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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443화 (442/1,239)

443 <-- 어둠 -->

몽펠리에의 간악한 8가문의 수장들은 당연히 출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가진 것이 많았고, 죽기 싫었다. 십여 명의 미녀들에게 둘러싸여서 가슴을 움켜쥐는 욕망의 삶을 끝내고 싶지 않았다.

천년만년 최대한 오랫동안 살고 싶은 것이 〈프론 사일런스〉였고, 타락한 〈8인의 원로회〉였다. 비밀 모임이었기에 철저하게 가려져 있었지만, 안에서 단단히 결집하였다고, 밖에서 은근히 소문이 안 날리가 없었다.

굴뚝에서 연기가 나면 장작을 태우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몽펠리에의 현 가주는 그것을 필요악으로 보았지만, 아크온은 그러지 못했다.

4천의 군세를 이끄는 60명의 기사들은 거침없이 몽펠리에 영지의 동남쪽의 전투 요새에 결집했다.

몬스터와 야수가 씨가 말려진 제국의 전투요새가 다른 지성종족과의 전쟁을 대비한 것이라면, 남부왕국의 전투요새는 대부분이 몬스터를 대비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드낙과 상성이 좋지 않았다.

〈다섯 쇠뇌 요새〉는 내성지역에 첨탑이 다섯 개가 있었고, 마법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공성 쇠뇌를 추격 발사하는 물건이었다. 명중률은 중대형을 상대로는 좋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드낙은 이곳을 공략하지 않았다. 적병의 숫자가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나 반듯한 평야로 이루어진 곳이라서 한 번 잡히면 그대로 4천명을 내리 썰어야 했다. 드낙은 그런 자신이 없었다.

카이야를 통해서 대략적인 규모를 예상하고, 어두컴컴한 밤에 요새를 정찰하는 것이 전부였다.

워낙 은신능력이 좋아서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기에 기회는 불파겐 군대에게 있었다.

조용히 되돌아가서 작은 언덕을 돌았다. 그곳의 낮은 지반에 기병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상대는 순찰을 하여도 근접하지 않는다면 결코 모를 것이다. 곳곳에 나무들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공법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른 마을을 불태우고 다닌다면 적들은 분산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실레아가 정석을 논하였다.

적의 숫자가 많으면 전쟁터를 넓히면 된다. 간단한 이치였고, 드낙 또한 충분히 이해되는 바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드낙 또한 토치라이트의 기사에게서 큼직한 군사학책을 받았고, 열심히 읽었다. 속을 부글부글 끓게 하지만 세파리아스와의 모의 전술, 전략 논의는 군사학에 대한 재미까지 붙여주었고, 많은 조건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고려하도록 만들었다.

천재적인 전략가는 되지 못해도, 평범한 전술가는 될 수 있었다. 또한 드낙 스스로의 전력에 맞춤형 전술을 세파리아스에게서 사사받기도 하였다.

“그렇게 한다면, 전면전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

“이미 4천을 동원했습니다. 전면전이나 다름없습니다.”

그 말에 드낙이 무슨 자신감인지 부정했다.

“아니다. 일단은 그렇게 알고 있어라. 지금 말할 것은 아니다.”

이실레아는 그 이유를 말해주지 않자 기분이 조금 뒤틀렸지만 이내 몽펠리에의 자신감 넘치는 군대 투입에 대해서 한 마디했다.

“불파겐 영지가 멀리 있어서 아주 기고만장해있습니다.”

이실레아가 분개했다. 파이룬이나 토치라이트 령에서 한 달이나 가야지 호수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몽펠리에는 파이룬 영지를 거쳐야 했기에 더더욱 멀었다. 전쟁을 못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치고 들어오는 상대가 자원 소모가 심할 수밖에 없었다.

보급으로 승부가 갈린다는 말은 진리나 다름없었다.

“우린 50명에 불과하잖나. 경우가 다르지.”

“저희 영지에서 밀 한 포대 사려면 동화를 25닢은 줘야 합니다. 3배. 5배는 기본입니다.”

그 말에 드낙이 진절머리 쳤다.

‘그놈의 경제.’

자본주의 사회인 한국의 교육과정에서도 배우지 않은 것인데, 이 세계에서는 기본소양이었다. 시세를 모르는 지식인은 사람취급도 못 받을 정도였다.

돈 이야기가 나오면 드낙은 골이 아파졌다. 영주쯤 되면 떵떵거리면서 살 줄 알았더니, 결코 아니었다.

‘중세 영주들도 이랬을까?’

