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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스 사일런스〉의 암살 소식은 기사들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암살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있는 일이었다.
남부 왕국의 정규병을 상대하면서 정공법을 선택하는 것은 실로 어리석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물러섬이 없었다.
소속감이 대단할뿐더러, 많은 면에서 정신교육이 이루어져 있었는데, 가히 세뇌와 같았다.
자연스럽게 머리를 치는 게 이득일 정도였다.
평범한 시민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독살과 암살이 잘 이루어지는 것이 귀족 사회였다. 땅을 두고 싸움에서는 사실 형과 동생 사이라는 것도 무색했다.
겉으로는 명예를 숭상해도 뒤로는 온갖 이권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이 귀족의 모습이고, 본질이었다. 그 모순을 모른다면 귀족 계급을 안다고 할 수 없었다.
〈길레아 식스헐〉이 기사 셋을 대동하고 사건 현장에 도착했다. 이미 많은 이들이 모여있었다.
흰 천에 덮인 시신은 이미 관에 들어가 있었다.
“왜 이렇게 늦게 오셨소?”
〈보담 오프힐〉이 다가왔다. 사일런스 가문의 총지휘관급의 기사가 죽었으니, 자연스럽게 오프힐 가문의 가장 높은 서열의 기사가 군을 이끌게 될 것이기에 먼저 말을 거는 것은 결코 이상하지 않았다.
“한 놈이 어디를 갔는지 보이지가 않아서 말이오.”
“혹시···”
보담 경이 의심하자 길레아 경이 손사래를 쳤다.
“술에 절어있을 것이오. 요즘 많이 심란한 놈인데, 실력이 좋아서 데리고 왔소.”
“그렇게 말한다면야, 그래도 병사를 통해서 찾기는 하는 게 좋지 않소?”
“이미 그렇게 조처를 해놨소. 근데, 트로스 경은 어떻게?”
트로스 경의 죽음에 관해서 물었다.
“실력이 뛰어난 놈에게 죽었소. 불파겐에서 고용한 암살자겠지.”
“···하지만 이곳에 자작이 와있지 않소?”
“그렇게 추정될 뿐이지 않은가. 그리고 지금까지 걸어온 행보를 보면 암살을 할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네. 또 한다고 해도 기사가 암살자에 어울리나?”
길레가 경이 절로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암살과는 관련 없는 근육이 많이 단련되고, 몸집이 큰 것이 기사의 몸이었다. 암살에 최적화되기는커녕 표적이 되기 쉬운 몸집을 지닌 게 보통이었다.
키가 작더라도 체중을 키우는 것이 기사의 소양이었다. 절로 고개가 저어지는 것이 당연했다.
“목이 뚫려있고, 두개골 또한 둔기에 맞은 것처럼 부서졌으니. 자네도 조심하게.”
“흔적이라고 할 만한 것은 나왔소?”
“전혀. 그림자 같은 놈이고, 그러므로 잡는 게 힘들 것으로 보이네. 절대 혼자 다니지 말게나.”
이른 오전부터 병사들이 더욱 날이 선 채로 순찰을 하였다.
“으스스한데.”
〈다섯 쇠뇌 요새〉는 오직 병사들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시민을 대피시킬 공간은 마련되어있었지만, 이번 경우에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드낙이 약탈을 하지 않아서 피난민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하실 시민 대피소〉를 횃불을 든 채로 순찰하는 병사가 눈알을 데룩데룩 굴렸다. 어두컴컴하고, 기둥을 제외하고는 탁 트인 곳이었다. 최대한 많이 수용하기 위해서 벽으로 방을 나누지 않았다.
그 덕에 횃불의 불빛이 비추어지는 거리는 형편없이 좁았다. 그리고 드낙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한 번은 온다고 생각했다.’
조용히 횃불의 불빛이 기둥을 비추면서 생기는 그림자에 따라서 소리 없이 느긋하게 걸었다. 코앞에서 움직이는데도 병사들은 드낙을 전혀 보지 못했다.
횃불의 밝은 빛에 동공이 좁아졌고, 어둠을 더더욱 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후욱!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횃불이 일렁거렸지만 5명의 병사 중에 누구 하나 바람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콰득!
