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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441화 (440/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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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룬 가문의 가주, 〈질베이런 파이룬〉은 눈을 다시 한 번 비볐다. 쌍둥이 언덕성의 외성벽이 무너져서가 아니었다.

‘살아있네?’

〈크샤크 바파이아룬〉.

그가 상처 하나도 없이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정말이지 이상했다.

‘외성벽 중에 무너지지 않은 곳이 없는데, 어떻게 저렇게 멀쩡할 수가 있지?’

“가주님을 뵙습니다!”

크샤크가 용맹하게 인사를 올렸다. 불파겐이고 자시고 우직하게 쫓아다녔던 만용의 기사가 바로 크샤크였다. 드낙한테 죽어도 100번은 넘게 죽을 수 있는 것이 크샤크였지만, 그는 멀쩡하게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대놓고 물을 수는 없고.’

“어쩌다가 외성벽이 죄다 무너졌느냐? 본성(本城)과 번성(番城)을 잇는 다리도 폭삭 주저앉았고.”

“불파겐 자작이 보유하고 있는 마력이 괴물 수준입니다. 10명이 넘는 마법사들이 가질 마력을 홀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몇 번 추격해보았지만, 마법 때문에 방해받아서 검 한 번 섞어보지 못했습니다.”

크샤크가 비통한 표정을 지었다. 성주가 될 정도로 우직함이 있는 크샤크는 표정을 숨길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가···”

파이룬 가주가 안타까워했다.

‘피비린내가 나기를 원했거늘.’

정규병도 적고, 용병 비율이 높았다. 한 번 드잡이질하면 절로 악화 일로를 걸을 수 있는 것이 〈쌍둥이 언덕성〉이었다. 허나, 인명피해는 있었지만 크지 않았다.

귀족도 하나 안 죽였기에 더더욱 아쉬움이 컸다.

‘계속 불파겐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천의 군대로 50을 쫓는다?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놓고 못 잡고, 계속 피해만 늘어나면 더 수습할 수 없다.’

“어떤 마법을 사용하던가?”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물어봤다. 이에 크샤크가 고스란히 말하였다.

“단 두 가지 마법밖에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는 대지 골램을 소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불타는 장창을 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제국 전신갑주를 쓰고 있구나.’

파이룬 가주가 탄성을 내질렀다. 제대로 작정한 것이다. 제국의 〈대마법사 아웃버스트〉가 고안한 〈한묶음 폭증 강화 마법〉을 사용한다면, 드낙을 막으려면 많은 기사가 희생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싸움에 응해주지 않을 수도 있다.’

파이룬 가주는 도착하자마자 30분도 안 되어서 결론을 내었다. 빠른 판단력 그리고 그것을 실행할 추진력이 있었다.

‘이건 버틸 수 없다.’

“사절을 보내라. 대화하자고 전하라.”

“예!”

천의 군대를 끌고 온 것이 무색할 정도로 태세전환이 국수면 돌아가듯이 호로록 돌아갔다.

“파이룬 가문의 사절이 도착했습니다.”

“들어오라고 해라.”

드낙의 대답이 있고, 잠시 뒤에 그들이 드낙이 있는 군막에 도착했다. 하나는 문인으로 보였고, 다른 이들은 정규병으로 보였다. 수는 여섯에 불과했다. 도렌이 무장해제를 하려고 했는데 드낙이 막았다.

“괜찮다. 검 하나 들고 있는게 뭐가 무섭다고.”

“예.”

관인(官人)처럼 긴 복장을 하고 불편하게 종종걸음을 하며 드낙의 앞에서 선 사절이 입을 열었다.

“파이룬 백작께서는 몽펠리에 남작과 함께 이렇게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자작이 여기까지 오시게 된 것을 미안하게 여기고 계십니다.”

드낙은 잠자코 들었다. 어떻게 입을 놀리는지 듣고 싶었다.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십니다.”

“그게 끝인가?”

“예.”

드낙이 일단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심드렁하게 말했다.

“좋다. 내일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중앙의 야지에서 만나자고 전해라. 인원은 다섯으로.”

“그리 전하겠습니다.”

문인은 되돌아가서 파이룬 가주에게도 고개를 한 번 숙이고 나서 드낙이 한 말을 전하였다.

“드낙 자작께서는 이렇게 얼굴을 붉히게 된 일에 대해서 깊은 유감을 표하셨습니다.”

“그래?”

“대화를 나누는 것에 대해서도 좋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당장 내일 해가 중천에 떴을 때, 만나자고 하십니다. 아주 급해 보이는 듯했습니다.”

“알았다. 들어가서 편히 쉬어라.”

“예.”

문인이 그렇게 물러가고 다음 날, 기사들과 몇몇 인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서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서로 싸늘하기만 싸늘했다.

“대화하고 싶다고 하셨다고.”

“대화라는 게 먼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다는 것인가? 서로 주고 받아야 하는 게 대화 아닌가.”

