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437화 (436/1,239)

437====================

여름

<호수 마을>의 건축물들은 모두 나무로 되어있다. 석재가 없기 때문이고, 그렇다고 해서 미관상 좋지 않은 시멘트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었다. 또한 벽돌을 굽기에는 질 좋은 흙이 나오는 곳이 없었다.

그런 점토는 지하수든 강이든 흐르는 곳에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냥 흙으로 구운 벽돌은 보기 좋게 만들 수 없었고, 내구력도 형편없는 게 기본이었다. 또 염료를 칠하기에는 벽돌의 가치가 낮았다.

그 덕에 호수 마을이든 석지 마을이든 어느 곳이든 목조 구조물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높은 건축물을 짓기 위해서 대단히 뛰어난 건축자들이 필요했고, 이들은 게제라스 총관의 선택을 받아서 제법 떵떵거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드낙의 저택>은 그중에서도 공을 들인 저택이었다.

그곳에 들어선 외척들의 무리는 하나같이 표정이 안 좋았다. 재능이 있어도 경험이 적은 록시는 입술이 파랗게 질려있어서 부축을 받은 채 안으로 들어갔다.

“회의를 할 곳을 찾아라!”

“예.”

회의를 할 방을 찾는 것도 시간이 소요되는 일이었다. 십여 명은 들어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수십 분이 지나고 나서야 이들은 한 곳에 다시 모일 수 있었다.

안색이 돌아온 록시부터 다른 이들 또한 표정이 아주 좋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정도 진정했고, 현실과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질라크 몽펠리에가 가장 먼저 의견을 냈다. 파이룬 가문의 일원들은 다른 방에서 회의하고 있었다.

“수작질을 한 제국 전신갑주를 파괴하거나 빼돌려야 한다.”

질라크의 눈이 록시에게로 향했다. 보다 직접 설명했다.

“붐베일 블랙스미스를 통해서 전신갑주를 빼내야 한다는 소리다.”

이에 록시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아크온 오라버니의 수족이에요. 그분을 위해서 일을 하지 몽펠리에를 위해서 일하지 않아요. 이번 일에 아크온 오라버니가 속해있어야지만 움직일 거예요. 그리고 그 정황을 말로만 전한다면, 통하지 않을 것이고 더 일이 틀어질 수 있어요.”

아크온의 인장이 있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저 드낙에게 명령을 받아서 제국 전신갑주의 유리관 연결부위를 빼내는 일과 제국 전신갑주를 빼돌리는 일은 차원이 다른 위험함을 가지고 있었다.

이 광활한 동부에서 붐베일은 결코 도망칠 수 없었고, 잡힐 게 뻔했다.

한 마디로 죽으라는 소리인데, 아크온의 인장이 있어야지만 그렇게 희생을 강요할 수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대장장이 놈이, 쓸모가 없군.’

자신이 꽂아둔 것도 아님에도 질라크는 치졸한 생각을 했다.

“똑같이 몽펠리에 가문인데. 어처구니가 없군.”

뒷머리를 신경질적으로 긁었다. 하지만 록시의 말을 들어보니 그럴듯했기 때문에 더는 말하지 않았다.

“몰래 숨어들어 가서 빼내 와야 하나.”

순찰자도 아니지만, 그 수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남들이 할 수 있는 생각이기도 했기에 간파될 가능성이 컸다.

“그에 대한 대비를 해놓았을 텐데, 하시려고요?”

“드낙 자작을 제외하면 사실상 그리 대단하지 않은 놈들이지 않나? 가능할 것 같은데.”

질라크가 포기를 못 하자 불라온 세파르섹이 록시의 편을 들어주는 척을 했다.

“도렌 홀그린 경에 대해서 아는 게 있습니까? 레이디 록시.”

“사람이 좋아요. 소심하면서도 뭔가 고집 같은 게 있고, 꼼꼼해요.”

그 말을 들은 질라크는 기괴한 표정을 지었다. 도렌의 성격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외유내강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도렌은 세상과 사람에 대해 부드러웠다. 그가 있으면 싸움이 날 곳에서도 싸움이 안 나는 것이 일반적일 정도였다.

남들이 가지는 분노의 선에서 몇 걸음이나 떨어져 있는 곳에 선이 있고, 그 선을 밟아도 내색을 크게 안 하는 것이 도렌이었다. 하지만 한 번 고집이 튀어나오면 누구도 못 막았다.

“꼼꼼하다면 창고를 털 수는 없을 겁니다.”

“불라온 경이 그렇게 말한다면야.”

질라크가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속이 썩든, 진창이든 그는 엘리트 교육을 받은 귀족이었다. 현대인처럼 단순히 국영수를 위주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승리하기 위한 교육을 받는 것이 귀족이었다.