드낙은 결코 모를 것이다. 그들은 영지를 순회를 너무 많이 돌아서 과로사로 죽거나 단명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업무는 바로 재판이었다.

“영주님께서 생각하고 계신 것이 있습니까?”

“있다. 불파겐과의 전쟁이 무엇을 말하는지 보여줄 생각이다.”

아크온이 판을 깔아주었다. 드낙은 그곳으로 뛰어들 생각을 지녔다.

‘오만방자한 새끼들.’

불파겐이 언제까지 무력을 인간에게 들이밀지 모르는 소위 똑똑한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싶은 것이 드낙이었다.

‘부끄러워서라도 시끄럽게 떠들지 못하게 만들어주겠다.’

“무엇을 생각하시는 겁니까?”

기이한 기세를 뿜어내는 드낙에게 이실레아가 재차 물었다.

“군대도. 병사도. 보급도. 기사도. 마법사도. 전부 쓸모가 없다는 것을 보여줄 생각이다.”

그 싸움에는 명예도 없었고, 그저 피밖에 없는 부질없는 죽음의 벌판이 펼쳐질 것이다.

“몽펠리에의 마을을 돌면서 게릴라를 하는 척을 해라. 적당히 돈을 쥐여주고 수작질을 부리는 것처럼 행동해라. 경기병들이 덤벼들면 처리하고··· 음, 이길 수 있으면 싸우고, 아니면 도망치도록 해라.”

드낙은 상세하게 말을 하려다가 말을 바꾸었다. 굼벵이 앞에서 주름잡는 격이었기 때문이다.

“영주님께서는 어쩌실 생각입니까?”

“나도 홀로 게릴라를 펼치겠다. 병사만 죽여라. 시민들이 무슨 죄가 있느냐. 밀고하라면 하라고 말해라. 약탈은 금한다.”

북부는 중요한 사업 파트너였다. 드낙이 동부를 살찌울 때까지는 친구였다.

모순적이게도 죽이면서 친구 사이가 비틀릴 것을 걱정하는 격이었지만, 그랬기에 현실적이었고, 전쟁다웠다.

이실레아가 발룬에 올라타서 그대로 기수들을 이끌고 떠났다. 도렌은 드낙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내 거리가 멀어지면서 결국 고개를 돌렸다.

‘도렌이 걱정이다.’

무력이 높다고 해서 경험을 덮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실레아가 잘하겠지만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막말로 언제 죽을지 몰랐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아무리 잘 나도 아킬레스의 신화처럼 한 대 맞고 죽을 수 있었다.

드낙은 밤을 기다렸다.

〈다섯 쇠뇌 요새〉에는 제법 명성이 높은 점성술사가 있었다. 그는 이른 아침부터 귀족의 방문을 받아야 했다.

“끄응···죽겠다.”

고용인이 뜨거운 차를 내어주었고, 한 잔을 마시면서 눈을 길게 감았다가 뜨기를 반복했다.

“배트램님 괜찮으세요?”

“죽겠다. 정말 독특한 별 무리를 봤어. 괴이했고, 그래서 온종일 볼 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별이 있었다. 그중에는 성질이 동일한 것도 많았고, 성질은 같으면서도 가진 힘은 또 제각각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점성술사끼리의 정보 공유가 대단히 중요했다.

서로 아는 것을 공유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별의 움직임이 난장판이었다. 그리고 그런 별 무리의 지도를 최대한 최신식으로 제작하고 있는 자 중에 하나가 베트램이었다. 〈아스트로〉라는 성씨는 희생적인 점성술사에게 쥐여주는 귀중한 이름이었다.

“트로스 사일런스라고 한다. 점성술사.”

“베트램 아스트로라고 합니다.”

“아스트로? 제법 높은 위치의 점성술사가 왜 이런 곳에 있는가?”

“여기만큼 하늘이 맑은 지역이 없어서입니다.”

트로스 경은 더 묻지는 않았다. 사실 크게 궁금하지 않았다.

“오늘 이렇게 온 것은 이 주변에 떠돌고 있을 두 개의 별을 찾아주었으면 한다.”

트로스 경은 결코 드낙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드낙이 별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은 대단히 큰 이슈였고, 이것은 크게 기밀로 붙여졌다. 특히나 〈아스트로〉의 성씨를 지닌 점성술사는 별의 위치를 작업하기 때문에 공개적일 수 있었다.

숨겨야 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별입니까.”

“재앙을 부르고, 흉함을 대지에 비추고, 광기를 전해주며, 불운을 손아귀에 쥐여줌과 동시에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악재를 꽃잎처럼 뿌리는 별.”

