨이보다 더 앞서 봐야 합니까?”

“정 의심된다면, 깊이 봐두던가.”

“예.”

가주는 9족은 멸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남들은 실패하면 인생이 끝나지만 아크온은 아니었다. 아직 자신이 살아있기 때문에 큰 실수 속에서 엄청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몇몇 조언을 했지만 아크온이 잔소리로 듣자 가주는 더는 말을 않고, 술만 서로 대작했다.

때가 되자 아크온이 일어나서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전과는 다르게 문을 부수지는 않았다.

“다른 방계들을 불러와라.”

아크온의 말에 사람이 풀어졌다. 방계 귀족들은 누구 할 것도 없이 빠르게 대전으로 모였다. 그들은 상석에 앉아있는 아크온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이런 상황에 아무런 축하도 없이 가주직에 올라서?’

‘이번 기회로 뭔가를 할 생각이구나.’

‘8인의 원로회니 뭐니 떠들더니, 피바람이 불지도 모르겠는데.’

그게 아니면 직계의 갑작스러운 행보는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이해할 수 없어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방계들이었다.

〈버팔로 나이트〉는 그런 명성과 힘이 있었다. 몽펠리에 가문에 반대하는 것과 거역하는 것은 엄연히 달랐다. 가주라는 직함을 양도하는 것에 있어서 방계의 입김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도 같았다.

물론 자식들에게 들러붙어서 힘을 보태주는 것은 또 다른 말이었다.

“갑작스러울 것이다.”

“결코 아닙니다. 가주님.”

〈보담 오프힐〉이 입을 열며 간사한 말을 꺼냈다. 완전히 복종한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아크온이 비밀 모임에 대해서 확실하게 언급했기 때문이다.

‘살아야 한다.’

그런 속내를 모를 아크온이 아니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얻은 정보를 하나씩 공개해나갔다. 사이사이마다 변명이 있었지만, 그 증거에 대한 진실성을 의심하는 자는 없었다.

아크온 몽펠리에라는 이름값이 증거 그 자체였기 때문이고, 그에 대해 의심한다는 것은 아크온이 거짓말쟁이이며 사기꾼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대신 자기변명을 하는 것에는 매우 적극적이었다.

“노예를 남부 귀족들에게 상납한 것은 맞지만, 그들은 회복 물약에 대한 새로운 매커니즘을 제시하였습니다. 그 기술을 받아내어서 〈금속막 회복물약〉이 만들어졌습니다.”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아크온은 그것을 하나하나 논파해나갔다.

“내가 밖에 돈다고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를 줄 안다면 큰 오산이다. 금속막 회복물약을 개발한 〈후이란 언드링킹〉을 지금 당장 불러와 볼까?”

“제가 뭔가 잘 못 알고 있었던 듯합니다. 죄송합니다.”

서서히 안색이 안 좋아지며 땀을 닦기 바빠지자 아크온이 호통을 쳤다.

“지금 당장 8가문의 귀족들을 지하감옥에 보내고, 식솔들을 포승하여 감옥에 가두어라. 재산 또한 압수해라.”

“젝팔론 몽펠리에 님과 말씀을 나누어 보십시오! 모두 이해해주실 겁니다!”

“지금의 가주는 나다!”

병사들은 그렇게 귀족들이 변호하는 사이에도 냉큼 뛰어나서 묶었다. 가주로서의 위엄이 아니라, 아크온으로서의 카리스마 때문에 칼같이 행동했다.

“크윽!”

8가문이 모조리 포승 되었다. 일단은 본샤프 가문 또한 예외 없이 끌려갔다. 병사들이 대전의 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멀리서 웅장하고 긴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데에에이이으으으으응.

벌떡!

귀족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아크온은 투구를 부관에게서 받아 쓰면서 소리 질렀다.

“전투 준비!”

“전투 준비!”

귀족들임에도 모두가 무인인 북부답게 일사불란하게 대전을 당장 빠져나갔다. 끌려가는 8인의 위원회의 귀족들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아크온을 봤지만 그는 무심하게 그들을 지나쳤다.

