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438화 (437/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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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질라크 몽펠리에의 반응은 실로 합리적이었다.

‘불파겐은 결코 전쟁을 수행하지 못한다.’

지역을 점령해도 유지할 수가 없다. 현재 몽펠리에의 영지민들은 <버팔로 나이트> 때문에 그 충성심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었다. 그런 곳을 피로 점령한다? 엄청난 반항이 일어날 것이다.

그들을 모두 죽이고 땅을 얻는다? 불파겐이 그렇게 이주민을 받아들여도 동북부에 자리를 잡은 게 전부일 지경이었다.

10만 명당 1천 명의 정규군을 가지는 것은 엄청나게 발전한 지역에서나 가능한 일이었고, 대부분 지역 인구 비율로 정규군을 보유하는 것은 0.1~0.3%에 불과했다. 그런 수입도 못 가지고 있어서 영주에게 지원을 받는 장원(마을, 성, 지역 등)도 많았다.

에오윈 가문이 가장 대표적이었다.

불파겐 영지는 그 부족한 돈과 자원을 외부에서 토벌과 드낙이 챙겨온 원정의 보상으로 메꾸고 있을 정도로 과잉 병력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대산 너머에서 토벌을 하여 가져오는 것들은 계속해서 쌓이고 있었고, 무리해서까지 이곳에 도착한 크고 작은 상단은 말 그대로 대박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러므로 질라크는 당당하게 나올 수 있었다.

상업에 불파겐 영지는 많은 것을 기대고 있었고, 특히나 병사들의 지출 부분에서는 그 비율이 매우 높았다. <은고원 마을>에서 채광되는 은으로도 감당할 수 있었지만, 다른 자원을 가져오는 상단이 전쟁으로 오지 않게 된다면, 은이 한 덩이가 있어도 밀 한 줌 못 얻을 것이다.

‘전쟁을 할 수가 없지.’

그런 계산이 깔렸었다.

배짱을 부릴 근거가 존재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 록시 몽펠리에가 치고 들어왔다. 같은 몽펠리에? 천만의 말씀이었다. 그들은 수많은 파벌로 존재했고, 개개인이 다양한 사상과 감정과 생각으로 <몽펠리에 가문>을 위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빠져야 해.’

불파겐을 후려치는 일은 록시,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은 아니었다. 그녀는 오히려 양자간 윤활유 역할을 해야 했다. 그러므로 가만히 있다가 질라크가 배짱을 부리자 드낙보다 먼저 나섰다.

“더 이상은 못 참겠어요! 이렇게 불명예스러운 일을 하고도 어떻게 그렇게 뻔뻔하실 수 있으세요? 저에게 말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잖아요! 계속 이렇게 나오실 거면 저는 이 일에서 빠질 수밖에 없어요.”

시녀들이 록시의 뒤로 움직이면서 따로 한 패거리를 만들었다.

‘허. 참.’

드낙이 그걸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가문을 그렇게 끼고돌면서도 정작 중요한 때에는 분란마저 일어나는 모습이 영락없이 귀족정의 문제점을 말하고 있었다.

“뭐? 곧 죽을 것 같으니까, 살 길을 도모하는 것이냐!”

질라크는 진짜로 록시가 뒤통수를 쳤다고 생각하면서 역정을 냈다. 불라온 경은 딱히 그것을 막지 않았다. 그가 소리를 치면 칠수록 록시는 이 구덩이에서 빠져나갈 수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아샤 파이룬은 선뜻 나서지 못했다. 그녀는 소식에 어두운 것은 아니었지만 이 일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 않고 여러수를 내다보지 않았으며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시녀들과 함께 고려하지 못했다.

마법에 대해서 궁리를 하며 지냈다. 즉각적인 상황 판단은 외교관 꿈나무인 록시조차 못하는 것이 지금 상황이었다.

드낙이 제대로 뿔이 난 상황에서 뭔가를 시도한다는 것은 명확한 계획. 몇 번이고 머릿속에서 과정을 그린 자만이 가능했다. 물론 개망나니 같은 천성을 지닌 질라크는 거침없었다.

그게 장점이라면 장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드낙이 두 무리를 분리했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끝난다고 생각하지는 마시오.”

록시에게 단단히 경고하는 것을 잊지 않았고, 시녀들은 단 2명을 제외하고 모두 뿔뿔이 흩어져서 저택에 감금되게 하도록 만들었다. 록시와 시녀들이 병사들에게 호위를 받는 것처럼 정문을 빠져나갔다.

‘운이 좋다고 여겨라.’

록시 몽펠리에, 부인을 살게 해준 것은 검은 회의에서 나온 의견이었다. 일말의 여유를 남겨두는 것은 언제나 옳다는 <기어오르는 발바룽>의 의견이었다.

뭔가 있어 보였기에 드낙은 냉큼 그 말을 받아들였다. 초조한 기색의 아샤 파이룬은 드낙의 호통을 감내해야 했다.