드낙의 몸통 박치기가 가장 후미에 있는 놈을 뒤에서 후려쳤고, 병사는 형편없이 앞으로 그대로 퉁겨지면서 다른 병사 하나와 뒤엉키면서 넘어졌다.
“적이다!”
나머지 3명의 정규병이 순식간에 대형을 이루었다. 방패를 든 이가 가장 자신만만하게 점프를 하면서 쓰러진 2명을 보호했고, 나머지 두 명 중에 장창을 든 이는 온 힘을 다해서 팔을 올려서 상단에서 휘둘렀다.
캉!
어둠 속에서 불똥이 튀었다. 검과 창이 부딪쳤다. 전신갑주를 입은 기사의 모습이 보였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훙훙훙!
나머지 한 명은 버클러와 한손 도끼를 들고 있었는데, 도끼를 집어넣고, 투척 도끼를 손에 쥐면서 엄지 그리고 검지와 중지를 이용해서 팽글팽글 투척 도끼를 돌리기 시작했다.
“빨리 일어나! 온다!!”
방패병이 자신이 들고 있는 횃불을 바닥에 던져버리고 숏소드를 뽑으려고 했다. 그 사이에 드낙이 달려들었다.
꽝!
드낙의 발차기가 방패를 두들겨 팼다. 아래를 팼는데, 힘이 어찌나 강한지 팔로 고정하고 있는 방패가 안으로 꺾이면서 다리를 후려쳤다.
“그윽!”
강철 부츠를 입었음에도 충격에 방패병이 인상을 찡그려지는 그 찰나의 순간에 옆에서 휘어진 롱소드의 끝이 투구를 때렸다.
“컥!”
머리통에 충격이 전해지면서 방패병의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정규병답게 방패를 직각으로 세워서 지팡이처럼 사용했다. 하지만 드낙이 몸으로 돌격하자 그대로 뒤로 나자빠졌다.
카가가각!
돌격하면서 방패병을 후려치는 드낙의 투구를 긁으면서 창이 지나갔다.
휘리릭!
동시에 투척 도끼가 드낙의 어깨를 노렸다. 방패병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함인지 오른쪽을 노렸다.
‘전우애가 참 대단하네.’
캉!
오른손에 쥐어진 롱소드에 허무하게 투척 도끼가 막혔다. 본래라면 하체를 노리는 것이 베스트다. 창으로 투구를 노렸기 때문이다.
촤아악!
쓰러진 방패병의 방어구와 투구 사이에 있는 목에 롱소드가 내려쳐 지며 피를 뿌렸다.
“우오오오오!!!!!!”
고꾸라진 병사 두 명이 황소처럼 고함을 지르며 드낙을 향해 덤벼들었다. 그중에 한 명은 조장이었는지 손에서 회복 물약을 꺼내서 목이 잘린 병사를 향해 유리병을 던졌다.
쨍그랑!
회복 물약이 스며들어 갔지만 살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드낙의 힘이 보통이 아니라서 목 대부분이 잘렸기 때문이었다.
“이야아아아!!!”
2명이 돌진하고, 뒤에서 장창이 크게 오른발을 뻗어 나갔다. 장창을 투척하려는지 자세가 무방비 그 자체였다. 다른 동료들을 믿고 있는 듯했다.
투척 도끼를 던진 병사는 어둠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우회하기 위함이었다. 달려나가면서 투구도 벗고, 상체를 보호하는 체인 메일을 벗으며 혁대까지 뛰어난 손놀림으로 떨어뜨렸다.
자연스럽게 속력이 기민해졌다.
“흐읍!”
버클러를 있는 힘껏 먼저 투척했다.
이 모든 과정이 단 한 순간에 이루어졌다. 그 어떤 환경에서도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는 것이 정규병들의 힘이기도 했다.
따다다당!
불똥이 순식간에 번쩍번쩍 거렸다. 그 어떤 공격도 드낙의 갑옷에 닿지 못했다. 하지만 드낙이 두 걸음 물러서도록 만들 수는 있었다.