돌발 상황이었지만, 꼼짝없이 지하 감옥으로 가야 했다.

번쩍!

영주성을 두르고 있는 내성벽과 함께 붙어있는 첨탑에서 푸른 마력의 빛이 번쩍이면서 마력이 넘실거렸다. 아크온은 황소처럼 뛰어가서 단번에 내성문의 위에 마련된 마법 장치로 향했다.

“어디의 깃발이냐!”

“길게이 플래티넘 왕자의 깃발입니다!”

이미 내성을 지키는 기사가 대답했다. 내성문의 위에 설치된 관측 마법을 통해서 상대를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밤이었지만 마법 시야로 보이는 것이라 확연하게 볼 수 있었다.

그것은 기사단이었다. 굉장히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는데, 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횃불 하나 켜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법 첨탑에서 빛이 뻗어 나가서 그들을 비추었다.

환하게 300명의 기사들이 정렬해있었는데, 괴이하게도 그 환한 빛의 원에 검은 점 하나가 있었다.

마법 저항력을 지닌 드낙이었다.

빛이라고 해도 마력으로 만든 초월의 힘이었고, 당연히 드낙을 비출 수가 없었다. 언뜻언뜻 푸른 빛무리가 분해되면서 드낙의 음영을 만들어냈지만 그게 끝이었다.

‘소름이 돋는군.’

그 기괴한 현상을 눈으로 보자 아크온이 침을 삼켰다. 전신갑주를 입은 상태에서 가장 난적이었다. 마법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크온은 내성문에서 내려와서 외성문으로 향했다. 향하면서 생각을 빠르게 하였다.

‘길게이 플래티넘을 끌어들였다?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는 하고 있으니. 더 받아내겠다는 뜻인가. 실로 세속적이다. 드낙, 이 친구야. 백금 왕가는 그저 독일 뿐인데.’

코앞의 이익에 눈이 벌겋게 된 드낙이 눈에 선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뀌는 건 없다. 그것보다 도대체 프론 사일런스는 뭘 하는 거냐? 저들은 와놓고, 그는 오지 않는다니!”

아크온이 역정을 냈다. 조금이라도 수싸움에서 우위를 가지려면 전령이라도 먼저 오는 게 옳았다. 대치하던 병사들도 보이지 않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아주 막 나가는군.’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머리가 돌아버린 것이 분명했다. 프론 사일런스는 드낙과 길게이 왕자와 함께 외성문을 통과했다. 그 모습을 본 아크온이 흉흉한 기세를 풍겼다.

‘남부물을 아주 제대로 먹고 왔구나.’

딱 봐도 자신의 가문으로는 수습을 못 할 것 같으니, 아예 플래티넘 쪽에 붙은 것 같았다. 길게이에게는 쓰고 버려도 당장 쓸만하니 받아들였을 것이다. 기습적인 방문을 하는 것만으로도 상대에게 큰 압박을 줄 수 있었다.

‘왕자와 모종의 거래관계를 성사시켰군. 그러지 않으면 몽펠리에를 버리는 선택을 할 수 없다.’

친지의 생존, 장원을 받는 다던지, 미래를 약속받았을 터였다.

3왕자가 망명했다는 것은 아직 북부에 전해지지 않았다. 남서부에서 활동을 하다가 넘어간 것이었기에 1왕자조차도 길게이의 빠른 행동력 때문에 알아차리지 못했다.

“프론 사일런스. 정녕 미친 것이냐?”

아크온이 대놓고 그를 비난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는 길게이의 배경을 믿고 당당하게 나섰다.

“전쟁의 책임을 방계에게 지게 하는 가문이 옳은 가문입니까? 남작이라는 작위가 아깝습니다.”

그 말에 아크온이 이를 갈면서 한 걸음 나섰다. 누구도 말리지 않는 모습에 프론이 뒤늦게 뒷걸음질을 쳤다.

“이거, 시작부터 살벌하군. 나는 보이지도 않는건가? 젝팔론 남작은 어디가고?”

“왕자 전하. 오늘 제가 가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 말에 길게이가 웃으면서 박수를 쳤다.