“레이디 파이룬 또한 지금 이 일에서 빠지시오.”

아샤가 고개를 숙였다. 허둥지둥 빠른 걸음으로 정문으로 빠져나갔다. 병사들이 또 우루루 빠져나갔다.

남은 이들을 향해서 드낙이 눈알을 부라리며 말했다.

“몽펠리에는 먼 길을 선택했다. 부인을 보내주니까, 내가 그냥 넘어갈 것 같지? 게제라스 총관은 지금 당장 북부 귀족 가문과 백금 왕가에게 보낼 공문을 만들어라! 조용히 일을 끝내고 싶도록 배려를 해주고 싶어도 스스로 독주를 마시고 싶어하는구나!”

“예!”

게제라스 총관이 크게 소리쳤다. 하지만 맥아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웃음 짓지 않았다. 공론화가 되면 누구 하나는 진짜로 끝장이 나야 했다. 군사적으로든 재정적으로든.

“이실레아 경은 군대를 국경선으로 보내라. 파이룬 가문의 도로 공사를 중단시켜라. 또한 파이룬 영지 내부로 진입할 정찰대도 파견하도록!”

“예! 명을 받들겠습니다!”

이실레아가 대답하며 그대로 빠져나갔다. 이실레아에게 살짝 당겨진 도렌 또한 움직였다.

“저, 전쟁을 할 생각인가! 많은 이들이 고통스러워 할 것이다!”

질라크가 비명을 지르듯이 소리쳤지만 드낙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결혼 동맹이 제국 전신갑주에 장난질을 쳤는데, 가만히 있는다면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몽펠리에와 파이룬 가문은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렇게 말했을 때, 멀리서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아크온 몽펠리에의 서한을 받으시오! 불파겐 자작!”

암갈색의 전투마를 이끈 채로 기사 하나가 대로를 무식하게 뚫고 그대로 들이닥쳤다. 먼지를 뒤집어쓴 드낙의 정규병들이 그 뒤로 속속들이 도착했다. 모두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한 병사는 지친 기색으로도 말의 앞을 막았다. 독기가 절로 서려있음에 기사가 그제야 말에서 내렸다.

다시 한 번 소리를 내지르자 드낙이 몸을 돌렸다. 몸을 돌린 드낙의 뒤로 질라크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아크온 형님의 서한이라니. 이게 무슨?’

시기적으로 결코 와서는 안 될 것이 왔기 때문이었다.

“내가 드낙 불파겐이다. 경은 누구인가?”

“저는 <마질락 사우스본>이라고 합니다.”

체격은 평범했지만, 손이 특이하게도 컸다. 뒤에서 그 이름을 들은 질라크가 경악했다.

“<돌려지는 마창>! 아크온 형님의 최측근인 자네가 왜 이곳까지 와있는가!”

“시끄럽다! 어느 안전이라고 허락도 없이 입을 놀리는 건가!”

드낙의 고함이 쩡쩡 울렸다. 가까이 있던 병사가 고개를 비트면서 귀를 틀어막았다. 고막에 큰 고통이 짧은 순간 이루어졌을 정도였다.

그의 엄청난 고함에 주위가 순식간에 조용해지고 아크온의 서한을 가져온 기사 때문에 어수선해진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하게 변했다.

“여기, 아크온 몽펠리에의 서한을 받아주십시오. 불파겐 영주님.”

드낙이 서한을 받았다. 아크온의 인장은 찍혀있었지만 몽펠리에 가문의 인장은 찍혀져 있지 않았다. 인장을 뜯으며 양피지를 살폈다.

“······”

모든 이들이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꼈다.

“흐, 하하하! 하하하하!”

드낙이 한바탕 혼자서 웃었다.

“아크온도 미치광이로군. 이딴 개 같은 제안을 하다니 말이야. 병사! 양피지를 들고가서 인장과 함께 불태워라.”

드낙이 그렇게 말하자마자 불라온 경이 달려들었다.

아크온 몽펠리에라는 이름이 가지는 그 명성. 명예 그리고 귀족을 비롯한 이들의 호감도 때문이었다.

검을 뽑지 않았기에 싸우려는 것은 아니고, 아크온의 서한과 인장을 불태우는 그 불명예스러운 일을 막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귀족의 서한을···!”

카가각, 서걱!

철이 뒤틀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팔이 그대로 잘려나갔다.

“크악!”

말끔하게 아래에서 위로 올려쳐 진 롱소드의 궤적은 인간 시야의 사각에서 튀어나왔기에 반응조차 할 수 없었다.

피가 사방에 튀었고, 불라온이 그대로 옆으로 픽하고 쓰러졌다. 팔이 하나 날아가면서 균형이 엉망으로 변했기에 형편없이 균형을 잡지 못했다.

“사제를 불러와서 치료를 해주어라. 제법 아플 것이다.”

“예!”

