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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가 항복을 하고, 성을 포기했다는 소식이 몽펠리에 성을 강타했다.
“이게 대체, 이게 대체! 말도 안 되는!”
〈프론 사일런스〉가 고함을 내질렀다. 믿을 수 없는 패전이었기 때문이다.
기사만 60명이었다. 보통 기사도 아니다.
〈북부 기사〉였다. 용맹함이라면 용맹함. 노련하고 사악한 몬스터와 야수를 상대하기에 기감도 높고, 전투력의 모든 능력치에서 우월함을 지닌 인간이 검 한 번 휘두르지 못하고 줄초상 당했다.
남부 기사 100명을 죽인 무력을 무시한 결과? 천만의 말씀이었다. 북부 기사와 남부 기사의 교전비율은 열세 속에서도 1:3은 나오고, 전세가 비슷하면 1:5까지 껑충 뛰었다.
물론 이 교전비율은 전술 전략 없이 무식하게 붙었을 때의 수치였다. 당연히 전쟁에서는 또 달랐다. 변수가 엄청나게 많기 때문이었다.
“으으으···”
숙련병이 수백 병 죽임을 당했다. 엄청난 전력 누수였다.
“단 한 명이! 단 한 명에게 성까지 내주었다고!!!!!”
양피지를 쥐어뜯었다. 북부 귀족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무인다운 힘이 있었기에 가죽이 그대로 찢어졌다.
“허억! 헉!”
거세게 숨을 쉰 프론 경이 그대로 의자에 앉았다. 엄청난 탈력감이 엄습했다. 손을 떨면서 물을 왈칵왈칵 마셨다.
다른 곳에서도 당연히 난리였다.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많은 시민들이 웅성거렸고, 몇몇 떠들기 좋아하는 자들은 교차되는 길목마다 단상을 세워놓고 이야기하길 즐겼다.
“프론 사일런스는 대가를 치러야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다섯가지의 이유를 들어서 이를 말할 수 있는데···”
노예가 합법화된 곳이었기에 그런 행위가 가능했다.
“고위 기사가 없었던 것이 패착으로 이어졌을 리는 없는데···”
“병사가 그렇게 많은데 꼬랑지를 말고 도망쳤다니. 북부의 가문으로써 굉장한 수치요! 대체 기사와 병사들의 상태가 그렇게나 망가질 수 있소!”
그 속에서 내성의 대전에서는 다시 한 번 방계들이 모였다. 대전에는 가주를 제외하고는 직계가 없었는데, 아크온은 아직도 농성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버팔로 나이트가 아니면 엄청난 배상금을 낼 것 같은데.”
“오랜만의 영지전이지만 패배한 건 거의 처음이지 않나.”
“걱정이야, 세금이 오르면 안 될 텐데···”
그 농성은 당연히 패전으로 힘을 얻고 있었고, 많은 이들이 아크온이 움직이길 기대하고 있었다. 드낙 불파겐과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탕탕!
나무판을 망치로 치며 문인이 대전에서 웅성거리는 귀족들을 조용히 시켰다.
“프론 경. 할 말이 있는가?”
몽펠리에 가주, 젝팔론 몽펠리에의 말에 프론 사일런스는 당연히 할 말이 없었다. 패전의 책임을 돌리기에는 드낙이 가진 것이라곤 일신의 몸뚱어리뿐이라고 할 정도였다.
“없습니다. 저를 사신으로 보내주십시오. 전쟁에 참가한 가문들을 통해서 수습해보겠습니다.”
대신 몽펠리에 가문에 힘을 빌리지 않고, 방계의 힘으로만 배상금을 지급할 생각을 가졌다. 그것으로 벌을 받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프론은 대단히 저자세로 나왔다. 많은 눈이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몽펠리에 가주는 사람을 구함에 있어서 방계가 손을 댄 더러운 돈을 많이 썼기 때문에 자신을 아직 버리지 못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남부의 자금력과 인력을 빨아들이는 데에 있어서 〈북부 가문〉인 몽펠리에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었다. 그리한다면 박쥐처럼 굴어서 몽펠리에의 도움 없이는 북부 귀족들과 좋은 사이가 될 수 없는 파이룬과 똑같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8개의 가문이 가주의 손에 의해서 남부과 결탁했고, 그것은 세월이 흐르면서 오물이 묻은 손이 되었다.
남부의 세속적이고, 탈귀족적이며 왕권중심적인 사회는 북부에 있어서 독밖에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밀모임 〈8인 원로회〉가 남부 때문에 타락했다면, 〈아크온 몽펠리에〉는 남부 때문에 더욱 청렴해진 차이가 있었다.
같은 환경 속에서 다른 판단이 이루어지는 것은 주변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일이었기에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다른 가문들은 동의하는가?”
오프힐, 식스헐, 본샤프, 라스무센, 미캘슨, 아벨센, 지브 가문의 가주들이 하나씩 일어나서 대답하며 다시 앉았다. 이미 이야기가 모두 이루어진 것처럼 기민하고, 잡음이 하나 없었다.