휘익!
장창 투척은 회피를 해야 할 정도였다. 그만큼 단련에 단련을 거듭한 성인 남성이 모든 근육을 사용해서 2m가 넘는 장창을 정확하게 투척하는 것은 드낙에게도 위협적이었다.
퍼걱!
“급!”
내려치기 한 방에 병사의 투구가 함몰이 났다. 무릎부터 땅에 처박히면서 그다음에는 머리가 그대로 땅에 떨어졌다.
퍽!
“퀙!”
턱이 돌아가면서 그대로 병사가 힘을 잃었다. 이어지는 발차기에 목뼈가 분질러졌다.
“으그으으윽!!!”
심장에 검이 박힌 도끼를 든 병사가 롱소드를 강하게 움켜잡았다. 장창병이 도망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드낙이 발로 병사의 사타구니를 걷어찼다.
도끼수가 부르르 떨면서 무릎을 꿇었다. 드낙이 명치를 발로 차면서 검을 빼려고 했는데, 도끼수가 옆으로 픽 쓰러지면서 검 그립에 손가락을 넣으면서 강하게 움켜쥐었다.
‘이 새끼가.’
드낙이 쓰러진 도끼수를 발로 한 번 걷어찼다. 도끼수가 형편없이 옆으로 한 바퀴 굴려지며 자연스럽게 검이 몸에서 뽑혀졌다.
드낙은 서둘러 달려가서 도망치는 장창병의 뒤를 쳤다. 모든 장비를 버리면서까지 이곳에 드낙이 있다는 것을 알리려 한 장창병은 척추에 검이 박히면서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야 했다.
팡!
그는 검을 허공에 휘둘러서 이물질을 제거하고, 흰 손수건을 꺼내어서 닦았다. 세파리아스와는 다르게 조금 묻어나왔다.
소리 없이 드낙이 다른 곳으로 향했다. 이 살육의 현장은 15분도 안 되어서 다른 순찰을 하는 병사들에게 발각됐다. 하지만 그것이 신호탄처럼 다른 곳에서도 병사들이 죽기 시작했다.
‘다음은 무기고.’
드낙은 순찰을 하는 병사들을 염탐하면서 수많은 시설을 알아보았다.
〈전투요새〉답게 전쟁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어놓은 곳이 이곳이었다. 그 덕에 숨을 곳도 많았고, 길도 복잡했으며 수많은 창고가 존재했다.
그중에서도 드낙의 관심을 끈 것은 반지하에 통로가 일직선일 뿐인 무기와 방어구가 가득 들어있는 방들이 있는 곳이었다.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확실하게 보였기 때문에 무조건 들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초장에 그곳을 박살 내야 했다.
‘나중에는 오고 싶어도 못 오기 때문이지.’
드낙은 계단을 소리 없이 내려가다가 적당한 순간에 범처럼 뛰어들었다. 계단 아래에 있는 병사 하나가 단번에 고함을 질렀다.
“여기다아아!!!!”
병사는 검을 뽑지도 못하고 그대로 입을 쩍 벌린 채로 목이 달아났다. 투구를 쓴 머리가 그대로 떨어져 내렸고, 피가 솟구쳐올라 왔다.
설렁설렁 통로를 걸어 다니면서 눈만으로 이곳저곳을 살피던 병사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그중에 하나는 순식간에 뒤돌아서 내달렸다. 다른 곳에서 병사들을 데려오고 기사들에게 알리기 위함이었다.
18명에 달하는 병사들이 드낙에게 덤벼들었다.
“흐!”
드낙이 그런 병사들을 보며 자신감에 찬 웃음소리를 내며 내달렸다. 방패병이 세 명이 나란히 통로를 틀어막았다. 그들 사이로 창이 주르륵 튀어나왔고, 그사이에 병사들이 비집고 들어와서는 방패를 덧대고 검이나 도끼를 어깨에 걸쳤다.
어깨에 걸치면서 팔꿈치는 위로 최대한 크게 올렸다.