병사 하나가 냉큼 가려고 했지만 이미 소란 때문에 도착한 사제가 선뜻 나서서 불라온 경을 도와주었다.

귀족의 팔을 날려버리는 짓을 서슴지 않게 하는 드낙의 모습 때문에 질라크는 뒷걸음질을 쳤다. 자신도 순식간에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귀족이라고 봐주는 것은 없다. 알아서 처신을 잘 해야 할 것이다.”

“어어디이서! 자작! 그대가 귀족이라면 어찌 귀족의 서한을 그렇게 대할 수 있는가! 그리고 미치광이라고! 미치광이라고! 그걸 지금 말이라고! 버팔로 나이트가 그렇게 쉬이 보이는가! 그대의 눈에느으으은!!!”

불라온 경이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런 외침은 <마질락 사우스본>의 무표정 때문에 금방 굳어졌다. 아크온의 열렬한 신봉자인 그가 가만히 있다는 것은 이것이 계획된 것이라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깨달은 불라온 경이 입을 다물고 눈을 감았다.

‘뭐가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가?’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 도통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렇기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처량하게 퍼질러져서 피가 대량으로 쏟아진 곳에서 순백의 옷에 피가 스며드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제가 팔을 주워와서 불라온 경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름 모를 숭고함을 느끼게 해주었지만, 드낙은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 다른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아크온. 네가 정말로 내 편이라면. 네가 알아서 날 도와라. 나는 나대로 가는 수밖에 없다.’

많은 이들이 철저하게 준비를 했다. 드낙은 처음에는 휘둘렀지만, 지금에 와서는 우직하게 밀고 가야 했다.

과정 하나를 아크온을 위해서 바꾼다면, 게제라스만 더 힘들어질 뿐이었다.

“지금부터 무기와 갑옷을 모두 압수한다. 일이 끝나면 돌려줄 것이다.”

드낙은 무기와 갑옷을 압수했다. 마법사들 또한 지팡이와 로브를 반납해야 했다. 그 뒤에 드낙은 그렇게 저택을 빠져나갔고, 병사들이 저택을 포위했다. 남겨진 이들은 다시 2층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늦은 저녁에 게제라스 총관이 드낙의 저택으로 들어섰다.

이 문 저 문 돌아다니면서 노크를 한 결과 겨우 사람을 찾았고, 질라크에게로 안내됐다. 잠들지 못한 질라크가 게제라스를 반겼다.

“어찌 오셨습니까?”

그저 총관을 대하는 것에 있어서 깍듯했다. 불리온 경의 팔이 단 한 수에 잘려나가면서 자신도 이곳에서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심각합니다. 왜 그렇게 말을 했습니까? 누구도 못 말리는 게 영주님이십니다. 트롤 토벌 때도 그렇게 반대를 했지만, 홀몸으로 가신 분입니다.”

질라크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정말이지 최악의 결과가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자존심 때문이라도 피를 볼 수밖에 없게 되어버렸다.’

불파겐 영지가 동원할 병사는 100명도 채 안 될 것이다. 그런 놈들을 상대로 몽펠리에가 검을 접는다면,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원래 숫자는 최대 500명에 달하는 것이 불파겐 영지였지만, 지금은 여름이었다.

온갖 문제에 방비를 해야 했다. 그 덕에 전쟁에는 100명을 동원하는 것도 힘들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그것을 감행할 정도의 추진력이 드낙에게는 있었다.

‘동부의 모든 힘은 드낙 불파겐에게 집중되어있다.’

그의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결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간과한 것이 몽펠리에였고 파이룬이었다. 왜냐하면 드낙은 권력자가 되고 나서도 자신의 주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수작질을 벌였다.

수틀려도 할 만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침통한 모습의 질라크에게 게제라스가 한숨을 한 번 쉬고 말했다.

“내일이라도 최대한 조율을 하려고 노력하십시오. 마력은 걱정 마시고, 죄를 인정하고 몽펠리에 가주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메세지 마법진을 설치하여 이 일을 수습하고 싶다고 말하십시오.”

“그런···”

질라크가 자신에게 돌아올 끔찍한 여파를 생각하며 질색했다. 하지만 게제라스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럼 이대로 끝까지 가시겠습니까? 영주님은 끝까지 가실 겁니다. 공론화가 된다면 귀족들은 백금왕가 때문이라도 불파겐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제국 전신갑주가 남부로 간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자신을 죽일 갑옷을 플래티넘 왕가에게 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진실로 그렇게 믿는다면 영주님을 잘 모르시는 겁니다.”

게제라스의 말에 질라크는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생각해보십시오.”

게제라스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서둘러 빠져나갔다. 정문으로 도망치듯이 빠져나가는 총관의 모습을 질라크는 창문을 통해서 바라보았다.

‘크으으···.’

불라온 경의 팔이 잘려지는 광경이 계속해서 생각이 나자 질라크가 괴로워했다. 이런 곳에서 죽고 싶은 마음은 새끼손가락에 낀 때만큼 없었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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