“좋다. 불파겐 자작과 협상을 맺어라.”
몽펠리에 가주는 그렇게 말하면서 좌중을 둘러보았다. 보급을 책임졌던 가문들은 살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식들을 기사로 교육하고, 〈기사 마차〉를 제작하는 것만으로도 돈이 후달렸기 때문이다.
적금처럼 모아둔 식량을 통해서 보급에 뛰어들었고, 전쟁에서 패배했으니 적금이 날아간 셈이었지만 배상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에 크게 안심하였다.
“불파겐 자작은 몬스터를 상대로 자신이 고위 기사임을 입증했고, 허접한 남부 기사 100명을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두어 보였다. 이번에는 북부 기사는 물론이고 4천의 군대를 상대했음에도 승리했다.”
끔찍한 패배였다. 하지만 몽펠리에 또한 모든 힘을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완전한 패배를 겪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승리한 것도 아니다. 군대를 지휘한 이들을 벌하고 싶지만 이미 죄다 목이 달아났으니 벌할 기사도 없다. 여기서 끝내겠다.”
부서지면 큰일이 나지만, 남부 왕국이 사용하는 〈마법 마차〉처럼 기사 마차 또한 존재했다.
마법이 크게 사용되지 않은 전쟁이었다.
몽펠리에 가주의 눈이 대전의 입구로 향했다. 아크온은 결국 나타나지 않았다.
‘대체 언제 일어날 셈이냐.’
보통이라면 지금 떨쳐 일어나 노도처럼 뛰어야 했는데, 타이밍이 늦었다. 남들이 알아차리기 전에 가주는 그대로 회의를 마쳤다.
10일 만에 〈다섯 쇠뇌 요새〉에 도착한 프론 사일런스와 다른 가문의 몇몇 가주들은 성을 놔두고 진지를 마련한 곳에 들어섰다.
패배한 병사들이었지만 도망치면서도 용맹하게 싸울 수 있는 것이 북부의 병사들이었기에 군율 자체는 지켜지고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명에게 패배했다는 것이 지워지지 않았기에 범같은 기세가 줄어든 것이 절로 보였다.
‘중대형 몬스터를 상대함에도 물러서지 않는 강병이···’
북부의 병사 훈련 프로그램은 정형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딜 가든 비슷비슷했다. 복무한 환경에 따라서 조금조금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오우거를 상대함에도 그냥 밟히더라도 자리를 고수하는 것이 북부 병사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자들이 기세가 누그러질 정도였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럴 만도 하지. 상대는 오우거도 아니라 인간이었으니까.’
다른 종족은 눈으로 스펙 차이가 확 나는 데 반하여 드낙은 자신들과 똑같은 인간이었기에 파급효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대단했다. 나랑 똑같이 놀기 바빴던 친구가 알고 보니 네오르네상스 전형으로 서울대를 가는 걸 보는 기분보다 더했다.
‘봐도 봐도 믿기지 않는다. 첨탑마저 하나가 무너져 있다니.’
같은 급인 줄 알았는데, 홀로 요새를 점령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 패배감은 너무나도 컸다. 제대로 규율을 지키는 것만 해도 대단했다.
다그닥!
곧바로 말을 탄 전령이 백기를 들고 성으로 향했다. 이미 그곳에는 이실레아 경을 비롯한 기병 50명이 모두 들어가 있어서 성문에 경비를 세워놓고 있었다.
싸우면 안 되는 상황이었기에 이실레아는 그냥 싸움을 하지 않았다. 야영을 하는 척하며 불을 지르며 기병 전력을 묶어둔 것이 전부였기에 전쟁을 했다기보다는 캠핑하는 것과 비슷했다.
10명의 수행원을 두고 야지에서 얼굴을 마주했다.
드낙이 투구를 벗었다. 앳되어 보이는 얼굴이 절로 보이자 프론은 속이 뒤틀리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어린 자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지독한 질투심, 시기심이 튀어나왔지만 살아온 경험으로 목구멍 밑으로 집어넣었다.
“불파겐 자작을 뵙습니다.”
“반갑다. 어디의 누구냐?”
드낙은 대단히 무례하게 나왔다. 하지만 프론은 결코 딴지를 걸 수 없었다.
“저는 프론 사일런스라고 합니다.”
“패배했으면 몽펠리에 가주가 와야지, 왜 자네가 와서 나와 협상하려 하는가? 파이룬 가문조차도 가주가 왔거늘. 방계 따위가 자리를 착각한 것 아닌가?”
방계라는 말에 속에서 천불이 났다. 하지만 프론은 은은하게 웃었다. 남부의 여력을 몽펠리에 가문에게 이어주게 한 다리 역할을 한 것이 그였다. 보통 북부 귀족과는 달랐다.
“이번 싸움에는 방계 가문만 투입되었습니다.”
“아, 그래? 병사들의 숫자와 기사를 봤을 때, 총력전인 줄 알았는데.”
“총력전이라면 기사 마차가 많이 동원되었겠지요.”
서로 바짝 날이 섰다. 하지만 이내 프론이 목례를 하며 말했다.