시작부터 잽을 날려대었다. 드낙은 한 번 찔러봤다가 자신이 좀 밀리는 것 같자 냉큼 본론으로 들어갔다.

“좋소. 파이룬 가문도 지금 일에 관여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는데, 인정하시오?”

“모두 자작의 탓이오. 일신의 힘으로 전투 요새까지 무너뜨리는데, 내 가신들이 일을 그렇게 할 줄 어떻게 알았겠소?”

“그렇다고 해도 그에 대한 책임을 지셔야지.”

“누가 책임을 회피한다고 했는가? 내가?”

그건 아니었다. 파이룬 가문과는 메시지 마법을 하지도 않았다. 적극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과정에 빈틈을 보여주고, 대신 행동력을 크게 높였다는 걸 상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앞뒤를 생각하지 않고, 무식하게 달려왔다는 걸 행동으로 설명하기에 딱 좋은 것이 메시지 마법을 한 가문에만 하고 가는 것이었다.

“제국 전신갑주를 생산하게 된다면 불파겐 가문에게도 공급하시오.”

“10벌을 생산한다면, 8벌은 파이룬이 가지고, 2벌은 불파겐에게 주겠소.”

“너무 부족한 것 같은데.”

이에 파이룬 가주가 자연스럽게 웃었다. 전혀 심적으로 압박감이 보이지 않았다. 그 여유로움에 드낙의 손이 조금 움츠러들었다.

자신과 달랐기 때문이다.

“어차피 몽펠리에에게도 받을 거 아닌가.”

“그럼 그렇게 하고··· 몽펠리에는 밀과 철을 내도록 할 생각인데, 파이룬은 얼마나 배상할 생각인가?”

“몽펠리에에게는 얼마나 내게 할 셈인가?”

이번에는 드낙이 괜히 강한 척을 했다.

“이미 다 들었을 텐데.”

파이룬 가주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정황상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으므로 딱히 딴지를 걸지는 않았다. 드낙의 속을 긁고 싶은 마음도 사라져 있었다.

〈쌍둥이 언덕성〉을 공성하는 것을 봤을 때, 깊이 고려하고 전쟁을 했음을 알아차렸다고 생각했다.

“절반···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파이룬 가문의 영지에는 철광산이 적어서 철괴 25만 괴는 드릴 수가 없소. 그에 대한 것을 금이나 은으로 해결하고 싶소.”

“얼마를 주실 수 있소?”

“밀 50만 포대에 지금 철괴 값이 한 괴당 은화 3닢이니, 75만 닢을 내어드리겠소.”

“무슨 소리. 5닢이 시세요.”

“불파겐 영지는 워낙 멀리 있고, 가는 길에 마을도 없지 않은가. 당연히 상인들이 많이 받으려고 하는 거 아닌가. 또 내어주는 건 파이룬 가문이 내어주는데, 왜 불파겐 영지의 시세로 결정하는가.”

“돈을 받는 사람을 기준으로 정해야 정상 아닌가?”

“화폐로 받아도 철을 사지는 않을 거 아닌가.”

드낙은 입맛을 다셨다. 말로는 못 이길 것 같았다. 파이룬이 크게 굽히고 들어온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지.”

“좋다.”

서로 악수를 했는데, 그때 파이룬 가주가 말했다.

“억압된 이들도 돌려받고 싶은데.”

“절대로 안 되오. 그들은 모두 처형될 것이오.”

“귀족도 하나 있고, 마법사도 있는데 처형이라니?”

좋아졌던 분위기가 다시 냉각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드낙이 강하게 밀어붙였다.

“전쟁이 일어날 정도의 일인데, 그 원인을 깊이 제공한 자들이 죽지 않는 게 무슨 경우인가? 절대 양보할 수 없소!”

한 걸음까지 앞으로 옮겼는데, 그 기세가 워낙 흉흉하여 파이룬 소속의 기사들이 검을 뽑았다. 당연히 불파겐 쪽도 검을 뽑았다. 되려 그 모습에 화를 낸 것은 파이룬 가주였다.

‘이 미친 새끼들이?’

“검을 집어넣어라! 뭐 하는 거냐! 이 자리는 원탁회의와도 같다!”

“검을 집어넣어라. 내가 검을 뽑지도 않았는데, 무슨 짓이냐.”

소리를 박박 지르는 파이룬 가주와는 다르게 드낙은 적당히 말했다.

“···알겠소. 그렇게 하시오.”

파이룬 가주가 마지못해 수긍했다. 사실 직계가 없었기에 죽이든 말든 큰 피해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오히려 큰 피해는 〈전투 요새〉가 무너졌다는 것이었다. 저걸 다시 세울 생각에 뼈가 으슬으슬했다.

“대신. 전신갑주를 제공하는 대신에, 제국 전신갑주에 대한 정보는 그 어떤 가문에게도 내어 줘서는 안 되오.”