물론 그렇게 교육을 받았다고 해서 결과가 좋다는 것은 아니었다.

세상일은 모르는 법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불파겐 소속이 된 마법사를 통해서 저희의 수작질을 확실시하려고 할 때, 그 증거물들을 처리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흉험한 음모를 불라온이 거론했다.

“전신갑주를 박살을 내려면 보통 힘이 필요한 것이 아닌데.”

“마법사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아무리 불파겐 자작이 강하다고해도 한 합 만에 기사를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시간은 충분합니다.”

불라온의 시선이 마법사들에게로 향했다. 그들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방도가 없었다.

‘자폭하는 수밖에.’

증거를 없애는 것이 최선의 수단이었다. 그들은 모두 몽펠리에 가문이라는 이름 속에서 태어났고, 죽어서도 그 이름을 위해서 죽어야 했다.

사람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가문은 남기 때문이다.

“그때를 노린다. 단단히 준비해라. 무기는 빼앗기지 않았고, 마법사들도 이곳에 모두 있다. 파이룬 가문원들도 응당 그렇게 해줄 것이다.”

증거가 없으면 상황은 진창으로 갈 뿐이다. 그렇게 되면 몽펠리에와 불파겐 중에서 몽펠리에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불파겐이라는 이름은 이런 모략에서 마이너스밖에 되지 못한다.

북부 전체를 상대로 싸우려고 한다면, 남부 왕국 또한 도와줄 것이다. 레이시아 플래티넘을 시집 보낸 것부터 북부와 이미 선을 그은 것이 백금 왕가였다.

3일 뒤에 <둥근 언덕 마을>에서 거의 귀양보낸 죄인처럼 숨어서 연구만 하다가 이실레아 경과 함께 호수 마을에 도착한 페리에 러셀은 주변을 둘러보고는 흥미를 금방 잃었다.

규모는 크지만 오두막뿐이었기 때문이다. 제법 큰 저택은 신기하기는 신기했지만, 그것도 금방 싫증이 났다.

“영주님을 뵙습니다.”

외청의 회의실에서 마법사 페리에는 드낙과 마주할 수 있었다.

“상점에서 만나고 처음이지?”

“예.”

그다지 기억에 남지는 않았다. 한 마디로도 끝나는 화제에 불과했다.

“독립했다던데, 연구실을 내어주기도 전에 이런 일에 휘말리게 해서 어쩌나?”

“괜찮습니다. 오히려 트롤의 부산물까지 한 마리 분을 내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여기 약소하지만 마법 처리한 <거칠고 튕기는 트롤 망토>입니다.”

페리에 러셀은 진실로 드낙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사실 스승에게서 독립한 제자는 가진 것이 거의 없어서 불공정 계약에 묶이는 게 기본이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이곳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되었다.

또한, 다른 마법사들과 경쟁도 없었다. 군대로 치면 부대로 전입을 왔는데, 신생부대라서 이등병인 자신이 최고선임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트롤 부산물을 그냥 내어주고 연구로 쓰라고 하기까지 하니, 드낙을 숭배해야 할 정도였다.

쯔걱.

목함에서 돌돌 만 트롤 망토가 튀어나왔다. 도렌에게 내어준 트롤의 망토와는 재질부터 달랐고, 감촉도 달랐다.

“색이 변하네.”

드낙이 감탄했다. 어두컴컴한 상자에서는 새까만 색이었는데 밖으로 나오자 그에 맞추어서 색이 변하며 마치 없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다른 기능이 있나?”

“예. 투창을 막아내고, 만약 뚫리더라도 알아서 박혀있는 것이 천천히 뽑힙니다.”

그 말에 드낙이 크게 좋아했다. 곧바로 착용해보았다.

‘무게가 적은 게 흠이네.’

싸움에서 체중이 큰 부분을 위치하는 만큼 드낙은 망토의 무게가 깃털처럼 가벼운 것에 대해서 아쉬워했다. 움직임을 크게 했을 때, 무게가 무거운 망토라면 상대의 허를 찌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용법으로 사용할 수 없고, 방어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었다.

“필요한 게 있다면 게제라스 총관에게 말하게.”

“감사합니다.”

점수를 따낸 것이 확실해 보이자 페리에 러셀이 충혈된 눈을 비비면서 대답했다. 자신의 역량을 며칠이나 투자하며 철야에 철야를 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이었다.

마법사들의 마법물품 제작은 철야가 대부분인데, 자고 일어나면 마법진을 만드는 그 감각을 잃어버리기 때문이었다. 중단할 때에도 시간을 들여서 마법진의 상태, 정보를 숫자로 변환하여 기록하고 나서야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단순 기술도 기술이지만, 감, 어림잡아서 보는 것 등이 필요한 것이 마법진이었고, 마법 물품의 제작이었다.