“이거 환영할 만한 일이로군! 아크온 남작! 곧 수도도 한 번 방문해야지.”

“예. 따로 시간을 내겠습니다.”

태평한 프론의 모습을 곁눈질로 보면서 아크온이 칼을 갈았다.

‘모든 걸 이야기했겠어.’

물론 아크온이 작당하던 방계를 모조리 감금시킨 것은 모를 것이다. 이를 잘 숨기고, 상대가 어떻게 나오는지를 먼저 알아야 했다.

그들은 대로를 따라서 그대로 대전으로 향했다. 대부분의 방계는 따라오지 않은 모습에 프론이 속닥거리면서 길게이에게 말했다. 내성문에서 길게이가 걸음을 멈추고 아크온에게 물었다.

“왕자인 내가 왔는데, 다른 가문들은 다 어디에 있는가? 방계라고는 해도 귀족이지 않나.”

“제 아버지이신 젝팔론 경이 홧병이 도져서 혼란스러운 상황이라서 그렇습니다.”

“그래? 먼저 그곳으로 가봐야 할 것 같은데.”

아크온이 단칼이 잘랐다.

“쓰러지실지도 모릅니다.”

“그럴지도 모르겠어. 하하하!”

길게이는 거침없이 행동했다. 자신이 드낙의 행보에 동참하고 있었기에 엄청난 주도권과 추진력을 손에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기분이구나.’

압도적인 힘! 그저 그 힘이 향하는 곳에 편승하였을 뿐인데도, 상쾌감이 느껴졌다.

드낙과 아크온은 별말을 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었고, 무엇보다 서로 확실하게 의견을 교환했기 때문이다.

‘몽펠리에는 명예.’

‘불파겐은 돈.’

그게 전부였다.

아크온과 그 측근 귀족 셋이 대전에 앉았고, 길게이와 드낙, 프론이 자리에 앉았다. 태세전환을 한 프론은 대놓고 길게이의 옆에 앉았다.

“몽펠리에와 불파겐의 영지전에 왜 백금 왕가가 끼어든 겁니까?”

“안 될 이유라도 있나? 불파겐 자작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못할게 무엇있는가. 나 또한 레이시아의 오빠되는 사람인데.”

레이시아 공주를 들먹거렸다. 효과는 굉장했다. 지금 이 문제도 사실 외척이 벌인 짓거리였기 때문이다.

“프론 경은 아예 왕자 전하께 충성을 맹세했는가?”

“그건 가주님에게 달려있습니다.”

아크온이 그 말에 이를 드러내며 웃으며 드낙에게로 눈을 돌렸다.

“몽펠리에는 패배를 인정하겠소. 어느 정도를 원하시오?”

드낙은 약속된 배상금을 말했다.

“제국 전신갑주의 제공. 10년간 철괴 100만 괴를 주고 못해도 1년마다 최소 5만괴 이상 보낼 것. 이번 전쟁의 주전파(主戰派)를 모두 불파겐의 이름으로 판결하게 해주시오.”

그 말에 아크온이 몇몇 조건을 달았다.

“제국 전신갑주는 생산이 되는 데로 똑같은 수량으로 나누어서 보내드리도록 하겠소. 이를 관리하기 위해서 신뢰 있는 문인을 보내주시오.”

“좋소.”

막힘없이 진행하는 모습에 프론 사일런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손에 쥔 주먹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자신이 이야기했던 것보다 낮은 배상금임을 드낙이 입에 내뱉는 것은 물론 아크온 또한 척척 드낙에게 좋은 소리를 했기 때문이다.

부들부들 떠는 모습을 보며 길게이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계획된 것인지 모르겠구나. 여기서는 웅크려서 드낙과 함께 종군(從軍)했다는 이득만 취해야겠다.’

상대의 패도 모른채 도박장에 들어가는 짓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었다. 낌새를 알아차렸을 때, 빼는게 최고였다.

당연히 길게이가 프론에게 말했던 온갖 약속들은 헛것이 되어버렸다. 웅크린다는 것은 말 그대로 그러한 것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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