“백금 왕가가 아직도 건재한데, 내가 무슨 이유로 하겠소? 하지만, 계속 쥐고 있기에는 큰 힘이니. 적당히 때를 봐서 북부에 흘리시오.”

드낙은 게제라스의 판단을 그대로 자신의 입으로 말했다. 물론 파이룬 가주는 기똥도 듣지 않았다.

“아, 또한 몽펠리에로 가는 길을 열어주시오.”

“문제 없소. 헌데.”

파이룬 가주가 눈을 반짝였다.

“몽펠리에에게 파이룬 또한 책임을 묻고 싶소. 놈들이 시작한 일에 내 가신들이 현혹되어서 홀렸소. 응당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

파이룬은 몽펠리에를 드낙과 함께 때릴 생각을 내비쳤다. 이게 정치고 이게 전쟁이었다. 영원한 아군은 없었다.

“배상금을 요청하려면 따로 요청하시오.”

“그리된다면 전혀 안 듣겠지. 불파겐 자작. 내 지금 끌고 온 군대를 잠깐 빌려주겠소. 어떻소?”

드낙은 나쁘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X같게도 인간들의 전쟁은 윗대가리들의 판단과 화해로 이루어지는 것이었기에 드낙이 마음껏 날뛸 수가 없었다. 빨리 끝내고 돌아가서 연루된 놈년들을 죄다 직접 자신의 손으로 처형시키고 싶은 게 드낙의 진짜 마음이었다.

‘몽펠리에도 이처럼 빠르게 태세 전환할 수 있겠지.’

과정을 빨리 지나갈 수 있다는 건 드낙의 마음에 쏙 들었다. 그리고 쓱하고 이실레아를 봤는데 그녀의 눈이 좌우로 사삭 하고 움직였다.

‘하지 말라고 하네.’

드낙은 일단 찔러는 봤다. 간잽이의 대명사가 바로 드낙이었다. 뭐라도 일단 찔러봐야 성질에 맞았다.

“대가는 어느 정도 생각하시오?”

“배상금의 일부를 우리한테 좀 나눠주시오.”

“얼마나 생각하시오?”

“밀 20만. 철괴는 필요 없소.”

전체를 봤을 때 크지 않았다. 하지만 드낙은 단위에 민감했다.

‘이런 씹 도둑놈 새끼덜이?’

“미안하지만 이대로 가겠소.”

“그럼 그렇게 하시오.”

그 길로 당장 계약서를 쓰러 갔다. 가는 길에 이실레아가 최대한 철을 뜯으라고 했기에 파이룬이 제공 가능한 수준을 받기로 했다.

[여름 갑옷 전쟁 계약서

1. 파이룬 가문은 〈제국 전신갑주〉를 생산할 시, 불파겐에게 일정량을 무료로 보급한다. 10벌당 2벌.

2. 밀 50만 포대. 철 8만괴와 은 50만닢을 배상급으로 지급한다. 밀 한 포대는 20kg이며 밀 속에 흙이나 돌이 들어가 있으면 안 된다. 운송에 대한 것은 파이룬 가문에게 일임한다. 그에 대한 비용을 불파겐에게 청구해서는 안 된다.

3. 아샤 파이룬에게 주어진 불파겐 영지의 장원을 몰수한다. 이에 대해서 그 어떤 보복도 하지 않는다. 호수 마을의 저택을 아샤 파이룬에게 대신 지급한다.

4. 이 일에 대해서 불파겐은 파이룬 가문에게 더 이상의 보복을 하지 않는다. 특히 자식과 관련된 것에 대한 일체적인 부분에 대한 것과 부부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도 충실히 해야 한다.

5. 파이룬 가문의 배상급 지급은 이 계약서가 써지고 나서 13개월 내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두 배를 배상금으로 낸다.

드낙 불파겐

질베이런 파이룬]

양피지는 두 개로 만들어졌다. 질베이런이 자필로 쓴 계약서는 드낙이 가졌고, 드낙이 자필로 쓴 계약서는 질베이런이 가졌다.

사실상 엄청난 불공정 계약이나 다름없었고, 오직 불파겐만 재미를 보는 계약서였다. 물론 파이룬은 최대한 지킬 것을 지켜냈다고 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파겐에게 내어주는 것들을 덮을 수는 없었다.

‘아, 좋다. 역시 전쟁은 이래야지.’

드낙은 은화 75만 닢을 받을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게제라스는 철로 받으라고 소리를 쳤겠지만 이 자리에 그는 없었다. 물론 이실레아가 있었기에 다행히 철 8만괴는 파이룬 가문에게서 받아낼 수 있었다.

이것만 해도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그리고 동원하는 병사 수는 적은데, 이렇게 많은 양의 자원을 내어줄 수 있는 이유는 당연히 마법 때문이었고, 파이룬 가문이 오래 존속하면서 철을 많이 쌓아왔기 때문이었다.

또한 사회의 경제를 9할 이상을 귀족들이 가지고 있어서 가능했다.

========== 작품 후기 ==========

5717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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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연재는 이걸로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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