“몽펠리에는 했던 모든 일에 대해서 사죄를 드리고 싶어 합니다. 그 사죄의 의미로 무엇이든지 요구하십시오.”
“뭘 줄 수 있는가.”
드낙은 당연히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내가 바보도 아니고.’
선제시는 어느 곳에서나 이루어지는 갑질이었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프론이 드낙의 말에 앙심을 품었다. 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건 드낙의 비위를 맞춰주는 일뿐이었다.
“밀 100만 포대에 철 20만 괴는 어떻습니까.”
드낙이 눈을 조금 크게 떴다. 시작부터 강하게 불렀기 때문이다.
“아주 큰 각오를 했나 보네. 처음부터 그렇게 크게 부를 줄은 몰랐다.”
“어떻습니까? 파이룬 가문보다 더 많이 주는 것일 겁니다.”
파이룬 가문의 배상금을 추측하며 프론 경이 말하였다. 하지만 드낙은 깊은 고민을 하는 척했다.
“아쉽지만, 내가 원하는 대답은 아닌 것 같소. 삼일 뒤에 봅시다.”
“예?”
“마음에 안 든다니까.”
드낙이 그대로 몸을 돌리며 말에 올라탔다. 수행원들도 올라탔고, 이실레아 또한 발룬에게로 향했다. 다른 말들과는 다르게 발룬은 이실레아가 탈 기색을 보이자 냉큼 다리를 굽혀서 땅에 배를 깔고 앉았다.
“쯧쯧. 저렇게 여자만 밝혀서야.”
드낙이 그걸 보고 발룬을 나무랐다. 하지만 발룬은 귀에 똥이라도 박아넣었는지 그를 쳐다도 보지 않았다.
총 3차례, 9일 동안 협상이 진행됐다. 프론은 그때마다 온갖 말을 해대었다.
“불파겐 자작! 밀 100만에 철괴 50만이오! 더 이상은 안 되오. 아무것도 없소!”
밀의 양을 더 늘리는 짓은 하지 못했다. 그렇게 된다면 끔찍한 후폭풍이 불어왔기 때문이다. 대신 철의 양을 늘렸다. 이것 또한 미래를 생각하면 망하는 길로 보였지만 밀값 폭등보다는 나아 보이는 게 현실이었다.
물론 드낙은 알 바 아니었다.
‘아크온 이 녀석은 왜 안 오는 거야? 어디까지 해줘야 해?’
협상하면서 전리품을 올려받고, 동시에 아크온을 기다렸지만,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최측근에게서 받은 양피지 때문에 드낙은 보름을 그렇게 보냈다.
“정말로 이번이 마지막 제의요. 이것 또한 받지 않는다면, 몽펠리에 성으로 쳐들어와서 가주를 만나시오.”
“어느 정도 생각하고 있소?”
“밀 110만 포대에 철 70만 괴에 금궤를 3궤 드리겠소. 하나의 금궤당 금화 천닢은 들어있소.”
드낙이 턱을 두드렸다.
“몽펠리에 가주는 만나는 게 더 빠를 것 같은데.”
“자작. 대체 어디까지 원하시오? 전쟁에서 이긴다 한들, 이 땅을 관리조차 못 하는 것이 현실 아닌가. 이걸로 만족하는 게 어떻소. 이게 정말 최선이오.”
프론은 이 협상을 이끌지 못하면 다른 벌을 받아야 했다. 패전을 했으므로 자연스럽게 가주의 입김보다는 아크온의 입김이 강해졌고, 그 벌은 아크온이 주는 벌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건 무조건 피해야 한다.’
부우우우우웅!!!
그때 매우 낮은 뿔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드낙은 몽펠리에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소리가 그 반대편임을 알고 다시 고개를 반대편으로 옮겼다.
“기사단?”
프론 사일런스가 멍청한 소리를 냈다.
“길게이 플래티넘.”
드낙은 길게이 플래티넘의 깃발을 알아보고 소리를 냈고, 그 때문에 프론의 어깨가 들썩했다. 그리고 당장 소리쳤다.
“여기서 두 배! 두 배를 주겠소.”
“진정하게. 프론 경. 아무래도 새로운 손님이 온 것 같은데. 내일 이야기를 마저 해야겠다.”
“세 배를 드리겠소. 세 배! 철 210만 괴! 밀 330만 포대!!! 전신갑주 또한 약조하겠소. 몇 벌을 주면 되겠소? 10벌 당 6벌? 8벌?”
“그만하라니까. 말귀를 못 알아먹나?”
드낙이 기세를 뿜고 나서야 프론이 입을 다물었다.
“이실레아 경! 나는 성으로 돌아갈 테니, 나머지는 그대가 알아서 하게.”
“알겠습니다.”
이실레아는 도렌을 드낙과 함께 가도록 명령했고, 4명의 기병을 이끌고 〈불릿 발레아르〉가 이끄는 볼레티안 기사단 300명을 만나러 향했다. 용병들은 기사단의 보급을 맡고 있었기에 느려서 함께 도착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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