좁은 곳에서 순식간에 무기에 속력을 낼 수 있는 노하우였다. 높였던 팔꿈치를 강하게 내리면서 휘두르는 손이 있는 쪽으로 옆구리와 어깨를 기울이면 제법 강한 힘을 집어넣을 수 있는 방식이었다.
“상대는 불파겐이다! 뭘 하려고 하지 마라! 무조건 버틴다!”
베테랑 병사 하나가 고함을 질렀다. 그 소리는 드낙에게도 들려왔다.
그대로 뛰어들었다. 장창이 투구나 전신갑주를 두드려도 피해 하나 주지 못했고, 드낙의 롱소드가 자신의 몸을 정확하게 겨누며 진로를 방해하는 장창을 후려쳤다.
따당!
“끄윽!”
롱소드와 부딪친 장창이 방패와 부딪쳤고 순식간에 천장으로 튀어 올라왔다. 비현실적인 근력이었다.
꽝!
방패병 하나. 장창수 하나 그리고 도끼를 휘두를 준비를 하는 병사까지 셋이 드낙의 몸통 박치기 하나게 뒤로 넘어지거나 뒷걸음질 치면서 휘청거렸다.
“이런 미친!”
병사 중에 하나가 경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드낙의 겨드랑이에 창이 고정되었고, 드낙이 몸을 반대편으로 움직이자 장창을 움켜쥔 왼쪽이 뒤로 갔다. 자연스럽게 장창병이 창에 끌려 나왔다. 그것마저도 시간을 버텨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지 장창병은 오히려 드낙에게 몸통박치기를 했다.
“컥!”
내장이 뒤틀리는 느낌을 받으며 장창수가 튕겨 나갔는데, 머리채가 잡혀서 벽에 부딪혔다. 투구가 우그러들면서 끔찍한 소리를 냈다.
촤악!
정교한 검술에 목에서 피를 뿌리며 방패수가 왼손으로 목을 움켜잡으면서도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고개가 자연스럽게 아래로 숙여지는 것은 별수 없었고, 이어지는 드낙의 검에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우와아아아!!!!”
병사들은 하나같이 기세등등했다. 이것이 이기는 일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몽펠리에를 수호하는 자들이었다. 자부심이 실로 대단했다.
콰직!
도끼를 휘두르며 저항하며 오른팔이 잘려진 방패수를 지킬려고 버둥거리는 도끼 정예병의 팔뚝이 보호대와 함께 잘려지며 덜렁거렸다.
“그아아아아!!!!”
그럼에도 도끼수는 팔을 허우적거리면서 방패를 앞세우면서 어떻게든 드낙과 체중싸움을 하고 있는 방패수의 머리를 보호하려고 발악을 해대었다. 기어코 도끼수의 왼팔마저 날아가고, 눈이 롱소드의 끝에 뚫리고 나서야 마지막 남은 방패수가 죽었다.
그것이 끝이었다.
장창수는 드낙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못했고, 제대로된 저지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피를 뿌리며 죽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도망친 병사는 보고를 위해서 뛰어간 병사 하나 뿐이었다.
적극성을 띄지 않은 병사들은 조용한 피난처에서 합격술을 펼친 병사들보다 속수무책으로 죽었지만, 오히려 더 오래 버틸 수 있었다.
사람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18명이서 110초나 버텨내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이런 빌어먹을!”
〈베트린 아벨센〉이 기사 10명을 데리고 현장에 도착했지만 죽은 병사들뿐이었다.
철퍽.
한 곳에만 기이할 정도로 피웅덩이와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절로 기사들의 표정이 흉악하게 변했다. 이들의 저항이 어떠했는지는 시체만 봐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이한 고양감이 그들을 휘감았다.
“병사들의 상태를 확인하라!”
서둘러 횃불로 반지하를 밝히면서 병사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트롤이랑 싸우기라도 한 것인가?’
머리 통째로 투구와 함께 함몰이 된 병사를 보며 베트린 경이 기괴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기술로 죽인게 아니다.’
단순한 힘에 박살이 나있었다.
========== 작품 후기 ==========
6245자
평추코! 다양한 의견추!
오늘도 장내기능교육 받으러 갑니다. 월요일···ㅎㅎ···2연참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