공들인 티가 났다. 드낙은 거칠고 튕기는 트롤 망토를 착용한 채로 페리에 러실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말해나갔다.

“가장 먼저는 온전한 제국 전신갑주를 연구해라. 결함이 있는지 없는지, 유리관 연결부위를 빼버려도 제대로 기능하는지가 가장 먼저다.”

“예.”

“그다음에는 다른 가문들이 수작질한 제국 전신갑주를 비교 대조하게 될 것이다. 그저 어떤 마법이 사라졌는지, 어떤 식으로 제거되었는지를 말하면 될 것이다.”

“알아들었습니다.”

페리에 러셀은 사제의 신성력을 받으며 철야를 시작했다. 하지만 열정으로 가득한 그녀는 하루도 안 되어서 결과물을 들고왔다.

사실 그냥 뭐가 쓰여 있는 것이 보는 것에 불과했기 때문에 잠자는 시간을 빼면 채 6시간도 되지 않은 시간 만에 얻어냈다.

조형물을 보는 건 쉽지만 만드는 건 오래 걸리는 법이었다.

다음 날 점심때에 열린 회의에서 페리에 러셀이 짧게 말했다.

“그 어떤 결점도 없습니다. <유리관 연결 부위>라고 말씀하셨던 척추와 갈비뼈의 대체 금속 부위는 혼과 마력의 주입로이기 때문에 다른 마법진도 일절 없습니다.”

“개수작도 이런 개수작을 벌이다니!”

드낙의 눈에 분노가 서렸다.

“그 말은 단순하게 떼어버려도 제기능을 한다는 뜻인가?”

“예.”

“저택에 구금된 이들을 더욱 철통같이 지켜라. 그리고···. 아니다. 내가 직접 가겠다.”

드낙이 머리를 굴리면서 걸어서 자신의 저택으로 향했다. 드낙이 정문으로 들어서자 질라크를 비롯한 이들이 차례대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모두 평범한 기색을 하고 있었지만, 드낙 모르게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하고 있었다.

“토치라이트 가문에서 마법사로 활동하던 알버트 스펜서의 제자인 페리에 러셀은 독립을 했고, 그녀는 불파겐 영지의 마법사가 되었다. 그녀에게서 들은 조사 결과에 의하면 그대들이 말한 것은 모두 거짓이다.”

드낙이 주위에 있는 이들과 눈을 맞추었다. 모두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새끼들.’

“질라크 몽펠리에! 이것을 인정하는가?”

“인정 못 합니다.”

“뭐라고?”

“말 그대로입니다. 인정 못 합니다. 마법사로서 이제 갓 독립한 마법사의 의견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그렇다고 쳐도 이것은 모함입니다. 불파겐은 거짓된 선동과 조작된 증거로 몽펠리에와 파이룬 가문을 후려치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드낙이 눈을 깜빡였다.

뒷골이 뻐근해졌다.

당장 죽이고 싶었지만 참았다. 드낙의 살기를 느낀 질라크가 냉큼 말했다. 등으로는 식은땀이 가득했다. 그 정도로 살의가 대단했다.

“증거를 보여주십시오. 저희 마법사들도 있지 않습니까. 확인을 해봐야겠습니다.”

“좋다.”

드낙은 그렇게 말하면서 질라크를 지목했다.

“증거에 대한 것을 보는 건 한 명씩이다. 질라크 몽펠리에, 저택 밖으로 나가라.”

그 발언에 질라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모두가 보는 것에서 보여주지 않고, 한 명씩 보여주는 치밀함을 보여주었기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대장장이에게 그 위험하게 마법진과 엉겨 붙어있다던 유리관 연결 부위를 다 떼버렸으니, 마법사가 아니더라도 무엇이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확인해보겠습니다.”

질라크를 비롯한 귀족들과 마법사들은 한 명씩 증거를 확인했다.

이실레아. 페리에 러셀. 게제라스와 이스핀 그리고 도렌까지 있는 상황에서 혼자서 뭔가 수작질을 하기에는 불가능했다. 병사들도 여럿, 뒤에 배치되어있었다.

모두 무기를 뽑고 있는 데다가 그곳으로 향하여 증거를 확인하는 데에는 완전히 무장해제당했다.

모든 이들이 증거를 확인하고, 다시 드낙의 저택 1층 로비에 모였다.

“이제 인정하는가?”

이에 질라크 몽펠리에가 대표로 말했다.

“인정 못 합니다.”

드낙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이 개새끼들이? 진정으로 미쳤구나.’

============================ 작품 후기 ============================

5702자

범죄자가 자기 죄를 인정하는 법 봤습니까? 아니죠?

0