“흉성(凶星)입니다.”

막힘없이 대답하자 트로스 경이 웃으며 짧게 대답했다.

“다른 하나는 살성(殺星)이다.”

그 말에 점성술사 베트램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뭔가 짚이는 별을 본 적이 있는가?”

“예, 예예. 하지만, 조금은 다릅니다. 기괴하다고 해야하나··· 전혀 일반적이지 않았습니다.”

“어떤 면에서 그러한가?”

베트램이 침을 삼키며 말할 준비를 하였다. 제법 길게 말해야 했다.

“그것이 별이라는건 지역을 돌아다닙니다. 작게는 마을에서 마을로 길게는 국가에서 국가로, 한 번 도달하면 웬만하면 다른 곳으로 잘 다니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다르다?”

“독특한 움직임을 보이는 별들이 있습니다.”

“어떤?”

트로스 경의 말에 베트램이 침착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왠지 모를 들뜬 모습이었다. 분명 트로스 경이 그 원인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 주변 평야에서 이리저리 움직였습니다. 밤마다 움직여서 확실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어딜? 어떻게? 움직였나?”

트로스가 크게 고양된 목소리로 말하였다. 왜냐하면 드낙이 움직인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이곳과 남쪽을 오고 갔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수고했네. 역시 아스트로야.”

다른 점성술사와는 다르게 별자리에 미친 자들다웠다. 일어서는 그를 향해서 베트램이 붙잡았다.

“더 볼 일이 있는가?”

“예. 단순히 두 개의 별만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총 4개의 별이 동시에 움직였습니다.”

그 말에 트로스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말도 안 되는 일을 들은 표정이었다.

“어떤 별인가?”

“하나는 모르겠고, 다른 하나는 예성이라 불리는 명예의 별입니다.”

“···그런가. 알겠네.”

“저··· 다른 말씀은 없습니까?”

“없네.”

트로스는 매정하게 대답하며 빠져나갔다. 베트램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별에 대한 지식은 많았지만 별을 소유했던 인간이 있던 기록과 지식은 강제적으로 빼앗겼기에 세파리아스에 대한 지식은 소거된 지 오래였다.

해가 저물자 병사들이 베트램이 거주하는 집에 들이닥쳤다.

“무슨 일입니까?”

“오늘 트로스 경이 말했던 별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관측을 해주셔야겠습니다.”

“해달라면 해주겠지만, 대체 무슨 일입니까?”

“그건 말해드릴 수 없소.”

베트램은 기분이 나빴지만 허둥지둥 밖으로 나가서 첨탑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지나칠 정도로 맑은 밤하늘이 펼쳐졌다.

맨눈으로도 별이 아주 많이 보일 정도로 기상이 좋았다. 그가 이곳에 거주하는 이유였다. 그 때문에 북부의 점성술사들은 베트램에게 정기적으로 사람을 보내서 별자리의 위치를 필사한 것을 많이 받고 있었다.

“여기에 있습니다.”

병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정확한 위치를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의 눈에는 그냥 별이 많을 뿐이었다. 까막눈이나 다름없었다.

“이 성 바로 위에 있습니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병사들은 그 길로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베트림은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문에는 별과 달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고, 문 위에는 점성술을 뜻하는 그림이 그려진 간판이 툭 튀어나왔다.

‘별의 움직임으로 모든 세상이 흘러가는 건 아니야.’

침대에 누우면서 베트램이 생각했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으면 점성술사를 찾았지만, 사실 운이라는 것은 결국 운이었다. 나쁜 상황 속에서도 행운은 찾아오기 마련이었다.

‘별일이야 있겠어.’

누구보다도 별을 좋아했지만, 그렇기에 별의 한계를 잘 아는 것이 베트램이었기에 흉성과 살성이 위에 자리 잡아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결국 별의 힘이라는 것은 그 정도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워낙 광범위한 지역에 내려 쬐는 것이기에 극명한 변화를 내기 힘들었다.

개인에게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면.

“···램님! 베트램님!”

“무슨 일이야.”

베트램은 침을 질질 흘릴 정도로 꿀잠을 잤다가 일어났다. 고용인이 호들갑을 떠는 모습이 절로 느껴졌다. 고소한 옥수수 수프의 냄새가 코로 밭아지자 군침부터 흘러나왔다.

그 허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어제 저희한테 오셨던 분 있잖아요. 기사님!”

“트로스 경을 말하는 건가?”

“맞아요! 그분이 암살을 당했대요! 지금 성이 난리에요!”

“뭣?! 암살?”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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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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